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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29화 (29/139)

29화

이제는 하소연하듯 중얼거리는 세르폰을 뒤로 한 채, 나는 양손을 가볍게 쥐었다 펴 보았다.

손등 위로 얇게 덧씌워진 마나가 반짝였다.

세르폰이 내게 전수한 기술.

마나 스킨이었다.

‘생각보다 쉽네.’

꽤 익히기 어려운 기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원리를 알고 보니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마나의 실을 뽑아 마치 천을 짜는 것처럼 펼치면 되는 것에 불과했으니까.

전생에 내가 실패한 이유가 있었다.

그때는 마나 스킨이 마나로 얇은 보호막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 통째로 덧씌웠기 때문이다. 너무 마나 효율성이 구린 탓에, 실전에서 사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포기했지만 말이다.

물론 이걸 단시간에 성공한 건 회귀를 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전생이었다면 이론을 깨우쳤다고 해도 고작 세 시간 만에 성공했을 리는 없을 테니까.

‘아마 이 몸이 가진 재능이 영향을 끼쳤겠지.’

드레커 리텐슈노프가 가진 뛰어난 재능.

그것이, 전생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위업을 가능케 한 것이다.

나는 마나 스킨을 해제했다. 그리고는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이대로만 가면, 열다섯 살이 되기 전에 전생의 경지를 되찾을 수 있겠어.’

7성 기사의 경지.

열다섯 살에 그 경지에 오른다면, 현시점으로는 어떤 리텐슈노프보다도 빠른 속도다. 무려, 마그너스보다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절로 마음이 가라앉았다.

내 큰아버지들. 이미 후계자 계승 경쟁에 들어간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고작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더욱 빨리, 더욱 높이.’

누구도 내가 리텐슈노프의 가주가 되는 데 반대하지 못하게, 압도적인 결과물을 보여야만 했다.

‘더 속도를 올릴 필요가 있어.’

최근 들어서 깨달은 것이었다.

하급반, 중급반, 상급반.

가문의 커리큘럼을 따르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내게 제약이 되면 문제다. 지금의 내게 중급반에서 배우는 건 쓸데없는 낭비에 불과했다.

‘문제는, 중급반은 조기 졸업이 불가능하다는 건데…….’

이건 가문의 규칙 이전에 상식의 문제다.

중급반 졸업 시기는 15살 무렵. 그 다음은 바로 상급반이다.

상급반에서부터는 가문의 임무를 수행하는 일이 잦다.

리텐슈노프의 이름을 내걸고 외부 활동을 한다는 이야기다.

한데, 그런 일을 고작 열다섯 살도 되지 않은 꼬맹이가 맡을 수는 없었다. 이건 실력 이전에 위신과 대외적인 이미지 문제였다.

아마 내가 어떤 성과를 내보인다고 해도 마그너스가 중급반 조기 졸업은 허락하지 않겠지.

‘결국…… 답은 하나인가.’

물론 이미 계획해 둔 것은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성장해야 할 것이었다.

‘일단은…….’

그건 나중 이야기.

지금은 마나 스킨을 자유자재로 쓰는 연습부터다.

* * * * *

다음날.

대련 훈련의 시간은 빠르게 찾아왔다.

대련을 위해서 중급반 수련동 연무장 바닥에는 둥그렇게 선을 그어놓았다. 나는 터벅터벅 그 안으로 들어섰다. 공교롭게도, 첫 번째가 나였기 때문이다.

상대는 이름 모를 소년이었다. 분명 이름을 들었던 것 같은데,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어 잊어버렸다.

나이는 나보다 네 살 더 많은 13살. 하지만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녀석과 나는 체격 차이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더 덩치가 큰 것 같기도 했다.

모두 다 드레커의 육체가 가진 재능 덕분이었다.

골격부터 근육량까지, 이미 나는 평범한 8살의 육신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상대의 눈에는 내 몸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본인의 실력에 꽤 자신이 있는 모양인지, 녀석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내게 중얼거렸다.

“도련님,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저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거든요.”

“그러냐.”

난 곧 놈에게 신경을 껐다.

삼류 악당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녀석이다. 굳이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어차피 실력이라고 해봐야, 중급반의 수준은 다 고만고만하지 않던가.

“……후회하실 겁니다!”

한데 녀석은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놈이 이를 갈며 검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쪽 다 준비는 끝난 것 같군.”

교관은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씩 웃으며 규칙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검식의 오러를 제외한 모든 기술의 사용이 허가되고,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치명상을 입히면 그 즉시 대련은 종료다. 그럼 대련을 시작한다.”

난 천천히 검을 들었다.

“준비…….”

취한 자세는 굴단 검식의 기본자세. 내가 어떤 검식을 사용할지 파악한 놈이 피식 웃었다. 놈의 표정에서 굴단 검식에 대한 무시가 절로 느껴졌다.

하지만.

‘굳이 다른 검식을 꺼낼 필요가 없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저급한 놈을 쓰러트리는 건 말이다.

“시작!”

교관의 시작 선언이 떨어짐과 동시에, 녀석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놈이 취한 기본자세는 블루 서펀트 8식. 가진 능력은 검신을 불투명하게 바꾸어 주는 검식이었다.

유려한 검격에 더불어, 거리 조절을 어렵게 하는 오러 탓에 블루 서펀트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검식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는 대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블루 서펀트는 그저 유려하기만 한 검식에 불과했다. 물론 놈은 힘과 속도. 두 가지 전부 뛰어났다. 여덟 살이 상대하기엔 위협적인 수준.

하지만.

-챙!

순식간에 달려들어 선공을 취했음에도, 나는 녀석의 검격을 아주 간단하게 막아 버렸다.

설마 첫 공격을 막아낼 줄은 몰랐던지, 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뭣!”

나는 가볍게 놈의 검격을 걷어내고, 팔꿈치를 휘둘렀다.

시작부터 체술로 덤빌 줄은 몰랐는지, 놈은 피하지도 못하고 정통으로 얼굴을 얻어맞았다.

“큭!”

놈은 눈을 찡그린 채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검을 놓지 않았다.

분명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음에도 여전히 전의를 보이는 건 칭찬해 줄 만한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눈을 감은 시점에서 끝이다.

굳이 더 상대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가볍게 녀석을 베었다.

“끄아아악!”

가슴팍에 검상을 입은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치명상이다.

‘쉽군.’

“그만!”

그와 동시에 교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교관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치료사가 바닥에 쓰러진 녀석의 몸 상태를 살폈다.

나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설마 내가 진짜로 치명상을 입힐 줄은 몰랐는지, 내 대련 상대들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 모습에 수련생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정도면, 사정 안 봐주겠다는 것 정도는 눈치챘겠지.’

굳이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이 있음에도 치명상을 입힌 이유가 있다.

앞으로 이어질 시답잖은 견제.

그 짓을 할 엄두를 못 내게 하려는 것이다.

‘시비를 걸면 손모가지 정도는 날려버려주마.’

나는 비릿하게 웃었다.

“다음, 제이스. 올라와라.”

수련생들의 침묵을 깨트린 건 교관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수련생 틈바구니에서 다음 상대가 굳은 얼굴로 걸어나왔다.

녀석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곧 각오를 다진 듯 검을 치켜들었다.

“시작!”

내가 취한 자세는 아까와 똑같은 굴단 검식.

의외인 것은 상대 또한 굴단 검식을 취했다는 것이었다.

‘이번 녀석은 생각이라는 게 좀 있군.’

굴단 검식은 꽤 짜임새 있는 검식이다.

오러가 있어야 효용성을 발휘하는 블루 서펀트와 달리, 그 자체만으로도 쓸만한 검식이라는 소리다.

‘지금 당장 중급반 녀석들이 배웠을 검식은 다 고만고만하지. 그 중 굴단보다 짜임새가 좋은 건 몇 없다.’

그리고 란체스 녀석의 파벌 중에, 그 몇 안될 짜임새 좋은 검식을 배웠을 놈은 없다.

그 순간.

“시작!”

교관의 외침과 동시에 대련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선공은 상대였다.

휘익!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검끝이 내 어깨를 노렸다.

가볍게 검을 들어 공격을 흘려냈다.

동시에 녀석에게 접근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읏!”

하지만 녀석은 고개를 틀어 아슬아슬하게 내 주먹을 피했다.

‘반응 좋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반 박자 늦게 휘둘러진 내 다리가 놈의 허벅지를 후려갈겼다.

“큭!”

녀석의 자세가 흔들렸다.

그대로 끝을 내기 위해, 난 수직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쉽게 당해주지는 않겠다는 듯, 녀석은 빠르게 뒷걸음질 치며 내 검끝을 피했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 카운터를 날리기 위해 검을 찔러넣었다.

하지만.

키잉!

“……!”

손바닥에 마나 스킨을 씌운 채, 나는 놈이 내지른 검을 붙잡았다.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기서 이미 승패는 갈렸다.

그대로 나는 놈의 팔꿈치를 베어버렸다.

“크윽!”

아까 전의 녀석보다는 얕은 상처.

하지만 팔을 베인 탓에 당분간 검을 쥐긴 힘들 것이다.

“그만!”

사실상 여기서 대련은 끝난 셈이나 다름 없었다.

다음 상대는 겁에 질리기라도 한 건지, 뭔가 우물쭈물거리다가 무언가 해보기도 전에 내게 치명상을 입고 내려갔으니까.

대련이 끝나자마자 나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대련장을 내려왔다.

‘이것으로 어느 정도 무력시위를 한 셈이군.’

어쭙잖게 건드렸다간 뼈도 못 추릴 거라는 무력시위 말이다.

이런 짓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내년에는 하급반에서 루시엘, 안톤, 가롯이 올라온다.’

사실상 내 파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 사람.

그들이 중급반으로 올라오면 나를 향한 내 형제들의 견제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녀석들에게까지 손을 대겠지.’

다른 형제들의 파벌에게 그 녀석들이 당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렇다 저렇다 해도, 그들은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는 재능의 소유자들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 기싸움을 그냥 방치한다?

‘그건 내 사람들조차도 지킬 힘이 없다고 광고하는 셈이지.’

중급반이라고 해서 마그너스의 시선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내 사람조차도 챙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지금까지 마그너스가 보인 관심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고작 무력시위로는 부족했다.

거기에 더불어 내 파벌의 숫자는 고작 세 명.

다른 형제들과 비교조차 되질 않는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기…….”

갑자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보인 것은 아까 나와 대련을 한 녀석의 얼굴이었다.

‘뭐지?’

분명 내게 팔을 베이고 패배한 녀석이었다.

이름이 분명…….

“저는 제이스라고 합니다. 드레커 도련님.”

“아, 그래. 무슨 일인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란체스 놈의 파벌에 속한 녀석이다.

아무 이유 없이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

설마 내게 란체스의 전언을 전달하러 온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제이스가 입을 열었다.

“아까 제 검을 붙잡으실 때 사용하신 능력……. 혹시 마나 스킨이십니까?”

“……그런데?”

“저……. 음.”

제이스는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혹시……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십니까?”

“뭐?”

나는 눈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녀석이 찔끔 몸을 떨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그리고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굳이 내 사람이 올라오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잖아?’

다른 파벌을 갉아먹는 게 더 효율적인 행동 아닌가?

그리고 그 시작은.

‘이놈부터.’

란체스 녀석의 파벌부터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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