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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8화 (8/139)

8화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던 세르폰과의 대련은, 내가 탈진 증상으로 쓰러지면서 끝이 났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는데도 대련에 집중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허억! 허억!”

바닥에 대자로 엎드린 채, 나는 숨을 골랐다. 땀에 젖은 탓에 얼굴은 진흙투성이가 되었고, 로타 블리츠 검식을 상대한 탓에 팔다리가 저릿거렸다.

하지만.

“후욱! 훅!”

일어날 힘조차도 없을 정도로 지친 몸과는 다르게, 내 가슴 속은 뿌듯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스로의 몸상태조차도 잊은 채,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 것만 생각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대련을 한 건지, 훈련장 밖에는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무아지경無我之境.

‘소문으로만 들어봤는데…….’

그 경지에, 내가 발을 들인 것이다.

“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으로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도련님!”

그 순간, 저 멀리서 마리 유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대련 내내 나를 지켜본 모양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으면 졸릴 법도 하건만, 달려온 그녀의 눈에는 오직 나를 향한 걱정뿐이었다.

“여기 시원한 물이에요. 천천히, 조심히 드세요.”

마리 유모는 나를 똑바로 눕히고 수통을 입에 대 주었다. 입을 열자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가 흘러들어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물을 삼켰다.

꿀꺽 꿀꺽!

“후! 좀 살 것 같네. 고마워, 마리 유모.”

난 마리에게 감사를 표하며 몸을 일으켰다. 시원한 물을 마신 덕분에 몸에 힘이 좀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 일어서는 건 아직 무리였다. 나는 비틀거리다 마리의 부축을 받고서야 똑바로 설 수 있었다. 내가 민망한 얼굴로 바라보자 마리가 화를 냈다.

“이렇게 무리하시면 어떻게 해요. 아무리 훈련에 집중하신다고 하셔도, 몸은 살피셔야죠!”

“……다음부터는 주의할게.”

아무리 내가 리텐슈노프의 아이라지만, 그래도 고작 8살이다. 당연히 유모의 입장에서는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무리해서 수련하는 모습이 걱정되리라.

“그래도 정말 열심히 했으니…… 아!”

그 순간,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주 작은 파편이었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언가 깨우친 것이라고.

“유모, 잠시만.”

“도련님?”

난 마리의 부축을 떨치고 스스로 섰다. 걱정스런 얼굴로 날 바라보는 마리를 뒤로 한 채, 난 비틀거리는 몸으로 바닥에 내던진 수련검을 향해 걸어갔다.

“도련님! 이제 충분해요. 벌써 저녁이라고요!”

“도련님, 지금은 휴식을 취하시죠. 그 몸으로는 더 대련을 진행하는 건 불가능하십니다.”

그 모습에 마리 유모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내 옷깃을 붙들어 세웠다. 세르폰 또한, 나를 말렸다.

하지만 난 대련을 계속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런 게 아냐.”

나는 마리 유모를 다독인 뒤, 조심스럽게 수련검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검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블러드하운드 27식의 기본 자세를 취했다.

1식. 2식. 3식.

휘청거리는 몸으로, 나는 블러드하운드 27식을 펼쳤다.

“도련님…….”

“잠시만, 일단 그대로 지켜보시죠.”

다시금 다가와 날 말리려는 마리 유모를, 세르폰이 막아섰다. 난 검을 휘두르며 세르폰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무언가 알 것 같다는 시선.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검식에 집중했다.

“…….”

8식. 9식. 10식.

점점 동작이 빨라진다. 덜덜 떨리던 팔다리가 안정되고, 흔들리던 몸뚱이가 균형을 찾는다. 분명 격하게 몸을 움직이는 중이지만, 어째서인지 쿵쾅거리던 가슴은 점점 차분해지고 있었다.

17식. 18식. 19식.

지켜보던 세르폰의 눈이 커졌다. 지난 2주 동안 내가 펼치던 검술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분명 원래의 검식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다.

허나, 그 작고 사소한 변화가 엄청난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검술의 오묘함이다.

블러드하운드 27식이지만, 블러드하운드 27식이 아닌 검술.

그 순간 내 몸속에 깃든 마나가 천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움직인 게 아니었다. 제멋대로, 흡사 살아있는 생명처럼 마나가 스스로 요동친 것이다.

“……!”

순간, 마나가 솟구쳤다. 마치 빨려 들어가듯, 내 모든 마나가 손에 쥔 수련검으로 흡수되었다.

그와 동시에.

파각!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수련검이 산산조각났다.

“어?”

난 깜짝 놀라 움직임을 멈췄다.

동시에 허공을 비산하던 수련검의 파편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다행히 내 몸을 향해 날아든 파편이 없었기에, 다치지는 않았다.

화들짝 놀란 마리와 세르폰이 허겁지겁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도련님, 안 다치셨어요? 어디 베이신 곳은…….”

“아니, 다친 곳은 없는데…….”

난 얼떨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게 왜 부서져?”

* * * * *

훈련을 끝내고 나는 마리 유모와 함께 유아동으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는 걸렀다.

식사 시간도 아닐뿐더러, 대련으로 피로가 쌓인 탓에 당장이라도 자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대에 누웠음에도 잠은 오지 않았다. 그 대신 훈련실에서 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갑자기 수련검이 터지다니.

‘그렇게 쉽게 부서지는 물건은 아닐 텐데.’

수련검은 고작 마나를 담는다고 깨질 리가 없다. 혹시 불량품인가 싶었지만, 애초에 리텐슈노프 가에서 그런 허접한 물건을 보급할 리는 없었다.

그리고 만약 그 검이 불량품이었다면 애초에 세르폰과 대련을 치르던 중에 부서지지 않았을까?

“분명…….”

나는 검이 산산조각이 나던 순간을 떠올렸다. 분명 움직인 적도 없었는데 검으로 내 마나가 빨려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검이 부서졌다.

‘고작, 한 줌도 안 되는 내 마나를 버티지 못했다고?’

그건 말이 안 되지.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훈련실에서 가져온 검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검날 없이 손잡이만 남은 검.

깔끔하게 날 부분이 절단된 듯 사라진 모습은, 아무리 봐도 평범하게 부서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

무언가 짐작가는 게 있었다.

난 침대에 걸터앉은 채, 하나씩 상황을 복기했다.

‘이 검은 딱히 특별한 게 아냐. 그러니 마나가 빨려들어간 현상은 검 때문은 아니겠지.’

그 때의 감각을 다시금 떠올렸다.

분명 마나가 스펀지에 흡수되는 것처럼 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난 이것과 비슷한 경험을 전생에도 겪어본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검식을 완벽하게 펼친 날. 그 날도 오늘과 같이 마나가 흡수되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었다.

‘그럼 내가 블러드하운드 27식을 완벽하게 펼쳤단 건가?’

분명 그 순간 어떤 깨달음을 얻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펼친 건 블러드하운드 27식이라기엔 분명 달랐다.

“…….”

팔짱을 낀 채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애초에 검식이 무엇인가.

그저 검을 다루고 휘두르는 기술을 말하는 건가?

‘아니야.’

그렇지 않다.

검술은, 형태를 갖추고 완성된 검식은 의지를 현실에 구현하는 기술이다. 어떠한 소망을 담고 있으며, 그것을 이루어내는 기술을 검식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세르폰의 로타 블리츠.

로타 블리츠는 과거 전설 속의 붉은 벼락을 우연히 본 기사가, 그와 같은 검격을 만들겠다는 소망을 품은 끝에 만들어 낸 검식이다. 그래서 검에 붉은 오러가 서리고, 검격에는 벼락의 힘이 깃드는 것이다.

다른 검식도 마찬가지다. 모든 검식에는 소망이,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한 힘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블러드하운드 27식은 무슨 소망을 이루기 위한 검술이지?’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아니, 이건 그냥 모르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품은 소망 자체가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모든 게 말이 되긴 해.’

내가 본 블러드하운드 27식은 징벌 기사들이 휘두르는 모습 뿐이었다. 그들의 블러드하운드 27식은 다른 검식과는 다르게 특별한 힘이 보이지 않았다.

이전에는 그 사실에 별다른 의문을 가진 적 없었다. 그저, 마나를 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 아닌가?

마나를 담지도 않고 검식을 펼치다니?

‘……어떤 기사도, 일부러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아무리 징벌 기사들이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기사단이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검식을 펼칠 때 마나를 담는 것은 검사들에겐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완성되지 않은 검술인가?”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침대 아래에 숨겨둔 블러드하운드 27식의 검술서를 꺼냈다. 그리고는 책에 쓰인 글자 한 자 한 자, 그림 하나 하나에 신경을 집중하며 읽었다.

“역시…….”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문장이 이어지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잖아? 왜 이전에는 이걸 눈치채지 못했지?”

교묘하게 이어붙여져 있지만, 분명히 내용 사이사이가 묘하게 맞물리지 않은 채 겉돌고 있었다. 뭔가, 조각을 얼기설기 이어붙인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이건 블러드하운드 27식의 검술서가 아니었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블러드하운드 27식이 이 검식을 개조해서 만든 기술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그럼 이건 대체 무슨 검술서야?’

아니, 그보다 이것조차도 완전한 검술서가 아닌 거 같은데? 사방에 구멍이 숭숭 난 누더기 검술서가 애초에 원본일 리가 없잖아?

“대체…….”

난 이마를 부여잡았다.

이딴 책을 준 마그너스를 향해, 분노가 몰려오고 있었다.

“아니, 무슨 짝퉁 검술서를 주고…… 응?”

아니지.

생각해보자. 과연 마그너스가 이 사실을 몰랐을까?

그 ‘검제’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마그너스는 이 책이 블러드하운드 27식의 검술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한테 줬다는 건데.

그렇다면 마그너스가 말한 평가는, 내가 이 검술서의 비밀을 깨닫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일까?

‘아니야. 그렇게 간단한 평가일 리가 없어.’

난 고개를 저었다. 그 ‘검제’가 내린 시험이다. 지금 내가 깨달은 진실은 이 검술서와 블러드하운드 27식의 존재를 알기만 해도 금방 알아차릴 만한 비밀이다.

그러니, 마그너스가 내게 기대하는 건…….

“이 책에 숨겨진 진짜 검식을 익히는 거겠지.”

씨익.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마그너스가 내게 내린 시험이 쉬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실 쉽지 않은, 어려운 목표다.

남은 3주 동안 진짜 검식을 다 익히기는커녕, 그 실체를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기대받고 있다.’

그럼에도, 난 웃었다.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족보도 없는 잡종이었던 나에게. 이용당하다 쓸모를 다해서 토사구팽을 당했던 나에게.

그 ‘검제’가 내게 관심을 가졌다. 대 리텐슈노프 가문의 가주께서 나에게 기대라는 걸 하는 중이었다.

그 사실이 미칠 듯이 즐거워서 나는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한참 동안 꺽꺽 웃다가, 배가 아파올 무렵이 돼서야 나는 눈가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더 노력해야겠지.”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성공하기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도, 이 정도의 보상을 받았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마땅할 거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검식의 실마리는 이미 잡았다.’

검이 마나를 흡수했다는 건, 절반 이상은 성공했다는 소리다. 그러니 계속 검식을 펼치다 보면, 이 검식이 이루려 하는 소망은 찾을 수 있을 거다.

문제가 있다면, 마지막 순간에 검이 터져나간 것.

‘왜 검이 부서지는 결과가 나온 거지?’

그게 의아한 점이었다.

일단 예상되는 결론은 둘 중 하나.

내가 가진 마나가 부족했거나, 아니면 수련검 따위로는 이 검식의 힘을 버틸 수 없거나.

어떤 게 진실이든, 굉장히 고무되는 이야기다.

“겨우 한 줌의 마나로도 검이 터질 정도의 위력이거나, 허접한 검으로는 펼칠 수도 없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소리겠지…….”

그만큼 대단한 검식이라는 소리니까 말이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조금만, 앞으로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런 엄청난 검식이 내 것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자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일단은, 마나량부터 늘린다.”

더 단단한 검은 나중에 찾아도 된다. 어차피 그런 검이 어디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자, 그럼.’

지금 중요한 건 마나를 몸에 쌓는 것.

“어디보자……. 영약을 찾는 게 좋으려나, 아니면 마나호흡법을 쓰는 게 좋으려나?”

내게는 식은 죽 먹기인 일이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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