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몸속에 마나를 쌓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영약을 먹어도 되고, 마나를 축적시키는 포션을 마셔도 된다. 마나호흡법도 좋은 선택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나호흡법을 사용한다. 영약은 지극히 희귀해 구하기 어렵고, 포션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영약이나 포션에 비해 마나 호흡법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다른 두 가지 방법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호흡법의 종류에 따라 쌓이는 마냐의 양이 천차만별로 다르다는 게 문제다.
물론.
‘드디어 제대로 혈통빨이라는 걸 좀 맛보는군!’
이 모든 건 내게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영약도, 포션도, 좋은 마나호흡법도. 그 모든 게 넘쳐나는 명가가 바로 리텐슈노프 가가 아니던가!
리텐슈노프의 피를 타고난 내게, 마나를 쌓는 건 그저 손을 뻗어 아무거나 골라잡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리텐슈노프의 혈통을 가진 나에게 제공되는 건, 전부 희귀한 영약과 최고의 포션일 테니까.
‘물론…… 지금 당장 포션이나 영약을 챙기기 위해 움직일 수는 없지.’
아무리 마나를 쌓는다고 해도, 그걸 운용할 기술이 없으면 어떤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보며 난 결론을 내렸다.
“마나 하트를 구축해야 해.”
효율적으로 마나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혈관을 통해 피를 매개체로 운용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허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할 경우 전신의 피가 모이는 심장에는 과도한 마나가 모이게 된다.
평범한 인간의 심장은 이 마나의 압력을 견딜 수 없으므로, 그에 걸맞게 마나로 심장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을 바로 마나 하트라고 부른다.
‘마나 하트를 만드는 건 딱히 어렵지 않은데…….’
이미 전생에 만들어 본 기억도 있다.
아니, 고작 마나 하트뿐인가? 심장부터 주요 혈관까지, 전부 마나로 강화해 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7성 기사였던 만큼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7성이니 8성이니 하는 구분 자체가, 마나로 심혈관을 얼마나 강화했느냐로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얼마나 효율적이게 심장을 강화하느냐.
마나 하트 구축 방법, 속칭 구축법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마자 난 얼굴을 찡그렸다.
마나 호흡법만큼이나 구축법도 종류가 많았다.
문제는 쓰다가 언제든지 바꿀 수 있기에, 선택의 자유가 있는 호흡법과는 다르게 구축법은 아무거나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안 좋은 호흡법의 단점은 끽해봐야 마나가 천천히 쌓이는 것뿐이지만, 안 좋은 구축법을 사용하면 마나를 운용하는 효율과 속도가 느려질 수도 있다.
“호흡법은 다른 거로 바꿀 수라도 있지……. 구축법은 한 번 마나 하트를 만들면 끝이란 말야.”
한 번 구축법을 정해 마나 하트를 만들면, 돌이킬 수 없다. 그만큼 신중하게 골라야 하는 게 구축법이었다.
‘그나마 꽝을 뽑을 일은 없다는 게 다행인가.’
다행히 전생의 기억 덕분에 난 어떤 구축법이 좋고 나쁜지를 잘 알고 있었다.
아니, 고작 그것뿐이겠는가?
“맞아…… 그게 있었지.”
대마경大魔境속에 파묻힌 채, 세월의 흐름에 잊혀진 절세의 구축법.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그것이 숨겨진 위치 또한 나는 전부 알고 있었다.
그 구축법을 확보하기 위해 결성된 원정대의 대장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살을 태우는 열기와 폐 속까지 얼려버리는 냉기가 뒤얽혀있고, 5성 기사 따위는 한 입 거리 취급하는 끔찍하게 강대한 괴수들이 득실거리는, 그런 지옥 속에서 고생 끝에 찾아낸 구축법.
드래고니아 구축법.
그 구축법을, 나는.
“그 새끼에게 좋다고 가져다 바쳤지.”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른 순간, 난 이를 악물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자 순식간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덴 리텐슈노프.
현 가주의 차남 제랄드 리텐슈노프의 막내아들로, 제랄드가 차기 가주가 된 이후, 제 형제들을 전부 제치고 후계자 자리에 오른 자.
내 전 주인.
그리고 날 단두대로 보낸 놈이었다.
* * * * *
아덴.
그 놈은 언제나 운이 좋았다.
운 좋게도 제랄드가 제 형제들을 전부 숙청해버린 덕분에 녀석은 사촌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권능도 좋았지.’
놈은 리텐슈노프 가의 혈통이라면 누구나 타고나는 권능이 좋았다. 검제 마그너스가 가진 권능과 똑같은 걸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델리우스 게인을 만난 것도 우연이었어.’
희대의 천재 책사라고 불리던 전략가, 델리우스 게인. 녀석과 연을 맺게 된 것조차도 우연이었다.
게다가 녀석의 행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경쟁자한테도 하자가 있었다.”
당시 리텐슈노프 가의 후계자 자리는 사실상, 소검제라 불리던 제랄드의 장남, 에르반이 맡고 있었다.
만약 에르반이 리텐슈노프 역사상 최악의 권능을 가지지만 않았다면, 그는 일찍이 아덴을 제치고 후계자 자리에 낙점되었을 것이었다.
허나 에르반의 권능은 사실상 없느니만 못했고, 후계자 자리는 계속 공석을 유지했다.
아덴의 엄청난 행운 덕분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운은 그게 끝이었어.’
소검제를 지지하는 세력은 컸고, 에르반이 가진 능력은 그의 칭호가 아깝지 않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아덴은 단 한 끗의 차이를 메꾸지 못했다.
만약…….
내가, 그 구축법을 가져다 바치지 않았다면 말이다.
드래고니아 구축법은 그 한 끗의 차이를 순식간에 뒤집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덴의 마나 하트는 운 좋게도 드래고니아 구축법을 덧씌울 수 있는 종류의 구축법으로 구축한 것이었다.
‘그 모든 행운이 놈을 후계자 자리로 이끌었지.’
녀석은 드래고니아 구축법을 익혔고, 결국 소검제를 쓰러트리고 차기 가주 후계자의 자리를 차지했다.
바로 내 덕분에 말이다!
‘놈을 후계자 자리에 올려준 건 바로 나였어.’
만약 공신 목록을 작성한다면 녀석은 내 이름을 가장 맨 앞에 적어야 했다. 내가 없었다면 후계자의 발 밑에 쓰러지는 건 아덴, 그놈이었을 것이란 말이다!
“……근데, 그 새끼는 내 목을 잘랐지.”
그걸 떠올리자, 전신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놈을 가주로 만드는 것이 리텐슈노프의 천하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개처럼, 병신처럼 노력해 충성했다.
그 결과, 쓸모를 다한 개는 삶아졌다.
놈에게 난 개 따위에 불과했다는 거다.
이를 악물었다. 입에서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다.
“……놈은 그걸 가질 자격이 없었지.”
내가 찾아냈고, 내가 가져왔다.
노력의 보답도 받지 못하리라는 건 꿈에도 생각 못한 채, 목숨을 걸고 그 구축법을 찾는 동안 아덴이 한 노력이라고는 한 푼도 존재하지 않았단 말이다.
‘그러니까.’
드래고니아 구축법.
이번 생에는 내가 가져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마나 하트부터 만들어야겠지.
* * * * *
마나 하트의 구축은 심장 강화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 원칙이었다.
그렇기에 마나 하트를 만들 수 있는 건 오직 심장의 성장이 어느 정도 끝난 청년 뿐이었다.
아직 어린 심장에 마나 하트를 구축하면, 성장하는 과정에 심장이 찢어져버리기 때문이다.
이 원칙이 깨진 건, 내가 아덴 리텐슈노프에게 숙청당해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기 2년 전의 일이었다.
왜 원칙이 깨졌냐고?
‘내가 그놈에게 드래고니아 구축법을 준 탓이지.’
아덴 리텐슈노프는 내가 가져다 준 드래고니아 구축법으로 마나 하트의 재구축에 성공했다.
절대로 불가능하다 여겨지던 재구축 성공 사실이 알려지자, 지금까지 구축법이라는 기술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편견들이 하나 둘씩 깨지기 시작했다.
마나 베인, 혈맥 구축이라고 이름 붙여진 기술 또한 그 인식 변경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혈맥 구축은, 이름 그대로 심장이 아닌 혈관에 마나 하트를 구축하는 기술을 말했다.
정확히는 혈관을 심장보다 먼저 강화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혈관은 어떤 구축법을 사용하든 나중에 강화하게 되는 신체 기관이고, 심장과는 다르게 마나 강화를 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어지지도 않는다.
‘혈맥 구축을 쓰면, 심장을 먼저 강화할 때보다 더 어린 나이에 마나 하트를 만들 수 있지.’
이런 장점 덕분에 혈맥 구축 기술은 등장하자마자 순식간에 마나 하트 구축법의 주류를 차지했다.
기존 방식을 응용했을 뿐이기에 결과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어린 시절부터 마나를 운용하며 숙련도를 쌓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사소한 단점이 있다면, 내가 성장할 때마다 혈맥을 계속해서 손봐줘야 한다는 것과 재구축 과정에 많은 마나가 소모된다는 것.
그건 꽤 귀찮고 수고로운 작업이지만…….
‘사실 그걸 단점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
혈맥법을 이용해 드래고니아 마나 하트라는 엄청난 힘을 얻는 대가가 고작 약간의 수고로움뿐이라면, 그건 단점이라고 표현하기도 부끄러운 일이니까 말이다.
‘개괄적인 이론은 알고 있다.’
나는 침대 위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혈맥법은 혈관 안에서 마나를 순환시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를 통해 혈관이 마나에 익숙해지면, 주요 혈관부터 강화를 시작한다.
문제는 마나를 다뤄보지 않았다면 일단 혈관에 마나를 순환시키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혈맥법을 이용한 마나 하트 구축에는 마나의 움직임을 도울 스승이 필수적이었다.
물론, 나는 스승 따위 필요 없었다.
마나를 움직이는 건 내겐 포크를 다루는 것 만큼이나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과하지 않게.’
난 천천히 몸속의 마나를 심장 안으로 모은 뒤, 흘려보냈다. 순식간에 마나가 대동맥을 타고 순환을 시작했다. 곧바로 심호흡과 함께 마나의 순환에 정신을 집중했다.
‘조급할 필요 없어.’
집중 때문에 흘린 땀으로, 전신이 흠뻑 젖었다. 난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어차피 조금만 더 육체의 성장이 끝나면 심장 강화로 방향을 틀 거다. 지금 당장은 큰 줄기들만 강화하면 충분해.’
당장 필요한 건 블러드하운드 27식을 익히기 위한 마나 하트의 확보였다. 그것만 얻으면 성공이니, 굳이 더 높은 경지를 이루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마음가짐 때문일까?
어째서인지 정신이 점점 더 맑아졌다.
‘마나 하트를 만들면서 잡생각을 하면, 심마에 빠져 주화입마가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난 오히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순환에 더더욱 집중이 되고 있었다. 아무리 내게 전생의 경험이 있다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역시 몸이 가진 재능 자체의 차이인가.’
그 생각이 들자 씁쓸해졌지만 더는 상념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어느 정도 마나에 적응한 지금이 마나 하트 구축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으니까.
심지어 내가 지금 사용하려는 드래고니아 구축법은 여타 다른 평범한 구축법과는 궤를 달리하는 물건이었다.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전신의 근육이 긴장으로 꽉 조여졌다. 지금부터는 조금의 실수도, 약간의 잡념도 용납할 수 없었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힘을 다루는 일이야. 한 치의 흐트러짐으로도 모든 게 허사가 될 지도 몰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드래고니아 구축법은.
‘드래곤 하트를…….’
인간의 몸에, 용의 심장을 구축하는 것이었으니까.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