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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3화 (3/139)

3화

“어, 어떻게…….”

세르폰의 동공이 흔들렸다.

내가 방금 처음으로 본 굴단 검식을 완벽하게 펼친 것이, 어지간히도 놀라운 모양이다.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당황과 의심이 섞인 목소리.

그야 세르폰의 입장에서 내가 보여준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한 번 눈으로 봤을 뿐인 검술을 기억하는 것에 더불어, 그걸 똑같이 펼치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

전생을 기억하는 나밖에 할 수 없는 기행이었다.

“혹시, 이전부터 검술을 수련하신 겁니까?”

그렇기에 세르폰이 이런 의심을 품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자신의 상식을 파괴하는 재능이 존재한다는 것보다, 내가 유아동에서 남들 몰래 검술을 배웠다는 게 더 현실적인 일이니까.

“아뇨. 검을 잡아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허나 난 세르폰의 추측을 부정했다.

가문의 전통을 가주의 허락도 없이 깨트린다니. 내가 이걸 조금이라도 긍정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당장이라도 가주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질 거다.

‘불호령으로 끝나면 다행이지. 최소 근신, 최악이면 그대로 연금이라도 당할 걸?’

물론 내 몸에 리텐슈노프의 피가 흐르는 이상 평생 가둬둘 리는 없겠지만, 연금 당하는 동안은 철저하게 내 행동을 감시당할 거다. 그랬다간 가문을 꿀꺽 삼키려는 내 꿈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겠지.

“그럼, 대체 어떻게…….”

“그냥 되던데요?”

“예?”

세르폰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방금 본 걸 기억 못 할 리가 없잖습니까? 기억대로 따라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죠.”

“아니, 그게……!”

뭐라고 소리치려던 세르폰이 문득 입을 꾹 다물었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지만, 그럼에도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내가 보이는 태도에서, 더 이상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단히 뛰어난 재능이시군요. 겨우 한 번 본 것만으로 검술을 완벽하게 펼치는 건, 연습하지 않는 이상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세르폰이 의심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아마 오늘이 지나면 내 주변을 샅샅이 조사해서, 나에게 검술을 가르쳐 준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세르폰은 절대로 진실을.

내가 가진 비밀을 알 수 없을 거다.

환생이라니, 그런 걸 어떻게 상상한단 말인가?

‘그렇게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온다면, 그때는 알아서 결론을 내리게 되겠지.’

내가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가져본 적 없는 압도적인 재능의 소유자라고 말이다.

‘그럼 내 이야기가 가주에게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역사에 등장한 적 없는 재능의 출현. 이런 중요한 사항이 가주에게 전달되지 않을 리 없다.

만약 재능의 주인이 방계나 가신단의 자제라면 당장 위험 분자 취급을 받고 숙청당했겠지만, 다행히 나는 리텐슈노프의 혈족. 내 재능은 가문의 힘이 된다.

‘당연히 관심을 줄 수밖에 없겠지.’

내가 리텐슈노프 가를 차지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내 경쟁자는 사촌 형제들 따위가 아니다.

현재 가문의 전면에 나선 차기 후계자들.

5명의 큰아버지들이 바로 내 경쟁 상대다.

그렇기에, 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고작 나의 힘을 기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항렬을 뛰어넘어, 윗세대를 제쳐야 하는 일이다.’

나를 지지하는, 내 힘이 될 세력을 키워야 한다. 또한 현 가주의 총애를 얻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건 쉬운 일이지.’

여전히 찝찝한 표정을 한 세르폰을 바라보며 난 입꼬리를 비뚜름히 올렸다. 마그너스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그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난, 다 알고 있으니까.

* * * * *

수련은 흐지부지 끝났다.

세르폰은 내가 그 뒤로 세 번 정도 더 굴단 검식을 펼쳐 보이자 급한 일이 있다는 둥 말을 얼버무리며 급하게 수련동을 떠나갔기 때문이다.

‘아직 미숙하네.’

난 떠나가는 세르폰을 바라보며 눈을 찌푸렸다.

그야, 무슨 생각인지 이해할 수는 있었다. 멋대로 전통을 깼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었으니, 당장 위에 보고를 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세르폰은 내 전속 수호 기사다.

나를 호위해야하는 입장에서 날 두고 혼자 가버린다? 제 의무를 망각했다는 소리다.

수호 기사로서는 낙제점 밖에 줄 수 없다.

‘내가 뺨을 갈겨도 할 말이 없지.’

그럼에도 내가 세르폰을 붙잡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드디어 좀 편하네.”

세르폰이 사라지면 눈치 보지 않고 나만의 훈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르폰이 있었다면 검술은 둘째치고 마나도 쓰지 못한다. 그랬다간 진짜로 당장 가주 앞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

‘뭐, 재능 덕분이라고 얼버무릴 수야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뛰어나면 수상해보이겠지.’

세기의 천재 검술 재능이 있다고 드러낸 셈이다. 목적도 달성했으니 이 정도면 재능 자랑은 충분하다.

사실 탁 트인 수련동의 구조 상, 세르폰이 없어도 여전히 감시의 시선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나 어지간한 실력자가 아닌 이상,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으리라.

“좋아.”

나는 수련동에 굴러다니는 교관을 아무나 불러서 납 주머니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오늘 처음 수련동에 들어온 주제에 납 주머니를 달겠다는 내 모습에 교관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리텐슈노프 혈통의 분노를 사고 싶지 않았는지 그는 명령대로 납 주머니를 잔뜩 가져왔다.

교관의 도움을 받아 온 몸에 납 주머니를 가득 찼다. 역시 아무리 육체가 좋다고 해도, 겨우 여덟 살의 나이에 전신 납 주머니는 무리가 컸다.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어마어마한 무게가 온 몸을 짓눌렀다. 절로 숨이 거칠어지고 몸이 비틀거렸다.

“괘,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비키시죠.”

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힘들다. 역시 근육만 써서는 이 정도 무게를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다.

‘근육만 쓸 생각은 없지만.’

깊게 심호흡을 하며 난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뱃속 한가운데에서 미약하게 꿈틀거리는 힘이 느껴졌다.

내 몸 속에 축적된 마나의 움직임이었다.

‘그렇지! 있을 줄 알았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영약을 먹은 적도, 마나 호흡을 한 적도 없지만 난 내가 마나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추측했다. 매일 먹는 식사에서 미약하게나마 마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역시 리텐슈노프가 명가는 명가군. 마나가 뭔지도 모를 나이부터 마나를 먹여서 몸에 쌓아두게 하다니.’

물론 영약처럼 정제한 마나가 아닌 이상, 그 효율은 극히 별 볼일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마나라곤 쥐뿔도 없는 것과, 조금이라도 마나를 보유한 것은 마나를 수련할 때 크나큰 차이를 가져온다.

“후우!”

난 조심스럽게 몸 속에 있는 마나를 자극했다. 이 몸으로는 한 번도 다뤄본 적 없었지만, 역시 전생의 깨달음이 있다보니 마나를 움직이는 건 쉬웠다.

‘좋아.’

천천히 마나를 전신의 근육으로 퍼트렸다. 엄지손톱보다도 작은 양이었지만, 마나가 근육에 흡수되자마자 전신에 찬 납 주머니가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아직도 납 주머니 무게가 느껴지는 걸 보면 내 마나가 부족하긴 한 모양이야.’

어차피 상관 없다.

마나는 얼마든지 늘릴 수 있으니까.

당장 생각나는 방법만 십여 가지다. 전생에 배운 호흡법을 쓰거나, 가문에 숨겨진, 혹은 누구도 정체를 모르는 영약을 먹는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마나의 양이 아니다.

‘몸이 마나에 익숙해져야해.’

난 천천히 구보를 시작했다.

내가 전생에 7성 기사였건, 아니건. 지금의 나는 여덟 살 먹은 꼬맹이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근력 운동을 한 적이 없고, 마나를 써본 적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전생의 경험대로 마나를 운용했다간 몸이 버티지를 못할 거다. 그러니 마나라는 힘에 친숙해질 필요가 있는 거다.

“그때 재활 치료 과정을 들은 게, 이런 도움이 될 줄이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사고를 당한 기사들에게 주로 처방되는 재활 훈련법이었다. 마나의 흐름이 꼬이거나 신체 결손을 당한 기사들이 주로 이 재활 훈련법을 애용했다.

물론 내 몸뚱이는 멀쩡하지만, 지금 당장 마나에 친숙해지기에 이 훈련법만한 게 없었다.

“후욱! 후욱!”

숨이 차오르고, 점점 거칠어진다.

온 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려 옷을 흠뻑 적셨다. 아무리 마나로 근육을 강화했다고 해도 차고 있는 납 주머니의 양이 양인 만큼 온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게 좋다.

땀을 흘린다는 건, 그만큼 근육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근육에 마나가 스며들게 하는 것이 이 훈련법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저, 저게 대체 뭐지?”

“내,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건가?”

“세상에! 대체 주머니가 몇 개야?”

내 기행은 순식간에 수련동에 있는 모두의 시선을 빼앗았다.

현재 내가 마나를 썼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은 수련동에 없다.

당연히 그들 눈에는 내가 말도 안 되는 양의 납주머니를 찬 채 묵묵히 달리고 있는 걸로 보일 거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야 해.’

오늘 식당에서 체스 형제에게 무시당한 순간, 내가 내린 결론이다. 드레커 리텐슈노프는 뒷배경도 없었고, 딱히 지금까지 특출난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선 내 힘을 기르는 건 좋아도 내 세력을 키울 수는 없다. 내가 동앗줄을 던져줘도, 그게 썩은 줄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말이다.

‘세력을 키우려면…… 주목을 받아야지.’

그를 위해서 세르폰에게 능력을 드러냈고, 지금 납 주머니를 차고 달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보다 대단하고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이 가문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니까.

‘일단…….’

대충 30바퀴 정도만 뛰어볼까.

* * * * *

구보가 끝나자 점심 식사를 할 시간이 되었다.

다른 수련생들은 수련동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만, 난 유아동의 식당으로 가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수련동 식당에서 배식을 받고 싶었지만, 가문의 규칙이 그렇다는 교관의 설명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수련동 입구로 나오자 날 기다리고 있던 마리 유모가 수건을 건네주며 말했다.

“도련님, 훈련은 잘 받으셨나요? 그런데 수호 기사님이 안 보이네요. 어디 가셨나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급한 일이 생겼다고 어디론가 가버렸는걸?”

내 대답에 마리는 눈을 찌푸렸다. 허나, 그녀는 큰 소리를 내는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이 문제는 제가 처리할게요.”

그녀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

‘그러게, 누가 정신 못 차리고 살래?’

분명 된통 깨지겠지.

마리 유모뿐만 아니라, 당장 세르폰이 보고를 올리는 상사한테도 이미 작살이 나고 있지 않을까?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아니지.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난, 더 이상 명령을 받는 처지가 아니다.’

여전히 타성에 젖은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이건 내 일이다. 그것도 내 권위가 무시당한 상황.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으니 분노해야 마땅한 일이다.

순식간에 마음 속이 싸늘하게 식었다.

난 볼 안쪽의 연한 살갗을 악물었다. 톡 소리와 함께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다. 처지가, 신분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난 주인의 마음가짐을 가지지 못했다.

만약 날 두려워했다면, 내 아랫사람이라는 자각이 있었다면 세르폰은 절대 멋대로 수련동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 내게 물어보기라도 했겠지.

그건 세르폰의 잘못이되, 내 잘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더더욱…….’

확실하게 각인시켜 줘야지.

누가, 진짜 주인인지 말이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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