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30화 (30/139)

30화

“잠시만.”

나는 녀석을 멈춰 세웠다.

“왜 나한테 가르쳐달라고 하는 거지? 너는 란체스를 따르고 있지 않았나?”

내 질문에 제이스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녀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란체스 도련님은 저희들에게 그런 기술을 알려주지 않으십니다.”

“하긴, 본인도 습득하지 못한 걸 알려줄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

“…….”

그 말에 녀석이 쓰게 웃었다.

나는 녀석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지금 나한테 다가와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나?”

“…….”

“잘 생각하고 행동해. 나는 박쥐 새끼를 키울 마음은 없어.”

그 말에 제이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녀석과 눈을 마주한 체 나직이 말했다.

“내일까지 시간을 주지. 마음을 정하도록.”

“……알겠습니다.”

얼굴을 찡그린 녀석이 대답했다.

제이스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팔짱을 낀 채 생각했다.

‘일단 한 놈은 건진 것 같군.’

제이스는 대충 보기에도 란체스에게 불만이 많아 보였다.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긴, 당연한 일인가.’

평소 행실이 좋지 않은 란체스다.

‘툭하면 사람을 쥐어 패는 버릇을 고쳤을 리가 없지.’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전생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유아동 사용인들에게 평이 안 좋은 란체스다.

아무리 자신이 한 번 두들겨 패 주었다고 해도 녀석이 평소 하고 다니던 행실을 고쳤을 리가 없다.

그렇게 포악하면 최소한 능력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녀석의 실력은 솔직히 별 볼 일 없는 수준.

리텐슈노프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란체스는 진작 도태되었어야 할 인물이었다.

‘그런 놈을 진심으로 따르는 녀석이 있을 리가 없지.’

지금이야, 가문의 후광이 있으니 녀석 같은 썩은 동아줄에도 사람이 모이겠지만…….

만약 다른 동아줄이 내려온다면 지금까지 란체스 곁에 모였던 사람들은 먼지처럼 흩어지리라.

‘바로 나 같은 동아줄 말이지.’

그 순간, 저 멀리 있는 란체스와 눈이 마주쳤다.

씨익.

나도 모르게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미소를 짓는 내 모습을 본 란체스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분을 참지 못하는 게 제대로 열이 받은 모양이다.

‘이제 또 한바탕 난리를 치겠군.’

조급할 필요 없다.

‘내 능력은 조금씩 드러내기만 해도 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란체스 놈이 알아서 내게 자신의 파벌을 가져다 바칠 테니까 말이다.

* * * * *

퍼억!

“윽!”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눈앞이 노래졌다.

제이스는 이를 꽉 깨물었다.

하지만 신음이 터져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자 란체스가 눈을 희번뜩 떴다.

“윽? 윽이라고?”

정강이를 정통으로 걷어차였으니 신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그 신음 소리는 제이스의 정강이를 걷어찬 범인, 란체스의 화를 돋우기만 했다.

곧장 신음 소리의 응징이 찾아왔다.

퍽!

“……!!”

눈앞이 번뜩하고 별이 반짝였다.

제이스의 눈에서 눈물이 찔끔 흘렀다.

제이스가 그러거나 말거나 란체스는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댔다.

“어떻게 3명이서 한 놈을 못 이겨? 그것도 여덟 살 짜리 애새끼를!”

그 일갈에 드레커와 대련한 세 명은 동시에 고개를 푹 숙였다.

제이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자기도 못 이겨서 우리한테 시켜놓고!’

평소에는 떠올려 본 적도 없던 생각이다.

물론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그저.

“죄송합니다.”

라는 말만 자동적으로 내뱉을 뿐이다.

“죄송해? 죄송하면 이겼어야지!”

란체스가 선불 맞은 맷돼지처럼 날뛰었다.

땅바닥을 퍽퍽 걷어차며 란체스가 소리를 질렀다.

“대련 끝나고 그 놈 표정 봤어? 어? 그 개새끼가 나를 비웃었다고!”

란체스의 목소리는 비강이 좁아진 탓에 우스꽝스러웠지만, 그 속에 담긴 분노는 어마어마했다.

“완벽한 복수의 기회였다고. 알아? 그걸 네 녀석들이 망쳤어! 바로 네 녀석들이!”

“…….”

“이딴 식으로 하는데 내가 너희를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어. 어!”

“죄송합니다. 란체스 도련님.”

“에이 씨!”

란체스는 버럭 버럭 성질을 부렸다.

제이스와 다른 두 명은, 란체스의 화가 풀릴 때까지 그렇게 한참 동안 벌을 받았다.

대략 한 시간 후.

어느 정도 화가 풀린 란체스가 떠나간 뒤.

제이스는 아픈 정강이를 문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이고, 아파라.”

다른 두 명도 대충 주저앉아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좀 길었네.”

“오늘만 그랬냐? 최근 계속 저러셨어.”

“드레커 도련님한테 얻어맞으신 뒤로는 매번 똑같지.”

“에고, 내 신세야.”

제이스가 란체스가 떠나간 곳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젠장, 드레커 도련님한테 진 게 우리 탓이냐고.”

“그야……. 우리가 약해서 진 건 사실이잖아?”

“아니, 그럼 우리 같은 잡종들이 순혈 리텐슈노프를 이기는 게 정상이야? 우리가 엄청 뛰어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도련님도 그 사실은 아시잖아?”

“그건…….”

제이스를 나무라려던 수련생이 말을 흐렸다.

제이스는 얼굴을 찡그리며 버럭 소리쳤다.

“아니, 씨발 막말로 란체스 도련님은 드레커 도련님을 이길 수 있고? 도련님도 못 이기는 상대를 우리가 어떻게 이겨?”

“야, 야! 말조심 해!”

제이스의 거침없는 말에 두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재빨리 주변을 두리번거린 수련생이 제이스를 나무랐다.

“너 미쳤어? 할 말 못할 말 못 가려?”

“못할 말은 개뿔. 이러다간 란체스 도련님 때문에 다리 병신 돼서 수련동에서 쫓겨나게 생겼는데. 너라면 욕이 안 나오겠냐?”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이스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안되겠어. 나는 이렇게 못 살아.”

“뭐?”

그 말에 수련생 두 사람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어쩌려고 그래? 다른 줄을 잡으려고?”

“아니, 애초에 우릴 받아주는 분이 있긴 해? 우리 같은 잡종에 실력도 없는 녀석들을 받아줄 분이 어디 있다고?”

두 사람의 타박에 제이스가 대꾸했다.

“……드레커 도련님.”

그 말에 두 수련생 모두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래. 그 분이 우리를 왜 받아줘? 당장 오늘 있었던 일만 생각해 봐. 오늘 우리가 누구를 공격했는지 잊어버렸어?”

두 사람은 제이스를 만류했다.

하지만 그런 만류에도 제이스는 오히려 눈을 반짝였다.

“아냐, 생각해봐. 드레커 도련님은 유일하게 중급반에서 파벌이 없으신 분이잖아?”

“그건 그렇지.”

“거기다가 우리가 덤빈 게 뭐 어때서?”

“뭐?”

제이스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우리는 도구일 뿐이야. 칼한테 죄를 묻는 거 봤어? 칼로 사람을 찌르면 그게 칼 주인 잘못이지 칼 잘못이냐?”

“야, 그건…….”

두 사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무리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자신들이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는 현실을 마주하는 건 불쾌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리텐슈노프도, 랭커스터도, 봉신 가문도 아닌 거두어진 고아에 불과한 그들은 도구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하다 못해 개조차도 되지 못하는 신분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줄을 잘 잡으면 돼.”

제이스가 눈을 번뜩였다.

‘아직 자신의 파벌을 형성하지 못한 드레커 도련님이라면, 가장 처음으로 수하가 되는 사람을 허투루 버릴 리가 없어. 아니, 최소한 다른 도련님들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대우가 좋을 거야.’

그런 계산이 섰다.

물론 도구 취급을 받는 건 매한가지겠지만.

제이스는 믿었다.

‘지금 중급반에서 마나 스킨을 익힌 사람은 순혈 리텐슈노프들, 그중에서도 오마르 님 뿐.’

그 외에는 마나 스킨을 익힌 사람이 ‘없었다’.

‘드레커 도련님이 중급반으로 올라오시기 전까지는 말이지.’

고작 9살에 마나 스킨을 익힌 드레커.

그에 비해 오마르가 마나 스킨을 익힌 건 14살이었다.

심지어 오마르와 드레커는 습득 속도에서도 차이가 났다.

오마르가 마나 스킨을 익히는 데 든 시간은 2년.

그에 비해.

‘드레커 도련님이 마나 스킨을 언제 익히시기 시작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종합 평가 이후다.’

만약 종합 평가 전에도 마나 스킨을 쓸 줄 알았다면,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

그럼, 최소 몇 개월…… 고작 몇개월만에 익혔다는 소리다.

‘그 정도면 드레커 도련님은 오마르 님을 뛰어넘는 재능을 가지고 계시다는 뜻이겠지.’

아니, 오마르 뿐만이 아니다.

리텐슈노프의 3세들 중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이다.

‘그런 줄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지.

“결심했어.”

갑작스러운 제이스의 말에 두 사람이 눈을 크게 떴다.

“뭐?”

“무슨 소리야?”

“나는 지금 당장 드레커 도련님을 뵈러 가야겠어. 몸을 의탁하려면 주저 없이 빠르게 움직여야지.”

“……!!”

제이스는 다른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딱딱하게 얼굴이 굳은 두 사람을 노려보며 제이스가 조용히, 하지만 힘주어 말했다.

“너희는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 란체스 님한테 정강이나 걷어차이면서 살 거냐? 아니면…….”

“…….”

“나와 함께 할 거냐?”

제이스의 눈이 번들거렸다.

‘이왕 변절할 거라면…….’

최대한 새 주인께 도움이 되도록 움직여야 할 터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이 두 녀석들을 데려가는 것이다.

* * * * *

유아동.

내 방.

마리 유모와 세르폰, 그리고 나까지.

우리 세 명의 시선은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 끝에 있는 건 한 병의 포션.

바로 마나 포션이었다.

물론 평범한 마나 포션은 아니었다.

오늘 대련 전승 축하 포상으로 마그너스가 하사한 포션이었다.

‘이 정도면 눈길은 충분히 끈 것 같군.’

고작 비정기 대련의 결과가 보고된 것도 그렇고.

3승 밖에 안 했음에도 축하 포상을 내린 것도 그렇고.

‘마그너스, 그 노인네가 어지간히도 나한테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보군.’

그게 아닌 이상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세르폰과 마리, 두 사람은 지그시 포션을 노려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이게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진 하사품인지 잘 알 것이다.

그러니 둘 모두 아무 말이 없지.

“일단…….”

내가 입을 떼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었다.

“일단 마실까요? 어쨌든 가주님이 하사하신 것이니, 감사히 마셔야겠죠?”

“……그건 그렇군요.”

세르폰이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그에 비하면, 마리의 반응은 가벼운 편이었다.

“그래요, 도련님. 가주님께서 내리신 것이니까요.”

고개를 돌려 포션을 살폈다.

상등품의 마나 포션.

일반적으로는 구하기 힘든 고가의 물건이다.

하지만 이곳이 리텐슈노프 가문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건 가벼운 하사품에 속했다.

‘고작 3승 따위로는 이 정도겠지. 오히려 관심을 준다는 사실에 더 기꺼워해야 할 테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포션병을 집었다.

가볍게 뚜껑을 연 뒤, 나는 그대로 포션을 들이켰다.

약간 아린 맛과 함께 시원한 청량감이 입 안과 목구멍을 감쌌다.

곧바로 몸속에 마나가 가득 차는 것이 느껴졌다.

곧장 나는 마나 하트를 운용했다.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지는 마나가 짜릿한 전능감을 하사했다.

‘이 맛에 포션을 마시지.’

물론, 이 포션으로 쌓을 수 있는 마나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난 더더욱 앞서나갈 것이고, 더 엄청난 성과를 보여줄 테니까.

그리고 당연히,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볼 마그너스는…….

‘나에게 투자하지 않고는 못 배길 테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 순간.

쿵쿵!

누군가가 내 방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마리 유모가 재빨리 문을 열고 밖을 확인했다.

문을 두들긴 사람과 잠시 대화를 하던 마리 유모가 곧 내게 다가왔다.

“저, 도련님.”

“무슨 일이야, 유모?”

이런 밤중에 찾아올 사람이…….

아, 혹시?

그리고 내 예상대로 마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어떤 수련생이 도련님을 뵙고 싶다는데……. 지금 유아동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해요.”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