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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6화 (6/139)

6화

“처분을 네가 내려야 한다고?”

마그너스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그렇게 판단했느냐?”

입가에 호선을 그린 마그너스가 다시금 물었다. 허나, 난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거슬리는 대답을 하는 순간 저 미소는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이 분기점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검제를 만족시켜 호감을 살 수 있는 기회였다.

난 꿀꺽 침을 삼켰다.

‘내가 아는 검제라면…….’

마그너스는 리텐슈노프 가의 혈통이 비굴하게 구는 걸 절대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이럴 때,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자신 넘치게,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그가 제 기사라면, 처벌할 권리도 저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까? 가주님께서 그에게 처분을 내리시는 건 저를 존중하지 않는 처사입니다.”

내가 뻔뻔할 정도로 대담하게 대꾸하자, 마그너스가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다.

“오호! 검술에만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 세치 혀를 놀리는 재주도 꽤 쓸만하구나!”

성공인가?

“그렇지만,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 순간 마그너스가 책상을 쾅 내려쳤다.

“저놈은 리텐슈노프 가의 기사다. 저놈에게 벌을 내리는 건 가주의 권한이라는 말이다. 혹시나 하는 물음이지만, 드레커야. 가주의 명령을 거역할 셈이냐?”

휘청. 순간적으로 몸의 긴장이 풀려 넘어질 뻔 했다. 마그너스가 날 노려보았다. 엄청난 기백.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나는 입술을 씹었다.

‘젠장, 장난이 아니잖아.’

역시 검제라는 이름은 허명이 아니었다.

분명 진심으로 투기를 드러낸 것도 아니거늘, 위압감이 무시무시했다. 덕분에 나는 겁먹은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다.

내 속마음을 눈치챘을까?

아직 별 말이 없는 걸 보면 들킨 것 같지는 않았다.

“……가주님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허나, 그가 제 기사라면 처벌할 권리도 저에게 있는 게 아닙니까?”

“저 녀석은 네 기사이기 이전에 리텐슈노프 가의 기사다.”

그래, 이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몇 걸음 앞으로 나섰다. 엎드려 있는 세르폰을 지나쳐, 그 앞에 섰다. 그러자 마치 내가 세르폰을 보호하려는 모양세가 되었다.

내 행동을 본 마그너스의 눈이 빛났다.

난 마그너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세르폰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오히려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마그너스가 눈을 찌푸렸다.

“칭찬이라…… 어째서 그렇느냐?”

“세르폰이 만약 가문의 기사라는 신분을 더욱 우선시한다면, 제 재능을 확인한 순간 가주님께 보고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는 행동입니다.”

난 힐끔 세르폰에게 시선을 던졌다.

“물론 가주님께서 저를 호위하라고 명령한 것이 먼저이지만, 그보다 제 재능이 가진 가치를 높게 쳤다는 뜻이겠죠. 그렇기에 그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이 사건은 세르폰이 아직 부족하고 경험이 짧았기에 벌어진 실수다. 내가 이 몸에 빙의해서 재능을 드러냈기에, 벌어진 나비효과라는 거다.

내가 없었다면 이번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고, 세르폰은 경험을 쌓아 원숙한 기사가 되었을 것이다.

‘히드라 슬레이어를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로 잃을 수는 없지.’

물론 계산이 서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지금 내가 세르폰을 구해주면 그는 나에게 은혜를 입은 셈이 되고, 내 사람으로 만드는 일도 쉬울 거라는 계산 말이다.

“세르폰에게 죄가 있으려면, 그에게 처벌을 내릴 사람도 제가 됩니다. 그렇기에 가주님께서 처벌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모든 건 마그너스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만약 내가 한 말을 개소리 취급해버린다면 말짱 황이 되어버린다. 세르폰이라는 카드도 잃고, 마그너스에게 겁 없이 대든 놈이 되는 거다.

하지만, 난 확신할 수 있었다. 마그너스는 내 대답을 퍽 마음에 들어했을 거라고 말이다.

그 증거로, 마그너스의 얼굴에는 터질 듯 말 듯한 기쁨의 미소가 은은히 감돌고 있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곧 그 미소는 사라졌다. 마그너스는 고개를 돌려 여전히 엎드려있는 세르폰을 노려보았다.

“그렇다면 물어봐야겠지. 이 놈이 상을 받아야 할지, 아니면 벌을 받아야 할지 말이다.”

난 재빨리 세르폰을 쳐다보았다.

세르폰은 여전히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하나 그는 더 이상 떨고 있지 않았다. 곧 세르폰이 입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레커 도련님, 수호 기사의 신분으로 제 임무를 망각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도련님께서 어떤 처분을 내리셔도 달게 받겠습니다.”

“……!”

히드라 슬레이어가, 날 주인으로 인정했다.

그 사실에 내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난 재빨리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 대신 얼굴을 굳히고 마그너스를 돌아보았다.

내 시선에 마그너스가 씩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결정했다면…… 나는 제 사람 하나도 똑바로 다루지 못하는 우리 손주님께 벌을 줘야겠군?”

“…….”

마그너스는 천천히 책상에서 몸을 일으켜 집무실 한쪽 벽을 꽉 채운 책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책장에서 한 권의 책을 뽑아든 마그너스는 나에게 다가왔다.

“받거라.”

그리고는 그 책을 나에게 내밀었다.

낡은 가죽으로 제본된 책은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무슨 책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것은……?”

“네가 너에게 내리는 벌이다.”

벌이라, 그게 무슨 소리지?

나는 의아한 눈으로 마그너스를 올려다보았다.

“아까 널 여기까지 데리고 온 기사를 기억하느냐?”

징벌기사를 말하는 건가?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그너스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치들은 우리 가문을 위해 뒤에서 암약하는 자들이다. 맡는 임무는 하나하나가 생사를 오갈 정도로 위험하지. 그만큼 실력 하나는 최고지만 말이다.”

그야, 당연히 뛰어날 수밖에 없다.

징벌 기사단이 맡는 임무는 죄다 실전이고, 위험한 강자들을 암살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조금이라도 도태되는 순간 목이 날아가는 조직.

당연히 최고의 실력자만이 남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이 책이랑 무슨 상관이지? 고개를 갸웃거리자, 마그너스는 씩 웃으며 내게 책을 쥐어주었다.

“이 책은 그 녀석들이 익히는 검술서다.”

그 말에 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블러드하운드 27식의 검술서이라고?’

난 화들짝 놀라 곧장 책을 펼쳐보았다. 그런 내 모습이 흡족한 듯 마그너스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 벌이라는 말은 들리지도 않는 거냐?”

“죄,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는 바람에 행동이 흐트러진 모양이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마그너스는 손을 휘저었다.

“되었다. 강함에 대한 욕망은 죄가 아니니까. 한 달의 시간을 주겠다. 이 검술을 조금의 실수 없이 완벽히 익히거라. 네 재능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다시금 란체스와 결투를 하거라. 물론 이번에는 검술로 말이다.”

그 말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장 지금도 란체스와 겨루면 두들겨 패 눕힐 수 있는데, 블러드하운드 27식까지 배우면 아마 상대도 안 될 것이다.

그런 결투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지?

‘혹시 내가 그 시간 동안 블러드하운드 27식을 얼마나 익혔는지 확인하려는 걸까?’

하나 그건 벌이라는 명목에 쳐줄 수도 없다.

“물론 쉽지는 않을 거다.”

그런 내 의문은 곧 풀렸다. 마그너스가, 짓궂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그 이유를 말했기 때문이다.

“네가 그 검술을 배우는 한 달 동안, 내가 직접 란체스 놈을 키워놓을 것이거든.”

“네?”

순간 당황한 나머지 큰 목소리가 나왔다.

마그너스는 내 반응을 살피더니 짐짓 웃었다.

“혹시 이길 자신이 없느냐?”

“…….”

나는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없냐고?

그럴 리가!

‘……너무 쉽잖아?’

당장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7성 기사였던 나다. 아무리 마그너스가 직접 가르쳐봐야, 녀석은 절대 내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심지어 지금은 블러드하운드 27식까지 얻지 않았나?

리텐슈노프 가의 징벌자들이 휘두르는 검식이다. 당연히 내가 전생에 배웠던 어떤 검식과 비교하더라도, 차원이 다를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걸 손에 넣었는데, 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마그너스를 올려다보았다. 마그너스는 얄궂은 웃음을 지은 채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슬쩍 내 표정을 살피는 것 같기도 했다.

‘분명 즐기고 있네.’

아마도 마그너스는, 자신이 란체스를 가르치겠다는 말에 내가 당황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나야 고맙지.’

어떻게든지 마그너스의 눈에 들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회가 이렇게 쉽게, 그것도 제 발로 알아서 찾아올 줄이야?

허나, 그런 내 속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난 애써 웃음을 참아냈다. 그리고는 최대한 당황한 얼굴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여보였다. 마치 내가 감당하기 힘든 임무를 명령받은 것처럼 말이다.

“……알겠습니다.”

“음, 열심히 잘 해보거라.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실망이라…….’

실망시킬 리가 있나?

오히려 내가 보이는 성과에 깜짝 놀라지나 말았으면 한다.

* * * * *

드레커가 돌아간 뒤, 한 중년 사내가 마그너스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내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마그너스에게 슬쩍 고개를 숙였다.

“주군.”

그 목소리에 마그너스가 고개를 돌렸다. 입에 물고 있던 연초를 책상 위 재떨이에 비벼 끈 마그너스는 입 속에 남은 연기를 뿜어내며 물었다.

“왔나? 오래 걸렸구만. 그래, 녀석은 뭐라던가?”

사내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꽤…… 분노하고 있더군요. 무어, 란체스 도련님의 코뼈가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으니 이해는 합니다만. 그래도 주군께서 지켜보시는 만큼, 갈라할 님께서 섣불리 드레커 도련님께 손을 대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겠지, 그럼 치료는 어떻게 되었나?”

“갈라할 님께서 아이스본에 전갈을 보냈습니다. 아마도 내일 아침 무렵에 치료사가 도착할 것 같군요.”

마그너스는 그제서야 쯧, 하고 혀를 찼다.

곧 마뜩찮은 목소리가 집무실 안에 울려퍼졌다.

“제 수준도 파악 못 하고 덤빈 머저리한테 치료사라니, 내 자식놈이지만 참 한심한 새끼야. 하긴, 그러니까 그런 놈이 손자랍시고 튀어나왔겠지.”

마그너스의 눈에 분노가 감돌았다.

란체스의 실력이 허접한 것도 마음에 안 들지만, 차라리 허접하기만 했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문제는, 란체스가 제 부모의 힘을 빌려서라도 드레커에게 복수하겠다고 맹세했다는 게 문제다.

그런 한심한 놈이 리텐슈노프라니!

그런 점에서 드레커는 마그너스의 마음에 꼭 들었다. 나름대로 제 사람도 챙길 줄 알고, 머리도 꽤 돌아가는 게 똘똘하다.

거기에 이제 겨우 나이가 여덟 살인데, 벌써부터 눈에 독기가 가득한 것도 좋았다. 꼭 몇십 년은 사선을 걸어 본 장년의 사내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부차적인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재능이야.”

압도적인 재능!

아무리 드레커가 제 형을 두들겨 패버리고, 수호 기사가 대형 사고를 쳤다고 해도, 굳이 마그너스가 직접 드레커를 마주할 필요는 없었다.

오직 재능.

드레커가 가졌다는 그 재능 때문에 마그너스는 드레커를 불렀던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마그너스가 다시금 사내에게 물었다. 딱히 주어도 맥락도 없었지만, 사내는 곧장 마그너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직은 지켜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능을 가졌다는 것만 알지, 그 깊이는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 일거리를 던져 주었네.”

“일거리…… 말씀이십니까?”

“블러드하운드 27식의 검술서를 주었네. 앞으로 한 달 동안 그것을 익혀서, 똑같이 한 달을 내게 배운 란체스와 다시 결투를 하라고 말했지.”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마그너스가 직접 가르친다고 하지만, 란체스의 재능은 그가 보기에도 영 꽝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블러드하운드 27식을 손에 넣은 드레커를 이길 리가 없었다.

“란체스 도련님을 그렇게까지 부술 필요가 있습니까? 아무리 못난 모습을 보였다지만…….”

“무슨 소리인가?”

마그너스가 눈을 찌푸리자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마그너스의 머릿속에 란체스는 들어있지도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직 드레커의 실력을 확인하겠다는 마음가짐 뿐. 마그너스에게 있어서 란체스는 그 확인을 위한 한낱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음, 드레커 녀석에게 개인 훈련실을 하나 배정해 주게.”

사내는 고개를 들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면 가문의 전통을 깨트리게 됩니다만,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물론 당연히 한정적인 처사야. 블러드하운드 27식의 성취에 따라서 유지할지 말지가 정해지겠지.”

아자르는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자신은 따르기만 하면 된다. 판단은 오직 주군, 마그너스가 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그너스는 다시금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 멀리, 유아동으로 돌아가는 손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문득, 생각난 듯 마그너스가 말했다.

“헌데……. 내가 란체스를 가르쳐 결투를 다시 시키겠다니까, 분명 녀석이 웃었던 것 같단 말이지.”

아자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착각이 아닐까요? 웃음이 나올 상황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만.”

“아냐, 분명 웃고 있었어.”

떠너가는 손자를 바라보던 마그너스가 고개를 돌렸다. 마그너스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대체 왜 웃었을까, 자네도 궁금하지 않나?”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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