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그리고 놈들이 온 건 내 예상 밖의 일이었다.
‘징벌기사들이 올 줄이야.’
징벌기사단은 가주가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다. 애초에 징벌기사는 이런 시답잖은 일에 써먹으라고 존재하는 기사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놈들을 굳이 전령으로 사용했다는 건…….
‘그만큼, 내가 보여준 능력이 마그너스의 관심을 끌었다는 뜻이겠지.’
그제서야 딱딱하게 굳어있던 몸의 긴장이 풀렸다.
그래, 쫄 거 없다. 전생과는 다르게 이번 생에는 놈들에게 해코지를 당할 일이 없다.
이제 난 근본도 없는 잡종이 아닌, 리텐슈노프니까.
“알겠습니다. 안내하시죠.”
그렇기에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중년 징벌기사는 고개를 살짝 고개를 까닥이곤 앞장섰다.
나는 그들의 안내를 따라 유아동을 빠져나왔다.
저택 외부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덮여 있었다. 존재하는 빛이라고는 오직 희미한 달빛 뿐. 한치 앞도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두 기사는 조금도 해매지 않았다.
‘최소 소드마스터…… 인가?’
어둠을 꿰뚫고 사물을 구분할 수 있는 걸 보면, 최소한 소드마스터 급의 실력자라는 뜻.
‘이 정도 거물들이 움직였다는 건…….’
이미 내 주변에 대한 조사는 전부 끝났다는 소리겠지. 내가 사전에 검술을 배운 적이 있는지, 혹시라도 거짓말을 한 건 아닌지 말이다.
물론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을 거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유아동에서는 단 한 번도 검을 잡은 적이 없었거든. 굳이 트집 잡힐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그렇다면 이놈들은…… 내 호위역할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혹시라도 다른 가문이 내 재능을 위험하다 여겨, 날 치워버리려고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건 허황된 걱정이 아니다.
아무리 내가 리텐슈노프 가의 자식이고, 이곳이 리텐슈노프의 땅이라지만. 이 세상에 명가는 리텐슈노프 하나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리텐슈노프가 명가 중의 명가라고는 하지만, 비슷한 급의 가문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마도학으로는 따라올 가문이 없다는 아이스본.
리텐슈노프와 함께 무가로 명망 높은 암즈.
소환 마법의 본가 시빌라.
검술 명가 호엔슈타펠.
리텐슈노프와 함께 제국을 좌지우지하는 다섯 가문.
그들이라면 아무리 내가 리텐슈노프의 본가에 있어도 날 죽여버릴 수 있다. 심지어 아직 열 살도 먹지 않은 어린아이이니, 날 죽이는 건 닭 목을 비트는 것만큼 쉬운 일이다.
‘이 부분도 대처를 해야 하는데…….’
난 앞서 걸어가는 징벌기사를 힐끔 쳐다보았다.
가주에게 부탁해, 저들을 확실하게 내 호위로 쓸 수 있을까?
‘한 번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 * * * *
징벌기사들이 날 데려간 곳은 가문의 중앙동이었다. 중앙동에는 열 개가 넘는 거대한 저택이 존재했지만, 난 이들이 나를 어디로 안내할지 알고 있었다.
중앙동에서도 한 가운데에 있는 궁성.
리텐슈노프 령의 최심부. 가주의 저택.
철혈궁.
‘이곳을 오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
철혈궁에 발을 들여본 건, 전생을 포함해도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중 내가 주인공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다른 리텐슈노프의 혈통과 함께, 그들의 업무 보고를 돕기 위해서였다.
하나, 이번에는 다르다.
‘내 일로 이곳에 들어오게 되다니.’
이번 방문에서는, 오직 나만이 주인공이니까.
철혈궁의 정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갔다. 익숙하지만 전생과는 약간 다른 풍경의 복도를 지나, 징벌기사들은 나를 어떤 문 앞으로 안내했다.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거대한 문. 붉게 염색한 가죽과 황금으로 장식한 겉면이 돋보였다.
이 문 너머에 가주가 있다.
드디어, 리텐슈노프의 가주를 드레커의 몸으로 처음 마주할 순간이 온 것이다.
혹시 긴장되냐고?
당연히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린다. 하나, 그건 단지 긴장감 때문만은 아니다. 짜릿한 흥분에 사로잡혀, 진심으로 그와의 만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스스스!
기름칠 된 경첩이 미세한 소음을 내며 움직였다.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며, 그 틈 사이로 실내의 전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건 벽면을 꽉 채운 널찍한 채광창이었다. 양 측면에는 풍성하게 정리된 붉은 커튼이 달려있는 채광창 앞에는 흑단목을 깎아 만든 고풍스러운 책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난 성큼 실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책 내음이 풍겨왔다. 그 사이에, 희미하게 섞인 연초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쿠웅!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곧바로 문이 닫혔다. 무심코 등 뒤를 돌아보는 순간, 앞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레커 리텐슈노프.”
난 다시금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였다.
형형한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는 백발의 노인이. 분명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안광만으로 온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분명 힘을 갈무리해 두었겠지만 그럼에도 어마어마한 기세가 느껴졌다.
검제劍帝 마그너스 리텐슈노프.
검을 손에 쥐고 살아가는 사람 중 하늘 아래 당신보다 더 높은 경지를 걷는 자가 없다 생각해, 스스로에게 제왕이라는 칭호를 붙인 자.
리텐슈노프 가의 단 하나뿐인 가주이자.
이제는 나의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이다.
“가주님을 뵈옵니다.”
난 곧바로 한 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바닥에 누군가 엎드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옷차림을 보니 수호 기사였다.
‘아주 반 병신을 만들어 놨군.’
얼굴은 퉁퉁 부어 알아볼 수 없었지만, 난 직감적으로 저게 세르폰이라는 사실을 눈치 챘다.
“가주님, 이라…….”
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뭔가 묘하게 떨떠름한 마그너스의 얼굴이 보였다. 왜 저런 표정을 하고 있지?
내가 그 얼굴에 의아해 할 새도 없이, 마그너스는 곧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가주님이지. 가주님이고 말고. 그래, 란체스를 두들겨 팼다고 들었다.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왜 그랬느냐?”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아무래도 싸움을 원하는 것 같았기에, 싸웠을 뿐입니다. 란체스 형이 두들겨 맞은 건 본인이 저보다 약했기 때문이고요.”
뻔뻔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게 리텐슈노프 가의 일원으로서 가장 합당한 대답이기도 했다. 약한 건 죄악이고, 강자에게 덤비는 건 멍청한 짓이다.
란체스는 내가 자신보다 강한 줄 몰랐기에 시비를 걸었겠지만, 패배한 이상 모든 건 란체스의 잘못이다.
내 대답에 마그너스는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건 란체스의 잘못이 맞다. 그래서 란체스 녀석은 너에게 복수하겠다 맹세했다더구나. 어린 동생한테 얻어맞고서야, 형으로서 면이 서질 않겠지.”
그럴 법하다. 란체스도 리텐슈노프의 혈통인 만큼, 당한 만큼 되돌려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하나.
“복수 따위, 해볼 태면 해보라지요. 란체스 형의 힘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겠지만요.”
난 당당하게 대답했다.
내 대답에 마그너스는 눈을 치켜떴다. 그러더니 곧 슬그머니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야, 지금 형의 실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를 뛰어넘을 수 없으니까요.”
내 대답에 마그너스는 곧장 눈을 찌푸렸다. 곧이어 나를 꾸짖는 듯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뼈를 깎는 각오로 노력을 한다면 널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자만하는 것이냐?”
난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미 내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확인 했을 텐데, 이런 질문을 하다니.
하지만 그런 티를 낼 수는 없는 법.
난 신중히 내뱉을 말을 골랐다.
“……제 수호 기사가 그러더군요. 제 재능이 대단히 뛰어나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판단하기를, 란체스 형이 저만큼의 재능을 가졌을 거 같진 않고요.”
“재능이 뛰어나도 노력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제가 노력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
마그너스는 지그시 나를 노려보았다. 대답은 없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고요가 실내를 꽉 채웠다. 난 마른침을 삼켰다.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리가.”
씨익. 노인의 입꼬리가 쭉 찢어졌다.
“노력하지 않을 리가 없지. 재능이 흘러넘치는 사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성취를 보이는 법이니까. 노력의 결과물이 눈앞에 보이는데, 성장하는 재미를 느끼지 않을 리가 없잖느냐?”
내 대답이 대단히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마그너스를 보며 난 씁쓸하게 웃었다.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이 노력하는 범재가 노력하지 않는 천재를 뛰어넘는다고 하지만, 애초에 천재가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틀렸지. 천재는 조금만 해도 성취가 보이는데, 왜 노력하지 않겠나?’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내 조부님이 자주 하셨다더군.’
내 옛 주인이, 무심코 던진 말.
그 이야기 덕분에 마그너스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걸 좋아하는 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인간은 쓸모가 다하자 나를 헌신짝처럼 내버렸지만, 그 덕분에 지금 가주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좋은 대답이었다. 아무래도 너는 네 아비와는 격이 다른 것 같구나. 역시, 돌연변이가 나올 수는 있어도 피 자체는 흐려지지 않는 법이지.”
“…….”
“그럼, 이제…….”
마그너스는 고개를 돌려 바닥에 엎드려 있는 세르폰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방금 전까지 만족스러워하던 기색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네 수호 기사 건을 처리해야겠지.”
싸늘하다 못해 얼어붙을 것 같은 시선이었다. 사냥감을 바라보는 포식자의 눈이 저런 빛을 띄지 않을까? 그 시선에 엎드려 있던 세르폰이 파르르 떨었다.
“……어떤 처분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세르폰이 조용히 대답했다.
공포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와는 별개로,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젠장.’
난 입술을 씹었다. 대충 세르폰에게 어떤 처분이 내려질지 예상이 갔다. 그럼에도 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그너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가주님, 어떤 처분을 내리실 겁니까?”
“보고를 듣고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그너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순식간에 그의 존재감이 터져나왔다. 묵직한 압력이 느껴졌다.
“호위 대상을 두고 떠나는 수호 기사라니. 드레커, 네가 생각해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아니냐?”
“그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마그너스는 책상 서랍에서 단검 한 자루를 꺼냈다.
“의무를 저버린 기사에게 내릴 처벌은 하나뿐이지.”
단검을 본 순간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빌어먹을 노인네가 세르폰에게 뭘 시킬지 깨달았으니까.
마그너스는 세르폰을 향해 단검을 던졌다. 정확히 그의 머리맡에 내리꽂힌 단검이 청아한 소리를 내며 파르르 떨렸다.
흠칫 놀라는 세르폰에게 마그너스가 물었다.
“오른손잡이인가? 하긴, 상관 없겠군. 어차피 양손 다 자르면 될 일이니.”
이럴 줄 알았다. 난 얼굴을 찡그렸다.
그야 세르폰이 저지른 짓은 저런 처벌을 받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럼 미래의 히드라 슬레이어가 될 인재를 잃게 되는 나는 무슨 죄인가?
“가주님!”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난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세르폰은 누구의 기사입니까?”
“그야……. 네 기사지. 물론, 하는 짓을 보면 과연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난 심호흡을 했다. 이 대답을 마그너스가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세르폰을 내 사람으로 써먹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세르폰의 처분은 가주님이 아니라 제가 내려야 하는 게 아닙니까?”
내 당돌한 대답에, 마그너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