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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1화 (11/139)

11화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심장 속 목소리의 정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드래곤은 자신의 이름이 데우스라고 말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이 드래곤은 전설에 등장하는 리텐슈노프 가의 수호룡 데우스가 맞았다.

내가 리텐슈노프 가의 개로 지내온 시간이 무려 30년이다. 가문의 비밀로 전해 내려오는 소문 따위는 나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존재했다.

어째서 리텐슈노프 가의 전설 속 수호룡이 내 심장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인가?

그 이유는, 데우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다.

“제가 혈관부터 강화한 것이 문제였다고요?”

[그렇다. 기본적으로 드래고니아 구축법은 심장에만 사용할 수 있는 구축법이니까 말이다.]

“그럼 제가 혈관부터 강화한 건…….”

[그건 당연히 정신 나간 짓이었지! 내가 마나의 흐름을 심장으로 돌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네놈은 전신의 혈관이 전부 갈기갈기 찢어져 죽었을걸?]

“…….”

놀라운 건, 데우스가 리바운드에 빠져서 죽을 뻔한 나를 구해주었다는 것이었다.

난 데우스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럼에도 의아한 점들을 물어보았다. 예상 외로 데우스는 내 질문 하나하나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데우스 님은 왜 제 심장에 들어온 겁니까?”

단지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내가 미쳤냐? 아리따운 아가씨도 아니고, 털 수북하고 쉰내 나는 남자 놈 몸뚱이에 내가 왜 기어들어가? 아무리 내가 거래를 했다지만, 치매가 오지 않는 이상 그딴 짓은 죽어도 안 해!]

“……쉰내라뇨. 전 아직 여덟 살 밖에 안 됬…….”

[땍! 이놈, 어린놈이 어디서 어른한테 말대답이야!]

300년 만에 바깥으로 나온 용은 꽤 말이 많다는 것.

그리고 심각한 변태 꼰대 노인네였다는 것이었다.

‘맙소사…….’

내 상상 속 드래곤과는 차원이 다른 언행에, 정신이 아득해져 멍하니 이야기를 들은 게 대략 십여 분.

난 이 드래곤이 그냥 떠들게 두면 내가 원하는 정보들을 얻는 데 3일은 걸릴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드래곤…… 너무 말이 많아!’

심지어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분명 나는 왜 내 몸속에 들어왔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 노친네 드래곤은 자기가 먹었던 부드러운 연어 스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왜 제 심장에 들어왔냐고요!”

결국 듣다 못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데우스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퉁명스레 대답했다.

[이놈, 오랜만에 바깥 공기 맡은 노인네 이야기 듣기가 그리 싫으냐? 쯧! 아주 성을 쓰는구만, 성을 써!]

“……이야기는 나중에 충분히 들어드릴 테니까, 일단 제 질문에 대답부터 먼저 해 주세요.”

[심장에 들어온 게 아니라, 연결된 거다.]

“네?”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결된 거라고? 드래곤이랑, 내가?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데우스는 마치 옛날 이야기를 하는 할아버지 말투로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건 아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이야기다. 리텐슈노프의 초대 가주 놈과 한 맹약 때문이니까.]

“초대 가주님과의 맹약이요?”

[네가 가진…… 아니지, 생각해보니 네놈 나이면 아직 권능을 각성하지도 못했겠군? 하여튼, 리텐슈노프 놈들이 가지고 있는 권능이 죄다 어디서 났겠냐?]

“권능을 데우스 님께서 주셨다고요?”

깜짝 놀랐다. 그 전설이 진짜 사실이었다고?

[아이고 시끄러워! 소리치지 마라, 이놈아!]

“죄, 죄송합니다.”

대체 어디로 듣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데우스에게 내 목소리는 거의 그대로 들리는 모양이다. 난 한참 동안 데우스의 투덜거리는 타박을 받았다.

[크흠, 요즘 애들이란……. 하여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리텐슈노프의 핏줄들이 쓰는 모든 권능은 전부 다 내 힘의 일부다, 이 말이야!]

“그렇습니까?”

[그런데…… 네가 생각할 때 네 조상 놈들이 겨우 힘의 일부, 그러니까 고작 조각 따위로 만족을 했겠느냐?]

“……그럴 리 없겠죠.”

당연하다. 리텐슈노프 가문이 어떤 가문인데.

[그래! 그 자존심이 높기로는 다섯 가문 녀석들 중 첫째 가는 것이 리텐슈노프 녀석들 아니냐? 겨우 그 정도를 얻는 거로 만족할 리 없지! 어디보자…… 3대째였나? 드라칸인가 하는 꼬맹이가 가주가 된 다음일 거다. 녀석이 나를 불러내서, 새로운 거래를 했다.]

새로운 이름이 나왔다.

‘드라칸 리텐슈노프? 누구였지?’

3대 가주라면 분명 어떤 사람인지 들어봤을 텐데, 정확한 내용들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가 골똘히 생각하는 중에도 데우스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녀석이 말하길 드래고니아 구축법으로 내 영혼과 마나 하트를 연결하게 해달라고 하더군. 어째, 네가 생각해봐도 드래고니아 구축법으로 마나 하트를 만드는 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힘들지 않더냐?]

“그건…… 그렇습니다.”

사실이었다.

전생에 내가 대마경에서 겨우 얻은 드래고니아 구축법을 처음 봤을 때, 사실 난 이게 가짜인줄 알았다.

엄청난 재능과 마나 운용능력을 요하는, 혹시 이 구축법은 시전자의 심장을 터트리기 위한 함정이 아닐까 의심을 할 정도의 난이도.

이번 생에도 사실 거의 도박에 가까웠다.

만약 드레커 리텐슈노프가 가지고 있던 재능이 아니었다면, 나는 드래고니아 구축법을 써서 마나 하트를 만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아, 혹시?”

그 순간 떠올랐다.

‘……드라칸이 혈겁의 가주를 말하는 거였나?’

데우스가 말한 드라칸이 누구인지 말이다.

리텐슈노프 가문이, 지금과는 달리 아직 세계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명가가 아니던 시절.

가문의 후계자가 처가의 힘으로 결정되자, 당시 형제 중 가장 뛰어났던 드라칸이 하룻밤 만에 경쟁자를 전부 쓸어버리고 후계자 자리에 올라선 사건이었다.

속칭, ‘긴 칼의 밤’이라고 불리는 사건이었지…….’

리텐슈노프 가의 약육강식, 강자존 법칙도 그 시대에 확립된 것이었다.

‘제 형제를 전부 숙청하고 가주 자리에 오를 정도의 인물이라면…….’

오직 힘으로 모든 걸 결정하는 규칙을 만든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녀석이 말하기를, 그거로 마나 하트를 만들어 낸 녀석이라면 내가 힘을 주라더군. 뭐, 녀석이 겪은 일을 생각하면 그런 안배를 하는 게 이해는 되지만 말야.]

“…….”

데우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입맛이 썼다.

난 드래고니아 구축법으로 마나 하트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혈맥법을 선택한 것도 실수였고, 그조차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해 수호룡에게 구해지기까지 했다.

리텐슈노프 가의 전설 속 수호룡에게 힘을 받을 기회를, 내 스스로 부숴버린 거나 다름없는 게 아닌가?

……잠시만. 무언가 이상한데?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시도한 혈맥법은 완전히 실패했어. 마나 하트가 만들어진 건 이 변태 드래곤 때문이지.’

날 도와준 건 데우스가 리텐슈노프 가의 수호룡이라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계속 내 심장과 연결되어 있는 건 뭐지?

‘나한테 이걸 전부 설명해주는 건 뭐 때문이고?’

이거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데우스 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으응? 뭐냐. 뭐든지 물어보아도 좋다.]

“그럼 저는 실패한 겁니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난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야, 넌 실패했지.]

“……아.”

[물론 방향성 면에서 말이다.]

“……!!”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흥분으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나는 데우스에게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방향성에서 틀렸다는 게 무슨 뜻이죠?”

[무어, 네가 만약 혈…… 혈…….]

“……혈맥법이요?”

[그래, 그거 말이다. 거참, 이름 한 번 외우기 힘들구나. 하여튼 그 짓 대신 정석대로 심장에 만들었다면…… 충분히 성공했을걸?]

그 말에 눈이 절로 확 떠졌다.

그런 내 반응에, 데우스는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

[원칙적으로는 실패했다. 하나, 그놈의 원칙을 따지기에는 내가 허무세계에 갇혀 지낸 지가 무려 백 년 단위란 말이지? 네가 실패하면, 대체 난 언제까지 그 심심하고 재미없는 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거냐?]

약간의 사심도 있었지만.

[그리고 솔직히, 네가 생각을 해봐라. 사실상 방향성만 맞았으면 당연히 성공했을 놈이 너인데. 그걸 그대로 죽게 납두라고? 내가 장담하는데, 드라칸 놈이 바라던 게 그런 게 아니라는 데 내 역린을 걸 수 있다!]

진심이 가득 담긴 사실을.

[드래고니아 구축법의 특성 때문에 리바운드에 빠진 것이었지, 만약 다른 구축법이었다면 넌 충분히 그…… 혈 뭐시기를 성공했을 거다. 그러니 실망하지 마라.]

“……말씀, 감사합니다. 데우스 님.”

내가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그뿐인가?

난 역사 속 위대한 가주였던 드라칸 리텐슈노프의 기준을 충족했다. 검제 마그너스와 같은 권능을 가지고 있던 아덴 놈도 실패한, 그 기준을 말이다!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함으로 가득 찼다. 당장이라도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만약 지금 데우스와 함께 있지만 않았다면, 기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침대 위를 방방 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데우스가 없었더라도 그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탄성을 내지르려는 순간, 방문이 열리며 마리 유모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드레커 도…… 꺄아악!”

물론.

여전히 내 침대와 바닥은 피투성이였다.

* * * * *

깜짝 놀란 마리 유모는 곧바로 세르폰을 불러왔다.

당연한 일이지만, 세르폰은 피투성이인 내 몸을 보는 순간 내가 무슨 짓을 벌인 것인지 바로 눈치챘다.

“드레커 도련님, 이번 일은 수호 기사로서 절대 좌시할 수 없습니다. 아직 심장이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 마나 하트를 만드시다니요? 그것도 혼자서!”

그 덕분에 마그너스의 집무실을 다녀온 뒤로 계속 내 눈치만 보던 세르폰이 처음으로 화를 냈다.

“다행히 실패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성공하셨다면 정말로 돌이키실 수 없으셨을 거란 말입니다!”

의아한 건, 세르폰은 내가 마나 하트 구축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건 용의 심장의 특성이다.]

‘특성이라고요?’

[그래. 용의 심장이 가진 효과는 여러 가지이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나와의 연결이 아니더냐? 나머지는 그저 부가적인 기능일 뿐이다. 사실상 이건 마나 하트도 뭣도 아니라는 소리지!]

‘……그런 걸, 왜 지금 말해주는 겁니까!’

어쨌든 나는 세르폰에게 변명 따위는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세르폰의 입장에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만약 내가 세르폰의 수호 기사라는 직위를 존중한다면, 그가 당연히 마나 하트 구축을 반대하더라도 이야기는 해야 했다. 이렇게 사후 보고를 하는 식으로 세르폰이 알게 되는 건, 그가 날 수호하는 기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난 진심으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세르폰 경.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건 제 선에서 막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도련님. 무조건 가주님께 보고가 들어갈 사안이에요.”

“……어떻게 비밀로 할 수는 없을까요?”

“그게 말이 되는……!”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이건 세르폰과 마리의 입을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마그너스가 내게 관심을 가진 이상, 나를 지켜보는 징벌 기사가 분명히 한 명쯤은 존재할 테니까.

그리고 실제로 날 지켜보던 기사가 존재한 모양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겨우 5시간 만에, 마그너스 리텐슈노프가 유아동으로 왕림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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