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바실리스크.
마치 닭과 흡사한 볏을 머리 위에 달고 있는 이 거대한 도마뱀은, 4급 몬스터 중 최강이라는 그 명성에 걸맞게 상당히 까다로운 녀석이다.
어지간한 검식의 오러는 쉽게 뚫을 수 없는 강철같이 단단한 비늘을 가지고 있었고, 사안이라는 별명이 붙은 피어Fear는 3성 기사의 몸도 굳게 만들었다.
하물며 마차 서너 개를 붙여놓은 것보다 거대한 녀석의 몸집은 또 어떤가?
그 육중한 몸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근력은 안 그래도 처치하기 어려운 바실리스크의 등급을 4급 몬스터의 최정점에 올려놓았다.
‘물론…….’
약점은 있지.
나는 조용히 블러드 하운드 54식을 펼치며 생각했다.
바실리스크는 솔직히 능력만 두고 보면 5급으로 분류되어야 할 몬스터였다. 그렇기에 녀석이 최정점이라지만 4급으로 분류된 이유는 분명히 존재했다.
[드레커야. 너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바실리스크의 공격 패턴은 매우 단조로운 편이다.]
“알고 있습니다.”
[했던 걸 또 하고! 또 하고! 저놈은 상대가 그 공격을 피하든 말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거, 대가리 위에 닭 볏이 달린 이유가 다 있다니까?]
그 이유는 바로 4급 몬스터에 걸맞지 않은 멍청함!
바실리스크는 아까 내가 조원들과 함께 쓰러트린 아이스팽보다도 멍청했다.
솔직히 멍청함만으로 따지면, 슬라임보다도 머리가 안 좋을 정도였다.
물론 반대로 말하면 그런 어마어마한 멍청함에도 녀석이 4급 몬스터 최정점이라는 건 그만큼 바실리스크가 가진 신체 능력이 압도적이라는 뜻이지만 말이다.
‘강철같은 비늘을 뚫을 수만 있다면 고작 용병단 따위도 사냥이 가능한 4급 몬스터에 불과하지.’
물론 어지간해서는 바실리스크의 비늘을 깨부수기 힘들다. 3성 기사가 펼치는 오러도 놈의 비늘에는 흠집을 내기 힘드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블러드 하운드 54식이 있다.
상대의 무장을 깨부수는 힘을 가진 검식 말이다.
‘블러드 하운드 54식의 오러가 있는 이상, 이놈은 나 혼자서도 충분히 사냥 가능해.’
어차피 바실리스크의 공격 패턴은 굳이 읽어낼 필요도 없었다. 과거에 물릴 정도로 바실리스크를 잡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피어?
전생에 7성 기사까지 찍어본 몸이다.
고작 4급 몬스터 따위가 뿜어내는 피어는 내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좋아.”
나는 검을 쥔 손아귀에 꾹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나는 바실리스크를 노려보며 검 끝을 내밀었다.
“덤벼, 닭대가리야.”
-크르르륵!
그와 동시에 바실리스크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순식간에 몸을 옥죄는 피어가 느껴졌다. 내가 그것을 가볍게 털어내자, 녀석은 분노한 듯 울부짖었다.
-크라라!
순식간에 놈의 꼬리가 휘몰아치듯 쏘아졌다.
닭대가리 취급을 당하지만 그런데도 4급 몬스터라는 듯,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속도!
‘역시 똑같아.’
하지만 놈이 꼬리를 휘두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왼쪽으로 몸을 피하고 있었다. 녀석이 어떻게 움직일지 이미 예상했기 때문에 가능한 신기였다.
내가 공격을 피하자, 녀석은 분노한 듯 다리를 쿵쿵거렸다. 하지만 예상했듯이 직접 달려들 생각은 없는지, 바실리스크는 다시 꼬리를 휘둘렀다.
몇 번의 꼬리 채찍질을 피하며 난 생각했다.
‘공격이 생각보다 둔하네?’
묘하게 둔탁하다고 해야 할까, 느리다고 해야 할까?
고작 여덟 살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데도 바실리스크 놈의 공격을 회피하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았다.
[야. 이 녀석, 다 큰 것 같지 않은데?]
그 순간, 데우스가 중얼거렸다.
‘네?’
[야, 이거 새끼 바실리스크 아냐?]
다 큰 것 같지 않다고? 나는 그 말에 바실리스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진짜네?’
그것도 방금 막 태어난 듯한 새끼가 분명했다.
마차 서너 대 크기여야 할 몸집은 한 대를 간신히 넘길 정도였고, 바실리스크가 흔히 보이는 포식자로서의 면모도 미약했다. 움직임 또한 어색했다. 아마, 아직 제 몸을 제대로 다루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네! 이거 새끼네, 새끼야.]
그와 동시에 몇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이다음 하급반 종합 평가에서 크게 사고가 한번 터졌었지?’
내년 하급반 종합 평가 때, 아르페리움 산에 숨어있던 아성체 바실리스크가 날뛰어서 열 명에 가까운 수련생이 죽었다는 것이 말이다.
‘그 사건 덕분에 하급반 교관 몇이 물갈이당했었는데…….’
아무래도 이놈이 그 사건의 주인공인 모양이다.
‘하긴, 뭔가 이상하긴 했지. 바실리스크가 똬리를 튼 동굴에 아이스팽이 기어들어 올 리가 없잖아?’
아이스팽이 이 동굴에 자리를 잡을 무렵에는 알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가, 조금 전에 태어난 모양이다.
[캬, 드레커 이 녀석이 운은 진짜 더럽게 좋단 말이지.]
데우스가 껄껄 웃었다.
[어떻게 갓 태어난 바실리스크를 만나냐?]
나 또한 절로 입꼬리라 올라갔다.
‘진짜 운이 좋았네, 이건.’
[야, 너 이거 꼭 잡아야 한다. 유체 바실리스크의 심장은 어디서 얻기도 힘든 귀물이야. 꼭 잡아라.]
갓 태어난 바실리스크의 심장은 불 속성 고위 정령의 소환 매개체로 사용되는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또한, 그냥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화염 저항력을 얻을 수도 있고. 이리저리 쓸모가 많은 심장이었다.
나는 검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는 블러드 하운드 54식을 펼쳤다.
“큭!”
순식간에 심장의 오러가 뭉텅이로 사라졌다. 역시, 아직은 이 오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기엔 마나가 부족했다.
‘그래도 몇 번이면 돼.’
난 검 끝에 서린 검붉은 기운을 바라보았다.
블러드 하운드 54식을 완성하면서 얻은 파괴의 오러.
아직은 고작 검 끝을 약간 덮는 크기였지만, 바실리스크를 사냥하는 데는 이것으로도 충분했다.
하물며 새끼라면?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지.’
그 순간 다시금 쏘아진 바실리스크의 꼬리.
나는 녀석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놈의 꼬리에 내 검을 박아넣었다. 블러드 하운드 54식의 오러가 놈의 비늘을 깨트림과 동시에 순식간에 검신이 녀석의 꼬리에 깊숙이 쑤셔박혔다.
-키아아악!
꼬리를 꿰뚫린 바실리스크가 비명을 질렀다. 놈은 고통에 겨워 재빨리 꼬리를 회수했다.
나는 꼬리에 박아넣은 검을 꽉 붙들고, 꼬리를 타고 녀석에게 접근했다. 순식간에 공간이 좁혀지며, 놈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
설마 내가 덤벼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바실리스크가 가진 파충류 특유의 눈동자가 쫙 커지는 순간, 난 검을 휘둘러 놈의 눈을 베었다.
-!!!!!!!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비명이 동굴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지체할 틈은 없었다. 재빨리 놈의 비늘을 붙잡고 머리 위로 올라섰다. 고통이 엄청난지, 놈의 몸뚱이가 마구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한 방에 끝내려면 머리통을 뚫는 게 최고지만…….’
아직 미약한 내 근력으로 놈의 두개골을 뚫고 뇌를 진탕 낼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았다. 난 머리에서 시선을 돌려 놈의 목뼈 근처를 노려보았다.
아직 놈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끝내야 한다. 노리는 건 척추가 시작되는 곳에서 정확히 세 마디 뒤의 지점.
“여기다!”
그 위치를 찾자마자, 나는 힘껏 검을 꽂아 넣었다.
또다시 뭉텅이로 마나가 사라졌다. 이제 한 두어 번 더 블러드 하운드 54식을 쓸 수 있으려나?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었다.
-쿠웅!
척추의 신경을 정확히 끊어놓은 탓에, 놈은 이제 더 이상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니까 말이다.
다리에 힘이 풀린 바실리스크가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고꾸라졌다. 여전히 몸의 근육은 꿈틀거리지만, 이제 더는 놈은 움직일 수 없다.
이제 남은 건 죽음뿐이다.
[끝났군.]
“네.”
나는 쑤셔 박은 검을 뽑아낸 뒤, 훌쩍 놈의 몸 위에서 뛰어내렸다. 여전히 움찔거리는 놈의 머리는 으르렁거리고 있었지만, 몸의 움직임을 봉인 당한 바실리스크는 그저 커다란 도마뱀일 뿐.
-카라라락!
사지가 마비당해 더는 반항할 수 없음에도 여전히 입을 쩍 벌린 채 어떻게든 나를 물어뜯으려고 발악하는 바실리스크 유체.
나는 다시 블러드 하운드 54식의 오러를 뽑아내 놈의 입천장에 검을 찔러넣었다. 정확히 뇌를 관통당한 놈은, 몸을 꿈틀거리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제야 몸의 긴장이 풀렸다. 순식간에 피로가 몰려왔다. 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시체가 된 바실리스크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덟 살에 바실리스크를 잡았다, 라…….’
고작 갓 태어난 새끼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바실리스크는 바실리스크. 이것만으로도 이미 다른 사촌 형제들을 순식간에 뛰어넘을 월등한 성과다.
현 리텐슈노프 중 나와 같은 나이에 이 정도 업적을 이뤄낸 사람은 누구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무려 소검제 에르반조차도 말이다.
‘아니, 사촌 형제들 뿐만이 아니지.’
큰아버지 중에서도 이런 업적을 이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흠.”
문득 기대됐다. 과연 내가 바실리스크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그너스가 어떻게 반응할까?
‘어쨌든 이걸로 하급반 종합 평가 1위는 따놓은 셈이군.’
풀어놓은 몬스터도 아니고, 무려 4급 최정점이라는 바실리스크를 잡았다. 새끼라는 점을 감안해도 내가 받을 점수는 어느 조보다 높으리라.
[드레커야.]
그 순간, 데우스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흠칫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또 뭔가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딱히 몬스터가 나올 기미는 없었다.
뭐지? 의아한 마음에 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근데, 너 이거 심장은 어떻게 뽑을 것이냐?]
“아.”
[비늘을 뚫는 건 뚫는 거고, 심장을 뽑아내는 건 혼자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보는데?]
“그건…….”
[새끼 바실리스크면 심장 빨리 뽑아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선도가 상해서 심장의 효능이 떨어지는 건 알고 있으렷다?]
그렇게 말한 데우스는 곧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요놈, 드디어 네 녀석이 엿을 먹는구나! 바실리스크를 잡으면 뭐하누? 심장을 못 뽑아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으하하하!]
절로 내 얼굴도 심각해졌다.
그 순간.
“도련님! 도련…… 어?”
저쪽에서 안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나와 바실리스크를 번갈아 바라보는 안톤이 보였다.
“도, 도련님. 이건 대체…… 설마 바실리스크?”
“이야, 안톤! 너 딱 좋을 때 왔네.”
“네?”
뜬금없는 내 말에 의아한 표정이 된 안톤에게, 난 손가락으로 바실리스크를 가리키며 웃었다.
“이거 심장 뽑아야 하는데, 좀 도와라.”
“……네?”
* * * * *
안톤의 도움 덕분에 난 늦지 않게 바실리스크의 심장을 뽑아낼 수 있었다.
심장뿐인가? 손이 하나 더 늘어난 덕분에 심장뿐만 아니라 다른 부산물도 몇 개 챙길 수 있었다.
[젠장, 이 녀석 엿을 먹는 걸 봐야 하는데!]
안톤이 등장한 이후로 데우스는 투덜거리며 말을 늘어놓았다.
난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거, 심보 한 번 참 고약하신 거 아닙니까?’
[네 녀석 심보는 생각 안 하느냐?]
……이 드래곤은 역시 무시가 상책이다.
나는 전투를 하느라고 잊고 있었던 진리를 다시금 떠올리며, 안톤과 함께 부산물을 챙겨 다시 다른 조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루시엘은 어때?”
“지금은 좀 안정을 차렸습니다. 안색도 돌아왔고요. 그래서 제가 도련님을 찾으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톤은 내 손에 들린 바실리스크의 심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성인 머리통만 한 그 심장은 여전히 펄떡펄떡 뛰며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도련님께서 그동안에 무려 4급 몬스터의 최정점인 바실리스크를 사냥하고 있으실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리텐슈노프께서는 다들 이렇게 대단하신 겁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는 안톤의 눈빛에는 선망이 가득했다. 난 어깨를 으쓱거리며 가볍게 대답했다.
“다른 녀석은 모르겠고, 원래 내가 대단하긴 해.”
“역시!”
[……미친놈!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째서 하필 이런 또라이의 심장에 연결된 것이란 말인가!]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