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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92화 (192/200)

# 192

192화 천공섬 추락 (1)

빨간색, 파란색, 녹색, 노란색.

각기 다른 색을 지닌 정령석이 루크의 마나를 머금은 채로 오션 마린 위에 떨어졌다.

이미 루크로부터 전성기 수준의 몸집으로 소환될 마나를 충분히 공급받은 참이다. 거기에 오션 마린에 담긴 마나까지 한껏 빨아들이면서 전성기 이상의 마나를 가진 채로 소환되었다.

단 한 번 소환하는데 천억 루소에 달하는 오션 마린을 소모한 만큼 고대 정령왕들의 몸집은 지금까지 소환되었을 때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거인? 그 정도는 전성기 수준으로도 충분히 넘는다. 타이탄? 아마 그쯤 되어야 비빌 수 있지 않을까?

비유하자면 속성 공격이 가능한 데다 특수 능력까지 지니고 있는 타이탄 4마리가 동시에 소환된 셈이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라그나로스였다.

몸집에 비례하여 라그나로스가 내뿜는 열기의 세기 또한 강해졌다. 그로 인해 주변 공기가 달궈지며 온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루크는 몸 주위에 실드를 두르고 그 안을 냉기로 채우며 핀잔을 던졌다.

“날뛰어도 된다고 했지 불장난을 하라고 한 게 아냐.”

핀잔을 들어도 좋은지 평소보다 한참 높아진 눈높이를 만끽했다.

“크하하! 주인아! 오늘만큼은 네 쪽이 꼬꼬마인 거 알지? 오구오구, 우리 주인 작은 게 귀여워~”

보다 못한 아쿠아가 냉기의 벽을 세워 아군이 열기에 지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 주었다.

그러곤 깐족거리는 라그나로스를 바라보며 못 살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휴, 저렇게 업보 쌓으면 나중에 호되게 당할 텐데 왜 저러나 모르겠네요.”

라그나로스와 아쿠아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합류한 나머지 두 정령왕 중 하나인 어스, 그는 부동의 마이페이스를 자랑하는 성격답게 소환되자마자 근처에 있던 바위를 입에 물었다.

와그작! 와그작!

“허! 허! 뜨거워!”

라그나로스의 열기 때문에 달아오른 바위를 씹다가 흡사 데운 감자를 입에 담은 양 입을 살짝 벌리고 입김을 허허 불었다.

유일하게 평소와 다른 모습을 띠고 있는 건 윈터뿐이었다.

윈터는 추락하고 있는 천공섬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

본체를 휘감고 있는 녹색 바람 안에선 생각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원래는 카라스코의 이념에 공감하며 그의 계획에 동조했었다. 잠깐 루크와 지냈다고 해서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인간 혐오와 피해 의식이 사라질 리 만무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 배신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루크는 배신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포석을 깔아두었다.

“윈터, 조만간 엘프의 숲에서 소리아의 정식 장례식을 실시할 예정이야.”

선대 요정왕이었던 소리아가 죽으면서 요정왕 일족의 장례가 시행되었다.

관례대로라면 진즉에 장례를 치렀어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바실리스크를 죽이고 무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기에 정식 장례식을 미뤄야 했다.

지금은 임시로 다른 곳에 묻어 놓았고, 무덤이 복구되면 정식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었다.

윈터는 뜬금없다 여겨 의문을 표했다.

“생뚱맞은 소리로군. 이 중요한 순간에 거론할 만한 화제는 아니지 않나?”

“지금이니까 더더욱 해 둬야지. 요정왕의 장례식엔 현역 땅의 정령왕이 일시적으로 현신한다는 것 정돈 너도 알고 있겠지? 내가 녀석을 상대로 협상해 주겠어.”

“뭐? 어이, 주인. 너 설마…….”

“현역 정령왕이라면 내 협상안을 정령의 신에게 전해 줄 수 있겠지.”

“참 나, 정령왕이 상단의 서신 배달 창구도 아니고… 그리고 설득한다고 설득당해 줄 녀석들이 아냐.”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내가 협상을 제안하는 게 아냐. 저쪽에서 제발 협상해 달라고 빌게 만들어야지.”

협상이 잘 풀린다면 고대 정령왕들에게 걸려 있는 정령신의 금제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정령계로의 귀환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윈터에게 있어 이보다 더 매력적인 제안은 없다. 협상을 가능케 하려면 루크가 살아 있어야 하니 싫어도 루크의 작전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윈터는 루크가 자신의 배신을 염두에 두고 있단 걸 뒤늦게 깨달았다.

“훗, 그렇게 판 짜놓지 않아도 배신 안 해.”

“그렇다고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

“참 피곤하게도 사는군.”

“우수한 만큼 수수료 떼는 거지.”

“확실히 말해 두자면 인간 혐오나 피해 의식은 지금도 여전해. 뭐, 카라스코 녀석이 예전 그대로였다면 다른 마음을 품었을지도 몰랐겠지만 말이야.”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카라스코의 행동은 단순한 화풀이에 불과하다. 일관되게 인간 혐오 사상을 고수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루크에 대한 증오 하나만을 가진 채로 움직이고 있다.

카라스코의 계획이 개인적인 화풀이로 전락한 이상 더는 놈에게 가담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루크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살벌한 농담을 날렸다.

“오호라, 인간 혐오가 여전하다? 그러면 정령계 귀환 명단에 바람의 고대 정령왕은 빼도 되겠군.”

“참 나, 사실대로 말해도 뭐라 하네. 거짓말하면 거짓말했다고 뭐라 할 거면서.”

“그런 걸 두고 갈굼의 정석이라고 한다지?”

“정말이지 못 당하겠군.”

악우를 연상케 하는, 허울 없는 대화가 오가는 동안 천공섬이 사정거리 내에 다가왔다.

이제 잡담 시간은 끝이다.

루크는 파이를 타고 위로 날아오르며 고대 정령왕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제1진! 라그! 윈터! 시작해!”

먼저 라그나로스와 윈터가 먼 곳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멈춰 선 위치는 천공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천공섬의 측면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한껏 내뿜었다.

화르르륵!

휘이이잉!

산도 집어삼킬 듯 거대한 화염 줄기와 토네이도를 연상케 하는 강한 돌풍이 천공섬 측면을 향해 쇄도했다.

두 속성 공격은 나란히 평행선을 그리는가 싶더니, 돌풍의 궤적이 살짝 틀리면서 돌풍이 화염에 합류했다.

라그나로스의 화염은 바람을 먹고 한층 기세를 키웠다.

역상성을 이용한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이용한 공격이었다.

잠시 후 라그나로스의 화염은 천공섬 측면에 적중했고, 천공섬 측면을 이루고 있는 부유석을 조금씩 녹여내었다. 부유석이 녹는 속도가 썩 빠른 편은 아니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천공섬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기엔 충분했다.

화염이 닿지 않는 부분에 비해 화염이 닿는 부분의 부력이 감소하면서 천공섬의 좌우 측면 부력이 불균형을 이루었다. 그로 인해 천공섬이 살짝 기울면서 추락 궤도가 아래로 꺾였다.

물론 궤도가 꺾였다곤 해도 아주 약간 꺾인 것에 불과하다. 원래 헤테룬에 떨어질 것이 좀 더 앞당겨져서 황무지에 떨어지는 걸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도 그거면 충분하다.

루크는 천공섬이 약간 기운 것을 확인하고선 아쿠아와 어스를 불렀다.

“제2진! 아쿠아! 어스!”

“네, 금방 만들게요. 어스, 연습했던 대로만 하면 돼요.”

“데운 바위 맛있어!”

“어스!”

누가 마이페이스 아니라고 그 착하던 아쿠아마저도 버럭하게 만들었다.

아쿠아의 표독스런 눈빛에 뒤늦게 어스가 정신을 차리며 대지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쿠구구구구!

어스는 카라스코의 건축물을 만들었던 당시의 경험을 살려 황무지 한복판에 높은 장벽을 세웠다. 장벽의 높이는 수십 미터에 달했고, 길이는 수십 킬로미터로 매우 기다란 길이를 자랑했다.

어스는 총 4개의 장벽을 세웠는데, 각 장벽은 면을 이루듯 각을 세우며 직사각형 모양을 이루었다.

장벽이 완성되자마자 아쿠아가 움직였다.

콸콸콸콸콸!

아쿠아는 가진 마나를 모두 쓸 기세로 장벽 안에 물을 쏟아부었다. 물줄기의 기세가 흡사 대륙 최고 규모의 폭포를 연상케 만들었으며 어찌나 물이 많이 쏟아지는지 장벽 안에 물안개가 서릴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안전지대까지 물러나 있던 마법사들도 원거리에서 각도를 높인 물줄기를 쏘아 올려 저수 작업에 힘을 보탰다.

“워터 필러!”

“아쿠아볼!”

“레인 클라우드!”

장벽을 틀 삼아 물이 차오르며 순식간에 인공 수조가 생성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조보다는 깊이 수십 미터짜리 해구 하나를 뚝 떼어다가 황무지에 옮겨 놓은 듯한 광경이었다.

워낙에 초대형 규모로 일을 벌이다 보니 수십 톤의 오션 마린을 흡수했음에도 고대 정령왕들의 마나가 모두 소진되었다.

라그나로스는 줄기차게 뿜어내던 화염을 더 이상 뿜어내지 않으며 비틀거렸다.

“주인아, 벌써 연료 다 떨어졌는데 어쩌냐?”

“이만하면 충분해. 회수할 테니 각자 제자리에서 대기하고 있어.”

루크는 황무지를 빠르게 훑으며 고대 정령왕들을 회수하였다.

회수를 마치고 물러날 즈음 궤적이 바뀐 천공섬이 물 위로 떨어졌다.

처어어엄! 버어어어엉!

물기둥이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치솟으면서 섬이 천천히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을 완충제 삼아 충돌 충격을 줄인다는 계획은 아직까진 성공적이었다. 그 증거로 천공섬의 추락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문제는 수조 역할을 도맡고 있는 장벽의 내구도였다.

카라스코의 건축물은 오랜 기간 어스의 껍질을 떼어 내어 만든 것이다. 반면에 장벽은 그저 대지의 기운을 이용해 만든 즉석 장벽에 불과하다. 내구도에 있어선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대량의 물에다가 천공섬의 무게까지 더해지며 장벽에 과부하가 걸렸다.

우직! 우지직! 우직!

장벽 안쪽에서 낡은 의자에 무거운 사람이 앉았을 때나 날 법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소리가 심상치 않은 것이 당장 장벽에 균열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설마 부서지나?

부서진다면 부서지는 대로 골치 아파진다. 천공섬마저 담을 정도로 많은 양의 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아마 홍수에 버금가는 물난리가 발생하지 않을까 싶다.

천공섬의 부피만큼 수면의 높이가 올라가면서 욕조에 몸을 담갔을 때 물이 흘러넘치는 것처럼 대량의 물이 장벽 위로 흘러넘쳤다.

쏴아아아아!

규모가 크다 보니 물이 흘러넘치는 것만으로도 즉석에서 간이 폭포가 만들어질 지경이었다.

다행히 물이 넘치는 것에서 그치기만 하고 장벽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물속으로 반 이상 처박혔던 천공섬은 물의 부력을 받아 위로 떠오르며 안정을 되찾았다.

숨도 안 쉬고 긴장한 채로 상황을 지켜보던 빌로스의 기사와 마법사들은 천공섬이 안정을 되찾음과 동시에 환호성을 터뜨렸다.

“와아아아아!”

“루크 전하 만세! 빌로스 왕국 만세!”

가장 큰 고비를 넘겼으니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아직 기뻐하기엔 이르다.

천공섬 위에 상주하고 있는 마물, 언데드 부대, 그리고 카라스코를 정리해야 한다.

비행부대는 공중전을 펼치기 위해 일제히 날아올랐고, 지상군은 어스가 장벽을 세우며 함께 만든 대계단을 밟으며 천공섬에 오를 준비를 했다.

루크 또한 백금 갑옷과 해왕검을 단단히 착용하고선 파이의 깃털을 강하게 쥐었다.

“자, 그럼 놈의 시한부 인생을 좀 더 앞당기러 가 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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