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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70화 (170/200)

# 170

170화 현명한 자는 싸우지 않는다 (1)

루크와 라울이 요정의 무덤으로 떠난 후 라이프 트리에 남은 레이아 일행은 면회를 요청했다.

면회 대상은 당연히 라울의 아내였다.

막간을 이용해 라울의 아내의 상태를 살피고 혹시라도 쓸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면회실로 들어가는 도중 아캄프가 낮은 목소리로 의문을 표했다.

“의외로 쉽게 면회 허가를 내려 주는구만.”

눈치 없는 아캄프의 중얼거림에 라샤가 팔꿈치로 그의 명치를 강하게 후려쳤다.

퍽!

“머리라는 게 달려 있다면 생각 좀 하고 말하지 그래?”

“욱! 팔꿈치는 반칙이잖아.”

“한 대 더 얻어터지고 싶어?”

“무슨 말을 못하겠군. 그러니까 네 말은 엘프 측에서 따로 속셈이 있어서 면회를 허락해 줬다는 거야?”

“멍청하긴. 혹시라도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엿들으려는 거잖아.”

“그런 거였나. 내가 맞을 짓을 했군.”

“알면 됐어.”

면회실은 커다란 방이었고, 방 중앙에 쇠창살이 촘촘하게 늘어서 있어서 죄수와 방문자 사이를 갈라놓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쇠창살 너머에 있는 문이 열리며 단아한 인상의 엘프 여인이 들어왔다.

간수들은 따라 들어오지 않나 보다.

맘 편히 얘기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정보를 도청할 속셈인 게 뻔히 보였다.

하지만 엘프 측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으니.

레이아란 여자는 적들 좋은 짓을 해 줄 정도로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간수가 나가자마자 레이아의 입이 달싹였다.

“사일런트 큐브.”

마법 영창과 함께 면회실 내부에 투명한 방음벽이 둘려지며 소리를 완전히 차단하였다.

레이아는 쇠창살 앞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산드라 부인. 빌로스에서 온 레이아라고 해요.”

산드라라 불린 여인은 두 손을 배 위에 곱게 포개며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단아한 인상에 격식을 차린 행동이 더해지며 남다른 품격이 풍겨 나왔다.

“라울의 아내, 산드라입니다. 빌로스에서 협상단이 왔다는 얘기라면 옥 안에서 이미 들었어요. 제가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지요?”

결의에 찬 표정과 올곧은 자세.

도저히 옥에 붙잡혀 신성제국으로 보내질 예정인 사람의 모습으론 보이지 않았다.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의 유지를 이어 가기 위해 목숨을 희생할 각오를 품은 것이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듯 당당하기 그지없는 그녀에게 레이아가 중대 사실을 전했다.

“먼저 전해 드릴 말이 있어요. 라울은 살아 있답니다.”

자결한 것으로 알려진 라울이 살아 있다는 말에 산드라가 표정을 달리했다. 그러곤 곁눈질로 구멍이 뚫린 감옥 방향의 문을 힐끗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목소리를 낮추세요. 간수가 엿듣고 있어요.”

“그 부분이라면 걱정 마세요. 미리 방음 마법을 써두었으니까요.”

“아……! 그럼 다행이네요. 정말 그이가 살아 있나요?”

“네. 사전에 전하와 밀약을 맺고 거짓 소문을 퍼트리기로 한 거였거든요.”

“후우,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산드라의 행동을 통해 그녀가 여태껏 얼마나 가슴앓이를 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기본적인 사정 설명을 마친 레이아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할게요. 따님을 요정의 무덤으로 보낸 게 사실인가요?”

“네, 남편이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그이는 엘프의 숲이 큰 힘을 가지면 반드시 전쟁에 휘말리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죠. 저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요. 그래서 요정왕에게서 두 봉인석을 탈취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 두려고 했었죠.”

“봉인석 관리가 소홀하진 않았을 텐데 용케 빼내셨네요.”

산드라가 죄수복 맨 위의 단추를 풀며 골짜기의 끄트머리를 드러냈다.

“소리아의 본능을 이용했다고만 밝혀 둘게요.”

“아~ 명쾌한 설명 고마워요.”

“몸을 지키느라 수면제를 사용한 게 화근이 되어 버렸죠. 차라리 줘 버렸다면 딸아이와 함께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아뇨, 잘하셨어요.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라울은 살아 있고, 전하께서 가족끼리 상봉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우리 전하는 한다면 하시는 분이시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따님을 요정의 무덤으로 보낸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요정의 무덤 안에 들어가면 안전할 거란 확신이 있어서 그리로 보낸 건가요?”

어스의 봉인석을 가지고 있으면 거상에게 공격받지 않는다.

그 사실을 사전에 미리 알고 있지 않고서야 딸을 요정의 무덤으로 보낼 리가 없다.

중요한 건 산드라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거다.

만약 산드라가 요정의 무덤과 관련하여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좀 더 쥐고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 산드라의 입에선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의 진실이 튀어나왔다.

“정확히는 누군가가 알려 줬어요. 그이의 자결 소식이 들린 직후에 누군가가 절 찾아왔죠. 혹시라도 봉인석을 탈취할 생각이 있고, 탈출에 실패할 것 같으면 요정의 무덤으로 가라고 알려 줬어요.”

“누군가?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정체까진 모르겠고, 실눈처럼 눈매가 매우 가느다란 사내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정보나 얻으러 온 것인데 새로운 의문만 떠안게 되었다.

실눈 사내.

그가 봉인석의 탈취를 부추긴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왜?

목적을 모르니 섣불리 가설을 세울 수 없었다.

이런 건 루크가 전문인데 말이다.

레이아는 나중에 루크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기로 결정하곤 몸을 일으켰다.

“협조 감사드려요. 조만간 엘프의 숲에서 큰 전투가 벌어질 거예요. 대피할 수 있게 수를 취해 둘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 두세요.”

“잠깐만요. 한 가지만 물어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우리 그이는 지금 어디 있죠?”

“지금 전하와 둘이서 따님을 만나러 요정의 무덤으로 들어갔어요.”

“…….”

산드라는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쇠창살을 부여잡았다.

“요정의 무덤에 들어갔다고요? 그것도 둘이서?”

“네.”

“라샤! 당신이 있었으면서 왜 말리지 않은 건가요? 거긴 일반적인 장소와는 달라요! 고작 둘이서 파훼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고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인데 왜 말리지 않았냐며 책망하는 산드라였다.

그녀에게 있어 라울이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라면, 레이아 일행에게 있어 루크도 소중한 존재일 터.

내로라하는 실력자 집단이면서 대부분 인원을 남겨 두고 둘이서 떠난 게 이해가 안 갈 따름이었다.

이게 보통 사람의 반응이다.

루크에 대해 모르는 자들의 반응이기도 하고 말이다.

레이아는 쇠창살 사이로 손을 넣어 산드라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괜찮아요. 전하에 대해 모르면 그럴 수도 있죠.”

이상하리만치 담담한 반응에 산드라는 영문을 알 수 없어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 * *

와르르르! 쿠궁! 쿠구궁!

요정의 무덤에서 돌무더기가 연달아 무너지며 지면을 두드렸다.

루크가 몰려오는 거미 거상을 상대로 내린 판단은 후퇴가 아닌 돌파였다.

후퇴한다 한들 더 나은 수를 준비해 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똑같은 수를 취할 수밖에 없다면 지체 없이 돌진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루크는 나선 계단 아래로 달리며 벽을 타고 내려오고 있는 거미 거상들에게 검격을 연달아 날렸다.

콰직! 서걱!

연달아 날린 두 개의 검격 중 첫 번째 검격이 거상의 몸에 균열을, 두 번째 검격이 균열 안으로 파고들며 거상을 둘로 쪼갰다.

쪼개진 거미 거상의 몸체가 나선 계단 위에 떨어졌고, 나선 계단을 타고 올라오던 거미 거상들을 깔아뭉갰다.

쿠웅! 쿠우웅!

루크는 거미 거상들의 움직임을 제한하며 라울에게 작업 상황을 물었다.

“이걸로 시간은 벌었어. 그쪽은 어때?”

“준비는 끝났네. 화살만 쏘면 된다네.”

라울이 화살에 밧줄을 매달고선 나선 계단 아래를 향해 쏘았다. 밧줄을 매단 화살이 거미 거상이 없는 아래쪽 계단으로 날아가며 벽에 틀어박혔다.

투퍽!

동시에 밧줄 끄트머리를 나선 계단 난간에 묶어 즉석에서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짚 와이어를 만들었다.

루크와 라울은 횃불을 적실 용도로 가져왔던 기름에 헝겊을 담그고선 삼각형으로 접은 후 돌돌 말았다. 그러곤 헝겊을 밧줄에 걸쳐 양손으로 헝겊 양쪽 끄트머리를 쥐었다.

“먼저 갈 테니까 바로 따라와.”

“노파심에 미리 말해 두네만, 화살대가 하중을 버틴다는 보장은 없네.”

“세상일이란 게 원래 보장 없는 것투성이 아니었나?”

“괜한 말을 했군. 출발하게.”

루크가 먼저 난간을 밟고 뛰었다.

기름 먹은 헝겊이 사선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밧줄을 타고 미끄러지며 루크의 몸을 아래로 이끌었다.

좀 더 빨리 가기 위해 그네를 타듯 몸을 흔드니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밧줄이 살짝 흔들리며 가속도가 붙었다.

루크의 몸은 순식간에 밧줄 끄트머리까지 내려갔고, 아래쪽 계단 난간에 부딪히기 직전에 발을 뻗어 급제동을 걸었다.

탁!

신발 밑창이 난간에 부딪히면서 충격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고, 무릎 뒤쪽에 쩌릿한 통증이 느껴짐과 동시에 난간 너머로 몸을 날려 계단 위에 착지했다.

다음으로 라울이 밧줄에 헝겊을 걸치며 아래로 내려왔다.

주르륵!

그가 밧줄을 타고 내려오던 중, 위쪽 계단으로 몰려가고 있던 거미 거상들이 일제히 라울을 주목했다.

놈들은 그냥 보내 줄 순 없다는 듯 집게 턱을 한껏 벌리더니 밧줄을 물어뜯었다.

집게 턱에 찍힌 밧줄이 맥없이 끊어졌다.

이제 막 밧줄 중앙 지점을 지나고 있던 라울은 갑자기 밧줄이 끊긴 탓에 중력에 따라 아래로 추락했다.

“으아아악!”

떨어지는 와중에 라울의 손이 본능적으로 밧줄을 붙잡았다.

루크가 재빨리 밧줄을 끌어당겨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라울을 계단 위로 끌어올렸다.

라울은 숨을 몰아쉬며 기름 범벅이 된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허억허억, 방금 걸로 수명이 십 년은 줄었겠구먼.”

“엘프들에게 십 년이면 얼마 되지도 않잖아?”

“꼭 그렇게 놀려야겠나?”

“천성이라서 말이야.”

“그나저나 왜 이리 위험한 루트를 택한 건가? 천천히 정리해도 됐을 것 같은데.”

“이래야 미행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까.”

“미행?”

“라이프 트리를 타고 이동할 때부터 따라붙더군. 그걸 숨은 거라고 생각하다니, 참 같잖단 말이지.”

소리아가 덜렁 라울의 언약만 믿고 가만히 있을 자는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뚜껑을 열어 보니 미행이 따라붙고 있었고 그들을 떼어 놓기 위해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서 짚 와이어 루트를 택한 것이다.

아직 거미 거상들이 위에 남아 있으니 미행하던 이들은 더 이상 따라붙지 못할 것이다.

루크는 라울의 호흡이 안정되자마자 걸음을 재촉했다.

“거상들이 아래로 몰려오기 전에 아래로 내려가자고.”

나선 계단 위에서 거미 거상이 두 무리로 나뉘었다. 한 무리는 계단 아래로 몰려왔고, 한 무리는 입구로 이어지는 통로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는 곧 거미 거상들이 미행하던 무리를 감지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곤 해도 절반의 거미 거상들은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두 사람은 거미 거상 떼와 거리를 벌리기 위해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얼마쯤 내려갔을까?

아래층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보일 즈음 두 사람을 쫓던 거미 거상들이 별안간 몸을 돌려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루크와 라울은 통로를 통과하며 거미 거상의 특이한 행동에 의구심을 가졌다.

“저것들이 쫓아오다 말고 갑자기 왜 저러지?”

통로를 빠져나와 널찍한 공간에 들어선 순간, 두 사람의 시야가 밝은 빛으로 가득 찼다.

돔 형태의 공간 안에 발광 이끼가 잔디밭처럼 바닥 전체에 깔려 있었고, 굵직한 기둥이 신전 강당처럼 오와 열을 맞춰 늘어서 있었으며 기둥 사이로 역대 요정왕들의 시신을 묻은 봉분이 드문드문 보였다.

더불어 거미 거상들이 물러난 이유 또한 밝혀졌다.

돔 형태의 공간 중심부에 돌로 이루어진 대형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자고 있던 바실리스크의 눈꺼풀이 들썩였다.

바실리스크는 보랏빛 안광을 발하며 돌로 이루어진 뻣뻣한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요즘 따라 불청객이 많구나. 너희들도 장식 석상이 되길 희망하는 자들이더냐?”

언짢아하는 말투와 함께 안광 속에 감추어진 석화의 마안이 루크와 라울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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