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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63화 (163/200)

# 163

163화 각성 카운트 0

어두컴컴한 지하실 안에는 마물이나 언데드들을 가둬 놓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명령을 이행하고 복귀한 엘리나는 항상 제 의지와 상관없이 가장 안쪽에 있는 옥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육체가 마치 자기 것이 아닌 양 멋대로 움직이며 스스로에게 마나 봉인 족쇄를 채우는 걸 볼 때마다 정신적인 부분이 자꾸만 마모되어 가는 게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옥살이보다 더 잔혹한 처사였다.

분명 내 몸인데도 내 것이 아니다.

거기서 오는 상실감과 굴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감옥 구석에 앉자 한 사내가 쟁반을 들고선 엘리나가 있는 감옥 앞으로 다가왔다.

“놈들 뒤치다꺼리하느라 고생이 많군, 까마귀 아가씨.”

사내의 뻑뻑한 목소리가 엘리나의 불쾌지수를 한층 더 높였다.

마치 사흘간 물 한 모금도 안 마신 사람이 입안에 모래를 한 움큼 넣고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갈증에 절은 자의 목소리처럼 음색에 생기가 없는 데다 중간중간에 발음이 새는 탓에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들었다.

엘리나는 미간을 좁히며 사내를 향해 독기 어린 말을 쏘아붙였다.

“언젠가 술식을 해제하면 네 심장부터 뽑아 버리겠어, 쟈칼.”

식사를 가져온 자는 다름 아닌 쟈칼이었다.

루크의 손에 죽었었지만 어느 사제가 그의 시신을 회수했고, 그대로 언데드화되어 다시 살아난 것이었다.

한번 죽었었다는 증거로 쟈칼의 몸 정중앙에 세로선과 한쪽 팔에 꿰맨 자국이 남아 있었다.

쟈칼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심장이 담긴 쟁반을 감옥 안으로 밀어 넣어 주며 어깨를 으쓱였다.

“놀리는 게 아니니 화내지 말라고. 나도 이 빌어먹을 술식에 구속되어 있는 처지란 걸 알잖아?”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정보나 읊어 봐. 이번에도 빈손인 건 아니겠지?”

“안타깝게도 빈손이야. 정보를 수집하려다가 들켜서 목이 날아갔었지. 다음에 한 번만 더 그랬다간 머리를 아랫도리에 붙여 버린다더군.”

쟈칼이 턱을 치켜들며 목에 새로이 생겨난 꿰맨 자국을 보여 주었다.

마물과 언데드는 완전히 다른 종류였다.

마물은 살아 있는 몸으로 만들며 마물화 이전의 기억과 능력을 잃는다. 다만 원래의 모습으로 둔갑이 가능하며 한 번 죽으면 부활할 수 없다.

반면 언데드는 죽은 자의 몸으로 만들고, 언데드화 이전의 기억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둔갑이 불가능하며 죽어도 술사에 의해 부활이 가능하다.

기억의 유무나 부활의 유무 등 많은 차이점이 있으나 공통적으로 술자나 술자가 허락한 이들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서로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자들을 처리해야 자유를 되찾을 수 있기 때문에 사제들 몰래 협력 관계를 구축한 상태였다.

쟈칼은 팔짱을 끼고서 쇠창살에 기대어 있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긴 양 질문을 던졌다.

“자유를 되찾으면 뭐부터 할 거야?”

“내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거기서 다시 시작할 거야.”

“마물이 된 것치곤 제법 건실한걸?”

“그렇게 말하는 넌 어떤데?”

“세력을 키우든 세력에 들어가든 힘을 갖춰 볼까 싶어. 얻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

“힘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사람인가 봐?”

“경쟁자가 빡센 놈이거든.”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엘리나는 전신에 짜릿한 느낌이 타고 흐르는 것을 감지했다.

더불어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술식이 해제되었다는 것을.

오스카가 죽었다!

본인의 실수로 죽었든, 타인에 의해 죽었든 그 부분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유를 되찾기 위해 필요했던 공정 하나가 저절로 해결된 것이다.

엘리나는 쟁반을 걷어차며 손에 소멸의 기운을 부여했다.

“누군가가 빌어먹을 영감을 죽였나 본데?”

“음? 정말이야?”

“미리 경고하는데 문에서 떨어지는 게 좋을걸?”

경고와 동시에 쇠창살을 향하여 손을 쑥 뻗는 엘리나였다.

쇠창살에 기대어 있던 쟈칼은 다급하게 몸을 옆으로 움직였다.

소멸의 기운에 닿은 쇠창살이 삽시간에 사라지며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렸다.

뚫린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려는데 복도 구석에 맺혀 있던 그림자가 불쑥 솟아오르더니 스켈레톤이 나타났다.

엘리나는 능숙한 마법 실력에서 스켈레톤이 아닌 리치임을 직감했다. 오스카가 죽은 이때 뜬금없이 리치가 나온다는 건 말이 안 되고, 오스카의 죽음에 관여한 자가 아닐까 싶다.

“네가 영감을 죽인 장본인인가 보지?”

“이해가 빨라서 좋군. 짐작하고 있다면 긴 설명은 필요 없겠지.”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것? 굳이 말한다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 구 겐크의 왕녀여, 오스카는 데메그리 교 대교주로서 아슈타르 교 대교주 행세를 하고 있었단다. 이대로 네가 자유를 되찾기 위해 그를 죽였다면 자작극을 통해 탄생한 구세주로서 데메그리 교 선전을 위한 꼭두각시로 전락했을 테지.”

어쩐지 오스카의 명령에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다 싶었는데 내막을 알고 나니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엘리나가 오스카를 죽이기 전에 리치가 오스카를 죽임으로써 그의 계획은 불발에 그친 것이다.

하나 엘리나로선 오스카의 계획 따위보단 자신을 두고 ‘구 겐크의 왕녀’라 칭한 것에 신경이 쏠렸다.

“겐크 왕국의 왕녀였다는 것까진 알겠어. 근데 어째 한 글자가 더 붙은 것 같은데?”

“멸망했으니 구 겐크라 칭한 것이지.”

“멸망… 했다고?”

백지가 된 기억 속에 제 나름의 추측을 더하여 원래 자신의 삶이 어땠는지 상상해 왔던 엘리나다.

왕녀라 했으니 필시 안락하고 품격 높은 삶을 살았으리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미 멸망한 나라란 말에 지금까지 그려 왔던 상상이 모두 무너졌다.

리치는 한술 더 떠 뼈만 남은 앙상한 손을 엘리나의 머리를 향해 뻗었다.

“원한다면 기억을 되찾게 도와주마.”

“기억이라면… 내 기억? 되찾을 수 있는 거야?”

“마물화로는 원래 가지고 있던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단다. 비유하자면 그림 위에 새하얀 캔버스를 덧댄 것에 불과하지. 나라면 수면하에 잠긴 옛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다만, 네 기억이니 네 의사를 존중하마.”

“무의미한 질문인걸? 대답은 정해져 있잖아.”

“그럼 시행하도록 하지.”

리치의 손에서 시커먼 마기가 흘러나와 엘리나의 머리를 감쌌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엘리나의 머릿속에선 지난날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야 모두 기억난다.

항상 암살 위험에 시달려야 했던 어린 시절부터 루크를 만나 그와 함께 걸어가고자 결심했던 나날들, 그리고 오랜 볼모 생활을 마치고 오랜 꿈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납치당한 것까지.

모든 기억이 되살아나며 엘리나의 가슴 속에서 증오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기억났어. 난 거인국에서 돌아가는 길이었어. 데메그리 교… 그래, 데메그리 교였었구나. 날 이런 꼴로 만든 걸로도 모자라서 제 놈들을 위한 우상화까지 시키려 했단 거야? 이런 꼴로… 이런 괴물의 모습으로…….”

혼란과 증오가 어지럽게 뒤섞이며 정신적인 충격을 동반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정신적으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가 제정신을 붙들고 있는 건 모두 루크 덕분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루크라면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여 줄 것이다.

구 겐크 왕국과 전쟁을 벌이기 직전에도 그녀만큼은 훗날 곁에 두고자 특별히 활로를 제시해 주었잖은가.

루크를 보고 싶다. 그의 곁으로 가고 싶다.

오랫동안 품어 왔던 소망 하나가 그녀의 인간성을 간신히 붙들어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잠시뿐, 리치는 마기를 거두면서 유리 구슬 하나를 내밀었다.

“유감이지만 루크에게 돌아가는 건 별로 좋은 선택지가 아닐 것 같아. 그는 이미 널 잊었어.”

유리구슬 안에 일련의 영상이 비치기 시작했다.

거인국 어딘가에 있는 천막 안에 루크와 은발의 여인이 함께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영상은 천막 바깥만 비추고 있었으나, 대신 천막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아, 아아… 아아아!]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엘리나는 자신의 귀로 들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은발의 여인은 아마 레이아일 것이다.

예전부터 루크와 함께 갖가지 작전을 펼친 주군과 부하 관계인 것까진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오래 전 혹시 몰라 루크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레이아 양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은 마법사지요. 앞으로 비행 부대 대장으로서 좋은 전력이 될 겁니다.

-그게 아니라 여자로서 말이에요.

-글쎄요. 당분간은 아무도 곁에 둘 생각이 없습니다. 적어도 왕녀님의 볼모 생활이 끝날 때까진 말입니다.

‘관심 없다고 했으면서… 아무도 곁에 두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기다린다고 했으면서…….’

루크 하나만을 생각하며 버텨 온 세월을 모두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국적 같은 건 상관없다고, 망국의 왕녀란 시선을 받아도 상관없다고, 모든 걸 버리고 그 사람만 보고 살아왔다.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끊어지면서 엘리나의 얼굴에 허망함이 감돌았다.

소멸의 기운이 사그라지는 가운데 리치가 엘리나의 귓가에 대고 악마의 속삭임을 불어 넣었다.

“결국 그도 한 명의 인간이었다는 거지. 널 이용해 먹었을 뿐이야. 이제 좀 깨닫지그래? 인간은 추악해. 사라져야 마땅한 존재들이지.”

“인간은… 추악해.”

“왜 네게 5성급의 힘이 주어졌을까? 모든 건 우연이 아냐. 추악한 쓰레기들을 치우라고 하늘이 준 힘인 거지.”

“아무도 믿을 수 없어.”

“네가 당한 것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거야. 네겐 그럴 자격이 있어.”

“그게 맞아. 난 이때까지 참기만 했어. 하지만…….”

엘리나가 잠시 말꼬리를 흐리는가 싶더니 손에 소멸의 기운을 부여했다. 그리고 손바닥을 펼쳐 리치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리치의 머리가 삽시간에 소멸되면서 엘리나의 입에서 독기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을 믿지 못한다고 해서 널 믿어야 하는 건 아니지.”

파사삭!

리치의 관절 부위가 접착력을 잃고 끊어지면서 뼈다귀가 아래로 무너졌다.

바닥에 쌓인 뼈 더미 위로 리치가 걸치고 있던 로브가 떨어지며 뼈 더미를 덮었다.

여태까지 얼마든지 오스카를 죽이고, 그녀에게 기억을 되찾아 줄 수 있었음에도 지금에 와서야 행동에 옮긴 건 리치 또한 그녀를 이용할 의도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괘씸하니 죽였다.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

더 이상 참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엘리나의 행동 또한 거침없어졌다.

엘리나는 등 뒤에 있는 쟈칼을 향해 명령을 내리듯 말을 전했다.

“내가 이곳 사제들을 쓸어 버리는 동안 넌 이곳에 있는 마물과 언데드의 숫자를 파악해 둬.”

이곳이 아슈타르 교 신전으로 둔갑한 데메그리 교 대신전이라면 아직 숨겨 놓은 마물과 언데드가 많을 터.

청소 도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녀의 표독스러운 눈빛과 고압적인 말투는 흡사 여왕님을 눈앞에 둔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여왕님.

여러 의미에서 엘리나에게 참 잘 어울리는 단어였다.

쟈칼은 피식 웃으며 익살스럽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훗, 이미 난 부하 취급이구만.”

“소멸당하는 쪽이 취향이라면 바라는 대로 해 주지.”

“이거야 원, 농담도 못하겠군.”

“쟈칼.”

“예~ 예~ 분부대로 합죠, 여왕님.”

엘리나는 발 주위를 제외한 나머지 신체 모든 부위에 소멸의 기운을 피워 올리며 계단을 밟았다.

엘리나를 따라 계단 위로 올라가던 쟈칼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두개골이 통째로 소멸된 것을 목격했음에도 이상하게도 리치의 뼛조각을 덮고 있는 검은색 로브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한참 동안 로브를 바라보던 쟈칼은 이내 곧 신경을 끄며 대수롭지 않은 양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뭐, 머리가 통째로 날아갔으니 상관없으려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지하실 문이 닫혔고 지하실 바닥에 남은 뼛조각은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채 덩그러니 방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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