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나는 그 즉시 동굴 방향으로 뛰었다.
동시에 가장 가까이 있던 안톤에게 소리쳐 상황을 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톤! 다른 두 사람을 챙겨서 따라와라! 몬스터다!”
“네? 도련님?”
“어서!”
더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루시엘이 아무리 미래의 소드마스터라지만, 지금은 겨우 열 살짜리 어린아이다. 첫 실전, 그것도 이런 지독한 눈발 속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스르릉!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들며 나는 생각했다.
‘동굴 안에 이미 자리를 잡은 놈이 있었나? 아니면 이동 중에 습격?’
둘 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젠장.’
훈련을 위해 이곳에 풀어놓은 몬스터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내게는 별것 아닌 놈들. 하지만 하급반 수련생들이 혼자서 상대하긴 어려운 수준이다.
손아귀에 힘이 꾹 들어갔다.
그리고 곧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루시엘에게 수색을 명령한 절벽 앞에 도착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는 성인 키 만한 구멍이 뻥 뚫려 자연 동굴이 형성되어 있었다.
동굴 입구를 확인한 난 입술을 씹었다.
이 거샌 눈보라 속에서도 입구 앞에는 발자국과 핏자국이 어지러이 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꼬맹아, 이건…….]
‘아무래도, 루시엘이 이곳에 도착한 후에 동굴 안쪽도 수색하려다가 당한 것 같습니다.’
바닥에 방울방울 떨어진 핏자국이 동굴 안쪽으로 향하는 게 그 추측을 뒷받침했다.
“도련님! 대체 무슨 일이십…… 헉!”
“허억!”
뒤늦게 나를 따라온 세 사람이 바닥에 가득한 전투의 흔적을 발견하곤 소스라치듯 놀랐다.
“이건…… 핏자국?”
“설마 루시엘이 몬스터에게 습격이라도 당한 겁니까?”
안톤은 창백해진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혹시 다른 조의 습격입니까?”
“그건 아냐.”
난 고개를 저었다.
바닥에 뿌려진 혈흔의 모양세나 희미하게 남은 발자국을 볼 때, 습격자는 몬스터가 분명했다.
‘그것도 짐승형 몬스터겠지.’
난 바닥에 떨어진 털조각을 집어들었다. 회백색의 짧고 거친 털. 이런 털을 가진 몬스터는 흔치 않다.
지금 종합 평가를 위해 아르페리움 산에 뿌려진 몬스터 중에서 고른다면 후보는 더더욱 좁혀진다.
‘설산 늑대, 그리고 아이스팽.’
둘 다 무리 생활을 하는 놈들이다.
다행히 놈들은 사냥감을 절대 바로 해치지 않는다.
무엇을 사냥했든 언제나 저들의 우두머리에게 바친 뒤에야 처분하는 본능이 있기에, 울음소리가 들렸던 시간을 생각할 때 아직은 무사할 확률이 높다.
하물며 수호 기사들도 있었다.
‘진짜로 위험한 상황이라면, 그들이 개입했을 거야.’
종합 평가 중 목숨이 위험한 순간이 온다면 수련생을 감시하던 수호 기사가 직접 나서게 되어 있었다.
점수는 많이 깎이겠지만, 목숨은 안전하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순간에도 점수 깎일 걸 걱정하는 거냐? 냉혹하기 그지없는 놈. 참으로 리텐슈노프다운 놈.]
나는 궁시렁거리는 데우스를 무시한 채, 세 사람의 조원들을 돌아보며 힘주어 소리쳤다.
“지금부터 수색을 시작한다!”
“네!”
“남겨진 흔적을 볼 때 적의 숫자는 다수, 이빨이나 발톱 따위를 사용하는 짐승형 몬스터로 추측된다. 루시엘은 놈들에게 잡혀 동굴 안으로 끌려간 듯하다. 전투를 준비해라!”
“네, 도련님!”
“동굴 안에 진입할 때는 방어 대형을 짜고, 내가 선두에, 안톤이 후미에 선다. 알겠나?”
“네!”
세 사람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움직였다. 동료가 잡혀갔다는 사실 때문인지 움직임이 빨랐다. 나는 그들이 진형을 갖춘 것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진입한다.”
곧바로 동굴 안으로 발을 들였다.
동굴 안은 묘하게 아늑했다. 이런 강추위라면 으레 천장에 매달려 있어야 할 고드름도 없었고, 어째서인지 안쪽에서는 따뜻한 공기가 불어오는 것 같았다.
‘이러니까 몬스터가 자리하고 있었구만.’
혹한의 아르페리움 산에서, 이런 동굴은 몬스터들에게는 명당 중에 명당이다. 이 정도라면 내가 예상한 것보다 자리를 잡은 몬스터의 숫자가 더 많으리라.
‘물론 숫자가 많아도 3급은 3급.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3급 몬스터 따위는 아무리 머릿수가 많아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세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었다. 미래에 소드마스터가 될 재원이라지만 아직은 미숙하기 때문이다.
“…….”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몬스터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털오라기나 발톱 자국이 점점 늘어나고 바닥에는 뼈들이 굴러다녔다. 모양세를 보아하니 고블린 따위의 것 같았다.
‘이 흔적은…….’
대략적인 몬스터의 윤곽이 머릿속에 잡히는 듯했다.
‘아이스팽.’
2급 몬스터로 분류되는 녀석들이 분명했다.
‘다행이다.’
생각보다 덜 까다로운 놈들이 걸렸군. 그런 생각에 내가 안도하는 순간 가롯이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도련님, 루시엘은 아직 괜찮겠죠?”
“아직은 괜찮을 거다.”
“그렇습니까?”
“발톱 자국을 볼 때 루시엘을 습격한 놈들은 아이스팽이다. 흔적의 양을 생각하면 머릿수는 대략 열에서 스물 정도겠지.”
“아이스팽 스무 마리요?”
내 대답에 안톤이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당황한 모양이다. 하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지금의 전력으로 2급 몬스터, 그것도 집단 생활을 하는 스무 마리를 상대하는 것은 만용에 불과했다.
‘내가 없을 때의 이야기지만.’
나는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렸다. 언제 어느 때고 곧바로 전투를 시작할 수 있게 준비했다.
그 순간.
-크륵…….
전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앞쪽에서 다가온다.”
내가 조용히 속삭이자, 세 사람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 또한 용의 심장으로 강화된 육체가 없었다면 절대로 듣지 못했을 정도의 작은 소리였다. 그들이 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곧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라도 의문을 품지 않은 채 따르는 모습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감상을 품고 있을 시간은 없다. 점점 더 울음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달려오는 아이스팽들.
아마도 준비하지 않았다면 눈치채기 힘들었으리라.
“전투 준비!”
내 고함소리와 동시에 수십 쌍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총합 12마리의 아이스팽. 놈들은 긴 송곳니가 툭 튀어나온 입에서 침을 흘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숫자가 적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오히려 무리의 크기가 작았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스팽이 스무 마리가 넘었다면 다른 세 사람을 보호하면서 싸우는 것은 무리였으리라.
-크르륵!
-컹! 컹!
놈들은 천천히 우리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이쪽을 경계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넝쿨째 굴러들어온 먹잇감이라 생각하고 입맛을 다시는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놈들의 우두머리를 찾았다.
‘꼬리를 세우고 있는 놈……. 찾았다.’
그리고 곧 나는 아이스팽 무리 한 가운데에서 꼬리를 쭉 세우고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다른 놈들보다 덩치가 두 배는 더 큰 놈이었다.
저놈이 우두머리구만.
[생각보단 크기가 작구나.]
‘그렇죠.’
데우스의 평가에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 본 아이스팽 중에서는 덩치가 저놈보다 두 배는 더 큰 녀석도 있었다. 물론 저 정도 크기면 평범한 놈들 중에서는 큰 편이었다.
[저 놈은 드레커, 네가 상대해야 할 것이다. 다른 녀석들은 아직 무리야.]
데우스가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온다!”
송곳니를 번뜩이며 아이스팽들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아이스 팽 한 마리가 내 팔을 노리고 입을 쩍 벌렸다. 전형적인 개과 짐승의 패턴. 어지간히 이쪽을 무시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무방비하게 달려들 수도 없으리라.
-서걱!
나는 놈의 아래턱을 베어내는 것으로 대답했다.
-케헹!
입가에서 핏물을 흩뿌리며 비명을 지르는 놈의 배를 걷어차 날려버린 뒤, 그 다음으로 뛰어든 녀석의 목을 그었다. 녀석은 피분수를 뿜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내 기세에 놀랐는지, 놈들이 머뭇거렸다. 그 사이 나는 재빨리 아까 걷어찬 아이스팽의 심장에 검을 꽂아넣어 확실히 숨을 끊었다.
‘이걸로 두 마리 째.’
역시 내 예상대로 쉬웠다.
아이스팽은 2급 중에서도 약한 편에 속하는 놈들이었다. 집단으로 움직이는 특성과 간간히 발생하는 돌연변이들 덕분에 2급 판정을 받았을 뿐, 사실 한 마리 한 마리를 따지자면 1급을 조금 못 넘는 놈들이다.
‘저쪽도 도와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가롯과 안톤, 그리고 카를 또한 제각각 한 마리씩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이미 바닥에는 죽은 아이스팽이 하나 누워 있었으니, 이제 남은 건 여섯 마리.
‘충분하군.’
이 정도면 나 혼자서도 쓸어버릴 수 있다.
나는 다시금 검을 바로잡았다. 그리고는 우두머리 아이스팽을 향해 몸을 날려 검을 휘둘렀다.
-케헹!
설마 내 쪽에서 달려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우두머리 아이스팽이 황급히 몸을 피했다. 녀석은 겁도 없이 자신들 틈바구니로 뛰어든 나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걸렸군.’
[멍청한 놈들이잖냐?]
내가 노리던 것은 놈들의 시선을 나에게 집중시키는 것이다. 지금 내 조원들은 각각 한 마리씩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이게 훨씬 더 내가 싸우기 편하지.’
다른 것에 신경쓸 필요 없이, 몬스터만 보면 되니까.
‘덤벼라, 멍멍이들아.’
나는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놈들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 * * * *
아이스팽 12마리를 처치하는 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2성의 성취에 도달한 나 혼자서도 전부 처치가 가능한 숫자였다. 거기에 세 사람이나 더 늘었으니, 놈들을 토벌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동굴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쓰러진 루시엘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피를 좀 흘린 탓인지 약간 창백했지만, 다행히도 치명상까지는 아니었다.
간단히 응급처치를 끝마친 뒤, 나는 루시엘을 세 사람에게 맡기고 동굴 안쪽을 수색했다. 또 안쪽에 숨어있는 몬스터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게 끝이었나?”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아이스팽을 제외하면 몬스터의 흔적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동굴의 온기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생각보다 동굴이 깊긴 한데.’
예상외로 깊은 동굴이었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굳이 끝까지 수색을 할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다.
‘이제 돌아갈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쥐방울만한 꼬맹이야.]
“네?”
데우스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뭐지? 의아함을 느낄 새도 없이, 동굴 끝에서 무언가 진동이 느껴졌다.
난 재빨리 검을 들어올렸다.
[아무래도 너 엿된 것 같구나.]
-콰르르륵!
무언가 거대한 것이 다가오는 듯한 소리였다.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난 억지로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그 순간!
-슉!
어둠을 뚫고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가 솟구쳤다. 재빨리 굴단 검식으로 검을 강화하며 막아냈다.
-쾅!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눈앞에 번쩍 불꽃이 튀었다. 나는 순식간에 힘에 밀려 뒤로 내동댕이쳐졌다. 뼈가 울릴 정도의 충격. 전신이 삐걱거렸다.
“크윽!”
난 비틀거리며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보였다.
어둠 속을 가득 채운 한 쌍의 붉은 눈동자가.
4급 몬스터 중의 최정점. 바실리스크였다.
“어쩐지…….”
이렇게 좋은 명당 자리에 왜 주인이 없나 했다.
‘이런 걸 안 치우고 그냥 둬?’
수호기사들의 태만에 절로 이가 갈렸다.
바실리스크는 강철 같이 단단한 비늘 덕분에 어지간한 3성 기사들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놈이었다. 3성 기사도 그런데, 하급반 수련생이라면?
당연히 학살당하리라.
[드레커야.]
“네.”
[오히려 잘 됐다.]
물론, 나는 다르다.
[이번 기회에 새로 만든 검식, 시험 좀 해보자.]
“그러죠.”
내겐 블러드 하운드 54식이 있으니까.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