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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69화 (169/200)

# 169

169화 요정의 무덤 (3)

엘프의 숲 북부에는 높은 산 하나가 덩그러니 우뚝 솟아나 있다.

산 내부를 통째로 개조하여 왕릉으로 만들었기에 엘프들은 우뚝 솟은 산 자체를 요정의 무덤이라 부르고 있다.

라이프 트리는 루크와 라울을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 입구에 내려주었다.

무덤 입구에선 엘프 전사 두 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고, 루크와 라울이 착지하자 그들이 다가와 인사를 올렸다.

“어서 오십시오, 루크 전하. 소식은 들었습니다. 대동하는 호위는 한 명뿐입니까?”

엘프 전사들의 질문에 의아함이 묻어 나왔다.

루크가 데려온 호위병만 하더라도 수십 명에 달한다. 거기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한 기사들까지 몇 명씩이나 대동해 놓고 겨우 한 명만 데리고 들어가려고 하니 의아함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루크는 흡사 식당에서 인원수를 알려 주듯 가볍게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나 포함 두 명이야.”

“아… 이 안이 어떤 환경이고, 어떤 수호자들이 있는지 들으셨습니까?”

“다 듣고 왔어. 괜한 걱정 말고 안내부터 해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여기 오면 필요한 물품을 전해 받게 될 거라고 들었다만.”

“아, 네! 여기 무덤 지도를 들고 가십시오. 지하로 내려가기 전까진 길이 미로처럼 뻗어 있어서 지도가 필수입니다.”

입구에서 지도를 받은 두 사람은 엘프 전사들의 배웅을 받으며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무덤 안은 흡사 광산의 갱도를 연상케 하는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기존에 있던 동굴에 나무로 된 프레임을 설치하여 무너지지 않도록 재구성한 느낌이었다.

빛이 들지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무덤 안은 대낮처럼 밝았다.

통로 곳곳에서 자라나고 있는 이끼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끼 쓸 만하군. 양식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

“발광 이끼 말인가?”

“발광 이끼라 부르나 보지?”

“아마 양식은 불가능할 걸세. 조금이라도 빛이 닿으면 푸석푸석하게 시들어 버리는 식물이라서 말일세.”

“그거 아쉽군.”

“혹시라도 상처가 나면 발광 이끼를 조금 뜯어다가 상처 부위에 붙이게나. 약간이지만 상처 치유 효능이 있는 식물이라 도움이 될 걸세.”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몸 안에 흐르던 마나가 갑자기 움직임이 멎는가 싶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이는 곧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무덤에 진입했음을 의미했다.

루크는 경계심을 곤두세우며 해왕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야 신기다운 활약을 할 기회가 주어졌군.”

솔직히 지금까지 해왕검이 제대로 활약한 적이라곤 쟈칼을 상대했을 때밖에 없다. 해왕검 특유의 예리함과 단단함으로 쟈칼의 육신을 베어 낸 게 고작이다.

해왕검만이 가지고 있는 ‘검격’ 효과는 그랜드 마스터의 투영검에 가려져 활약다운 활약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환경에서야말로 해왕검의 진가가 발휘된다.

해왕검에는 ‘쥐고 있는 자의 마나량과 출력, 밀도를 2배로 높여 주는’ 효과와 더불어 ‘검 자체에 검격을 내뿜는’ 효과가 가미되어 있다.

이 검격은 굳이 마나가 없어도 내뿜을 수 있으며 마나 없이 뿜어낼 시에는 ‘평범한 칼바람’ 형태로 방출된다.

비유하자면 봉과 같다고 보면 된다. 봉은 그 자체로도 무기가 될 수 있으나 봉 끝에 날을 달면 창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경우에 창날은 마나라 할 수 있겠고, 창날을 단 것만으로도 아예 다른 무기가 되어 버린다. 마나 없이 검격을 날리는 건 창날을 달지 않고 봉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마나를 부여하지 않을 시에는 휘두르는 근력이나 궤적의 크기에 따라 검격의 세기나 크기가 달라진다.

1층의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썩은 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썩 유쾌한 냄새는 아니군. 시체 썩는 냄새… 거기에 피 냄새가 섞인 것 같은데.”

“거기 발 조심하게. 시체 조각이 굴러다니고 있네.”

통로 중간지점부터 엘프들의 시체가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건 엘프들의 시체만이 아니었다.

원래 거상의 일부였던 것처럼 보이는 돌조각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다. 몇몇 돌조각에는 아직 덜 마른 핏물이 흐르는 중이었다.

루크는 핏물의 마른 정도를 살펴보고선 전투가 벌어진 시간을 추측했다.

“아마 2시간…… 아니, 3시간인가. 3시간 전에 여기서 전투를 벌이다가 전멸했나 보군.”

“엘프 수색대는 며칠 전에 먼저 들어왔다고 하지 않았었나?”

“가능성은 두 가지야. 소리아가 새로 또 다른 수색대를 투입했거나, 며칠 전에 투입된 수색대가 문제가 생겨 퇴각했다가 다시 입장했거나.”

“우리가 들어가기로 약속한 상황에서 새 수색대를 파견할 린 없을 거고. 아무래도 후자 쪽인 것 같군.”

어느 쪽이든 썩 달가운 징조는 아니었다.

아직 무덤 초입 부분인데도 엘프 수색대가 전멸했다. 명색이 엘프들 사이에서 정예만 가려 뽑아 투입한 수색대인데도 말이다.

일련의 단서를 통해 거상들이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존재들임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시체 더미를 넘어 무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며 귀를 쫑긋 세웠다.

“거상들은 계속 무덤 안을 배회하고 있다고 했었던가?”

“그렇다네. 놈들에겐 침입자를 배제하라는 명령만 주입되어 있지. 거인 형태를 띠고 있는 석상도 있지만 동물의 형태를 띠고 있는 녀석들도 있으니 방심하면 당하기 십상이라네.”

엘프 수색대도 입구까지 되돌아왔다가 다시 들어갈 때 배회 중이던 거상과 마주쳐 어쩔 수 없이 전투를 벌인 것이리라.

무덤 안으로 들어갈수록 갈래 길이 연달아 나타나며 선택을 강요했다. 길을 모른다면 모를까 루크에겐 지급받은 지도가 있으니 길을 잃는 일 없이 순탄하게 올바른 길로 나아갔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지도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할 순 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도록 이미 손을 써두었기에 지도 조작에 대해선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사전에 라울을 소리아에게 보내어 밀약을 맺게 해 둔 것이다.

밀약의 내용엔 루크의 목과 함께 봉인석을 가져오기로 했으니 라울로 하여금 봉인석을 가져오게 하려면 무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올바른 지도를 내줄 수밖에 없다.

‘밀약을 맺는다’는 행동 하나만으로 소리아가 취할 수 있는 수작 대부분을 미리 봉쇄한 셈이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일 때 즈음 문득 루크가 걸음을 멈추었다.

“흔히들 거미가 익충이라고 하는데, 난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냐.”

“거미에게 물린 적이라도 있나?”

“아니, 예전에 서류를 처리하는데 팔이 간지럽더군. 그래서 팔을 봤더니 거미가 있는 게 보였지. 내 팔을 도로 삼아 어깨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거미가 말이야.”

“좋은 악몽 소재 고맙네. 그래서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뭔가?”

“지금 머리 위에 거미 한 마리가 우릴 내려 보고 있거든.”

루크의 말에 라울이 황급히 고개를 위로 올렸다.

루크의 말마따나 거대한 거미 한 마리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특이한 건 거미의 몸이 돌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무덤 안을 배회하며 침입자들을 배제하는 거상 중 하나인 것이다.

가히 거상이란 호칭이 어울리는 덩치였다.

몸집이 집채만 한 데다 몸 좌우에 붙은 다리의 길이는 펼치면 10미터는 될 법했고, 입에는 강철도 찌그러뜨릴 듯 굵직한 집게가 달려 있었다.

외견으로 추측건대 타란튤라를 모델 삼아 제작한 거상이 아닐까 싶다.

똑! 똑! 똑!

더불어 타란튤라의 입가에서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져 내렸다.

물방울은 정확히 라울의 목덜미에 떨어졌다.

라울은 뜨끈하면서도 끈적한 느낌에 몸서리를 치며 손으로 목덜미를 훑었다. 손에 묻은 액체를 눈으로 확인한 순간, 라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피? 이 녀석이 엘프 수색대를 전멸시킨 장본인인 건가!”

거미 거상은 기습 시도가 물 건너갔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곧바로 천장에서 뛰어내렸다. 수 톤 무게의 거상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광경은 마치 만년 거석의 낙석을 연상케 했다.

후우우웅!

단지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을 뿐인데도 거센 바람 소리가 일었다.

라울은 재빨리 예상 낙하 지점을 포착하고선 뒤로 물러나며 활시위에 화살을 먹였다.

“거상에겐 약점이 없네! 그냥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때려 부수게!”

피잉!

시위를 떠난 화살이 거미 거상의 머리에 닿았다.

라울의 활로 말할 것 같으면 라이프 트리의 나뭇가지를 깎아서 활대를 만들었고, 페가수스의 꼬리털을 몇 겹으로 꼬아서 시위를 건 엘프 특제 고급품이었다.

거기다 해저섬에서 조달한 하우스 산호로 화살촉을 만들었기에 제대로 적중하면 강철도 꿰뚫을 관통력을 지니고 있었다.

화살은 거상의 미간을 뚫으며 깊숙이 틀어박혔다.

투퍽!

화살대가 절반가량 파고들 정도로 깊이 파고들었건만 거미 거상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생물이 아니니 몸속에 이물질 좀 파고든 정도는 타격을 입은 축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이다.

“큭, 한 발로는 턱도 없나.”

낙하 예상 지점으로부터 벗어나느라 바쁜 라울과 달리 루크는 제자리를 고수했다. 흡사 마실이라도 나온 것마냥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놀란 라울이 조급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였다.

“뭐하고 있나! 어서 피하게!”

루크는 차분하게 거미 거상을 지켜보다가 해왕검을 연달아 휘둘렀다.

후웅! 후웅!

분명 두 번 휘둘렀는데 검격이 거의 겹치다시피 방출되며 위로 솟구쳤다. 간격이 거의 없다시피 할 만큼 검을 휘두르는 속도라 빠른 것이다.

불순물을 다 털어 낸 광석일수록 밝은 광채를 발하는 것처럼, 워낙에 군더더기가 없는 동작인지라 기본기만으로 신기에 가까운 무위를 발하는 루크였다.

위를 향해 솟구친 두 개의 검격은 거의 동시에 거미 거상의 복부를 가격했다.

콰직! 서걱!

첫 번째 검격은 거미 거상의 복부에 균열을 내었고, 같은 부위에 두 번째 검격이 부딪치며 거미 거상을 세로로 쪼갰다.

두 조각으로 나뉜 거미 거상의 몸체가 서서히 벌어지더니 루크가 서 있는 자리 양옆에 떨어졌다.

쿠웅!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서 거미 거상을 처리해 버린 셈이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라울은 저도 모르게 입을 떠억 벌렸다.

“아니, 무슨…….”

보고 있는 입장에선 시원하다 못해 서늘함이 느껴질 정도로 깔끔한 처리 과정이었다.

너무 깔끔한 나머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놀라서 제자리에 굳어 버린 라울과 달리 루크는 어깨에 소복이 내려앉은 돌가루를 털어 내며 심드렁하게 한마디 중얼거렸다.

“흠, 그럭저럭 쓸 만하군.”

“자네 참…… 후우, 할 말이 없어지는구먼.”

“이거 좀 이상한데.”

“어떤 부분이 말인가?”

“확실히 거미 거상이 살상력을 가진 병기라는 건 알겠어. 하지만 고작 이놈 하나에 전멸할 정도로 엘프 수색대가 약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엘프 수색대가 전멸할 정도의 병기는 아니다.

한데도 전멸당했다면 그에 준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

이유를 알아내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거미 거상이 추락하며 발생한 충격음이 메아리치며 무덤 전역에 울려 퍼졌고, 여운이 가라앉을 즈음 메아리와 교대하듯 사방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

10마리, 20마리, 30마리…….

거미 거상 수십 마리가 상하좌우 가리지 않고 떼거리로 몰려오는 게 아닌가!

여태까지 걸어왔던 출구 방향만 빼고 온통 거미 거상 천지였다.

이제야 엘프 수색대가 한 번 후퇴했다가 다시 진입한 게 납득이 되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오니 후퇴할 수밖에.

루크는 해왕검을 가볍게 휘둘러 검신에 묻은 돌가루를 털어 내고선 정자세를 취하였다.

“거미를 싫어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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