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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77화 (177/200)

# 177

177화 신성제국으로 가는 선발대 (2)

빌로스 왕궁 안에서 국정회의가 소집되었다.

국정회의라곤 해도 상석은 비워져 있는 실정이었다.

국왕 없는 국정회의를 연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귀족들도 평범한 일이라는 양 자연스럽게 착석했다.

루크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는 왕의 예비 장인이자 빌로스 왕국에서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그란데 공작이 대신 회의를 주도해 왔다.

늘 그랬듯 그란데 공작은 전원 착석과 동시에 회의를 시작하였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마물과 언데드가 대대적으로 신성제국을 침공하기 시작했다네.”

게데스 자작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취하고선 입을 열었다.

“데메그리 교가 전면전을 각오한 적은 오래전 이교도 토벌 전쟁 이후로 처음입니다. 오랫동안 그늘 밑에서 암투만 벌여 왔던 그들이 전면에 나섰다는 건 그만큼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신성제국의 지원 요청 공문에 따르면 5성급 마물이 탄생했다고 하네. 역사상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존재인 만큼 한계를 가늠키 힘든 존재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 5성급 마물은…….”

이 자리에 5성급 마물이 누구를 매개체로 탄생했는지 모르는 자는 없었다.

엘리나.

루크와 각별한 사이이자 아직도 루크는 그녀가 죽은 걸로 알고 있다.

죽은 줄 알았던 그녀가 살아 있는 데다 데메그리 교의 수작에 마물이 되었다.

이 사실을 루크가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루크가 어지간한 일로는 흥분하지 않는 타입이라는 건 알고 있긴 하나 혹시라도 이성을 잃게 되면 그 누구도 그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그란데 공작은 엘리나와 루크의 모습을 늘 곁에서 보아 왔기에 더더욱 근심이 깊어졌다.

“엘프의 숲에서의 일은 일단락되었다고 들었네. 전하는 지금 어디까지 오셨는지 알아봤는가?”

“국경 초소에서 올라온 보고에 따르면 국경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꺾으셨다고 합니다.”

“흐음, 엘프의 숲에서 어스를 손에 넣으신 건 확실하나?”

“어스와 윈터가 나타났다가 쓰러졌다는 보고가 올라왔으니 전하께서 정령석을 손에 넣으셨다고 보는 게 맞겠지요.”

“그럼 카라스코의 건축물을 철거하러 북방 장벽으로 가신 거겠군. 북방 장벽부터 형무소와 헥터 요새까지 반시계 방향으로 훑고 오실 모양일세.”

“비행부대를 파견하여 엘리나가 마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루크의 반응이 걱정되긴 해도 중대사항인 만큼 보고를 미룰 순 없었다.

어차피 모든 건축물을 모두 철거한 후에야 신성제국에 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곤 해도 빨리 알려 둘수록 루크에게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루크 일행이 마차로 이동하고 있는데, 미리 알려야 파이를 타고 빨리 이동하여 조금이라도 철거 작업을 단축시키지 않겠는가.

그란데 공작은 일단 루크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로 결정했다.

“비행부대에서 사람을 차출하여 전하께 보고서를 전달할 준비를 하라고 일러두게.”

“그리하겠습니다. 하면 전하께서 판단을 내릴 때까지 신성제국을 방치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실 겁니까?”

“그건 그거대로 골치 아픈 안건이군. 지금 이 순간에도 신성제국은 무너지고 있으니…….”

루크가 판단을 내릴 때까지 기다리자니 그것도 문제다.

현재 신성제국은 사실상 국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주교들은 오스카의 손에 의해 퇴출된 지 한참 됐고, 그나마 육지의 3대 신기를 소유하고 있는 제국 3성들이 간신히 병력을 모아 저항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지체할수록 시체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생성된 시체의 숫자만큼 엘리나 군단의 머릿수가 늘어날 것이다.

신성제국이 무너지면 그다음 차례는 빌로스 왕국이 될 터.

북방 장벽마저도 철거될 예정인 마당에 한껏 불어난 엘리나 군단을 자국에 들이는 건 결코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

병력 파견을 두고 귀족들 간에 의견이 분분했다.

“저는 병력을 미리 보내 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하의 성격상 철거 작업이 끝나면 바로 신성제국으로 향하지 않겠습니까? 시간을 단축시키려면 병력을 미리 보내야 합니다.”

“글쎄요. 전 그게 맞는지 의문이 드는군요. 전하께선 항상 의외의 판단을 해 오셨습니다. 저희 멋대로 움직인 탓에 전하의 선택지가 제한되면 어떻게 합니까?”

미리 보내자는 의견도 타당하고, 루크의 판단을 기다리자는 의견도 타당하다.

때문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루크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란데 공작은 말석에 앉아 있는 제랄드를 응시했다.

“제랄드 경, 경이 생각하기에 전하께서 이 자리에 계셨다면 어떻게 행동하셨을 것 같나?”

무표정을 일관하고 있던 제랄드가 고개를 살짝 꾸벅이며 말을 꺼냈다.

“제가 어찌 감히 전하의 의중을 넘겨짚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확고한 판단이 필요한 시기일세.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소신껏 말해 보게나.”

“과감히 말씀드리자면 병력을 파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신성제국은 나라로서의 기능을 잃었으니 미리 군을 파견해 두면 전쟁이 끝난 후에 군부를 설치할 수 있겠지요. 데메그리 교 박멸과 제국 점령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기회인데 전하께서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실 분은 아니잖습니까.”

루크가 늘상 입에 담는 ‘효율’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미리 병력을 파견해 두는 게 맞긴 하다.

다소 위험은 따르겠지만 안전한 길만 택해선 큰 이득을 기대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수많은 전장을 거치면서 루크의 곁을 보좌해 왔던 제랄드의 말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란데 공작은 장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

“전하께 소식을 전하면서 동시에 지원군을 파견하는 걸로 하겠네. 제랄드 경, 경이 직접 1만의 병력을 이끌고 북쪽으로 향하게나.”

“네튤 제도에 있는 거인족들에게도 출격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원활한 보급을 위해선 서쪽 해상 루트를 뚫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엘리나를 따르는 군단에는 바닷속 식인종이라 불리는 ‘샤크족’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거인족이라면 해상전이라 할지라도 결코 샤크족에게 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루크에게 소식을 전함과 동시에 제랄드와 거인족이 신성제국으로 출격하기로 결정되었다.

* * *

헤테룬 왕궁 근처에 위치한 제랄드의 저택 안.

다크엘프 스텔라는 제랄드와 함께 살고 있는 중이었다.

몇 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들여 조금씩 제랄드에게 접근한 결과, 결국 제랄드와 함께 사는 데까지 이르렀다.

아직 식을 올리진 않았지만 자타 공인 사실혼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제랄드와 깊은 관계를 맺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아직 스텔라는 자신이 데메그리 교의 첩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그녀의 최종 목적은 다크엘프 일족의 부흥이었기에 언젠가는 제랄드의 곁을 떠날 생각이었다.

“이번 달 말일에 병력을 이끌고 신성제국으로 가는 걸로 결정 났어.”

둘이서 식사를 하던 도중 제랄드가 스텔라에게 원정군 총사령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스텔라는 요리가 나오기 전에 물을 한 모금 마시려다가 동작을 멈추었다. 잔을 쥔 손이 미미하게 떨렸다. 그러나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자 말을 이었다.

“출정 준비를 해야겠네요. 대장간에 갑옷 손질을 맡겨 둘게요. 들리는 김에 제 장비도 맡겨 두는 게 좋겠네요. 제 장비도 슬슬 손질할 때가 됐거든요.”

“이왕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슬슬 은퇴를 고려하는 게 어때?”

“은퇴요? 제가요?”

“상대가 상대인 만큼 쉽지 않은 전투의 연속일 거야. 널 전장에 데리고 가고 싶지 않아.”

“후후후, 빌로스 최고의 기사께서 약한 소리를 하면 되시나요. 위험하다면 더더욱 따라가서 보좌해 드려야죠.”

“스텔라.”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면 저도 마찬가지예요. 오른팔, 더 이상 무리 안 하는 게 좋다는 소리 들었죠?”

제랄드가 쥐고 있던 냅킨을 내려놓으며 자신의 오른팔을 주물렀다.

개량형 마검을 계속 사용한 여파가 조금씩 몸을 갉아먹는가 싶더니, 지금에 이르러선 몸이 망가지기 일보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천재의 그늘을 따라가려면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다 같이 편하게 살아서야 높은 탑이 건설될 리 만무하다.

제랄드는 팔을 주무르며 눈매를 좁혔다.

“아르셸 녀석,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아르셸 의원님 잘못이 아녜요. 제가 말하지 않으면 가만히 안 있을 거라고 했거든요.”

“말릴 생각하지 마. 왕국을 위해서야.”

“그리고 전하를 위해서이기도 하죠. 말릴 생각은 없어요. 말린다고 들을 것도 아니잖아요?”

무리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따라갈 거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발언이었다.

루크에게 레이아가 있듯 자신에겐 스텔라가 있다는 생각에 제랄드가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난 참 운이 좋은 놈이야.”

스텔라는 싱긋 웃는 것으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요리가 나오길 기다리던 중 저택의 하인이 방으로 찾아와 제랄드를 불렀다.

“주인님, 비행부대 소속의 마법사가 전하께 서신을 전하기 전에 조언을 구하러 오셨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엘리나가 마물이 되었다고 전하면 루크의 반응이 심상치 않을 테니 미리 제랄드로부터 행동 강령을 듣고자 찾아온 것이었다.

미뤄서 좋을 게 없는 일이기에 제랄드는 잠시 자리를 비우기로 했다.

“스텔라, 잠시 자리 좀 비워야겠어. 좀 걸릴 테니 먼저 식사하고 있어.”

“천천히 일 보고 오세요.”

제랄드가 자리를 비우면서 방에는 스텔라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다.

연기라곤 해도 몇 년이나 함께 지냈으니 감정이 안 생길 리가 없다.

솔직히 당초의 목적이었던 ‘제랄드를 배신시켜라.’라는 임무를 성공시킬 자신은 없었다. 제랄드란 남자는 사랑보단 충성을 택할 사람이니까.

대신 제랄드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 정돈 할 수 있다. 그를 조종해 빌로스 군을 함정에 빠뜨리거나 빌로스 군의 기밀 정보를 데메그리 교에 제공하는 것쯤은 해낼 자신이 있었다.

데메그리 교가 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걸 모르는 스텔라로선 여전히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실행할 생각이 다분했다.

“하아, 어쩔 수 없어.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잖아? 흔들리지 말자.”

자신을 다독이며 독하게 마음을 먹던 중.

하인들이 손수레를 밀고 들어오며 식탁 위에 음식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샐러드와 빵, 수프 그리고 돔 형태의 음식 덮개를 덮어 둔 메인 요리까지.

상차림을 마친 하인들은 45도로 허리를 숙이고선 복도로 물러났다.

스텔라는 먼저 식사를 시작하고자 메인 요리를 덮고 있는 음식 덮개를 젖혔다. 그러자 노릇노릇 익은 고기 냄새와 진한 소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순간…….

“우욱!”

그토록 좋아하던 메뉴이건만 음식 냄새를 맡자마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스텔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이번 달에는 이상하게도 신호가 늦다고 생각했던 사실이 스쳐 지나갔다.

“아냐, 아닐 거야.”

“뭐가 아니라는 거야?”

어느새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제랄드가 식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스텔라는 애써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를 띠며 포크와 나이프를 쥐었다.

“아무것도 아녜요. 그나저나 빨리 끝나셨네요.”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빨리 끝나더라고.”

“자자, 얼른 식사하죠. 고기 썰어드릴까요?”

“아냐, 됐어. 남사스럽게 무슨.”

“에이, 전장에 나가면 부하들 눈이 있으니 사무적인 태도로 대해야 하잖아요. 가기 전에 분위기 좀 내는 게 뭐 어때서요.”

스텔라의 애교 섞인 행동과 함께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방 안이 꽁냥거리는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제랄드도 더 이상 그녀가 중얼거린 ‘아무것도 아니다.’란 말에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억지로 만들어 낸 웃는 표정을 유지하는 내내, 스텔라의 눈가가 미미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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