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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84화 (184/200)

# 184

184화 금단의 마도서 (1)

완전히 동이 텄음에도 러스트와 스텔라는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묵념 자세를 유지했다.

흩날리는 잿가루, 그리고 그 사이에 서 있는 한 명의 사내.

사내가 있는 곳을 눈치 없게 밝은 빛으로 내리쬐는 햇볕까지.

모든 것이 애처로워 감히 고개를 들고 쳐다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루크가 비탈길 내려가듯 시체 더미 아래로 내려오며 말을 꺼냈다.

“보고 시작해.”

사전에 미리 행동 지침을 전해 두었는데도 어째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설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엘리나를 떠나보낸 여운을 떨쳐 내기 위해 억지로 사무적인 태도로 전환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러스트는 루크의 심정을 헤아려 마찬가지로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이곳에 도착한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경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제 13시경에 제국 3성의 일원인 레이더 경과 합류하여…….”

러스트의 입에서 시간의 경과에 따른 사건 경위가 차근차근 흘러나왔다.

보고를 듣는 내내 루크는 아무 말도 없었다. 겉보기에는 말을 듣고 있는 건지, 사색에 잠겨 있는 건지 분간키 어려울 정도로 진중하기 그지없었다.

러스트로선 흡사 건드리면 터질 듯한 폭탄을 앞에 두고 있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때문에 혹여나 말실수라도 할까 싶어 머릿속에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정보를 재빠르게 뇌 내 공정을 거쳐 또박또박 순서대로 읊었다.

“…그렇게 돼서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최대한 요점만 추려 내어 정보를 전달했고, 보고하는 데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사이 하늘 고양이의 보주 효과로 부활한 제랄드가 눈을 떴다.

“윽, 머리야. 어떻게 된 거지? 천국인가? 아니, 지옥 같기도 하고.”

버서커화 되어 죽음 외에 다른 종착지는 없었던 터라 일어나자마자 천국 지옥부터 따지는 제랄드였다.

그러나 이내 곧 자신이 남부 요새에서 그대로 깨어났다는 걸 깨닫곤 어리둥절해했다.

저 혼자 혼란에 잠겨서 사주경계 중인 토끼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통에 진지했던 분위기가 일그러졌다.

혹여나 제랄드의 행동이 루크의 심기를 건드릴까 싶어 스텔라가 얼른 달려가 제랄드에게 부활한 경위에 대해 속삭여 주었다.

제랄드는 자신이 엘리나 덕에 살아났다는 걸 듣고선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스텔라의 재촉을 받고나서야 황급히 예를 갖추었다.

“전하, 이번 일은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제 모자람이 불러일으킨 참사이니 가감 없이 벌하여 주십시오.”

줄곧 아무 말도 않고 있던 루크가 이제야 입을 열었다.

“스텔라가 밀정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해 왔다지?”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개량형 마검의 사용 허가를 내릴 때 버서커화는 하지 않기로 약속했을 텐데?”

“그건 전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방금 변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만?”

“죄송합니다.”

“처벌을 내려야겠군.”

루크는 손을 뻗어 제랄드의 발치에 떨어져 있던 마검을 쥐었다. 그러곤 마검을 쥐어 위로 드는 과정에서 서늘한 검날이 제랄드의 목 주위에 머물렀다.

일련의 과정을 목을 치기 위한 동작이라 여긴 제랄드가 목을 길게 내뺐다.

주군과의 약속을 어기고 밀정으로 의심받는 이를 보고도 모른 척했다. 거기다 사전조사가 미흡한 탓에 1만의 병력을 사지로 내몰았으니 책임을 지려면 목숨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서 가만히 목이 떨어지길 기다렸으나 한참을 기다려도 마검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대신 마기 회로를 모두 빨려 한 자루의 평범한 검이 되어 버린 된 마검이 제랄드의 발치에 도로 떨어졌다.

덜그럭!

“앞으로 마검 사용을 금지하고, 이전부터 소요하고 있던 귀족 작위 부여 권리를 박탈하는 걸로 마무리하도록 하지.”

귀족 작위를 받을 권리를 박탈한다는 건 여태까지 제랄드가 십수 년간 쌓아 올린 모든 공적을 백지화시키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해 온 모든 행적이 지워졌으니 허무함을 느껴야 정상이긴 하다.

하나 제랄드는 자신에게 부여된 처벌이 너무 가볍다고 여겼다.

“목을 쳐 주십시오. 귀하디귀한 빌로스의 아들들을 사지로 내몰아 놓고 어찌 뻔뻔하게 고개를 든 채로 살 수 있겠습니까. 죽음으로서 사죄하지 않고선 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네 목숨은 엘리나가 이어 준 것이라는 걸 잊었나 보군.”

“……!”

제랄드는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닫곤 눈을 질끈 감았다.

어렴풋이 기억난다.

원래는 기억날 리가 없을 텐데도 놀랍게도 머릿속에 각인이라도 된 양 엘리나의 한마디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제랄드 경, 앞으로도 그 사람을 잘 부탁드려요.

죽으면 마음은 편할 거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은 전혀 마음이 편하지 않을 터.

방금 막 소중한 사람을 잃은 주군 앞에서 너무나도 이기적인 요구를 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1만 명을 잃었으면 그와 똑같은 숫자를 살리는 것으로 만회할 수밖에 없다. 책임을 이행하지 않고 죽는 것만큼 무책임한 것도 없기에 초심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공적을 쌓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제랄드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쥐며 몸을 일으켰다.

“주군의 검으로서 남은 생을 모두 바쳐서라도 만회해 보이겠습니다.”

원하는 대답을 얻고 나서야 루크의 표정에 온화함이 깃들었다. 더불어 의미심장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루크였다.

“게다가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그 말이 죽은 엘리나를 향한 말이라는 걸 알아차린 자는 아무도 없었다.

언제까지고 요새 안에 남아 있을 순 없으니 일단 요새 바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엔 어스를 소환하여 요새를 허물었고, 라그나로스를 시켜 시체를 화장시켰다.

모든 장례식 과정은 약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루크가 직접 주관함으로써 장병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를 다하였다.

시체를 화장시키는 과정에서 시체 더미에 묻혀 있던 육지의 3대 신기를 모두 발견했다.

엘리나가 루크를 위해 남긴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수를 써 준 덕에 육지의 3대 신기가 고스란히 루크의 손에 들어왔다.

그중 해방검은 모든 방어구를 관통하여 오로지 적의 육신만을 베어 내는 장검이다. 관통하는 물체는 오로지 물건에 해당하며 마나로 이루어진 실드나 정령의 힘에 의해 생성된 방어벽은 뚫지 못한다.

검 자체에 영혼 소멸 기능이 붙어 있으며 해방검에 베인 자는 영혼이 서서히 붕괴되어 사망한다. 단, 이 효과는 누군가가 영혼 소멸이 진행 중일 땐 일시적으로 능력이 봉인된다.

다음은 백금 갑옷으로, 착용한 동안 모든 속성 공격에 면역을 띤다. 무속성의 공격에만 타격을 입으며 착용한 내내 착용자의 모든 신체 능력이 1.5배 상승한다.

마지막 명인 공방의 서는 50여 종의 무기를 마음대로 소환하여 사용할 수 있는 두루마리다. 소환되는 모든 무기는 명인이 만든 것처럼 최상급의 품질을 지니며 모두 마나석으로 제련된 무기가 소환된다.

세 개의 신기 중에서 루크가 사용할 만한 신기는 백금 갑옷 정도였다.

그 외에 해방검 정도가 해왕검의 보조무기 격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일까.

주로 투영검을 활용하는 루크에게 있어 큰 메리트가 있는 무기는 아니었다. 같은 맥락에서 이미 해왕검을 가진 마당에 여러 무기를 소환할 수 있는 명인 공방의 서를 활용할 일은 거의 없어 보였다.

식을 통해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뒤처리를 모두 마쳤으니 이젠 앞으로의 일을 논할 차례였다.

루크는 엘리나가 했던 말을 되짚으며 말을 꺼냈다.

“시한부 인생이 되었으니 카라스코도 거창하게 준비를 하겠군. 이렇게까지 계획이 수틀렸는데 쪼잔하게 암살이나 노리진 않을 테지.”

“비행 부대를 총동원해서 수색해야겠군요.”

“음, 카라스코가 작정하고 숨는다면 쉽게 찾아내진 못할 거야. 수색은 비행 부대에 맡기고 당장은 마물 군단을 처리할 병력부터 모으자고.”

“엘리나 양의 말에 의하면 언데드가 된 쟈칼이 군단의 지휘봉을 잡게 될 거라 했었지요. 군단의 숫자가 상당하니 이쪽도 인원 보충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마물 군단은 제국 북쪽 지방을 훑으며 동쪽으로 진군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는 10만 대군이었으나 그중 2만의 병력의 남부 요새로 왔다가 전멸했으니 사실상 남아 있는 병력은 약 8만쯤 될 터.

머릿수가 상당한 만큼 이쪽도 상당수의 병력을 다시 끌어모을 필요가 있었다.

루크는 러스트, 제랄드, 스텔라에게 각각 따로 지시를 내렸다.

“러스트는 서쪽으로 가서 해상 루트로 올라오고 있는 거인족과 합류해.”

“네, 명령대로 이행하겠습니다.”

“제랄드는 동쪽으로 가서 엘프의 숲에 있는 라샤와 아캄프에게 지원이 가능한지 알아봐.”

“네, 당장 떠나겠습니다.”

“스텔라는 남쪽으로 가서 지금 3만 병력을 이끌고 올라오고 있는 바이스에게 전언을 전해둬. 진군 속도를 높여서 곧바로 마물 군단이 있는 곳으로 향하라고.”

“알겠습니다.”

거인족과 엘프, 그리고 빌로스 군까지 동원한다면 양과 질에서 얼추 비등비등한 수준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지시를 내린 후에는 파이의 등에 올라탔다.

루크가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갖추자 나머지 사람들이 루크의 목적지를 물었다.

“전하께선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루크는 자신이 향할 방향을 바라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마물 청소 전에 제국 건설의 마무리 작업을 마쳐 둘까 싶어서 말이야.”

루크가 바라보는 방향은 다름 아닌 크레인 왕국을 비롯하여 제국에 조공을 바치던 약소국들이 모여 있는 대륙 북동부 지역이었다.

* * *

대륙 북동부 지역에는 오랜 기간 신성제국의 간섭 속에서 지내 온 약소국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약소국 중에서 그나마 국력이 가장 강한 나라라면 크레인 왕국을 꼽을 수 있었다.

크레인 왕국의 국왕, 호쿠 왕은 신성제국의 현황을 전해 듣고선 시름에 잠겼다.

“허, 마물 군단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게 사실이더냐?”

“네, 놈들이 제국 북부의 도시를 휩쓸면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를 어쩐단 말이냐. 우리에겐 놈들을 막을 힘이 없거늘.”

크레인 왕국은 마물 군단을 막을 힘이 없었다.

마나마스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높은 장벽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학문의 나라라 불리는 만큼 기사보다 학자의 숫자가 더 많으며 지식 보존이란 명분하에 군사 시설보다 도서관의 숫자가 더 많은 나라였다.

상대가 협상이 통하면 항복이라도 할 텐데 마물과 언데드로 이루어진 군단이 인간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리 만무했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근심만 깊어져 가는 가운데, 왕궁 호위병의 다급한 목소리가 회장 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구, 구, 국왕 전하! 와, 와, 왔습니다!”

“마물 군단이? 벌써?”

“그, 그게 아니라 빌로스 왕국의 루크 국왕 전하께서 직접 왕궁에 방문하셨습니다!”

루크가 왔다는 말에 호쿠 왕은 허겁지겁 왕좌에서 일어났다.

어쩐 일로 그가 찾아왔는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빌로스 왕국의 지원 없이는 몰려오는 마물 군단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운이 걸린 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내의 분위기가 부산스러워졌다.

“뭣들 하느냐! 어서 환영 준비를 하지 않고! 술이며 음식이며 궁녀들까지 전부 끌어모아서 대접하거라! 이번 대접에 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걸 잊지 마라!”

체면이 밥 먹여 주냐는 듯 필요하다면 체온으로 신발이라도 데울 기세로 환영 준비를 하는 호쿠 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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