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중급반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치르는 외부 훈련.
훈련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몬스터의 종류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특정 몬스터를 어떻게 사냥해야 하는지, 약점과 특징은 무엇인지를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뭔가 복잡해보이지만, 쉽게 말해 몬스터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서 특정 몬스터를 사냥하기만 하면 된다.
훈련의 목적은 몬스터를 상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급반에서는 몬스터 토벌이 자주 임무로 나오니까.’
당연하지만, 상급반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하려면 여기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법을 익혀야만 한다.
‘쉽게 말해 예습하는 거지.’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이 훈련은 명목상 시험이 아닐 뿐 수련생에게 점수를 매기는 훈련이다.
내부 평가 기준을 두어, 훈련을 잘 따라오는 수련생과 잘 못 따라오는 수련생을 분명히 구분한다.
물론 실질적으로 당장 그 평가가 무언가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시험 성적에도 반영되지 않고, 당연하지만 상급반 진급에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하지만.
상급반에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배정되는 임무의 양이 달라지니까.’
만약 몬스터 사냥 훈련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수련생은, 상급반에서 몬스터 토벌 임무를 거의 할당받지 못한다.
상급반은 임무제도로 굴러가는 곳.
배정받은 임무를 많이 성공시키면 그만큼 높은 점수를 받는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자주 배정되는 임무 중 하나인 몬스터 토벌을 받지 못한다면 임무 점수로 상위권에 등극하는 건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도 좋다.
그렇기에 몬스터 사냥 훈련은 중요했다.
물론 일반 수련생들은 이러한 내부 사정을 하나도 모른다.
회귀를 한 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멀쩡하게 정신머리가 박혀 있는 인간이라면, 이러한 훈련 하나 하나가 평가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애초에 그런 걸 모를 인간이 중급반에 올라올 수 있을 리도 없고.’
뭐,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이야기다.
‘무려 7성까지 올라가 본 몸이다. 내가 잡은 몬스터 눈알만 모아도 마차 수십 대는 채우고도 남을 걸?’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한 평가.
그런 평가에서, 회귀 전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내가 낮은 점수를 받는 건 불가능하니까.
덜컹!
마차가 흔들리자 나는 가볍게 하품을 하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수호 기사인 세르폰이 팔짱을 낀 채 반대편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문 외부로 나가게 되는 만큼, 이번 훈련에서는 수호 기사가 동행하게 된다.
물론 외부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먼 곳까지 가는 건 아니다.
가문 외부, 가까운 곳에 자리한 몬스터 사육장으로 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몬스터 사육장 같은 걸 리텐슈노프 본가 내부에 둘 수는 없으니까 말이지.’
기본적으로 사육장의 거대한 규모도 규모지만, 기본적으로 자주 몬스터가 탈출할 수밖에 없는 터라 대단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제수 없게 4급 몬스터 같은 게 도망쳐봐. 저번에 그 바실리스크처럼.’
그딴 게 본가 안에서 깽판을 치면, 사육장을 관리하던 인간들은 죄다 단두대 행이다.
어쩌면 그 윗선까지도 목이 잘릴지도 모르고.
“하암.”
나는 다시금 하품을 했다.
눈을 비비며 슬쩍 세르폰 쪽을 바라보니, 그 또한 내 하품이 전염되었는지 슬그머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
하품을 하다가 딱 걸린 세르폰이 어색하게 웃었다.
마침 잘 됬다.
나는 세르폰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세르폰 경, 마나 스킨 말입니다.”
“네, 도련님.”
“천을 짜듯이 마나의 실을 엮는 기술이라고 했죠.”
세르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천을 짜는 데 사용하는 기술은 전부 사용할 수 있다고 보면 됩니까?”
내 물음에 세르폰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을 이중으로 엮거나, 층을 쌓거나, 두께를 늘리거나. 전부 가능합니다.”
“당연히 그런 식으로 마나 스킨을 만든다면, 강도가 더더욱 올라가겠고?”
“네, 그렇죠.”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는 세르폰에게 손등을 내밀었다.
세르폰이 의아한 얼굴로 그 손을 바라보는 사이, 나는 정신을 집중하며 마나 스킨을 구현해냈다.
“……!!”
이중으로 겹치듯이 짠 마나 스킨.
손등 일부만을 덮은 마나 스킨을 바라보던 세르폰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돌아보았다.
“……제가 이 기술을 알려드렸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건 발상을 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닌데?”
“그다지 어렵지는 않던데요? 고작 이중으로, 이 정도 범위를 만드는 건…….”
“아뇨,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르폰이 손을 내밀었다.
곧 그의 손등에 한 장의 마나 스킨이 떠올랐다.
손 전체를 덮은 마나 스킨.
난 그제야 세르폰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깨달았다.
“아!”
“제가 어떤 걸 말하는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손등 일부만을 덮는 걸 말한 것이군요.”
세르폰이 손을 뒤집었다.
그러자 곧 그의 손바닥 한 가운데로 마나 스킨이 쪼그라들 듯이 모여들었다.
마침내 손톱 크기로 줄어든 마나 스킨을 바라보며 세르폰이 말했다.
“방어가 필요한 극소부위에만 마나 스킨을 두르는 것. 그렇게 하면…….”
“마나 소모를 낮추거나, 또는 더 두껍게 짜 방어력을 높일 수 있죠.”
세르폰이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도련님.”
하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한데, 이게 그렇게 어려운 기술입니까?”
그러자 세르폰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이게 쉬우셨습니까?”
“…….”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
마치 이상한 것을 바라본다는 듯한 세르폰의 얼굴을 쳐다보며, 나는 팔짱을 낀 채 생각했다.
‘내가 마나 컨트롤이 좋아서 이게 가능했을 리는 없지.’
물론 어느 정도 영향은 있었겠지만, 고작 마나 컨트롤 하나로 커버가 될 기술이라면 세르폰이 이 정도로 놀랄 리도 없을 것이다.
‘이건 아무래도…….’
이 몸뚱이.
드레커 리텐슈노프가 가진 재능이다.
[거기에 더불어 용의 심장도 한 건 했고 말이다.]
순간 흠칫 놀랐다.
데우스가 입을 연 건 꽤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그동안 말을 안 하고 있었던 겁니까?’
나는 황급히 데우스에게 물었다.
[말을 안 한 것이 아니다. 못 한 것이지.]
‘네?’
[나는 네 심장과 마나 하트로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고리는 마나 하트의 완성도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지. 근데 네놈은 혈맥법인지 뭔지 하는 기괴한 기술로 마나 하트를 만들었잖느냐? 그러니 연결이 흐릿해질 수밖에 없지!]
‘그 전까지 시끄럽게 떠든 건 뭐였는데요?’
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어보자, 데우스는 입맛을 다시며 대꾸했다.
[연결 초기에는 원래 그렇다. 연결이 되며 고리가 뚜렷히 나타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고리는 점차 흐려지기 마련이지. 원래 자주 쓴 물건이 빨리 닳는 법이잖느냐?]
‘…….’
[그러니 빨리 마나 하트를 만들 거라. 이미 묶인 연결의 고리가 쉬이 끊어지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잖느냐?]
덜컹!
그 순간 마차가 멈춰섰다.
세르폰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도착한 모양입니다, 드레커 도련님.”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 것 같네요.”
동시에 바깥이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마차 밖으로 내려섰다.
그러자 보인 것은 웅장할 정도로 거대한 성벽이었다.
여기저기 무너진 돌무더기의 흔적이 있고, 몬스터의 발톱 자국으로 보이는 것이 가득 남아있는 성벽.
‘이게 바로…….’
리텐슈노프 가의 몬스터 사육장.
앞으로 내가 일주일 간 머무를 곳이었다.
* * * * *
“자, 빨리빨리!”
“수련생들이 왔다고!”
“그린 오크 우리가 어디 있지?”
“몰라! 그보다 파이어팽이 재고가 있었나?”
시끄러운 외침이 가득 들려온다.
몬스터 사육장 성벽 내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대충 봐도 수십 명은 넘어보이는 인원들.
이 모두가 이 사육장을 관리하는 자들이다.
그 중 한 명의 관리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마 책임자 쯤으로 되어보이는 관리자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자, 수련생들은 이쪽으로!”
그 말에 교관과 수련생들은 마치 어미 닭을 쫓는 병아리 때처럼 그 책임자를 따라갔다.
“준비는 되어 있습니까?”
교관이 던진 질문에 책임자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첫 훈련으로 가장 적합한 놈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등급은?”
“가볍게 2급부터 시작하시죠? 어차피 1급은 별 볼일도 없고.”
두 사람의 대화에서 내가 깨달은 건, 이 몬스터 사육장의 커리큘럼은 대부분 이곳의 관리자가 짠다는 것이었다.
‘교관이 당장 무슨 몬스터를 상대할 지도 모른다는 걸 보면 확실하겠지.’
그렇다면 아마 교관은 이 훈련에서 교육과 평가를 담당하리라.
한참 동안 관리자의 뒤를 따라갔을까.
“일단 첫 몬스터는 그린 오크입니다.”
마침내 사육장 중앙의 연무장에 도착하자, 관리자가 설명을 시작했다.
“주로 남부 지방에서 서식하는 오크 과의 몬스터로, 성인 남성보다 조금 작은 키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육량이 인간보다 많아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이죠.”
그렇게 말하며 관리자는 턱짓으로 연무장 중앙을 가리켰다.
이미 연무장 한가운데에는 수많은 오크가 들어 있는 강철 케이지들이 놓여 있었다.
“쿠아아악!”
“쿠악!”
갑자기 등장한 인간 무리에 겁을 먹은 오크들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기괴한 하모니를 뒤로 한 채, 관리자는 교관에게 말했다.
“뭐, 설명은 여기까지 하죠. 바로 시작하실까요?”
“바로?”
교관이 난색을 표했지만, 관리자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스레를 떨었다.
“네, 그게 더 여러모로 좋은 훈련 아니겠습니까?”
“뭐…… 그건 그렇겠지만.”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교관.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관리자는 슬그머니 수련생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순번은…….”
그 순간.
나는 나를 바라보며 씩 입꼬리를 올리는 관리자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사육장 관리자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드레커 도련님. 도련님께서 첫 번째로 하시지요.”
“…….”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첫 타자라.
일반적이라면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첫 타자부터 오크를 잡으라고 하면 나올 결과물은 빤하다.
기술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힘 대 힘 싸움.
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심지어 첫 타자.
내 뒷 순번은 내 전투를 보고 복기를 할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다.
‘일단 대충 알 수 있는 건…….’
아마도 이 관리자는 에이미에게 매수되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최악의 상황이 내게 주어질 리가 없지.’
아무런 교육도 없는 상황에서, 첫 타자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 중 하나인 오크라.
너무 딱 맞춘 것 같은 상황 아닌가?
‘자, 어떻게 할까.’
저쪽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내가 실패하기를, 고꾸라지기를 바라는 시선들.
그 중 에이미의 시선이 느껴진다.
묘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는 그녀.
물론 내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건 매한가지리라.
‘그렇다면.’
가볍게.
성공해줘야겠지.
나는 검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반대편에 서 있는 그린 오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 접근에 오크가 곧장 손을 뻗는다.
가볍게 손길을 피하며, 녀석의 오금에 검을 찔러넣었다.
그러자 놈의 균형이 무너졌다.
나는 곧바로 몸을 회전시키며 녀석의 목 뒤를 베었다.
순식간에 푸른 피가 솟구친다.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돌려 잡는다.
역수로 쥔 검 끝이 놈의 넓은 등판을 꿰뚫었다.
정확히 심장을 관통한 검 끝.
나는 그대로 검을 놓으며 놈의 등을 걷어찼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오크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초록빛 핏물에 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 사람들의 모습.
난 고개를 슬쩍 까딱이며 물었다.
“이러면 끝난 겁니까?”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