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2화 (12/139)

12화

유아동의 중앙 홀.

이곳은 유아동에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사용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평소라면 고요한 편이지만, 오늘의 중앙 홀은 달랐다.

중앙 홀로 이어진 복도에는 황금색 사자 휘장을 가슴팍에 단 수어 명의 기사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그들이 풍기는 묵직한 기세에 날벼락을 맞은 유아동의 수호 기사 또한,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황금색 사자 휘장.

리텐슈노프 가문에서 황금 사자의 휘장을 달 수 있는 건 오직 황금 사자 기사단 뿐이다. 리텐슈노프가 자랑하는 일곱 기사단 중 단언 최강이라 할 수 있는 기사단 말이다.

“…….”

복도를 지나는 내내, 황금 사자의 시선이 내 등을 쫒았다. 그 시선에 몸이 잘게 떨렸다. 아직 어린 내 몸은 소드마스터 급의 기사가 흘리는 기세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한 명 한 명이 전생의 내 경지를 뛰어넘는 강자들. 그런 자들이 고작 가문 내 행차의 호위 역이나 맡으며, 집 지키는 개 취급을 당함에도 가문에 충성한다.

이것이 세계를 통치하는 리텐슈노프가 가진 힘.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정신 차리자.’

난 이를 악물었다.

‘고작 이 정도에 벌써부터 겁을 먹으면 어떡해?’

흐트러지려던 마음을 다잡았다. 이 가문을, 내 발밑에 무릎 꿇리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나?

고작 번견 따위에게 위축되는 순간, 난 가주가 될 자격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다. 저들을 전부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내가 목표로 삼은 것 아니었나?

나는 가슴과 등을 쭉 폈다. 두 다리에 힘을 꽉 주고 당당하게 그들 사이를 걸었다. 여전히 내 몸은 떨리고 있었지만, 그때부터 따라붙던 시선은 사라졌다.

“…….”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몸을 짓누르는 중압감은, 중앙 홀 입구에 도착하자 끝이 났다.

하지만 사실상 이제 시작이다.

작게 심호흡을 한 뒤, 벌컥 문을 열었다. 발걸음에 힘주어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자 보인 건 중앙 홀 한가운데에 존재하는 건 원탁 하나였다.

원탁에 마련된 의자는 딱 두 개였다. 그리고 하나의 의자에는 이미 주인이 앉아 있었다.

원탁 위에 올려둔 한 손에 턱을 괸 채, 마그너스 리텐슈노프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어마어마한 기세가 내 몸을 짓눌렀다. 당혹스러웠지만 난 내색하지 않은 채, 하나 남은 의자를 향해 걸어갔다.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자마자, 호통이 떨어졌다.

“왜 그런 짓을 했느냐.”

추상같은 목소리였다.

대비하지 않았다면 화들짝 놀라 몸을 떨었을 정도로, 마그너스의 음성은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허나, 예상 범위 내의 분노다.

난 재빨리 답했다.

“마음이 급하여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실패했다는 사실도 문제지만, 만약 네가 성공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 수도 있었다.”

“…….”

“오만해진 탓이냐. 아니면 조급해진 탓이냐. 내가 너에게 기대를 품은 것이, 그리 부담이 되었더냐?”

마그너스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것이냐.”

“…….”

마그너스의 노호성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당혹스러웠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마그너스를 마주하면 내뱉기 위해 머릿속에 준비해 둔 이야기들이, 마치 모래성처럼 부서졌다.

마그너스가 내게 쏟아낸 건 분노가 아니었다.

타박도, 힐책도 아니었다.

그건, 걱정이었다.

마그너스 리텐슈노프는 날 걱정하고 있었다.

“…….”

어안이 벙벙했지만, 난 곧 정신을 차렸다.

그가 걱정하는 것이 드레커인지, 아니면 드레커의 재능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딱히 중요하지 않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그 마그너스가 내게 애정 비슷한 걸 드러냈다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마그너스의 애정 섞인 분노를 풀어주고, 더욱더 큰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이냐?”

“스스로에게 시험한 겁니다. 제가 만든 기술을요.”

“……시험?”

마그너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쭙잖은 변명을 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의 시선이 쏘아졌다. 하지만 내 눈동자에 담긴 진심을 확인하자, 곧 그 눈빛은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기술을 시험하다니? 네가 무슨 기술을 만들었다는 말이냐?”

이제부터 시작이다.

내가 가진 밑천을 터는 짓이지만, 사고를 친 순간부터 판돈을 잃을 걸 예상했기에 아깝지는 않았다.

“가주님, 마나 하트가 무엇입니까?”

“마나 하트?”

“제가 배우기로는, 마나 하트는 심장을 마나로 강화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지. 마나 ‘하트’라는 이름이 붙은 게 그 이유 때문이니까.”

“하지만…… 그럼 꼭 심장부터 강화해야 합니까?”

“뭐라?”

마그너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야, 그렇겠지. 그 ‘검제’조차도 평생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의문일 테니까.

“세르폰에게 들었습니다. 마나 하트의 강화는 심장만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물론 내가 사고를 친 다음에 들은 거지만. 선후 관계가 좀 바뀐 것 정도는 문제없겠지.

“그렇지. 처음에는 심장뿐이지만, 경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혈관도 강화해야 하니까…….”

그 순간 마그너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럼, 혹시 네가 만들었다는 게?”

“구축법으로 심장이 아닌 혈관부터 강화한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충분히 가능할 줄 알았는데…… 마나 하트를 만드는 건 실패했습니다.”

난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가주님.”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여전히 마그너스의 얼굴은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저 표정이 분노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무려 검제의 칭호를 가진 노인이다.

이런 구멍투성이의 설명만으로도, 마그너스는 곧바로 내 이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리라.

‘깜짝 놀랐겠지. 그저 상식을 약간 비틀었을 뿐인데,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결과물이 나올 테니까.’

이전 삶, 대륙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한 탐험가가 리텐슈노프에 자금을 지원받으려 찾아온 적이 있었다.

탐험가는 대마경大魔境 심부를 탐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마경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그렇기에 당시 가주였던 제랄드는 그런 허황된 계획에는 돈을 지원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탐험가는 달걀을 하나 꺼내며 말했다.

‘어떤 도구의 도움 없이 달걀을 똑바로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누구도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고 그는 달걀의 아래쪽 껍데기를 살짝 깨트려, 달걀을 똑바로 세워 보였다.

상식을 약간만 비틀면, 이 세상에 불가능 따위는 없다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이다.

‘물론 그놈은 너무 나댔어.’

그 탐험가는 감히 리텐슈노프의 가주를 희롱하고 기만했다는 죄로,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려버렸다. 너무 간이 컸던 게 그 탐험가의 사망 원인이겠지.

그나마 마그너스가 내 목을 기만죄로 날려버릴 리는 없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하긴. 애초에 그럴 리도 없지만.’

난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라, 진짜 혈맥법의 힌트를 슬쩍 흘릴 것이니까 말이다.

“혈관은 심장보다 크기도 작고 잘 늘어나는 성질이 있잖아요? 그래서 심장보다는 안전할 것 같아서……. 그래서 혈관에 시도한 겁니다.”

“…….”

“하지만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난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곧장 마그너스의 꾸짖는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고개 들어라, 드레커야. 리텐슈노프의 사내는 언제나 당당해야지. 아무 때나 머리를 숙이면 안 된다.”

“네, 가주님.”

다시금 머리를 들고 마그너스를 마주 보았다.

그는, 터질 것 같은 기쁨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난 왜 마그너스가 기뻐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불가능한 짓을 무모하게 벌인 게 아니니까.’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혈맥법이라는 안전한 기술을 스스로 생각해냈고, 그것을, 지금보다 더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리텐슈노프 가문은 강자존. 약육강식이 모토인 가문.

이곳에서 강함을, 힘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은 언제나 옳은 것이 된다. 그러니 기뻐할 수밖에.

“크흠.”

마그너스는 당장이라도 날 칭찬하고 싶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역시 리텐슈노프 가의 가주답다고 해야 할까? 마그너스는 곧 표정을 정리하며 내 몸을 살폈다.

“몸은 괜찮은 것 같구나.”

“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되었다. 그래서…… 어땠느냐?”

“네?”

순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하나 맥락을 파악해보면 아마도 혈맥법에 관한 이야기겠지.

나는 골똘히 생각하는 척을 하다가, 곧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다시 해보면 강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다?”

마그너스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실망의 표시였다.

그야, 이미 한 번 실패한 놈이 그걸로 성공을 논한다면 제 실력을 파악하지 보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걱정 말라. 변명할 말은 이미 충분하니까.

“제가 제 몸에 혈맥법을 시도하면서…….”

“오호라, 혈맥법이라고? 벌써 이름까지 붙였느냐?”

내가 스스로 만든 기술에 이름을 붙였다고 착각한 마그너스가,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왠지 내 작명을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지은 명칭이 아닌데…….’

묘하게 비웃음당한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난 떨떠름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혈맥법을 시도하면서, 마나 하트를 구축하는 동안 무언가 몸속이 텅 비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텅 비었다?”

“네. 아마도 마나가 빈 것 같았어요.”

“음…… 그럴 수 있지.”

마그너스는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네가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몸에 있는 혈관은 아주 길단다. 처음부터 모든 혈관을 강화하려고 했다면 마나가 부족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아마도, 그걸 몰랐기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음…….”

마그너스가 얼굴을 가볍게 찡그렸다. 순간 무언가 내가 말실수라도 한 건가 싶어서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런데 왜 그걸 네 몸에 시험했느냐?”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마그너스가 꺼낸 이야기는 내가 움찔 놀라서 몸을 떨만한 지적이었다.

“리텐슈노프 가는 매번 부모 없는 고아들을 거둔다. 그들을 가문의 충견으로 키우기 위해서이지. 그럼 그들을 이용했어도 되는 것 아니냐?”

“……그건.”

충견.

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전생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걸 마그너스의 입으로 직접 듣는 건 또 다른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지금의 나는 비루먹은 고아, 이 가문의 충견이 아닌 드레커 리텐슈노프이니까 말이다.

난 억지로 얼굴을 펴고 대답했다.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자 마그너스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혹시라도 그들을 가엽게 여긴 탓이냐? 아니면 인정이라도 느낀 것이냐? 어떤 것이 널 망설이게 했느냐.”

마그너스가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문득 이 순간이 분기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얼마나 마그너스의 마음에 꼭 맞는 답을 하느냐에 따라, 높은 점수를 딸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되리라.

“그런 감정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그들이 저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마그너스가 눈을 부릅떴다.

곧 그 눈동자가 반달처럼 휘었다.

“네 것이 아니다, 라…….”

리텐슈노프 가에 소속된 모든 기사는 가주의 것.

물론 그들은 암묵적으로 리텐슈노프의 혈족에게도 충성을 바친다. 리텐슈노프의 혈통이 명령을 내리는데, 그걸 무시할 정도로 담이 큰 기사는 이 가문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엄연히 월권에 해당한다.

난 지금 그걸 지적한 것이다.

‘물론 그 문제가 아니더라도…….’

난 그들을 써먹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지금 당장 제가 그들을 부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도, 저는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없습니다.”

“왜 그렇느냐?”

난 마그너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한 자 한 자 힘주어 대답했다.

“저에겐 그들에게 보상해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충성에는 적절한 대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상 없는 충성? 그딴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착취다.

“저는 아직 가진 게 없으니까요.”

그런 짓은 결국 나와 같은 늑대를 만들 뿐이다.

이 가문을 물어뜯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누런 송곳니를 갈고 닦는 늑대 말이다.

“그들은 개다.”

하나, 마그너스는 내 대답에 고개를 저었다.

“개가 보상을 바라며 충성하는 걸 본 적이 있느냐? 무릇 개라면 언제 어느 때나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어야만 하는 법이다. 충성에 대가를 바란다? 그것은 개가 아니다.”

마그너스가 무거운 목소리로 충고했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짐작한 모양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난 감정을 숨긴 채, 최대한 어린아이답게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주인으로서 밥은 꼬박꼬박 줘야 하지 않을까요? 먹을 걸 주지 않으면, 언제 주인을 물어뜯을지 모르니까요.”

“…….”

내 대답을 끝으로 침묵이 찾아왔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과연, 난 올바른 대답을 한 걸까?

혹시 마지막에 덧붙인 이야기는 실수가 아니었을까?

허나.

다행히도 나는 정답을 말했던 모양이다.

마그너스의 입가에, 내 대답이 이뻐서 죽겠다는 뜻의 함박웃음이 꽃폈기 때문이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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