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0화 (10/139)

10화

드래고니아 구축법의 내용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단 한 번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모든 내용이 방금 전에 펼쳐본 것처럼 생생했다.

사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었다.

드래고니아 구축법은 사실상 날 죽게 만든 원인이었으니까.

‘드래곤 하트라니.’

음, 죽음의 원인이 아니었더라도 근본적으로 드래고니아 구축법의 내용은 까먹을 수 없었을 거다.

한낱 인간 따위의 몸뚱이에 용의 심장과 같은 기능을 하는 마나 하트를 구축하고자 하는 책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심지어 그 시도가 실제로 성공한 것까지 봤는데?

‘그래……. 뭐, 절반의 성공도 성공이지.’

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덴 리텐슈노프는 드래고니아 구축법으로 자신의 마나 하트를 재구축하고도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 아덴은 살아남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재구축이라는 한계 때문일까.

아덴은 용의 심장을 얻지는 못했다.

‘드래고니아 구축법의 목적은 인간의 몸에 진짜로 용의 심장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하나, 아덴이 얻은 것이라곤 고작 이전보다 3배 정도 마나 효율이 좋아진 것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라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드래고니아 구축법이 달성하려던 목적은 이루지 못했다는 소리다.

‘효율을 3배 올렸는데도 실패라는 건…….’

구축법이 말하는 용의 심장이라는 건 대체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

신화 속에나 나올 법한 생물의 심장을 비유로 써야 할 정도로 강력한 마나 하트라는 소리일까?

‘그걸 얻는다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까?’

마그너스를, 검제를.

리텐슈노프 가의 가주 자리에 도전할 수 있을 만큼?

“…….”

절로 치솟으려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멈추었다.

흥분하지 말자.

진정하자.

난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였다.

아직 구축이 끝난 게 아니다. 이 상황에서 몸을 움직이거나, 감정을 키우면 리바운드가 올 수 있다. 그랬다간 지금까지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는 거다.

두근 두근.

나는 쿵쿵 뛰는 가슴팍을 힐끗 바라보았다.

‘놈은 이미 마나 하트를 가지고 있었어.’

만약 놈의 실패 원인이 마나 하트를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면, 마나 하트 구축을 시도한 적도 없는 순결한 상태인 나는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어지간한 구축법보다는 효율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느긋하게 혈관을 순환하던 마나의 흐름이 변했다. 지금까지는 천천히 흐르는 강물이었다면, 이제는 마치 떨어지는 폭포처럼 힘차게 움직인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빠르게, 더 빠르게!

내 의지를 따라 마나에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마나가 전신의 혈관을 일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1분, 30초, 10초, 5초.

마침내 일순에 걸리는 시간이 1초에 가까워지는 순간.

‘흐읍!’

이번에는 흐르는 마나를 압축했다.

그러자 손톱만 하던 마나가 쭈우욱 늘어났다.

쏘아지듯 혈관을 흘러가던 마나 덩어리가 가속도에 의해 쭈욱 당겨졌다. 곧 마나가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가느다란 실로 변해 혈관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탈력감이 전신을 덮쳤다. 당장이라도 모든 걸 때려치고 기절하고 싶었다. 피로에서 정신을 유지하는 데만 어마어마한 심력이 필요했다.

‘이 몸으로…… 실을 계속 가늘게 뽑아야 한다고?’

계속해서 가느다란 마나의 실을 뽑아낸다.

그리고 그것을 마구 얽어서 만든 덩어리로 심장을 가득 채운다. 극도의 집중을 유지하며, 심장이 마나의 실로 꽉 찰 때까지 기약 없이 기다려야만 용의 심장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과연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순간.

뚝!

“……?”

무언가 방울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비릿한 혈향이 코 끝을 간질였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빌어먹을.’

순간 눈앞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마치 어둠 속에서 작은 구멍 두 개로 바깥 세상을 내다보는 것 같았다.

‘리바운드……!’

나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별개로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구멍은 점점 멀어졌다. 마치 무저갱 속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상하좌우를 구분할 수 없어졌다.

이곳은 어디지?

마나의 실은 아직 뽑고 있는 건가?

사지의 감각이 천천히 증발하듯 사라진다.

자아가 흐려진다.

‘나는 누구지?’

그리고. 그리고.

‘나는…….’

쿠웅!

그 순간. 웅장한 고동 소리가 들렸다.

엄청나게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와 흡사한…….

“……!”

그제서야 보였다.

무저갱 속.

세로로 길게 찢어진 거대한 눈이 나를 주시했다.

경계선조차 구분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떠 있는 눈동자는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눈동자가 서서히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그 시선 속에서 감정이 전해져왔다. 서늘하고 날카로운 감정의 편린이 내게 물었다.

[지금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냐?]

그것을 깨닫자, 순식간에 몸이 솟구쳐오르는 게 느껴졌다. 감각이 되돌아오고, 자아가 확실해진다. 어둠 속에 뻥 뚫려 있던 두 개의 구멍은 사라지고, 대신 내 시선으로 보이는 세상을 자각했다.

그제서야, 다시금 나는 현실을 자각했다.

“커헉!”

순식간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당장이라도 내장을 죄다 토해내고 싶었다. 난 재빨리 침대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치밀어오르는 것들을 전부 다 쏟아냈다.

“우웨에엑!”

하지만 나오는 건 엄청난 양의 핏물 뿐이었다. 우습게도 드문 드문 섞인 음식물들 때문에, 마치 내장 조각을 토해낸 것처럼 보이긴 했다.

“허억, 커헉!”

한참의 구역질 끝에, 더 이상 쓴물 조차도 나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나서야 난 입가를 닦아냈다. 그러고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게 뭔…….”

분명 각혈은 침대 밑에 한 것 같은데, 침대 위도 피투성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굴을 만져보자, 입뿐만이 아니라, 눈과 코, 그리고 귀에서까지 피가 흐른 흔적이 있었다.

그 흔적들에 흠칫 놀랐지만, 곧 내가 리바운드에 빠졌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후우.”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각혈 정도로 리바운드에서 멀쩡히 빠져나올 수 있다면 사실 싸게 먹힌 거라고 할 수 있으니까.

사실 안 죽은 게 더 신기한 일 아닌가?

“아, 맞아! 마나 하트는?”

그제서야 다시금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마나를 끌어올렸다.

만약 드래고니아 구축법이 성공했다면, 혈맥법으로 구축한 만큼 주요 혈관들이 마나로 강화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혈관은 마나로 강화되어 있지 않았다.

혈맥법은 실패한 것이다.

“…….”

그 대신.

두근!

심장의 고동이 느껴졌다.

“……아니, 대체 왜?”

정확히는, 마나 하트의 고동이 말이다.

심각하게 당황스러웠다. 분명 혈맥법으로 혈관을 강화하다가 정신을 잃었는데, 건드리지도 않은 심장이 마나 하트가 되어 있었다.

‘설마 리바운드의 영향 때문인가?’

그럴 지도 몰랐다. 정신을 놓은 이후에도 가까스로 마나의 실은 계속 뽑아냈지만, 그걸 컨트롤하지 않은 탓에 혈관이 아닌 심장에 쌓여버린 것일 수도 있었다.

이런 젠장,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망했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심장에 마나 하트를 만들어버리다니! 최악에는 사망, 최선이어도 절대 가주 자리에는 도전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소리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는 순간.

[멍청하긴!]

“……?”

[리바운드에 빠졌는데 혼자 살아나올 수 있는 놈이 세상에 어디있겠느냐? 전부 다 이 몸이 지도한 덕분이거늘! 네 녀석 심장이 바로 증거다, 이 말이다!]

“뭐, 뭐야?”

내 심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 *

“그러니까…….”

침대 위에 다소곳이 정좌를 한 채, 난 내 심장이 있는 위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이 리텐슈노프 가의 수호룡이시라고요?”

[그렇다.]

그러자 내 심장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심장인지, 가슴인지, 하여튼.

그게 어디인지 알 게 뭔가.

중요한 건 내 몸에 무언가 이질적인 존재가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스스로가 리텐슈노프 가의 수호룡이라고 주장하는 중이었다.

믿음이 가냐고?

아니!

“전혀 믿음이 안 가는데요?”

[사실이 그런데 어쩌라는 건가? 그리고 믿음이 안 가면 어쩔 건데? 네 심장을 파내버리기라도 하게?]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보다 감사 인사가 먼저 아니냐? 칠공에서 피를 뿜으며 죽어야 할 운명이었던 네 녀석을 리바운드에서 구해준 게 바로 나이거늘! 에잉, 300년 전 내가 몸뚱이를 가지고 있던 시절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일단, 그건 감사하긴 합니다.”

난 식은땀을 흘리며 내 가슴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곧장 자괴감에 빠졌다.

맙소사, 자기 가슴팍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다니.

내가 한 행동이지만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전혀 납득이 안 간다.

[그래, 그래야지!]

물론 내가 납득을 하든 말든 내 심장 속 수호룡이라는 존재는 이제야 알아모신다며 흡족해했다.

[그래도 내가 사람 하나는 똑바로 봤군! 하긴, 근 100년 만에 처음으로 나를 불러내는 데 성공한 녀석이니, 최소한 기본 이상은 해줘야지! 이야, 그래서 지금 가주는 누구인가? 100년 쯤 지났으니 뱅가드 녀석은 아닐 테고, 첫째 아들인 데브론 리텐슈노프인가?]

물론, 너무 과하게 흡족해진 것 같았지만 말이다.

진짜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맡아본 사람처럼, 심장 속 수호룡은 흥겹게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 내용을 들으며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일단 뱅가드 리텐슈노프이니, 데브론 리텐슈노프이니 하는 사람이 가주냐는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최소 200년은 갇혀있던 인물이다.’

뱅가드 리텐슈노프는 200년 전, 데브론 리텐슈노프는 150년 전 리텐슈노프 가의 가주였으니까 말이다.

‘수호룡이라는 소리는…… 그럼 진짜 오대 명가의 초대 가주가 겪은 이야기가 사실이었다는 소리인가?’

오대 명가에는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각 가문의 초대 가주들이 모두 드래곤과 계약을 해, 권능이라는 초월적인 힘을 얻었다는 전설 말이다.

물론 현재는 한낱 동화 정도로 치부되는 전설이다.

세상에는 드래곤 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마법도 검술도 전부 다 잘하고, 무한히 마나를 쓸 수 있는 최강의 생물이라고? 그딴 게 있었으면 이미 이 세상을 그놈들이 지배했겠지!’

하지만 헛소리 치부하기에는 걸리는 게 많았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리바운드에 빠져 심마의 무저갱 속에 처박힌 순간, 내가 보았던 거대한 붉은 동공과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심장 고동소리.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건 절대 평범한 존재가 아니야.’

분명 그것은 드래곤이라는 존재라고.

날 심마에서 구해준 것도 그 드래곤이라고 말이다.

[아아, 역시 몸이 없으니까 불편하구만! 100년 만에 깨어났는데 맛있는 식사 하나도 대접받을 수 없다니! 아니, 아니다! 사실 가장 필요한 건 식사가 아니다!]

물론.

[암컷, 그래! 암컷이…… 암컷이 보고싶다!]

“…….”

‘이것’이 그 드래곤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