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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68화 (168/200)

# 168

168화 요정의 무덤 (2)

먼 길을 달려왔긴 해도 루크 일행은 그다지 피곤한 편은 아니었다.

엘프의 숲은 엄연히 적지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중간중간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럼에도 하루를 낭비해 가며 하룻밤을 쉬기로 한 것은 작전을 짜기 위함이었다.

마나가 동결되는 환경 속에 들어가는데 무작정 돌격부터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루크는 배정받은 숙소 안에서 레이아, 라샤, 아캄프, 라울을 불러 모았다.

“요정의 무덤에는 나와 라울만 들어가는 걸로 하지.”

다들 자기가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는지 항의가 빗발쳤다.

“저는요? 항상 절 데리고 가셨는데 이번에는 왜 제외하는 거예요?”

“제가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저 불안한 작자보다 못하다고 생각되진 않는걸요.”

“절 데려가시지요. 마나 동결 환경 속이라면 근력의 차이가 승패를 가르지 않겠습니까?”

타국에선 힘들고 위험한 일은 죄다 남에게 떠맡기려고 안달인데 어찌 된 게 루크의 밑에 있는 자들은 위험한 일을 못 맡아서 안달이다.

기사는 주군의 거울이라 했으니.

루크가 항상 위험을 자처하니 기사들도 위험한 곳에 뛰어드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어찌나 열성적으로 항의하는지 제삼자가 들으면 어디 좋은 곳에 가는 걸로 착각할 정도였다.

루크는 가볍게 손을 휘저으며 세 사람을 진정시켰다. 그러곤 차분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하나씩 안 되는 이유를 말해 주지. 먼저 레이아.”

“네.”

“마법도 못 쓰는데 들어가서 어쩌려고?”

“요즘 창술 수업을 받고 있어요.”

“다이어트용으로 받고 있는 거 다 알아. 기각.”

“힝.”

“애처럼 굴어도 소용없어.”

“힝입니다.”

“어른 말투로 포장해도 소용없어.”

요정의 무덤에 못 들어간다고 해서 실망할 이유가 없다.

레이아가 숙소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소리아가 대놓고 움직이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니까.

레이아의 존재가 곧 소리아의 행동을 제한하는 억제기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레이아 다음은 라샤 차례였다.

“라샤 넌 남아서 소리아의 움직임을 감시해. 감시하는 김에 엘프의 숲 안에 데메그리 교 사제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그 역할은 아캄프에게 맡겨 주시면 안 될까요? 개인적으로 저 작자가 도움이 될지 의문이에요. 수비대장에게 안내받을 때도 실수를 저질렀었죠. 저 얼간이가 민폐를 끼칠 경우까지 계산하면 한 명 정돈 더 데려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본인이 코앞에 있는데도 후벼 파듯 독설을 남발하는 라샤였다.

라울도 라샤의 임기응변 덕에 위기에서 벗어난 터라 그녀의 말에 토씨 하나 달지 않고 수긍했다.

어떤 부분은 걱정하는지는 알겠다.

그러나 루크는 단호하게 라샤의 이의를 기각했다.

“이번 원정에서 네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했을 텐데?”

“그건…….”

“말한 대로 수행해.”

“하아, 알겠습니다. 명령대로 이행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캄프에게 라샤를 보조를 명했다.

“아캄프, 장소가 장소이니 라샤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곁에서 잘 보조하도록.”

“쩝, 뭐, 그런 역할이라면 어쩔 수 없지요. 저도 전하와 함께 작전을 수행해 보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옛 하니온 3인방 중 바이스와 랴사는 루크와 작전을 수행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아캄프만큼은 항상 다른 동선으로 움직여야 했던 탓에 루크와 같이 작전을 수행해 본 적이 없다.

한 번쯤은 수행해 보고 싶었는지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는 아캄프였다.

교통정리를 마친 루크는 아까 전 라울의 실수를 지적했다.

“그리고 라울. 분명 엘프의 숲에 들어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든 지시가 있을 때까진 냉정을 유지하라고 했을 텐데?”

“미안하네. 뭐라 할 말이 없군.”

“네 아내는 네가 죽었다는 걸 듣고서 소리아를 저지할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봉인석을 빼낸 것이겠지. 넌 아내와 딸의 각오를 무의미하게 만들 뻔했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걸세.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하겠네.”

“내가 반성이나 듣자고 문책하는 거라 생각하나 보지?”

라울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곤 대답을 정정했다.

“반드시 만회해 보이겠네.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말일세.”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실수한 후에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것이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을 두고 후회라고 한다. 백 번 후회한다고 발전이 있던가? 전혀.

실수를 인정하고 답습하여 문제점을 개선해야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된다.

라울에게 답습하는 자세가 부족해 보였기에 직접 문책을 하여 스스로 깨닫게끔 유도한 것이다.

“이제 좀 구색이 갖춰지는군. 무덤에 들어가기 전에 해 줘야 할 일이 있어. 절대로 흥분하지 말아야 하는 역할인데, 잘할 수 있겠지?”

괜히 라울을 자꾸 자극한 게 아니었다.

라울이 꺼림칙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본 것이다.

라울은 지금까지의 모든 문책이 어느 역할을 맡기기 위한 빌드업이었음을 깨닫곤 혀를 내둘렀다.

“아내와 딸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역할이든 도맡겠네. 어떤 역할인가?”

라울의 각오를 확인한 루크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을 꺼냈다.

“오늘 밤에 소리아에게 다녀와.”

낮 내내 강한 햇볕을 내리쬐던 태양이 서산 너머로 떨어지면서 밤이 찾아왔다.

며칠 내내 기승을 부리던 열대야는 오늘 밤에도 어김없이 더위를 풀어 놓았으며 높은 위치에 있는 라이프 트리의 상층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널찍한 나뭇잎 사이에 갇힌 더운 공기가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맴도는 가운데, 요정왕의 침소에 손님이 방문했다.

소리아로선 난데없이 한밤중에 알현을 청한 자를 매우 무례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하나 방문자의 이름을 듣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방문자가 스스로 자신의 이름이 라울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자결한 걸로 알려져 있던 라울이 돌아왔다? 그것도 루크의 호위단에 섞여서?

소리아는 라울이 몰래 찾아온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판단하여 침실로 들였다.

“이거 놀랍군. 루크 국왕이 널 숨겨 주고 있었을 줄이야. 죽은 걸로 위장해서 어쩔 속셈이었지? 몰래 날 암살할 심산이었나?”

“정령사의 능력으론 요정왕 일족에게 해를 입힐 수 없지요. 그저 제 가족이나 데리고 나갈 심산으로 동행을 요청했습니다.”

“루크 국왕이 어디서 봉인석 얘기를 들었는지 궁금했는데 네놈이 원흉이었군. 어디까지 불었지?”

“당신이 데메그리 교와 연루해 두 개의 봉인석을 받았다는 것까지 모두 말했습니다.”

쨍그랑!

소리아가 쥐고 있던 와인잔이 허공을 날아 라울의 이마에 부딪혔다.

와인잔 안에 담겨 있던 호박색 과일주가 유리 파편과 함께 쏟아져 내리며 라울의 전신을 더럽혔다.

더하여 소리아의 호통이 뒤따랐다.

“네놈이 모든 걸 망쳤구나! 네놈이 엘프의 숲에 악귀를 불러들였어! 죽여 달라고 제 발로 찾아온 것이냐!”

라울은 소매로 눈가의 물기를 훑으며 감았던 눈을 떴다. 갖은 모욕과 굴욕 속에서도 온전히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루크 국왕도 완벽하게 몰아세울 건수를 잡기 전까진 움직일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요정왕께서 무덤 안에서 루크 국왕을 죽이려고 시도한다면 그를 빌미로 꼬투리를 잡을 생각이라고 합니다.”

소리아로선 천금과도 같은 정보였다.

무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유인책이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세상에 어느 왕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작전을 짜겠는가.

하지만 상대는 인간들의 정점이라 불리는 루크다. 그의 성격상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거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일 터.

소리아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끝까지 들어 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건 뭐지? 이제 와서 내게 용서를 구하려는 건 아닐 테고. 원하는 게 있으니 이리 찾아온 거 아닌가?”

“이번에 루크 국왕과 둘이서 무덤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루크 국왕을 죽이고 봉인석을 돌려 드릴 테니 제 아내와 딸을 데리고 떠나는 걸 허락해 주십시오.”

“눈물겨운 가족애구나. 가장 노릇하기도 참 힘들겠어.”

“숙부님,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그리 불리는 것도 오랜만이군. 좋다, 루크의 목과 봉인석. 둘 모두를 가져오면 네 아내를 풀어 주지. 그 후에 가족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든 상관하지 않으마.”

“그리고 반드시 가져올 테니 아내에게 행해지고 있던 모든 가혹 행위를 멈추고 기다려 주십시오.”

“오냐, 네가 제대로 움직여 주기만 한다면 나로서도 귀중한 거래 재료를 상하게 할 이유가 없지. 그 부분은 내 알아서 조율하마.”

“전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리하여 소리아와 라울 사이에 비밀 거래가 체결되었다.

소리아 입장에선 루크를 죽일 방법을 생각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 셈이다.

약조를 받아 낸 라울이 조용히 물러났고, 그가 물러남과 동시에 소리아가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제 가족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을 할 놈이 아니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감시를 붙여 둬야겠군.”

다음 날 아침, 루크와 라울은 라이프 트리의 손에 올라탔다.

요정의 무덤은 엘프의 숲 북쪽에 있고, 라이프 트리의 기다란 나뭇가지 팔이 닿는 위치에 있었기에 시간 낭비 없이 단번에 이동할 수 있었다.

루크가 라이프 트리의 손에 올라타자 레이아가 루크의 목에 팔을 두르며 뺨에 입을 맞추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식 올리기도 전에 과부 만들지 말고요.”

“저승사자를 걷어차서라도 돌아올 테니 걱정 마.”

루크와의 인사를 마친 레이아는 마스크 헬름을 쓰고 있는 라울에게 경고를 날렸다.

“똑바로 행동하세요. 만약 이 사람한테 문제가 생기면 눈에 뵈는 게 없다는 게 어떤 건지 보게 될 거예요.”

마스크 헬름 안에서 라울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곧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명심하겠네.”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은 라이프 트리의 손을 타고서 북쪽으로 이동했다.

기다란 나뭇가지가 천천히 움직이며 두 사람을 옮겼고, 고도 차에 의해 발생한 강풍이 두 사람의 몸을 휘갈겼다.

맞바람이 강하다는 것을 감지했는지 라이프 트리가 배려 차원에서 손을 약간 오므리며 두 사람에게 바람이 닿지 않도록 신경 써 주었다.

바람 한 점 들지 않은 안락한 손바닥 위에서 라울은 뒤늦게 몸서리를 쳤다.

“내가 본 여자 중에 라샤가 가장 기가 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네 약혼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군.”

“저것도 내 앞이라 많이 억누른 거야.”

“억누른 게 저 정도라면… 후우, 죽기 살기로 자네를 무사히 돌려보내야겠구먼.”

요정의 무덤에 급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가운데, 다수의 인영이 라이프 트리의 팔을 엄폐물 삼아 루크와 라울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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