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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89화 (189/200)

# 189

189화 내 역할이 뭔지 알았을 뿐이야 (3)

마기에서 발현된 검은 불꽃이 타이탄을 두르고 있는 용암석에 닿았다.

타이탄의 신체 구조는 땅의 고대 정령왕인 어스와 매우 흡사하다. 거암 거석이 본체에 다닥다닥 붙어 있으며 몸속에선 뜨거운 마그마가 피처럼 흐르며 쉴 새 없이 용암석에 열기를 더하고 있다.

어스와 차이점이 있다면 어스의 껍질엔 충격 흡수 능력이 가미되어 있던 반면 타이탄의 껍질은 그저 강한 열기를 내뿜는 단단한 암석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라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쟈칼의 브레스는 타이탄의 껍질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고, 그 과정에서 화염의 일부가 껍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를 희대의 학살마로 만들어 준 기술이건만 타이탄에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듯했다.

타이탄은 화로를 쬐는 것처럼 뜨뜻미지근한 감각을 한껏 감미하고선 손바닥을 아래로 내리눌렀다.

“촛불은커녕 지푸라기 한 올 그을릴 수 있을지 의문이구나.”

체중이 실린 묵직한 손바닥이 압착기마냥 쟈칼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그 동작이 흡사 바닥에 앉은 파리를 찍어 누르는 것만 같았고, 평범하게 찍어 누르는 공격에 불과하건만 손바닥이 떨어진 자리에서 아지랑이와 흙먼지가 한데 뒤섞여 함께 피어올랐다.

쟈칼이 죽었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금세 지면에서 손바닥을 떼어 냈으나 지면에 남아 있는 거라곤 검게 그을린 타이탄의 손바닥 자국이 전부였다.

어느새 쟈칼은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오른 후였다.

브레스로 상대하자니 상성이 너무 안 좋다. 화염 브레스로 높은 화염 저항력을 띠고 있는 껍질에 타격을 입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쟈칼에게 주어진 선택지라곤 육탄전밖에 없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야.”

“약자의 근성론만큼 역겨운 것도 없지. 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전력 차가 분명하거늘.”

“머리가 나빠서 모르겠는걸?”

“어리석구나. 신조차도 네놈의 저능함을 딱히 여길 게다.”

“그딴 건 처음부터 믿지도 않았어.”

쟈칼이 손톱을 날카롭게 세우며 타이탄에게 접근했다. 열기를 품은 공기가 폐부에 깊숙이 파고드는 탓에 목 안이 따끔거렸다.

용인의 신체가 몸속까지 튼튼해서 다행이라고 여기긴 이번이 처음이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벌써 내상을 입었으리라.

상공에서 날아드는 쟈칼을 상대로 타이탄은 자신의 어깨에 붙어 있는 껍질 중 하나를 떼어 내 쟈칼을 향해 던졌다.

후우웅!

달군 팬처럼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용암석 바위가 투포환처럼 허공을 갈랐다.

쟈칼은 몸을 틀어 비행 궤적을 수정하는 것으로 바위를 피해 냈다.

껍질을 떼어 낸 자리에 타이탄의 본체가 휑하니 드러나 있었다. 자캴은 그 드러난 부위를 노리고서 손톱을 내리찍었다.

푸욱!

“이런 망할!”

대치 내내 비아냥을 멈추지 않던 타이탄이 처음으로 욕지거리를 입에 담았다.

압도적인 체급 차를 자랑하는 것치곤 먼저 타격을 입힌 쪽은 쟈칼이 된 셈이었다.

그러나 공격을 가한 쟈칼도 마냥 온전치만은 못했다.

타이탄의 본체에서 뿜어져 나온 마그마가 쟈칼의 몸을 뒤덮은 것이다.

드래곤 스케일도 만만찮은 강도와 화염 저항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마그마 정도로 녹아내리진 않는다.

하나 문제는 마그마가 걸쭉하게 몸에 들러붙으며 빠르게 굳어가기 시작하고 있는 점이었다.

뻘에 빠지면 몸에 들러붙은 진흙이 시간이 흐를수록 굳어서 몸을 둔하게 만들곤 한다. 마그마는 진흙보다 수십 배는 더 성가셨다.

설상가상으로 등 뒤에서 마기 덩어리가 날아들어 쟈칼의 등에 직격했다.

퍼엉!

마물 가운데 날개를 지닌 놈들이 날아올라 쟈칼을 제거하기 위해 공격을 가한 것이다.

쟈칼의 날개 또한 마나 면역을 띄고 있는 건 마찬가지이긴 하다. 그러나 마그마가 날개를 뒤덮고 있어서, 정확하게 말하면 날개가 아닌, 날개를 덮고 있는 마그마에 공격이 적중한 셈이었다.

뜨거운 마그마와 마기가 부딪치며 파생된 충격은 쟈칼의 날개에 지대한 타격을 입혔다.

“큭!”

그나마 마기가 폭발하면서 타이탄 또한 충격을 입었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타이탄은 어깨의 상처가 더욱 벌어진 나머지 고통을 호소하며 마물들의 덜떨어진 지능을 탓했다.

“이런 아둔한 것들을 봤나! 날 공격해서 어쩌자는 것이냐! 도움이 안 되면 방해라도 하지 말란 말이다!”

나름대로 도와준답시고 나섰던 마물들은 본전도 못 찾고 낑낑거리며 물러나야 했다.

마물들을 물린 타이탄이 오른쪽 어깨에 왼손을 뻗었다.

날개가 상한 쟈칼에게 타이탄의 손을 피할 방도는 없었다.

타이탄은 마치 닭장에서 닭을 포획하듯, 쟈칼의 양쪽 날개를 한 손에 움켜쥐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구나. 무엇을 계기로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이냐? 엘리나도 그렇고 네놈도 그렇고 현시대의 마물과 언데드들은 이해 못할 기행을 일삼는군.”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를 보면 똑같은 말을 지껄일 테지. 이래서 세상일이란 참 재미있어. 안 그래?”

“헛소리를 지껄일 기운이 있는 걸 보니 산 채로 찢겨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크하하하! 이미 죽은 지 오래인데 산 채로 찢는다니 그쪽이야말로 헛소리 솜씨가 일품인걸?”

입씨름 따위에 시간 낭비할 생각은 없는지, 타이탄이 빈손을 위로 들어 올려 쟈칼의 머리를 잡으려 했다. 잡을 때도 닭 잡듯 날개를 한데 모아 잡더니 죽일 때도 목을 비틀어 죽일 심산인 모양이었다.

닭은 겁쟁이의 또 다른 표현이라 했던가.

타이탄이 취하고 있는 행동 하나하나에 쟈칼을 향한 조롱이 함축되어 있는 셈이었다.

어차피 한 번 죽은 몸, 한 번 더 죽는 게 무에 두려우리.

그래도 겁쟁이 낙인이 찍힌 채로 죽는 건 성미에 맞지 않다.

때문에 좀 더 화끈하게 죽고자 한다.

쟈칼은 손톱을 더욱 길게 빼내며 등에 대었다.

“날개 꺾인 머저리가 높이 떠 있는 건 이치에 맞지 않지.”

스스로를 머저리라 칭하며 등과 날개를 연결하고 있는 부위를 손톱으로 그었다.

여전히 예리함을 품고 있던 손톱이 연결 부위를 끊으면서 쟈칼의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게 맞다. 날개가 퇴화된 타조에게 비행이 허락되지 않듯 과오로 점철된 삶을 살아오며 인격의 퇴화를 거듭해 온 주제에 행복을 바랐던 것 자체가 잘못된 바람이었던 것이다.

쟈칼의 몸이 아래로 떨어졌고, 예상 착지 지점은 공교롭게도 아까 타이탄의 껍질이 벗겨진 부위였다.

타이탄의 상처에서 솟구친 마그마가 다시 굳으며 껍질을 형성하려 했으나 그 전에 마지막 기회가 주어질 것 같다.

쟈칼은 숨을 한껏 들이마셔 브레스를 장전했다.

“다시는 이 빌어먹을 인생을 반복하지 않게 깔끔하게 산화해 주마.”

언데드로 소생시키는 것조차 허락지 않겠다는 양 상처 속으로 파고드는 쟈칼이었다.

굳기 직전의 마그마가 크게 튀었고, 상처 부위 안쪽으로 파고든 쟈칼의 입에서 브레스가 방출되었다.

화르륵! 콰아아앙!

몸을 던진 자폭 시도가 성공하면서 타이탄의 상처 부위 안에서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어깨에서 시작된 폭발은 연쇄 폭발로 이어지며 타이탄의 어깨를 한 바퀴 둘렀다.

충격의 여파에 휘말린 어깨가 크게 벌어지면서 타이탄의 어깨부터 오른팔에 이르는 신체 부위가 떨어져 나갔다.

“크헉!”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팔이 아래로 떨어지며 지면에 부딪혔다. 워낙에 갑작스럽게 추락한지라 발치에 있던 마물과 언데드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팔 밑에 깔렸다.

깔려 죽은 마물과 언데드의 숫자가 무려 수십 마리에 달하며 상처 부위에서 솟구친 마그마가 사방으로 튀면서 죽은 숫자가 수백 마리에 달했다.

“마그마가 튄다! 휘말리지 않게 물러나!”

“으아악! 뜨거워! 나 좀 도와줘! 냉기 계열 쓸 수 있는 놈들아! 도망치지 말고 도와 달라고!”

“빌어먹을! 엘리나도 그렇고 쟈칼도 그렇고 뭐가 문제인 거야? 언데드면 언데드 편을 들어야지 왜 인간 편을 드냐고!”

마물과 언데드들은 난데없이 물난리에 휘말린 개미 떼처럼 우왕좌왕거렸다. 대열이 흐트러지고 저희끼리 부딪쳐 대는 통에 순식간에 진영이 시장통처럼 어수선해졌다.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현장 속에서 더더욱 상황을 악화시킬 사태가 발발했다.

서쪽에서 거인들이 나타난 것이다.

두두두두두두!

“돌격해라! 타의로 망자가 된 자들에게 안식을 안겨 주자꾸나!”

서쪽 해상 루트를 타고 올라온 거인군이 제국 영토를 횡단하여 전장에 도착한 것이었다.

거인군의 선두에 서서 평야를 질주하던 모건이 거대 망치를 위로 들며 높이 뛰어올랐다. 흡사 천둥의 신을 연상케 하는 호쾌한 도약과 함께 모건의 망치가 군단 한복판에 떨어졌다.

라이트닝 인첸트가 가미된 거대 망치는 지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을 남기며 전격을 발산했다.

쿵! 파지지지직!

거인군의 공격에 호응하듯 이번에는 남쪽에서 땅울림이 발생했다.

남쪽에선 3만에 달하는 빌로스군과 소수정예의 엘프 정령사 부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부대를 이끌고서 북상하던 바이스는 좌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바이스의 양옆에선 아캄프와 라샤가 각각 서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을 모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오면서 또 한바탕 싸웠나 보다.

같이 엘프의 숲에 남았다길래 조금은 사이가 좋아졌나 싶었는데 아직 둘 사이는 여전한 모양이었다.

하긴 변하지 않는 게 극상이라는 말도 있으니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긴 한다.

바이스가 특유의 미남자 액면에 그림 같은 미소를 그려 냈다.

그의 미소를 확인한 아캄프가 의문을 표했다.

“뭘 그리 혼자 실실 웃어?”

“그냥 이렇게 세 명이서 함께 싸우는 것도 오랜만이다 싶어서 말이죠.”

“그러고 보니 그러네. 구 하니온 왕국 시절에 함께 싸운 이래로 처음인가?”

“그때도 이렇게 절 사이에 두고, 두 분이서 냉전을 벌이셨지요.”

“그 당시만큼 찬바람이 쌩쌩 불 정도는 아냐. 기껏해야 가을바람 정도의 온도지. 요즘 좀 진전이 있었거든.”

미주알고주알 전부 털어놓는 아캄프의 행태에 라샤가 순간 발끈하여 수통을 던졌다.

“진전은 개뿔! 나가 죽어! 백번 죽어! 죽을 때까지 죽어!”

바이스는 가볍게 고개를 젖히며 수통을 피했고, 날아가던 수통은 아캄프의 투구에 정통으로 적중했다.

이 또한 예전에는 세 사람 사이에서 자주 볼 수 있던 장면이었다.

한바탕 옛 추억을 상기한 세 사람이 동시에 웃었다.

아캄프는 수통에 맞아 삐뚤어진 투구를 고쳐 쓰며 바스타드 소드를 들었다.

“추억팔이도 할 겸 오랜만에 내기나 하자고.”

라샤도 마찬가지로 양손에 단검을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적게 벤 사람이 크게 쏘는 거 맞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이스가 장검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세 사람의 무기가 동시에 마나 블레이드를 발했다. 그를 신호 삼아 3만 빌로스군이 강한 함성을 터뜨리며 마물 군단의 남쪽 진영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평야 한가운데에 모여 있는 마물 군단을 상대로 서쪽에선 거인 군이, 남쪽에선 빌로스 군이 한창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막 동쪽에서 6만에 달하는 변방 연합군이 진군하는 중이었다.

동쪽에서 몰려오는 병력의 백미는 누가 뭐라고 해도 6만 대군의 머리 위에서 창공을 누비고 있는 삼색제비의 존재였다.

삼색제비 위에선 레이아가 은발을 나부끼며 격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앙칼진 눈빛으로 격전지를 훑고선 스태프를 높이 들며 라이트 마법을 시전했다.

“전군! 진격!”

스태프 끄트머리에서 새하얀 빛이 눈부시게 발하며 지상에 돌격 신호를 전달했다. 라이트 마법의 밝기가 어찌나 눈부신지 마치 두 개의 태양이 하늘에 떠 있는 듯했다.

라이트 마법이 시전된 것을 본 변방 연합군이 속도를 높이며 마물 군단을 향해 돌진했다.

동쪽, 서쪽, 남쪽.

마물과 언데드, 그리고 인간과 거인과 엘프와 오크.

각기 다른 종족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부딪치면서 유례없는 대전투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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