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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90화 (190/200)

# 190

190화 그래도 할머니보단 낫네

연합군의 숫자는 10만, 마물 군단의 숫자는 8만.

머릿수만 따지면 연합군이 약간 앞선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선 마냥 앞선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연합군의 마나마스터라 해 봤자 아캄프, 라샤, 바이스 3인방, 그리고 변방 국가 소속 마나마스터 5명까지 더하면 총 8명에 불과하다. 반면에 마물 군단에 포함된 4성급 마물의 숫자는 무려 12마리에 달했다.

물론 신기 소유자인 레이아가 있기는 한데, 마물 군단에도 고대 병기인 타이탄이 있으니 질적인 차이를 상쇄하기엔 부족하다.

체스로 치면 연합군은 폰을 훨씬 많이 가지고 시작하고 마물 군단은 룩을 몇 개 더 가지고 시작하는 격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체스의 핵심인 퀸의 차이. 레이아는 건재한 반면 타이탄은 오른팔이 날아간 것이 큰 격차로 작용했다.

“콜드 크래시!”

메모리 스태프에 저장되어 있는 두 개의 마법 중 하나 콜드 크래시, 일명 얼음 폭격이라 불리는 마법이 시전되었다. 또 하나의 고대 마법인 텔레포트 홀이 최악의 연비를 자랑하는 마법이라면 콜드 크래시는 최상의 연비를 자랑하는 마법이었다.

마나를 많이 부여하지도 않았건만 무수히 많은 얼음 송곳이 상공에 생성되었다. 사람 몸통 크기만 한 투명한 고드름의 표면에 햇살이 부딪쳐 산산이 부서지면서 흡사 낮임에도 불구하고 별이 뜬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레이아는 엄지를 척 들었다가 타이탄을 오시하듯 내려다보며 엄지를 아래로 내렸다.

“쉬고 싶어서 지금까지 숨어 있었다죠? 바라던 대로 쉬게 해 드리죠. 영원히.”

수백 개에 달하는 얼음 송곳은 일제히 타이탄에게 떨어졌다.

한쪽 팔을 잃은 타이탄은 그나마 남아 있는 왼쪽 팔로 얼굴을 가렸다.

이내 곧 얼음 송곳이 타이탄의 전신을 두들겼다.

치이익! 치익! 치이익!

얼음 송곳은 타이탄에게 닿을 때마다 삽시간에 증발하며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증발한 얼음 송곳이 기화하며 타이탄의 몸 주위에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로 인해 탁 트인 평야임에도 타이탄의 주변의 습도가 올라가며 일순 고온다습한 환경이 형성되었다.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으나 레이아는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트리플 캐스팅! 썬더 클라우드! 라이트닝 오브! 라이트닝 바인드!”

습도가 한껏 올라가 있는 장소에 강력한 전격 마법이 수차례 발현되었다.

타이탄의 몸 주위에 큼지막한 번개의 고리가 생성되어 놈의 몸을 옥죄었고, 머리 위에 큼지막한 먹구름이 생성되어 번개를 떨굼과 동시에 전격을 머금은 구체 수십 다발이 타이탄을 덮쳤다.

전격이 타이탄의 껍질을 타고 흐르며 껍질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콜드 크래시로 미리 판을 깔아 놓고 썼는데도 타이탄이 입은 피해는 매우 미미해 보였다.

타이탄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양 태연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얼음 폭격이라, 잊힌 고대의 마법이구나. 기세등등한 계집아, 이것만은 알아 두거라. 똑같은 신의 피조물이라도 격의 차이라는 게 있단다.”

“격을 아시는 분이 쓰레기와의 약속을 이행하고 계신가요?”

“똑같은 쓰레기라면 알고 지낸 쓰레기의 편을 드는 게 나을 테지.”

“아무리 끼리끼리 모인다지만 역겨운 사고방식까지 닮을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죠.”

다시금 레이아의 스태프 끄트머리에 마나가 배열되며 마법 세례가 쏟아졌다.

어스퀘이크, 스톤 니들, 샌드 스톰 등등… 이번에는 대지 속성 위주로 공격을 퍼부었다.

노리는 부위는 휑하니 드러난 타이탄의 오른쪽 어깨의 단면 부분이었다. 어깨선의 중간지점에 해당하는 부분부터 오른팔이 통째로 사라져 있는 건 모두 쟈칼이 이루어 낸 성과일 것이다.

과오를 청산한답시고 목숨을 던져 가며 만들어 낸 약점이니 사양 않고 이용해 줄 생각이다.

물론 타이탄도 잠자코 있지만은 않았다.

“흥! 쓸데없는 짓을!”

타이탄이 팔을 휘두르며 날아드는 바위 송곳과 모래폭풍을 단번에 상쇄시켰다. 그러면서 날개 달린 마물들에게 출격을 명했다.

“당장 출격해서 저 날파리를 상대해라. 10분… 아니, 5분만 버티면 저 날파리부터, 지상의 개미들까지 모두 쓸어 줄 테니 확실히 버티도록.”

타이탄은 한쪽 무릎을 지면에 디디며 저 혼자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그러곤 지면에 떨어진 자신의 오른팔을 집어 오른쪽 어깨의 잘려 나간 단면에 가져가 대었다. 잘려 나간 단면에서 마그마가 진물처럼 꾸역꾸역 솟구쳤다가 굳길 반복했다.

전력으로 전투에 임하기 위해 잘린 팔을 도로 붙이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레이아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타이탄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머리를 공격하니 지키고, 부상당한 부위를 공격하니 상쇄한단 말이지?’

보호와 상쇄는 방어라는 목적하에 동일한 효과를 내긴 한다. 하지만 두 행위 사이엔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 보호는 소극적인 방어 행동이며 상쇄는 적극적인 방어 행동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상쇄 쪽이 더 큰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건 맞다. 대신 상쇄 동작을 기점 삼아 곧바로 반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고 말이다.

한데 타이탄은 반격할 것도 아니면서 공격을 상쇄했다. 무의식중에 평소 습관대로 방어 동작을 취한 것이다.

얼핏 풍긴 습관의 냄새가 레이아에겐 큰 힌트로 다가왔다.

관찰한 바를 종합해 보면 타이탄은 본체가 훤히 드러난 오른쪽 어깨보다 자신의 머리에 피해를 입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레이아는 스태프를 옆구리에 끼고선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녀의 허리춤에는 루크가 주고 간 해방검이 걸려 있었다.

당장 타이탄에게 공격을 가하고 싶었으나 비행형 마물들이 사방에서 몰려오며 방해 공작에 나섰다.

“은발에 남색 로브, 삼색제비… 레이아란 년의 인상착의와 동일한데?”

“레이아는 타이탄이 맡기로 한 거 아녔어? 왜 우리한테 떠넘기는 거야?”

“몰라. 까라면 까야지. 그나저나 쓰읍, 우리가 죽이면 그대로 먹어도 되는 거 아냐?”

“크흐흐, 그거 좋지. 주름진 할멈 고기라 아쉽긴 해도 그게 어디야.”

주름진 할멈이라는 말에 레이아의 눈초리가 매섭게 치켜 올라갔다.

안 그래도 서른을 넘긴 이후부터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이다.

거기다 레이아의 생각이 어디 보통 생활이던가.

잦은 원정과 막대한 업무량, 그리고 근래에 루크와 만나지 못하면서 쌓인 것들까지.

레이아는 해방검을 도로 집어넣으며 로브 안에 손을 넣었다. 그러곤 영약 추출 용액이 담긴 플라스크의 코르크 마개를 입으로 뜯어 열며 호쾌하게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너희들, 오늘 멀쩡한 꼴로 죽을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거야.”

독기 어린 눈빛을 번뜩이며 스태프를 높이 들어 올리는 레이아였다.

아줌마란 말만 들어도 화딱지가 나는데 할멈?

식이라도 올렸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이니시 에로우!”

상공에서 수백 다발의 고농축 마나 화살이 아래로 떨어졌다.

기껏해야 조무래기에 불과한 하급 마물들에게 허공에 자수를 놓듯 촘촘한 간격으로 떨어지는 고농축 마나 화살을 피할 재간은 없었다.

큼지막한 바람구멍이 뚫린 마물들은, 모기향에 그을린 날벌레처럼 지면으로 추락했다.

워낙에 계산 없이 무대포로 날린 공격인지라 아군의 진로에도 몇 개 떨어진 모양이다.

지상에서 모건이 나 아니었다면 죽었다고 소심한 항의를 보내왔으나 상공에 불어닥치고 있는 바람결에 실어 보냈다.

잠깐 시간을 지체한 동안 타이탄은 오른팔의 수복을 마쳤다. 놈은 시운전 삼아 오른손을 몇 번 쥐락펴락하고선 조소를 머금었다.

“이제 어쩔 테냐? 네년도 아둔한 용인 녀석처럼 목숨을 버리면 팔 한 짝 잠시 떼어 내는 것쯤은 가능할 게다.”

쟈칼도 목숨을 소모하여 고작 팔 한 짝 떼어 내는 게 전부였는데, 상성상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는 마법사 따위가 뭘 할 수 있겠냐고 조롱하는 것이었다.

너무도 정석적인 조롱인지라 레이아는 되레 차분함을 되찾았다. 조무래기들을 제거했으니 시도하려 했던 작업을 재개할 시간이다.

그녀는 재차 해방검을 뽑으며 한 손에는 스태프를, 한 손에는 검을 쥔 채로 주문을 영창했다.

“콜드 크래시!”

마치 현재란 악보 위에 도돌이표를 찍은 양 전투 개시 때 시도했던 방법을 다시 시도하는 레이아였다.

타이탄은 한 팔로는 머리를 보호하고, 다른 한 팔로는 자신의 껍질 파편을 떼어 내어 투척할 준비를 취했다.

“흥! 학습 능력이 심히 의심스러운 녀석이구나. 이미 안 통한다는 게 증명된 방법이거늘.”

이번 전투에서 두 번째 시전된 콜드 크래시가 타이탄에게 쏟아졌다.

결과는 첫 번째와 마찬가지였다.

얼음 송곳이 타이탄의 몸에 닿자마자 증발했고, 일시적으로 놈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공기의 습도가 높아진 게 고작이었다.

공격을 막아 낸 타이탄은 이제 자기 차례라는 양 껍질 파편을 투척하려 했다.

그 순간, 타이탄의 눈에 한 가지 특이점이 포착되었다.

분명 방금까지 황금으로 이루어진 검을 들고 있었건만 어느샌가 해방검이 사라지고 없었다.

동시에 레이아의 입이 달싹였다.

“내내 두들겨 맞아 놓고 어쩜 저리 입만 살았을까.”

위풍당당하게 군 것치곤 레이아의 공격을 막아 내거나 상쇄시킨 게 전부다.

쟈칼에게 당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란 명분을 갖다 댄다 하더라도 레이아에게 변변한 공격 한 번 못해 본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첫 반격을 시도하려던 참이었으나 미리 결과를 말하자면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타이탄의 머리 위에 먹구름이 생성되며 벼락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타이탄은 종전의 썬더 클라우드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전격이 껍질을 관통하여 몸 내부에 흘러들고 있는 게 아닌가! 더불어 전격이 흘러들고 있는 부위에 자그마한 이물질이 박혀 있는 것이 느껴졌다.

흡사 검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 같은 날카로운 이물질이…….

“설마 얼음 송곳에 해방검을 박아 넣은…….”

타이탄이 무의식중에 머리를 감싼 것은 머리를 둘러싼 껍질이 다른 부위보다 얇기 때문이었다.

관찰을 통해 그 점을 알아차린 레이아가 얼음 송곳 중 하나에 해방검을 박아 넣고서 날린 것이다.

타이탄의 팔뚝이 아무리 두껍다 한들 수백 개에 달하는 얼음 송곳을 모두 막을 순 없을 터. 해방검이 심지처럼 박혀 있던 얼음 송곳 하나가 타이탄의 껍질을 관통하여, 놈의 본체에 박힌 것이었다.

검이 어떻게 용암석을 관통하여 지나치냐고?

해방검이라면 가능하다.

해방검에는 장애물을 무시하고 육체만 베어 내는 효과가 부여되어 있으니까.

즉, 해방검을 촉매 삼아 전격이 직접 타이탄의 내부로 흘러든 것이다.

레이아는 마나를 모두 소모할 작정으로 썬더 클라우드의 시전 시간을 최대치로 늘렸고, 끊임없이 떨어지는 전격은 타이탄의 몸 내부에 흐르는 마그마에 영향을 주었다.

푸쉭! 푸쉭! 콰콰콰콰!

타이탄의 몸 곳곳에서 마그마가 새어 나왔다. 모양새가 많이 다르긴 해도 인간으로 치면 칠공으로 출혈을 뿜어내는 것과 같으리라.

거대한 육체가 유지력을 잃고 붕괴되어 가는 가운데 타이탄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망… 계… 죽……!”

발음이 무척 꼬여 있어 정확히 어떤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래도 뭐라 말하려 했는지 대충 짐작은 간다.

레이아는 바람결에 나부끼는 은발을 귀 뒤로 쓸어 넘기며 나직이 읊조렸다.

“그래도 할머니라 불리는 것보단 낫네.”

상쾌하게 한마디 중얼거린 그녀는 여전히 징글징글하게 남아 있는 마물 군단을 상대하기 위해 전장의 상공을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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