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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97화 (197/200)

# 197

197화 아직 하나 남았잖아요? (1)

천공섬 사태로부터 1년 후.

빌로스 왕국의 귀족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 건축 구름 확보 건은 어떻게 됐나요?”

“어허, 아버지가 아니라 공작님이라 부르라 하지 않았느냐.”

“사석에선 아버지라 불러달라고 하셨잖아요.”

“공적인 일을 논하면 그곳이 공적인 자리가 되는 것이란다. 빨리빨리 고개를 조아리려무나.”

“어휴, 생신 파티에 참가 못했다고 화풀이하시는 거죠? 해가 갈수록 아이처럼 구신다니까.”

같은 마차에 올라 왕궁으로 향하는 내내 투닥거리는 레이아와 그란데 공작이었다.

근 1년 동안 얼굴 마주친 적이 손에 꼽는 두 부녀였다.

레이아는 줄곧 루크를 구출하는 데 신경을 쏟아붓고 있었고, 그란데 공작은 루크의 부재 내내 왕국을 관리하느라 정신없이 지냈었다.

오랜만에 레이아가 헤테룬에 복귀하면서 같이 출근하게 되었는데, 간만에 딸을 보게 된 것이 기쁜지 있는 내내 아재식 새침을 떠는 그란데 공작이었다.

레이아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조아리며 그란데 공작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

“네네, 그란데 공작님. 천공섬을 고정시킬 건축 구름은 확보하셨는지 물어도 될까요?”

“에잉, 막상 들으니까 서먹해서 별로구나. 그냥 아버지라 부르거라.”

“참 나, 이랬다저랬다 피곤하게 하시네요. 빨리 알려 주기나 해요.”

“난 근황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넌 자꾸 일 얘기만 하지 않느냐.”

“알겠어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허허허, 별일 없었단다.”

“아버지!”

실없는 농담에 레이아가 눈을 흘겼다.

어찌나 눈빛이 강렬한지 그란데 백작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곤 헛기침을 하며 앞선 질문에 대답했다.

“흠흠! 건축 구름은 확보해뒀단다. 변방 국가에서 쉽게 내주더구나.”

“제공하는 과정에서 달리 협상한 건 없죠?”

“편의를 제공해 줄 걸 요구하긴 하던데 들어 줄지 말지는 보류해 두기로 했단다. 전하께서 돌아오면 답변을 준다고 했으니 당장은 납득하더구나.”

천공섬 사태가 일단락된 후 천공 콜로세움을 두른 결계가 해제되지 않는 나머지 전 대륙이 들썩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루크가 카라스코와의 일전을 벌이러 들어간 후에 나오지 않고 있다.

대륙의 이목이 루크의 무사 여부에 쏠렸고, 한동안 빌로스 왕국 곳곳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나선 것이 바로 레이아였다.

자칫 잘못하면 평생 독수공방하게 될 처지에 놓인 여인의 분노를 어느 누가 감당하랴.

레이아는 철저하다는 말로도 부족해 독하다 싶을 정도로 치안 유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거짓말처럼 불안한 기류가 안정되었으며 일각에선 레이아를 두고 냉혈 마녀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건축 구름은 곧바로 서쪽 해안으로 옮겨달라고 해 주세요.”

한 번 인공 수조에 빠졌던 천공섬은 이후에 다시 떠올랐다.

이를 두고 레이아를 비롯한 빌로스의 마법사들은 제어장치가 불안정해져 멋대로 궤도가 바뀌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천공섬은 빌로스 왕국 서쪽 해상 위에서 정지해 있다. 언제 다시 이동할지 모르고, 자칫 잘못하면 지면으로 추락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인공적으로 고정시킬 방법을 찾기로 했다.

고정시킬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건축 구름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변방 국가 중 한 곳에 자유자재로 모양을 다듬을 수 있는 데다 강한 내구성을 지닌 건축용 구름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협조 요청을 한 참이었다.

그란데 공작이 직접 협상을 하여 건축 구름을 제공받는 데 성공했으니 자재가 도착하면 곧바로 구름다리를 이어 천공섬을 고정할 것이다.

그란데 공작은 얼굴에서 장난기를 지우며 레이아의 건강을 걱정했다.

“못 보던 사이에 많이 말랐구나.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

“먹고 다녀요.”

“후우, 전하께선 어떻게 지내고 계실는지 모르겠구나. 1년이나 지났는데 나올 기미가 안 보이는 걸 보면…….”

“아버지.”

레이아가 갈라진 목소리로 그란데 공작을 불렀다.

그란데 공작을 노려보는 레이아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레이아만큼 루크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그녀에게 루크의 죽음을 암시하는 말은 금기어 나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란데 공작도 지쳐 가고 있었다. 영토 문제나 제국 선포와 같은 중대 사항은 루크 없인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한데도 계속 결정 여부를 연장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가장 답답하고 힘든 부분은 다름 아닌 루크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살아 있으면 살아 있다고, 죽었으면 죽었다고 시원하게 알 수 있기라도 하면 덜 답답하련만. 제아무리 루크에 대한 믿음이 두텁다 하더라도 실종된 지 1년이나 지나면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건 불충이니 불신이니 하는 것을 떠나서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질 수밖에 없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잘 버텨 왔지만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말 듣기 싫은 건 알겠지만 그래도 꼭 해둬야 할 것 같구나.”

“무슨 말씀하시려는지 알아요. 그냥 믿고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만약에 우리가 우리 가족의 일만 챙기면 되는 평범한 평민 가정이었다면 나도 네 의견을 지지했을 거야. 하지만 그게 아니잖니? 국왕 전하께서 청춘을 바쳐가며 일군 나라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는 게 도리 아니겠느냐.”

“왕이 되고 싶으세요?”

“굳이 나일 필요는 없지. 자격이 된다면 누구라도 좋아. 이 나라에는 왕이 필요하단다. 그 부분은 일선에서 고생 중인 네가 가장 잘 알지 않느냐.”

굳이 후보를 선정한다면 레이아가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루크가 도맡았던 업무를 전부 떠맡고 있는 데다 얼마 전에는 레이아 개인의 꿈이자 인간의 몸으로 오를 수 있는 최대 경지라 불리는 7서클 경지에 오른 참이다.

다만 루크와 동일한 업무를 ‘국왕 신분’이 아닌 ‘비행부대 대장’ 신분으로 행하려니 늘 제약과 고충이 뒤따랐다.

그녀가 왕의 자리에 오르면 업무 수행이 훨씬 더 매끄러워질 것이고, 빌로스 왕국은 급속도로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레이아라면 그 누구도 그녀가 왕위에 오르는 데 반대하지 않을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다못해 루크가 후사라도 남겼다면 이런 걱정도 없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무척 현실적인 방안이었음에도 레이아는 뜻을 꺾지 않았다.

“지금 제 상황이 고생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분명히 말씀드릴게요. 왕궁에 있는 왕좌에 앉을 자격은 전하에게만 있어요. 전하가 만들었고, 전하가 키웠고, 전하가 지킨 나라예요. 전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그 자리를 노리는 자를 처단하는 게 제 일이고요. 누구도 예외는 없어요.”

‘누구도 예외는 없다.’란 부분을 특히 힘주어 말하는 레이아였다.

그란데 공작이라도 예외는 아니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그란데 공작으로선 딸의 독기 어린 눈빛을 감히 마주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때문에 차창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아무 말 않으마. 그냥 답답해서 참견 좀 해 봤는데 괜한 소리를 한 것 같구나.”

“날 세워서 죄송해요. 그래도 저까지 흔들리면 정말로 전하께서 해 오신 모든 일이 허사가 되어 버려요.”

“아니다. 네가 뭔 잘못이 있겠느냐. 전부 카라스코 그놈이 수작을 부린 탓이지. 아무튼 힘닿는 데까지 해 볼 테니 하고 싶은 대로 하려무나.”

“고마워요, 아버지.”

레이아도 항상 마지막에는 지지해 주겠다고 말하는 그란데 공작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그란데 공작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조용히 포옹했다.

그란데 공작은 예전보다 훨씬 가늘어진 딸의 손목을 힐끗 보고선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보이지 않도록 턱을 어깨에 대며 가만히 등을 토닥여 주었다.

* * *

잠시 후, 레이아와 그란데 공작을 태운 마차가 왕궁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려 곧바로 국정회의가 열릴 대회의장으로 가려던 찰나, 게데스 자작이 손님의 방문을 알렸다.

“레이아, 크레인 왕국에서 보낸 사절단이 도착했더구나.”

“그러고 보니 저쪽에서 공식 방문 요청을 했었죠. 근데 도착 예정일은 다음 주가 아니었던가요?”

“아까 잠깐 인사를 나눠 봤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구나.”

“심상치 않다뇨?”

“크레인 왕국의 길버트 왕자가 직접 사절단을 이끌고 왔단다.”

왕자를 직접 보낼 정도라면 심도 있는 대화를 요구할 생각일 터.

루크의 부재를 핑계로 구 신성제국 영토분할 문제를 계속 미루고 있으니, 그에 대한 재촉을 요구할 심산으로 추정되었다.

레이아는 여느 때와 같은 안건이라 생각하며 대회의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처리할 거라면 빨리 처리하는 게 낫죠. 대회의장으로 오라고 해 주세요.”

길버트 왕자는 레이아와 비슷한 연배인 30대 초반의 나이에 짧게 친 흑발을 옆으로 쓸어 넘겨 한껏 멋을 낸 미남이었다.

그는 자랑이라도 하듯 각종 훈장이 주렁주렁 매달린 제복을 입고서 인사말을 입에 담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레이아 양. 이전에 크레인 왕국에 머무르실 때 뵌 이후로 처음 뵙는군요.”

훈장의 장식이 흔들리면서 먼지떨이처럼 옷감을 두드렸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사와 동시에 향수 냄새가 풍겼다.

페로몬 계열의 독특한 향이 코를 찌른다.

의도적으로 뿌린 느낌이 다분한 향수 냄새가 레이아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당장이라도 거리를 두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았다. 빌로스 왕국을 대표하는 자로서 경거망동은 삼가야 한다. 다른 이도 아닌 루크를 대신하고 있는 만큼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오랜만에 뵙네요, 길버트 왕자님. 호쿠 국왕 전하께선 잘 지내고 계신가요?”

“아바마마께선 여전히 정정하십니다. 그보다 공지한 예정보다 일찍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어서 레이아 양을 뵙고 싶은 나머지 일정을 재촉하게 되더군요.”

“늦는 것보다는 낫죠.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영토 분할 건에 대한 빌로스 왕국의 입장은 여전해요. 루크 국왕 전하께서 복귀하시면 진행할 거예요.”

길버트 왕자는 전혀 다른 용건이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저희도 인지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이번에는 다른 용무로 찾아왔습니다.”

“다른 용무라면?”

“저와 식을 올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순간 레이아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식을 올리자는 게 다른 행사를 말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이 경우엔 분명 결혼식을 말하는 것일 터.

길버트 왕자와 교류가 많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루크가 사라진 이후에 부쩍 정책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편지가 많이 왔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당치도 않은 요청이었다.

레이아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보여 주었다.

“제가 누구와 약혼했는지 모르실 린 없을 텐데요?”

만약 루크가 안다면 크레인 왕국의 존망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크레인 왕국 입장에선 치기 어린 연심을 성사시키기 위한 도박치곤 걸린 것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뒷일을 걱정하는 것은 루크가 살아 있다고 믿는 자의 생각일 뿐.

루크가 죽었다고 확신하는 자들에겐 대륙의 패권을 휘어잡을 좋은 기회에 불과했다.

이어지는 길버트 왕자의 말에서 그가 상당히 많은 준비를 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아차, 이 말을 깜빡했군요. 얼마 전에 북동부 왕국들이 연합을 이루었습니다. 빌로스 연방과 북동부 연합의 화합을 이룰 좋은 기회라 생각하는데 설마 거절하시진 않겠지요?”

저희끼리 뭉치면, 루크가 없는 빌로스 왕국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판단에서 비롯된 행동이리라.

반협박이나 다름없는 말투가 레이아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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