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3화 (13/139)

13화

“으허허!”

내 대답을 들은 마그너스가, 호탕하게 웃었다.

지금 이 광경을 다른 사람이 봤다면 두 눈을 의심했을 지도 모른다. 그 ‘검제’가 웃음을 터트리다니?

한창 활동할 때는 용인龍人, 드라고니안 소리를 듣던 자가 바로 검제 마그너스이다. 아마 이 정도로 큰 웃음은 그의 자식들도 몇 번 마주한 적이 없을 것이다.

“그래, 그래. 네 말이 맞구나. 개가 배를 곪는데도 밥을 주지 않는 녀석은 주인 자격이 없는 것이지. 개에게 물어뜯기더라도 할 말이 없다.”

나는 눈을 빛냈다. 그의 말대로, 아덴 리텐슈노프는 주인으로서의 자격이 없었다. 배곯기 전에 밥을 주기는커녕, 쓸모를 다하자마자 삶아버리지 않았나?

그러니 내가 녀석을 물어뜯는 건 당연한 일이다. 녀석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넣고, 내 충성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대가를 톡톡히 받아내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드레커야, 이 사실을 언제나 명심하거라.”

마그너스는 문득 웃음을 멈추었다.

“개에게는 언제나 허기를 가시게 할 만큼만 밥을 주어야 한다. 배가 부를 만큼 고깃덩이를 입에 넣은 개는, 그 순간부터 개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충고했다.

“둘 중 하나다. 너무 살이 쪄서 나태해지거나……. 아니면, 네가 쥔 고깃덩이를 노리고 덤벼들거나.”

개에게 너무 많은 보상을 주면 게으른 돼지가 된다. 혹은, 주인의 것을 탐하며 송곳니를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러니 언제나 선을 지켜야 한다.

나 또한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전 삶, 마그너스가 말한 것과 비슷한 개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마그너스는 벌써부터 나에게 제왕학을 교육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손자라는 내 한계를 알면서도 말이다.

어찌되었든 내겐 나쁜 게 아니다.

난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그너스는 음음,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다가, 이내 내 눈을 마주하곤 말했다.

“이 말을 언제나 머릿속에 새겨두거라. 개들을 항상 배고프게 해야 한다. 네가 개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교활한 늑대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마그너스의 말은 내 정곡을 찔렀다. 난 굳은 얼굴을 감추기 위해 재빨리 고개를 꾸벅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가주님.”

“음. 가주, 라…….”

마그너스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을 찌푸리더니, 곧 내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웃었다.

“이놈, 이럴 때는 할아버지라고 부르거라.”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라.

이것 또한 놀랄 일이다.

마그너스가 제 혈육에게 사적인 호칭을 허락하는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 제랄드조차도, 마그너스를 언제나 ‘가주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지 않았던가?

그러니 마그너스가 내게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허락했다는 사실은 꽤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래, 그래……. 아침부터 불려오는 바람에 식사도 못 했지? 일단 식사부터 하자꾸나.”

마그너스는 원탁 위의 종을 두어 번 흔들었다. 그러자 중앙 홀 뒤편의 문이 열리며, 요리사들이 트레이에 음식을 한 가득 담고 들어왔다.

고기, 생선, 해산물까지. 진수성찬이 따로 없는 요리들이 원탁에 툭툭 올라왔다. 아직 어린 나이의 나를 위한 것처럼 보이는 케이크와 초콜릿도 올라왔다.

“어서 먹으려무나.”

마그너스가 인자하게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나 또한 배가 고파오던 참이다. 재빨리 식기를 들고 이것 저것 집어먹자 마그너스의 미소가 더더욱 깊어졌다.

긴장이 풀리고 시장기가 몰려왔다. 그 많던 음식들이 순식간에 게 눈 감추듯 내 뱃속으로 사라졌다. 마그너스는 음식에 거의 손도 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한참 후, 내가 어느 정도 배를 채웠을 무렵이 되자 마그너스는 흐뭇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배가 많이 고팠느냐?”

“네, 할아버지.”

“그래, 잘 먹는구나. 좋다.”

마그너스는 톡톡 테이블을 두들겼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 그의 얼굴에 주름이 패였다. 아무래도 이번 사건의 처우를 결정하는 모양이다.

결론만 따지고 본다면 난 효과가 확실히 증명되지 않은 혈맥법을 섣불리 내 몸에 실험했고, 심지어 마나 하트의 구축까지 실패했다.

마그너스의 성격 상, 이럴 땐 벌을 줄 터였다.

허나, 마그너스는 내 설명으로 혈맥법의 가능성을 충분히 깨달았을 것이다. 또한 내가 방금의 면담으로 꽤 많은 점수를 땄다는 점도 감안해야겠지.

그렇다면 아마도…….

“일단, 네가 섣부르게 행동한 것은 잘못이다. 아무리 확신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성급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 아니냐?”

마그너스는 근엄한 얼굴로 날 질책했다.

“모두에게 비밀로 하더라도, 최소한 네 수호 기사에게는 네가 하려는 걸 충분히 설명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 녀석은 너를 지키는 수호 기사다. 언제나 그 사실을 명심해라, 드레커야.”

세르폰을 배제한 것에 대한 지적 역시 들어왔다.

겨우 한 달도 전에 세르폰이 내 기사라는 둥 주장을 했었기에, 부끄러움에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네……. 할아버지.”

“그 벌로…… 너에게 3일 간의 근신을 명하겠다.”

좋아!

마그너스의 판결이 떨어지는 순간, 난 조용히 주먹을 꾹 쥐었다. 근신 3일. 겨우 이 정도의 처벌을 과연 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건 내게 벌을 줄 생각이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잘못한 것으로 벌을 받았다면, 잘한 것은 상을 주어야겠지.”

그 증거로 마그너스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네가 생각한 혈맥법이라는 기술이 마냥 허황된 소리는 아닌 것 같구나. 사실상 네가 마나 하트를 만드는 데 실패한 건 마나가 부족해서가 아니더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술을, 너는 어떻게 쓰고 싶으냐?”

“네?”

마그너스의 물음에 눈을 깜빡였다. 순간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혈맥법을 어떻게 쓰고 싶냐니?

설마?

“네 진심을 말하거라. 그건 네가 만든 기술이란다.”

당연히 난 마그너스가 가문에 보급하겠다고 할 줄 알았다. 이건 가히 혁명이나 다름없는 기술이 아닌가?

당장 이 혈맥법을 가문에서 육성하는 아이들의 몸에 사용한다면, 몇 년은 더 빨리 마나에 적응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가문보다 몇 발자국은 앞서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던가?

가문의 안위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마그너스가 이런 판단을 내릴 줄이야?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저는…….”

고민이 되었다. 내 본심을 말하는 게 옳을까? 아니면 가문을 위해 쓰라고 하는 게 옳을까?

마그너스는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 모습에 난 결정을 내렸다.

“혈맥법을, 저를 위해 쓰고 싶습니다.”

마그너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곧, 그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내 생각에는, 네가 한 말은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구나.”

움찔하고, 몸이 부르르 떨렸다.

“너를 위해 쓰겠다, 그것은 필히 너 혼자만이 혈맥법의 혜택을 보겠다는 뜻은 분명 아니겠지.”

마그너스의 시선이 마치 내 살가죽을 벗기려는 칼날처럼 날카로이 전신을 훑었다.

“네가 한 말을, 너의 사람에게만 혈맥법의 혜택을 주고 싶다는 이야기로 생각해도 되겠느냐?”

마른침이 입 안에 고였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혹시 마그너스는 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야망을, 늑대의 송곳니를 꿰뚫어 본 것일까?

“저, 그…….”

“마음대로 하거라.”

“네, 네?”

당황한 탓에 말을 더듬었다. 마그너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혈맥법은 네가 만든, 너의 것이 아니더냐? 그렇다면 네가 쓰고싶은 대로 쓰는 게 맞겠지.”

“알, 알겠습니다. 가주님.”

“요놈, 할아버지라 부르래도.”

“……네,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 글자 한 자 한 자마다 난 꼬박꼬박 힘을 주었다. 이 가문에서 오로지 나만이 가진 특권이 아닌가? 사용하지 않으면 손해다.

리텐슈노프의 선조 중 하나도 말하지 않았던가? 황금 갑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고.

“그럼, 그건 되었고. 이제 상을 줘야겠지?”

“네?”

마그너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거기, 누구 있나?”

마그너스가 등 뒤를 돌아보며 소리치자, 곧 검붉은 제복을 입은 중년 사내가 중앙 홀 안으로 들어섰다.

‘저 사람은…….’

난 그 중년 사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마그너스의 복심, 오직 유일하게 마그너스가 내린 결정을 번복하게 만들 수 있던 인물. 리텐슈노프 가문의 조율자라고 불리던, 전설의 사나이.

징벌 기사단장, 아자르 랭커스터.

노년의 얼굴이 아직 젊은 시절인 지금에도 남아있었기에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전생의 내가 평생토록 꿈꾸던 자리가 바로 아자르의 위치였다.

가주의 대리인이라니. 얼마나 달콤한 단어인가?

중앙 홀로 들어온 아자르는 내게 한 번 눈길을 주곤, 곧바로 마그너스의 곁에 섰다.

“지금 관리인이 없는 영지가 몇 개야?”

“어느 정도의 영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주군.”

“중하 등급.”

아자르는 잠시 고민하더니, 곧 대답했다.

“중하 등급이라면…… 여섯 개가 있습니다.”

“적당히 살펴볼 수 있게, 적당히 정리해서 가지고 와.”

“알겠습니다, 주군.”

아자르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숙이고 물러섰다.

마그너스는 아자르가 떠나는 걸 확인하곤,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혈맥법에 관한 부분은 너에게 주는 상이라고 할 수 없다. 원래부터 너의 것이니까.”

마그너스의 첫마디에 절로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아자르와 나눈 대화로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그래도 기대감에 흥분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영지라니. 영지를 주다니!

리텐슈노프의 아이들이 15살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나눠 주지 않는 것이 영지가 아니었던가!

이건, 어마어마한 특혜였다.

“그러니 너에게 영지를 하나 주려고 한다. 물론, 네 형제들이 받는 것에 비해서 그다지 수익이 나지 않는 중하 등급의 영지일 것이다.”

상관없다. 중요한 건 영지를 받는 순간이다.

겨우 여덟 살에 영지를 받는 것만큼 마그너스가 나를 총애하고 있다는 증거가 어디 있을까?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허허, 그리 좋더냐?”

“네!”

난 으레 기분이 좋은 어린아이가 하듯 만세를 불렀다. 아무리 이곳이 리텐슈노프 가문이라고 해도, 할아버지에게 큰 선물을 받았는데 덤덤히 있는 어린아이는 세상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 무렵 아자르가 다시 돌아왔다. 그는 몇 장의 서류를 품에 끼고 있었다. 마그너스는 서류를 받아 펼쳐보고는, 그중에서 몇 장을 뽑아 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 중에서 한번 골라보거라. 네가 처음으로 가지는 영지이니, 직접 고르는 게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나는 재빨리 서류를 받아 들춰보았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마그너스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서류를 차지하는 건 거의 다 지도였다.

아무래도, 마그너스가 영지의 수익 구조나 현황 등이 적혀 있는 서류는 일부러 배제한 모양이다.

이건 내 운을 시험해보겠다는 뜻인가?

하나, 마그너스가 한 조치는 무의미했다. 목록을 훑자마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난 곧바로 한 장의 서류를 뽑아 들어 마그너스에게 내밀었다.

“여기, 여기로 하겠습니다.”

“콜마운트 영지라……?”

마그너스가 약간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콜마운트 영지는 딱히 특별한 강점이 없는 영지이기 때문이다. 철이 산출되지도 않고, 무역 거점도 아니다. 농지 또한 그리 넓지 않다.

솔직한 평가로는 아자르가 뽑아온 여섯 가지 영지 중에서 콜마운트는 가장 안 좋은 영지였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그것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평범한 자들이 내린 평가에 불과하다.

‘콜마운트 영지에 숨겨진 고대 유적의 입구를 리텐슈노프 가문이 발견하는 시점이…… 앞으로 5년 후인가?’

전생을 기억하는 나에게는, 이 영지야말로 진흙 속에 숨겨진 다이아몬드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