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30년 간 리텐슈노프 가문의 충견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뭐 하나라도 특출한 것이 있어야 한다.
내게는, 그것이 마나 컨트롤 능력이었다.
동기들에 비해 약간 뒤쳐지는 육체 능력과,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검술 실력.
그런 내가 계속 리텐슈노프에 붙어있을 수 있던 것은, 마나 운용에 관해서는 독보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리텐슈노프의 혈족들에 비하면 태양 앞의 촛불에 불과한 재능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몸에는 그 위대한 피가 흐르고 있다.
이깟 마나 하트 따위.
식은 죽 먹기에 불과했다.
“후우!”
구축이 끝나자마자, 난 깊게 숨을 토하며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했다. 혈맥법으로 구축을 시작한 뒤로 대략 15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이 정도면…… 평균보다 10분 정도 빠르다.’
일반적으로 혈맥법으로 마나 하트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25분에서 30분 정도. 마나를 다루는 재능이나 노하우가 뛰어날수록 그 시간은 짧아진다.
그리고 혈맥법으로 마나 하트를 구축하는 데 고작 15분이 걸렸던 사람은 내 기억상 존재하지 않았다.
‘역시, 혈통이 좋긴 좋다니까.’
당분간은 내가 세운 15분 기록은 깨지지 않으리라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도, 도련님. 설마 벌써 성공하신……?”
한편, 세르폰은 내가 15분 만에 마나 하트를 구축했다는 사실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구축법으로 마나 하트를 만들면, 보통 1시간에서 2시간 남짓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세르폰에게 내가 말해준 거라곤 혈맥법이 심장이 아직 여물지 않았을 때도 마나 하트를 만들 수 있다는 것뿐이니, 저런 반응은 이상하지 않았다.
‘좋아. 그럼…….’
나는 여전히 경악하고 있는 세르폰을 뒤로 한 채, 조심스럽게 몸 상태를 점검했다.
전신에 넘칠 듯 가득 차 있던 마나는 꽤 줄어 있었다. 혈관을 강화할 때, 내 생각보다 마나가 많이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하나 상관없다. 이 정도라면 가문에 굴러다니는 영약 몇 개 주워 먹으면 다시금 채울 수 있는 양이다.
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전체적으로 주요 혈관은 빠진 곳 없이 다 강화된 것 같은데…….’
움직이는 순간 근육이 결리거나, 무언가 막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강화가 덜 된 곳이 있을 수는 있다.
‘원숭이도 가끔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니까.’
물론 그런 실수를 했더라도 어차피 찾아서 보수하면 되니, 큰 문제는 없지만 말이다.
‘그게 혈맥법의 장점이지.’
혈맥법은 심장에 비해 혈관이 더 유연하다는 것을 이용해 심장이 덜 자랐을 때도 마나 하트 구축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반대로 말하면 어딘가 빠진 곳이 있을 때, 즉각적으로 문제가 생긴 부분을 고칠 수 있다는 소리다.
평범한 구축법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단은…… 적당히 한 바퀴 돌려볼까?’
그리고 혈맥법에서 구멍을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혈관에 한 번 마나를 흘려보내면 된다. 그때 통증이 느껴지거나, 멍이 드는 곳이 바로 구멍이었다.
‘하는 김에, 마나가 일주하는 시간도 확인해보자.’
나는 주먹 크기의 휴대용 시계를 가져와, 그것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고는 초침이 정확히 12시에 맞춰질 때까지 기다렸다. 정확히 0초가 되는 순간, 난 곧장 혈관에 마나를 주입했다.
두근 두근!
마나가 심장 박동을 따라 혈관을 타고 질주했다.
“……!!”
빠르다.
내 생각보다 마나의 흐름이 훨씬, 엄청나게 빨랐다.
상상하던 것, 그 이상의 속도였다.
겨우 눈 한번 깜빡할 사이에 전신을 다 일주하다니?
그 과정에 걸린 시간은 고작 3초.
마치 힘이 넘치다 못해 질주하는 야생마 같았다.
“후우!”
몇 바퀴 더 돌려서, 강화에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나는 마나 운용을 멈췄다. 그리고는 조용히 데우스에게 질문했다.
‘원래 이 정도로 차이가 납니까?’
그러자 데우스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최소 열 배, 아마도 네 재능이라면 열다섯 배는 더 운용이 빠를 것이니라. 한데, 이건 고작 기본적인 효과에 불과하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지금 이것도 엄청난데, 여기서 더 숨겨진 것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무래도 믿기 힘든데요?’
[……아직 네 녀석은 용의 심장이 가진 진짜 힘의 십 분지 일도 맛보지 못한 셈이다. 그걸 전부 다 얻었을 때,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지 상상이 되느냐?]
기절초풍할 이야기였다. 이게 고작 1/10도 안된다고?
곧 흥분이 몰려왔다. 마치 시원한 탄산수를 들이마신 것처럼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당장이라도 천장이 무너지라 탄성을 내지르고 싶었다.
‘지금 이 속도면…….’
열다섯 살이 되기 전에 전생의 힘을 전부 되찾을 수 있겠는데? 그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아직 이전 삶의 지식을 절반도 풀지 않았는데, 벌써 이 정도의 경지까지 올라서다니?
심지어 아직 나는 가진 카드가 넘쳐났다.
콜마운트 영지에 숨겨진 유적 안 보물.
나를 향한 마그너스의 총애.
그리고 블러드하운드 27식!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훈련실 한 쪽 벽에 내걸린 수련검을 집어들었다.
어서 빨리 블러드하운드 27식이 가진 소망을, 숨겨진 힘을 알고 싶었다. 그를 위해 일부러 단단하다고 유명한 레어 메탈로 만들어진 수련검까지 챙겨오지 않았나?
얼른 블러드하운드 27식의 기본 자세를 잡고 검을 휘둘렀다.
내 손짓을 따라 수련검이 허공을 갈랐다. 레어 메탈 특유의 회색 빛이 눈앞에서 번쩍거렸다.
1식. 2식. 3식. 4식……
나는 더욱 더 속도를 높였다.
블러드하운드 27식의 묘리가 펼쳐진다.
더 빠르게, 그리고 더 가볍게!
동시에 난 마나를 일깨웠다. 마나 하트를 타고 몸 속 마나가 솟구쳤다. 나는 요동치는 마나를 수련검 안에 불어넣었다. 제멋대로 움직였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내 의지로 말이다.
그 순간.
파각!
“……!!”
어김없이 검이 부서졌다.
빠득 하고 절로 이가 갈렸다. 다시금 이전과 같이 파편이 비산했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왜? 이번에는 뭐가 문제였지?’
어지간히 마나를 운용해도 멀쩡해야 하는 레어 메탈 수련검이다. 당장 내 마나를 전부 다 쑤셔박는다고 해도 충분히 버텨야 하는 검이란 말이다.
“설마…….”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다시금 훈련장 벽으로 달려갔다. 손에 잡히는 대로 벽에 걸려 있는 검을 뽑아서 다시 블러드하운드 27식을 펼쳐보았다.
물론 어김없이 마나를 주입하는 순간, 검은 산산조각이 나며 터져나갔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검이 터질 건 예상했으니까.
그 대신 나는 곧장 새로운 검을 뽑았다. 다시 블러드하운드 27식을 펼치며, 나는 마나의 흐름에 집중했다. 내가 흘려보낸 마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확히 다섯 개의 검을 깨부수고 나서야 나는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젠장.”
블러드하운드 27식의 힘은, 검을 깨부수는 것이었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나도 이해가 안 된다!
‘검을 깨부수는 검술이 뭐야?’
대체 왜 그런 걸 소망한 거지?
이 검술을 만든 놈의 얼굴을 보고 싶어졌다.
‘왜 검술을 펼치면 검이 부서지게 만든 거지?’
대체 그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젠장.”
손잡이만 남은 검을 훈련장에 아무렇게나 내던진 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세르폰이 헐레벌떡 달려와 내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그제야 파편에 얼굴을 베였다는 걸 깨달았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역시 그 검술은…….”
“……잠시만요. 혼자 생각을 좀 하려는데, 자리 좀 비켜주시죠.”
세르폰의 염려를 일축하며, 난 축객령을 내렸다. 그는 침음성을 삼키며 조용히 훈련동을 빠져나갔다.
나는 다시 블러드하운드 27식의 검식을 복기했다.
블러드하운드 27식의 특징은?
첫 번째. 레어 메탈을 단번에 부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두 번째. 그 힘을 발동하는 데 필요한 마나는 아주 적다. 진짜 극소한 양으로도 힘이 발동된다.
세 번째. ……문제는 그 힘이 내 검에 발동된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머리가 아파왔다. 만약 그 순간 데우스가 툭 던지듯 한 말이 없었다면, 한참을 고민했을지도 몰랐다.
[그럼 그 힘을 방출하면 되는 일 아니더냐?]
“……네?”
[방출 말이다, 방출! 이놈아, 머리를 좀 굴려봐라. 그렇게 단단한 검도 깨부수는 힘이라면, 상대가 가진 무구도 쉽게 깨트릴 수 있지 않겠느냐?]
‘……아!’
눈이 확 뜨였다. 바꾸면 된다니!
‘그래, 검식을 수정하면 되는 일이잖아?’
이미 완성된 검식이라는 생각이 너무 머릿속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다. 필요하다면 검식 정도는 수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가. 그걸 떠올리지 못하다니.
마그너스에겐 상식을 비틀라고 말했으면서, 정작 나는 그 상식에 얽매여 있었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흠, 물론 그것은 말로 할 때나 쉬운 일이긴 하다. 사실상 지금 당장 네가 새로운 검식을 창안해야 하는 셈이 아니더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러나 정작 의견을 꺼냈던 데우스는 부정적이었다.
“……검식을 새로 쓰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음, 잘 들어라. 일단…… 네 녀석이 가진 재능은 참으로 뛰어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 재능만으로는 그 누구냐……? 마, 마…….]
“마그너스 가주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놈! 그놈이랑 필적할 게다. 심지어 네 검술에서는 쥐똥만한 꼬맹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노련함까지 보이거든? 무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단 말이다.]
물론 그 노련함은 전생의 경험 때문일 거다.
당연히 이런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내가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에게도 밝힐 생각이 없으니까 말이다.
[하나, 마나를 다루는 건 다른 이야기다.]
데우스는 진지한 목소리로 충고했다.
[그것은 아득한 노력과 경험, 실전이 없이는 충당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능이 너무나도 뛰어나서, 검을 잡자마자 소드마스터가 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느냐? 소문으로라도 말이다.]
당연히 없다.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나처럼 전생을 기억한다면 또 모를까.’
[그러니 당장은 포기하거라. 네가 가진 힘으로는 지금 바로 새로운 검식을 만들 수는 없으니라.]
데우스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나, 그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더욱 욕심이 생겼다.
레어 메탈을 손쉽게 파괴할 수 있는 검식.
이 힘을 손에 넣으면 리텐슈노프 가문의 가주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지.
“그럼…… 얼마나 실력을 쌓으면 가능하겠습니까?”
[……음, 일단 검술 실력이 출중해야 하겠지. 최소한 7성 급의 경지가 되어야 할 거다. 그리고 마나도 잘 다뤄야지. 검식에 소망을 담으려면 최소한 마나 컨트롤 만큼은 소드마스터에 필적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7성의 경지에 올라서보아야 하고, 최소한 소드마스터 만큼은 마나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라…….’
전생에 내가 이룬 경지가 딱 그정도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자리에서 일어섰다. 데우스가 의아한 투로 물었다.
[뭐하냐? 설마 해보려고 그러느냐? 아서라, 시간만 들고 공칠 게 뻔하다.]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 입이 간질거렸다. 그렇다고 전생의 비밀을 말할 수는 없었기에, 난 살짝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한 번 도전해 볼 가치는 있지 않겠습니까?”
[……네 맘대로 하거라. 네 재능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실패라는 걸 배워두는 게 좋겠지.]
‘……실패라.’
씨익.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내가 실패할 리가 있나?
오히려 생각보다 너무 쉽게 성공하는 바람에, 데우스에게 의심을 사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검을 쥐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