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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99화 (199/200)

# 199

199화 세 번째 인생

뎅~ 뎅~ 뎅~

탑 위에 설치된 종루에서 대형 종이 크게 흔들리며 중후한 소리를 내었다.

오늘 헤테룬에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와 공짜 음료를 들이켜고 쌍쌍이 짝을 지어 전통춤을 추었다.

광장에선 음유시인들이 합주를 펼치며 흥을 돋웠고, 집집마다 꽃잎을 거리에 뿌리며 거리를 형형색색의 꽃길로 물들였다.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인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오늘이 바로 루크의 황제 대관식이자 결혼식이 행해지는 날이다.

왕궁 안에선 한창 대관식이 준비 중이었다.

황제의 자리에 즉위한 이후 레이아를 황후로 맞이하는 것이 여러모로 모양새가 깔끔했기에 대관식-결혼식의 절차를 밝기로 했다.

왕궁 입구에서부터 귀빈들을 맞이하기 위한 레드카펫이 깔렸고, 마차에서 내린 빌로스의 중역들이 카펫을 밟으며 왕궁 안으로 들어왔다.

제랄드는 마차에서 내리며 감개무량함을 표했다.

“하하하,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드래프트 영지 시절 때부터 루크가 누군가와 연을 맺길 바라왔던 제랄드다.

일에 미쳐 사는 주군을 볼 때마다 이대로 가다간 독수공방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망나니 시절 때부터 지금까지 루크를 보아 온 제랄드이기에 더더욱 루크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오늘이 감격스러울 따름이었다.

제랄드는 저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가를 훔쳤다.

“크흥! 나이가 들었나. 요즘 따라 왜 이리 눈물이 많이 나오는지 원.”

언제 도착했는지 러스트가 제랄드의 옆에 붙으며 쾌활한 투로 놀려댔다.

“그건 자네가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이지.”

“오늘 같은 날에 꼭 감동파괴를 해야겠습니까?”

“알레르기가 있는 건 사실이잖나.”

“네네, 말을 꺼낸 제 잘못이지요. 하여간 무슨 말을 못하겠군요.”

“뭘 또 속 좁게 토라지고 그러나. 사람이 마음이 넓어야지. 넓어진 자네의 이마처럼 말일세.”

“오늘따라 유독 못되게 구시는군요. 이건 자작님도 인정해야 할 겁니다.”

“사과하지. 텐션이 올라서 그런지 주둥이가 제멋대로 한도를 초월해 버리는군.”

“뭐, 그럴 만한 날이긴 하죠.”

두 남자가 댄디한 중년미를 풍기며 진한 풍미의 미소를 띠었다. 신분과 종족을 떠나 오랫동안 등을 맞대며 싸워 온 전우이기에 풍길 수 있는 분위기였다.

루크의 가장 오래된 두 충신은 방명록에 멋들어지게 이름을 휘갈기며 대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루크가 복귀하고 황제 즉위식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변방 국가 제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변방 국가들은 도둑이 제 발 저리듯 행여나 루크의 보복이 있을까 싶어 열띤 조공 경쟁(?)을 펼쳤다.

그리고 기존에 약속했던 ‘구 신성제국 영토를 분배해 주는 대신, 빌로스 왕국의 산하에 들어온다.’는 조약이 정식으로 실시되며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빌로스 연방이 형성되었다.

그 모든 일은 마친 후에야 제국 선포 준비를 할 수 있었고, 오늘에 와서야 황제 즉위식을 거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루크는 금실로 수를 놓은 하얀 의복을 입고서 단상 위에 올랐다.

단상 위에는 쿠션을 놓은 거치대가 있었는데, 자색 쿠션 위에 특별히 제작된 황제의 관이 면사포에 덮여 있었다.

개국공신으로 선정되어 공작의 작위를 받은 드골이 손수 면사포를 들춰 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폐하.”

“수고 많았어, 드골. 연로한 나이로 끝까지 고생해 줬으니 이 역할 만큼은 네게 맡기고 싶더라고.”

“보잘것없는 높게 평가해 주시니 과분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 어서 관을 쓰시지요.”

손으로 관을 집어 머리 위에 쓰자 뿌듯한 성취감이 머리부터 시작하여 전신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황제의 관을 쓰고 바라본 경치는 확실히 남달랐다.

손수 쌓은 탑의 꼭대기에서 시야 가득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늘 맡아왔던 대강당의 공기임에도 오늘만큼은 상공에 머무르고 있는 것처럼 청량감이 듬뿍 느껴졌다.

대강당 안의 모두가 숨죽여 루크를 바라보았다.

황제가 된 루크의 첫 소감을 귀에 담고자 다들 긴장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진중한 분위기에 루크다운 소감을 끼얹었다.

“관을 좀 가볍게 만들지 그랬어? 무거워서 목 아프니까 식은 짧게 짧게 진행하자고.”

시원시원하기 그지없는 짧은 소감에 좌중이 소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루크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새로운 왕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해왕검을 뽑아 높이 들었다.

“빌로스 제국에 영광이 영원하기를!”

“빌로스 제국에 영광을! 루크 폐하께 충성을!”

“자, 곧바로 다음 식 진행하도록 해. 저쪽에 부케를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루크가 지목한 좌석에는 결혼식 부케를 받기 위해 모여 앉은 귀족 영애들이 가득 있었다.

재밌는 건 영애들 사이에 아캄프가 다소곳이 앉아선, 뻔뻔한 얼굴로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뒤늦게 아캄프를 발견한 라샤가 얼굴을 붉히며 아캄프에게 다가가 귀를 잡아당겼다.

“어휴, 내가 창피해서 못 살아. 다른 사람들 다 보는데 꼭 장난을 쳐야 직성이 풀려?”

“아야야야! 잠깐! 잠깐만!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라고!”

“진심으로 고민한 게 고작 이거야? 백 년 사랑도 식겠다, 멍청아!”

성질 내는 라샤와 울상을 짓는 아캄프의 모습이 하도 잘 어울리는 나머지 또 한 번 대강당 내의 좌중이 폭소를 터뜨렸다.

한차례 소동이 끝난 직후 곧바로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시간을 오래 끈다고 훌륭한 행사가 되는 건 아니다. 때문에 일부러 대관식과 결혼식이 이어지도록 일정을 짜두었다.

대관식의 보조를 맡았던 드골이 단상 위에 남아 있다가 곧바로 주례대에 섰고, 루크 또한 단상 위에 남아 레이아를 기다렸다.

끼이이익!

대강당 정문이 열리면서 미리 황후 의복을 입은 레이아가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그란데 공작과 손을 잡고 걸으며 단상 위로 올라왔다.

일부러 드레스풍으로 개조하여 만든 황후 의복은 프릴처럼 층층이 단을 이루고 있었고, 사락사락 바닥에 끌리는 드레스 끝자락과 산들산들 흔들리는 은발이 대비를 이루며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란데 공작은 단상 위에서 레이아의 손을 놓으며 가져가라는 식의 제스처를 취했다.

“받으십시오.”

그란데 공작답지 않은 무미건조한 인사말에 레이아가 눈을 흘겼다.

“꼭 공문 건네듯이 말해야겠어요?”

오래전부터 루크와 레이아가 이어지길 바랐던 사람치곤 딱딱한 반응이긴 하다.

레이아의 핀잔에도 그란데 공작은 레이아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해 주고선 몸을 돌렸다. 그러곤 단상 아래로 내려가며 목맨 목소리로 말하길.

“잘 어울리는구나.”

부인을 가슴에 묻고, 부인을 쏙 빼닮은 딸을 가슴으로 키워 냈으며 지금 이 순간 가슴에서 떠나보내려는 참이다. 아비로서 울컥하는 마음이 샘솟지 않을 리가 없다.

다만 오늘은 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날일 테니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 또한 아비 된 자의 심정일지니.

레이아는 그란데 공작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다행히 눈물 자국 번진 화장으로 식을 치르는 것만큼은 간신히 면했다.

더하여 적절한 타이밍에 드골이 운을 띄우며 식을 개시했다.

“흠흠, 황송하오나, 저 드골이 두 분의 백년가약을 주례하겠습니다.”

드골의 매끄러운 주도하에 결혼식 축사와 축가, 인연이 오래가길 기리는 축복의 의식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제 남은 건 두 사람의 맹세뿐이었다.

루크는 레이아의 손에서 흠집투성이의 약혼반지를 빼내었고, 대신 새로 준비한 결혼반지를 끼워 주었다. 그러면서 황제가 되며 새롭게 정립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읊었다.

“나 빌로스 벤 루크는 평생 그대를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

레이아 또한 식을 올리면서 바뀐 성씨를 거론하며 맹세를 읊었다.

“저 빌로스 벤 레이아 또한 평생 폐하를 위해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다.”

백년가약의 맹세가 끝남과 동시에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축하의 의미를 담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길게 이어졌고, 오늘을 위해 뻥 뚫어 놓은 천장 위로 파이와 삼색제비 무리가 꼬리 끈을 단 채로 유려하게 날며 대미를 장식했다.

* * *

수십 년 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처럼, 영원히 살 것만 같았던 루크에게도 끝이 찾아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빌로스 제국을 다스리며 대륙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전 대륙에 걸친 사상 최대 규모의 태평성대를 이루어 내는 데 성공한 루크였다.

자식 농사 또한 훌륭하게 일구어낸 터라 슬하에 다섯 자식을 두었음에도 불화 없이 매끄럽게 후계자를 정하는 데 성공했다.

모름지기 정점에 오른 자, 박수 칠 때 떠나는 게 아름답다 하였다.

고로 60세까지만 현역으로 지내다가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남은 20년 동안은 레이아와 함께 조용한 노후를 보냈다.

프레이아 지방의 한적한 숲 속에서 80세의 나이로 별세했을 때, 루크의 별세 소식을 들은 제국의 모든 백성은 기꺼이 상복을 입고서 사흘간 곡소리를 내었다.

그렇다고 마냥 울기만 하는 장례식이 아닌, 문객끼리 간간이 추억을 떠올리며 소탈하게 웃기도 하는 온화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장례식에선 죽은 이의 인품이 나타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루크의 일생은 그야말로 후회 한 점 없는 인생이었다고 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루크는 죽기 직전에 가서야 세 권의 서적을 불태웠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세 권의 서적을 바탕으로 수련과 연구를 거듭했다는 걸 아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 *

마계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카니발 지역.

대지는 적토로 이루어져 있어 시뻘건 벌판이 펼쳐져 있고, 하늘엔 365일 1년 내내 잿빛 구름이 끼어 있는 우울한 땅이다.

푸석푸석한 적토와 말라비틀어진 가시덤불만이 가득한 벌판 한가운데에 검은 오오라가 일렁였다.

검은 오오라는 점점 더 크게 불어나더니 사람의 실루엣을 이루었다.

이내 곧 검은 오오라의 일부가 흘러내리면서 탈색을 한 듯 흰색 머리카락에 준수한 외모를 지닌 젊은 청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청년의 몸을 타고 흐르던 검은 오오라는 갑옷의 형태를 갖추며 청년의 몸을 감싸는 단단한 흑갑이 되었다.

청년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몇 번 쓸어내리고선 만족스러워했다.

“확실히 젊은 몸이 좋긴 좋아.”

데스나이트로 환생한 자는 다름 아닌 루크였다.

원래 데스나이트로서 마계에 환생하려면 상급 마족과 주종 관계를 맺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루크는 오랜 기간 수련과 연구를 거듭한 끝에 단독으로 데스나이트로서 마계에 현현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기나긴 시간 동안 마계에서의 환생을 계획한 목적은 단 하나뿐이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한 사람이자 마물인 상태로 죽은 탓에 사망 후에 마족의 수하로서 환생한 그녀를 되찾기 위해서.

오직 그것 하나만을 위해 데스나이트로서 현현한 것이다.

루크는 마계 어딘가에 있을 엘리나를 찾기 위한 첫걸음을 떼었다.

“자, 그럼 세 번째 인생을 즐기러 가 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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