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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200화 (에필로그) (200/200)

# 200

200화 에필로그

마계는 오랫동안 마왕 자리가 공석으로 비워져 있었다.

공석인 마왕 자리를 두고 고위 마족 7명이 세력다툼을 하고 있었으며 마왕 후보인 고위 마족 7명을 두고 ‘마계 7석’이라 불렀다.

이들 마계 7석 사이의 균형은 지난 수십 년간 깨진 적이 없었다. 먼저 움직이는 쪽이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년 전, 오랫동안 이어져 온 균형이 깨졌다.

마계 7석 중 한 명인 페고르의 영역 내부에서 내분이 일어난 것이다.

페고르로 말할 것 같으면 마계 7석 중에서도 무력으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페고르와 대적한 자는 놀랍게도 인간계 출신의 한 마물이었다.

검은 날개를 지닌 여인은 자신을 따르는 소수 정예의 부대를 이끌고서 수만의 페고르 군과 맞붙었다.

모두가 이 싸움을 두고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

고작 수천으로 수만을 대적한다? 머릿수만 모자라면 모를까, 우두머리의 수준에 있어서도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게 페고르는 순혈 마족이다. 마계에서 태어난 마족과 마족과의 계약으로 마계에 온 인간계 출신의 마물은 격이 다르다.

인간계 출신의 마물은 마족들의 노예.

마계의 상식이자 마땅히 이행되어야 할 이치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가끔가다가 상식을 뒤집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가 태어나기도 하는 법이다.

페고르 군과 엘리나 군의 전투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엘리나 군의 압승으로 끝났다.

* * *

히이잉! 히이잉!

머리 두 개 달린 쌍두마가 번갈아 울부짖으며 계곡을 질주했다.

계곡을 달리고 있는 쌍두마는 한 필이 아니었다. 수백 필에 달하는 쌍두마가 각각 제 주인을 태우고서 바쁘게 다리를 움직이는 중이었다.

쌍두마 부대를 이끌고 있는 자는 다름 아닌 엘리나였다.

그녀는 연이은 전투로 지친 몸을 회복하고자 최대한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

“쓰읍, 하아~”

압도적인 전력 차를 뒤집기 위해선 다소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많은 부담을 떠안은 탓에 무척 지쳐 있었다.

아무리 소멸의 기운이 상성 불문하고 압도적인 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용하는 사람이 지쳐 있으면 100퍼센트 힘을 발하기 힘들기 마련이다.

사흘 밤낮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적을 섬멸했는데 지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한눈에도 지쳐 보이는 엘리나의 모습에 옆에서 나란히 말을 몰던 한 언데드가 입을 열었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페이스를 늦추는 게 어때?”

엘리나의 측면에서 말을 몰고 있는 자는 놀랍게도 쟈칼이었다.

데메그리 교에서 마족과의 계약을 통해 끌어다 쓴 마기, 그리고 마물화나 언데드화에 필요한 모든 마기 회로는 페고르와의 계약을 통해 제공받은 것이다.

때문에 데메그리 교에서 생성한 마물과 언데드는 인간계에서 죽을 경우 마계에서 페고르의 부하로 환생하게 된다.

엘리나도 쟈칼도 원래는 페고르의 부하였었다.

그러나 페고르의 부하로서 평생 살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생전에 이루지 못한 대륙 개혁의 꿈을 마계에서나마 펼쳐 보고자 수십 년간 준비해 온 끝에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휴식을 권하는 쟈칼의 말에 엘리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 페고르를 죽이지 못하면 놈은 다른 세력의 영역으로 넘어가서 뒷일을 도모할 거야. 이번에 확실히 족쳐야 해.”

“다른 세력의 영역으로 가면 그쪽 세력 녀석들이 페고르를 처리하지 않을까? 놈들에게 있어선 마왕 후보 한 명을 처단할 기회잖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게 흘러가 준다면 편하기야 하겠지. 근데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거든?”

“무슨 의미야?”

“세네르와 페고르 사이에 밀약이 오갔다는 정보가 들어왔어. 페고르가 세네르의 부하로 들어가는 대신 우릴 치기 위한 병력을 내주기로 했다나 봐.”

“참 나, 웃긴 놈이네. 어차피 굴욕을 당할 거면 항복하고 이쪽 부하로나 들어올 것이지.”

“꼴에 고귀한 순혈 마족이라는 거지.”

인간계 출신의 마물에게 고개를 숙일 바엔 수십 년간 척을 진 원수라도 순혈 마족에게 고개를 숙이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출신을 따지는 건 인간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다.

한창 이동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가고일 한 마리가 고도를 낮추며 다가왔다.

“엘리나 님! 매복입니다! 능선 너머에서 세네르 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마계 7석끼리 합류하기 전에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한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저쪽에서 먼저 선수를 친 것 같다.

페고르 군과의 기나긴 전투로 지친 엘리나 군이 쌩쌩한 상태의 세네르 군까지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자칫 잘못하면 포위당하여 전멸당할지도 모른다.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엘리나는 일절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세네르 본인도 참전했는지 확인했고?”

“네! 아무래도 페고르가 패잔병들을 이끌고 후퇴하면서 미끼 역할을 자처했던 것 같습니다!”

“페고르를 추격하는 건 여기서 중단하겠어. 능선 쪽으로 방향을 틀 테니 후발대에 그리 전해둬.”

“네? 세네르 군과 전투를 벌일 생각이십니까? 그랬다간…….”

“여기서 물러나 봤자 꼬리를 물려서 피해만 가중될 뿐이야. 그럴 바엔 차라리 정면으로 맞붙는 게 승산이 높아.”

쌍두마를 타며 호흡을 고른 덕에 조금이나마 체력을 회복했다. 체력 회복을 위해 일부러 자신의 날개로 나는 게 아닌, 쌍두마를 타고 이동한 것이니 당초의 목적은 이룬 셈이다.

가고일은 엘리나의 명을 받들며 후발대로 따라오는 하급 마족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떠났다.

가고일이 떠난 후 쟈칼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우려를 드러냈다.

“능선에서 싸우면 위에서 내려오는 저쪽이 더 유리한 거 아냐?”

“그 부분을 노릴 거야. 우리가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로 돌격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하겠지. 한순간만 당황해 주면 돼.”

“한순간만 당황해 준다면? 그 뒤는?”

“속전속결로 세네르를 족치는 거지.”

시원하다 못해 호쾌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이래서야 고민하는 쪽이 바보 같지 않은가.

쟈칼은 못 말리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단순명쾌해서 좋군. 어차피 네가 일으킨 군대야. 네가 그리 판단했다면 우린 전력으로 네 판단을 믿고 지원하겠어.”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알게 되고, 많이 성장했는걸?”

“애송이 취급은 관둬. 너보다 100년은 넘게 더 살았었다고.”

“그래도 마계 생활은 내가 더 선배지.”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살아 있을 적에 네게 신세를 지기도 했고.”

“신세? 부려 먹은 거 외에 챙겨 준 게 있었나?”

“아니, 그냥 해 본 말이야. 신경 쓸 거 없어.”

엘리나가 남기고 간 말을 떠올린 덕분에 과거에 사로잡혀 있던 자신을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던 쟈칼이다.

반드시 남다른 경험을 해야만 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무심코 흘리고 간 말 한마디를 계기로 바뀌게 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쟈칼에게 있어선 엘리나가 남기고 갔던 말이 그에 속했고, 마계에선 엘리나의 부하라는 포지션을 자신의 배역 삼아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계곡을 빠져나온 엘리나의 부대는 산기슭으로 들어갔다.

무성히 자라난 나무 사이를 주파하여 달리던 중 능선까지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서 누군가가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엘리나는 경각심을 드세우며 고삐를 손에서 놓았다.

“쳇, 벌써 산기슭까지 도착했다니. 생각보다 빠른걸.”

필시 적의 선봉일 거라 여겨 단숨에 처리하고자 속공을 취했다. 가장 먼저 쌍두마의 등을 발판 삼아 뛰어올랐고, 몸이 허공에 뜸과 동시에 날개를 펼쳐 저공비행을 강행했다.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적은 흑갑을 입고 있는 데스나이트였다.

칠흑같이 짙은 색감을 띤 흑색 갑옷. 얼굴 아랫부분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가려주는 마스크 헬름, 허리춤의 장도까지.

풍기는 기세로 추측건대 상당한 실력자인 것 같다.

데스나이트는 엘리나가 전신에 소멸의 기운을 두르며 접근하고 있는데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제자리를 고수했다.

심지어 검을 뽑으려는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데스나이트의 무저항은 엘리나로 하여금 의문을 품게 하였다.

‘왜 검을 뽑지 않지? 설마 적이 아닌 건가? 아냐, 저 모습마저도 함정일지도 몰라.’

마계엔 인간계에선 듣도 보도 못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많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가만히 있는 행위 자체가 능력 발동 조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마냥 방심할 순 없었다.

빠르게 거리를 좁히고 있던 도중 문득 엘리나의 시선이 데스나이트의 어깨 너머에 꽂혔다.

데스나이트의 등 뒤, 그러니까 무성히 자라난 초목 너머로 너른 능선이 펼쳐져 있었는데, 능선 가득 시체가 가득한 것이 아닌가!

엘리나는 능선에 가득 널브러져 있는 시체가 세네르 군의 것임을 눈치챘다.

‘세네르 군이 전멸했어? 잠깐 기다려 봐. 아까 가고일이 정찰 보고를 한 지 2시간도 채 안 됐어. 설마 그 짧은 시간에 혼자서 세네르 군을 쓸어버렸다는 거야?’

아무리 둘러봐도 이 근처에 데스나이트 말고 다른 이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이도 아니고 무려 마계 7석에 해당하는 마족이다. 거기다 세네르만 있는 게 아니었잖은가.

도주 중이던 페고르가 세네르와 합류했고, 세네르가 데려온 마족과 마물, 언데드까지 모두 합치면 그 숫자가 가히 적지 않다.

그 많은 대군을 혼자서 쓸어버렸다고?

‘일단 적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 얼른 소멸의 기운을 거둬야…….’

저 혼자 세네르 군을 쓸어버린 데다 당장 목숨을 위협하는 살벌한 돌진에도 반격할 기미가 안 보인다.

따로 용건이 있어 이와 같은 일을 벌인 것이 틀림없다. 해를 끼치려는 건 아닌 듯하니 최소한 이야기라도 들어 보려고 한다.

엘리나는 간신히 소멸의 기운을 거두는 데 성공했으나, 기운을 거두기 급급한 나머지 감속하지 못하고 데스나이트와 부딪치고 말았다.

쿵!

제법 세게 부딪친 것 같은데도 의외로 충격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에 데스나이트가 엘리나의 몸을 받아 내며 가뿐하게 한 바퀴 빙글 돌았다.

능숙하게 감속을 이루어 낸 데스나이트는 엘리나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늘진 마스크 헬름 아래로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한순간 엘리나의 눈에 데스나이트와 한 사내가 겹쳐 보였다.

그럴 리가 없다.

그 사람이 여기 있을 리가 없잖은가.

머리는 부정하는데 가슴은 이미 데스나이트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데스나이트의 첫 마디가 그녀의 짐작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못 다한 걸 마저 하려고 왔어.”

엘리나는 손으로 마스크 헬름의 마스크 부분을 젖혔다. 그늘진 투구 안에선 오래전에 포기했던 남자가 환히 웃고 있었다.

자신을 만나러 마계까지 쫓아왔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냥 잊어버리지 그랬어요.”

“그럴 수 없다는 거 알잖아?”

“정말… 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못다한 것부터 마저 하면 되지 않을까?”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구 신성제국 남부요새에서 결국은 닿지 않은 채로 닫혀 버린 관계가, 수십 년이 지난 현재, 마계의 한복판에서 재개되었다.

닿지 않은 채로 끝난 과거를 새로 쓰듯.

이번에는 확실히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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