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하급반 종합 평가가 끝났다.
종합 평가 수석과 차석은 절차에 따라 중급반으로 승급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 또한 하급반을 떠나 중급반으로 올라갈 채비를 했다.
물론 크게 준비할 것은 없었다. 중급반 시설은 수련동 안쪽에 있었고, 딱히 하급반에서 오랜 시간 생활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몸만 움직이면 끝이었다.
떠나기 전 조원들과 작게 파티를 하는 것이 하급반에서의 내 마지막 일정이었다.
“도련님, 승급 축하드립니다. 저도 곧 따라가겠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저도 얼른 올라가겠습니다, 도련님!”
“너희가 중급반에 올 무렵이면, 나는 상급반에 가 있을 텐데?”
“그럼 더 열심히 할 필요가 있겠네요.”
“하하하!”
안톤과 루시엘, 가롯, 그리고 카를까지.
얼마 안 되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내 승급을 축하해주었다.
또한, 안톤과 루시엘은 얼른 나를 따라오겠다는 포부도 내보였다.
내 사람이 되었다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나름 나를 호의적으로 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
이번 종합 평가에서 얻은 수확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내 성적을 확인한 마그너스가 보물 두 개를 하사한 것이다.
[세상에! 이걸 그냥 줘 버리다니!]
그것도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미스틸테인은 그렇다 쳐도…… 렐릭의 반지를 줘? 생각보다 꼬맹이, 네가 마음에 든 모양인데?]
리텐슈노프 가문의 20대 보검 중 하나인 미스틸테인.
그리고 마나 운용력을 높여주는 렐릭의 반지.
데우스의 말마따나, 어지간히 내게 호감을 느끼는 게 아닌 이상 줄 수 없는 보물들이었다.
심지어 렐릭의 반지는 당장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이제 마나가 부족해서 검식을 쓰지 못 하는 일은 없겠네.’
마나 운용력을 높여주는 렐릭의 반지가 있다면, 블러드 하운드 54식을 펼칠 기회가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늘어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거기다가 더 중요한 건…….
‘렐릭의 반지의 효능은 고작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지.’
나는 하사받은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은빛 반지를 살피며 나는 생각했다.
‘이 시절에는 그저 마나 운용력을 높여주는 반지라고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 반지의 정확한 힘은 마나의 성질을 바꿔주는 것이다.
현재는 ‘압축’의 성질이 부여되어 있기에 마나의 운용 효율이 향상된 것처럼 보이는 것뿐.
렐릭의 반지를 활성화하면 마치 마법사의 마법이나, 검사의 검식처럼 마나가 가진 성질을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난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분명 이렇게…… 옳지 됐다!’
전생에 들었던 정보에 따라 반지 안쪽 면에 새겨진 회로에 마나를 불어넣자, 반지가 가볍게 진동했다.
[어? 뭐, 뭐, 뭐, 뭐야?]
곧 반지의 겉표면이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서서히 금이 가며, 도금된 은이 떨어져 나가자 남은 것은 거뭇거뭇한 나무로 만들어진 투박한 반지였다.
개방하기 전보다 멋은 없어졌지만, 사실 이 속에 숨겨져 있던 나무는 평범한 나무가 아니다.
무려 세계수의 뿌리를 엮은 것이다.
렐릭의 반지는 세계수의 뿌리 위에 은을 덮어씌워 봉인한 것. 그렇기에 오직 압축의 성질만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간단한 게 왜 20년이 지난 뒤에야 밝혀진 걸까?’
아마 모두가 마나 운용력 향상이라는 효과에 만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야! 네 녀석이 이 반지의 비밀을 어떻게 아는 것이냐? 아니, 그보다 이거 어떻게 봉인을 해제한 거야?]
깜짝 놀란 데우스가 당황한 듯 물었다.
아마 데우스는 렐릭의 반지가 가진 비밀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설마 나 또한 그 비밀을 알고 있을 줄 몰랐겠지.
나는 피식 웃었다.
“글쎄요?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데우스는 버럭 화를 냈다.
[이 쥐방울만 한 꼬맹이가! 어른을 놀리면 못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굳이 더 물어보지 않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내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 짐작하는 모양이다.
내가 회귀의 비밀을 말해주지 않으리란 것도 말이다.
뭐,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회귀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겠어.’
나조차도 이유를 모르는데 말이다.
하여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드디어 난 아홉 살이 되었고, 드디어 중급반에 들어갔다.
“좋아.”
나는 반지를 낀 손을 꽉 쥐었다.
이제부터 제대로 시작이다.
* * * * *
수련동 중급반.
이곳은 하급반을 졸업한 열 살 이상의 수련생들이 주축이 되어 수련하는 곳이다.
수련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사실상 실전과 비슷한 훈련이 주가 되며 단체로 몬스터 사냥도 나선다. 중급반은 수련동에서 가장 사고사 비율이 높은 반이었다.
또한, 이곳은 리텐슈노프의 혈통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리텐슈노프의 혈통 간 경쟁이 가장 치열한 수련동이 바로 수련동 중급반이기 때문이다.
상급반은 대부분 임무를 나서기에 서로 부딪칠 일이 없다 하급반은 당장 실력을 키우기에 바쁘다.
하지만 중급반은 어느 정도 실력 있는 수련생들이 경쟁하는 곳.
‘실적과 평가가 전부인 반이지.’
그렇기에 더더욱 리텐슈노프 혈통 간의 부딪침이 많다.
‘거기에, 중급반에서부터는 파벌이 생긴단 말이지’
나는 수련동 중급반 구역으로 들어서며 생각했다.
중급반에서부터는 리텐슈노프 개개인을 따르는 수련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리텐슈노프의 혈통은 앞으로 평생토록 자신을 따를 사람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객관적으로 나를 믿고 따를 수련생은 극히 희박해.’
하급반과는 다르다.
무한경쟁체제가 확고한 중급반에서는 확실한 비전을 보이지 못한다면 내 사람을 만들기 힘들다. 뒷배도 없는 나로서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중급반 수련동 입구를 지나, 내부로 들어가자 대략 마흔 명 정도의 수련생의 얼굴이 보였다.
[눈빛 봐라. 눈빛. 아주 잡아먹으려 하네.]
데우스의 말대로였다.
나를 가늠하는 듯한 시선. 노려보는 시선. 어찌 되었든 호의적인 시선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하급반에서는, 한 번도 이런 눈빛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허.”
어이가 없었다. 그 시선 사이에서 몇 명의 얼굴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내 사촌 형제들, 란체스, 그리고 반체스.
그리고 오마르 리텐슈노프와 에이미 리텐슈노프.
“풋.”
그 네 명의 얼굴을 보자 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아마 나를 바라보는 수련생들의 이 도발적인 시선은 저들이 주도한 것이리라. 아마 내가 하급반에서 벌인 성과가 귀에 들어간 모양이지. 그렇기에 나를 견제하기 위해 파벌을 움직인 것 같았다.
‘그래, 좋다.’
고작 하급반 수련생에 불과한 내가 만든 성과를 견제하기 위해 파벌을 움직인다?
마그너스라면 한심함을 금치 못할 거다.
저들은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는 놈들이다.
그리고, 저런 놈들에게 질 수는 없었다.
저런 한심한 짓거리를 하는 녀석들에게 패배한다?
‘절대 그럴 수는 없어.’
빠득!
나는 이를 악물었다.
‘파벌? 뒷배?’
다 필요 없다.
나는 이 가문을 발밑에 두겠다고 맹세했다.
‘전부 다 힘으로 찍어눌러 주마.’
패도悖道.
이것이 진짜 ‘리텐슈노프’다운 행동이다.
‘리텐슈노프 비슷한 것’ 따위?
전부 밟아버려 주마.
* * * * *
“휴우! 아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는데? 역시 소문대로 만만찮은 녀석 같네.”
에이미 리텐슈노프는 새롭게 중급반에 들어온 자신의 사촌 동생을 바라보며 과장되게 한숨을 쉬었다.
마치 인형처럼 아름다운 외모가 그 한숨에 겹치자, 마치 비극을 노래하는 연극의 한 장면 같았다. 뭇 남자의 가슴을 울리기에는 충분한 모습.
“그럴 만 하지. 저 녀석은.”
그런 그녀의 옆에 서 있던 소년, 오마르 리텐슈노프는 당연하다는 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마르의 반응이 불만스러웠는지, 에이미는 볼을 크게 부풀렸다.
“정말, 오빠는 만사에 무관심하다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미는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중급반 교관의 안내를 받는 드레커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장난기가 서렸다. 그 사실을 눈치챈 오마르가 조용히 그녀에게 경고했다.
“너, 허튼짓할 생각은 하지 마. 이야기 못 들었어? 가주님께서 저 녀석을 주시하고 있다.”
“아이, 참. 내가 뭘 했다고?”
에이미가 투덜거렸지만, 오마르는 불안했다.
오늘 드레커를 맞이하는 순간 중급반 수련생들이 모여서 기 싸움을 하도록 유도한 게 바로 에이미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직접적으로 나섰다는 증거는 없지만, 전면에서 눈을 부라리던 수련생들은 대부분 에이미의 파벌이었다.
오마르로서는 철없는 사촌 동생이 사고라도 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물론 그 사고에 자신도 얽혀 들어가 싸잡히는 걸 걱정한 것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나설 필요도 없는걸?”
“무슨 소리야?”
에이미는 턱짓으로 한편을 가리켰다. 그 끝에는 들창코가 된 란체스가 서 있었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드레커를 노려보는 그 시선에는 살기가 섞여 있었다.
에이미는 란체스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어차피 사고를 쳐도 저 녀석이 치겠지. 굳이 내가 나설 필요도 없을 걸? 알아서 제 애들 써서 손봐주겠지. 나는…… 약간 양념만 쳐주면 끝이려나?”
“…….”
“그리고 오빠도 설마 그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는 거야? 저 애가 바실리스크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에이미가 눈을 찌푸렸다.
겨우 여덟 살에 아르페리움 산에서 바실리스크를 사냥했다니! 그게 말이 되는 일인가?
아마도 헛된 소문이리라. 끽해봤자 3급짜리 그레이트 리자드를 사냥했다는 이야기가 와전된 것이겠지.
에이미는 그렇게 믿었다.
‘그 나이에 바실리스크를 잡았을 리가 없어. 그건 할아버지도 못 하는 일이라고!’
부모님의 도움으로 어린 시절부터 혹독하게 훈련한 자신이다. 그런 자신도 여덟 살의 나이에, 아무리 새끼라지만 바실리스크를 사냥할 자신은 없었다.
한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드레커가 그걸 성공했다고?
‘분명 거짓말이야.’
에이미는 그렇게 믿었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오마르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가주님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갔다. 어떻게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거짓된 소문은 아닐 거야.”
“헛소리!”
물론 에이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모습에 오마르는 혀를 차며 에이미에게 충고했다.
“뭐, 네 맘대로 해라. 하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 난 분명히 경고했어. 그 이후는 네 책임이다.”
그렇게 말한 오마르는 자신의 파벌을 이끌고 떠났다. 에이미는 그의 뒤통수에 날름 혀를 내밀었다.
“흥! 겁쟁이 같으니라고. 겨우 아홉 살짜리한테 겁을 집어먹다니. 한심하긴.”
그녀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란체스를 바라보았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분명 저 녀석의 성정이라면 사고를 쳐 주겠지. 란체스가 실패하면 그때 가서 자신이 움직이면 될 일이다.
그렇게 판단한 에이미는 곧 미소를 지었다.
“얘들아, 우리도 가자.”
“네, 에이미 님!”
그렇게 에이미도 떠나갔다.
그녀는, 끝까지 알지 못했다.
그녀가 그렇게 무시하던 드레커가, 줄곧 자신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