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촤악.
나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 묻은 피도 닦아내고 있으려니, 당황한 감독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잘 하셨습니다. 완벽…… 하시군요.”
“그렇습니까?”
당연히 완벽하겠지.
무려 수십 년의 경험이 묻은 사냥법이다.
고작 오크 따위는 수천 마리 넘게 썰어보았으니, 내 사냥법은 완벽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에이미에게 매수당한 게 분명한 감독관이다.
조금이라도 내 사냥법에 실수가 있었다면 어떻게든 트집을 잡았겠지만, 이 정도로 완벽하면 그저 감탄밖에 안 나오리라.
“문제는 없다는 소리군요.”
“네…… 그렇습니다. 조금도 군더더기가 없군요. 대체 어떻게 처음부터 이렇게 깔끔하게 사냥하신 건지, 저로서는…….”
굳이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지만, 이번 기회에 기를 좀 죽여놓고 싶었다.
에이미든, 다른 형제들이든 말이다.
“이 정도는 간단한 일 아닙니까? 이걸 못하는 게 저로서는 더 이해할 수 없는데요.”
“그렇습니까……?”
감독관이 떨떠름한 표정을 한 체 물러났다.
당연하지만 내 발언에 어이가 없었던 건 감독관 혼자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수련생들은 물론이고, 란체스, 반체스, 그리고 에이미까지.
모두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유일하게 반응하지 않았던 건 오마르 뿐.
물론 그 또한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검을 갈무리 한 채 다시 수련생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곧바로 제이스와 다른 두 사람이 내게 달려왔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도련님!”
“그렇습니다! 정말 깔끔한 사냥이었습니다.”
아부 섞인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진짜 제대로 된 기술을 보았다는 흥분감.
그리고 그런 기술을 펼친 자가 바로 자신들의 주인이라는 사실에서 느끼는 뿌듯함 등등.
“오크를 그렇게 순식간에 완벽히 제압하시다니, 저희들은 절대 하지 못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떠받들어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전생에서는 받아본 적 없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좋아, 기분이다.’
나는 세 사람에게 작은 조언을 건냈다.
“오크의 약점은 오금과 뒷목이야. 오금을 베어버리면 중심이 무너지고, 그럼 뒷목이 검격의 사정권 안에 들어오지. 할 수 있다면 그 두 약점을 노려.”
“알겠습니다.”
“그 외에는 얼마나 깔끔하게 베어내느냐가 중요해. 깊이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그 이상을 넘어가면 과하고, 그 미만은 제대로 힘줄을 끊어내지 못해. 그걸 명심하도록.”
“네!”
적당한 조언을 세 사람에게 건내주고는 나는 편하게 앉은 채로 감독관이 다음 수련생을 부르는 걸 바라보았다.
문득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힐끔 돌리자 나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맹렬하게 노려보는 에이미의 얼굴이 보였다.
“흠.”
감독관을 매수하면서까지 수작을 부렸는데, 생각보다 잘 안 됐지?
쌤통이다.
나는 에이미를 향해 날름 혀를 내밀었다.
* * * * *
첫날의 훈련은 별일 없이 끝났다.
나는 그 뒤로도 파이어팽, 늪지 슬라임, 크로코를 상대로 완벽한 사냥 기술을 선보였다.
세 마리 전부 다 약점을 제대로 노리지 못한다면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
이미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약점을 익힌 수련생이라면 모를까, 일반적으로 갓 중급반으로 승급한 수련생이 상대하기에는 힘든 놈들.
‘첫날부터 이런 몬스터로만 훈련이 구성된 건…….’
나를 저격하기 위한 에이미의 수작이 분명하리라.
하지만 회귀 전의 기억을 가진 나에겐 그런 몬스터 따위는 식은 죽 먹기에 불과했다.
오히려 에이미가 날 저격하기 위해 고른 몬스터는 약점을 잘 노릴 수 있다면 상대하기 쉬운 놈들이다.
이미 모든 약점을 다 아는 나로서는 식은 스프 먹는 것보다 쉬운 사냥이었다.
‘차라리 약점 없이, 지구전으로 싸워야 하는 놈들이었다면 더 까다로웠겠지.’
부족한 체력은 내 약점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뭐, 상관없지.’
아직 내 약점이 드러난 것도 아니고, 설사 체력을 물고 늘어지더라도 극복할 방법은 여러 가지 있다.
사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어중간한 수작은 내게 통하지 않을 테니까.’
당장 그보다 중요한 건, 데우스가 말한 심장의 연결이리라.
‘혈맥법 때문에 데우스와의 연결이 흐려진다, 라…….’
원래 구축법으로 만든 정상 마나 하트에 연결되었어야 할 용의 심장이 혈맥법이라는 이형의 기술로 이어진 탓이라고 했다.
데우스는 연결이 쉬이 끊어질 리가 없다곤 했지만, 혹시나 모를 일이다.
‘어서 빨리 몸을 성장시켜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위대한 명가의 혈통이라고 해도, 몸의 성장 속도를 조절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아이스본에서 연구하는 성장 촉진제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 신체의 성장을 촉진 시키는 효능을 가진 포션인데, 아직까진 이론상으로만 정립된 개념이다.
실제로 대외적으로 성장 촉진제를 만들었다고 발표하는 건 약 4년 후.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마, 이 무렵에 시제품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이스본이 사실상 성장 촉진제를 완성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제품이 완성된 건 올해 무렵. 하지만 4년간 혹시 있을지도 모를 부작용을 확인하는 작업을 할 테지.’
하지만 부작용 따위는 없다.
그리고 성장 촉진제는 아이스본의 마도 패권을 공고히 하는 특효 상품이 된다.
‘그 시제품을 얻을 수만 있다면.’
더 빠른 신체의 성장이 가능해질 터.
그렇다면 데우스와의 연결 문제도, 중급반 조기 졸업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어쨌든 모든 문제의 시작은 아직 내 몸이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점이니까 말이다.
하여튼.
성장 촉진제를 얻지 못하면 앞으로의 계획은 전부 꼬인다.
어떻게 성장 촉진제를 얻을지, 계획은 이미 세워두었다.
‘다음 오대 명가 교류전.’
오대 명가가 정기적으로 가문끼리의 화합과 교류를 위해 펼치는 정기 교류전이 곧 열린다.
이번 교류전을 주최하는 곳은 아이스본.
‘교류전 우승자는 주최한 가문에게 상품을 요구할 수 있지.’
그때, 성장 촉진제를 노린다.
‘현 아이스본 가주라면, 내가 성장 촉진제를 요구할 때 그냥 내어 줄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그 이유는 나를 부작용을 관찰하기 위한 실험쥐로 쓰려는 것이겠지만…….
피식.
‘어차피 부작용 따위는 없다.’
그러니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
‘겸사겸사 더 얻을 수 있는 것도 뜯어내고.’
사람을 실험쥐 취급할 거라면, 보너스 정도는 쥐여주어야 수지가 맞지 않겠는가?
* * * * *
“짜증나!”
몬스터 사육장 내부에 위치한 귀빈실.
에이미 리텐슈노프는 쥐고 있던 찻잔을 힘껏 집어던졌다.
‘그 녀석, 분명 날 가지고 놀고 있어!’
에이미가 분노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드레커에게 세상의 쓴맛을 보여주려던 계획이 전부 어긋나버렸고, 그에 더불어 놀림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이 쥐똥만 한 꼬맹이가, 벌써 누나를 놀려먹어?”
빠드득!
에이미가 이를 갈자, 그녀 앞에 서 있던 그녀의 파벌 소속 수련생들이 몸을 떨었다.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던 그녀다.
하지만 한 번 분노하면, 눈에 보이는 게 없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아가씨, 차라리 감독관을 더 재촉하시죠. 더 상대하기 어려운 몬스터를 내보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랬다가 그 녀석이 그 몬스터도 쉽게 쓰러트리면? 그것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맞습니다. 드레커 도련님은 고작 아홉 살. 몬스터를 상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을 리가 없습니다!”
“분명 오늘 있었던 일은 요행일 게 분명합니다!”
정말 그럴까?
정말로 그 모든 실력이 우연일까?
수련생들은 모두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에이미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가주님께서 그 녀석한테 특별 교육이라도 해 준 게 분명해!’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실력을 보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에이미는 그렇게 믿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아직도 드레커가 혓바닥을 내미는 광경이 눈에 선했다.
이렇게 수모를 당하고 가만히 있으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몬스터 난이도 따위로는 안되겠어.”
에이미가 씹어먹듯 중얼거렸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장 신뢰하는 부하가 조심스럽게 질문하자, 에이미는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진짜 감당할 수 없는 놈을 내보내야지.”
“감당할 수 없는 놈…… 말씀이십니까?”
“그래! 드레커 녀석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놈!”
그러자 수련생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드레커 도련님의 실력을 저희는 모릅니다.”
“어느 정도의 몬스터를 내보내야 할지…….”
그 말에 에이미가 눈을 가늘게 떴다.
“4급. 4급 몬스터를 상대하게 하는 거야.”
“네?”
에이미의 발언에 귀빈실에 있던 모든 수련생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곧, 수련생 대부분이 난색을 보였다.
“4급 몬스터 수준이라면 교관 선에서 막을 겁니다.”
“맞습니다. 그 정도 몬스터를 중급반에, 그것도 아홉 살에게 상대로 내보낼 리가 없지 않습니까?”
“감독관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에이미를 위한 충언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에이미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면 안 돼. 바실리스크를 상대했다는 소문이 있는 녀석이야. 물론 그 소문이 진짜일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잖아? 그러니까 4급 몬스터를 내보내야 해.”
그녀가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중급반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마어마한 성과를 내보이는 드레커다.
오늘 있었던 몬스터 사냥 훈련 결과도 분명 마그너스의 귀에 들어갈 게 분명했다.
‘가주님이 녀석을 이뻐하시니까…….’
분명 오늘 훈련 결과를 들으면 가주의 관심이 더 드레커를 향해 기울어지리라.
녀석이 가주의 관심을 받는 건 상관없다.
‘막내가 귀염받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마법 실력 조금 있다고 아이스본으로 유학을 간 랑느의 케이스를 봐도 알 수 있는 사실 아닌가?
하지만 관심 좀 받는다고 선을 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만약 능력보다 과분한 사랑을 받는다면…….
언제 안하무인으로 행동할지 모른다.
‘지금도 그러고 있고 말이지.’
에이미가 눈을 찡그렸다.
‘막내 녀석들은 다 맘에 안 들어.’
랑느든, 드레커든.
둘 다 꼴보기 싫은 녀석들이었다.
그 순간, 수련생 한 명이 에이미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혹시…… 따로 생각해두신 계획이 있으십니까, 아가씨?”
“……있지. 있어.”
에이미가 눈을 번뜩였다.
“완벽한 계획이 있다고.”
* * * * *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누구지?’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보인 건 어째서인지 딱딱하게 굳은 제이스의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지?”
제이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작게 속삭였다.
“도련님,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뭐, 그래.”
나는 제이스를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실내에 들어온 그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드레커 도련님. 중요한 정보가 있습니다.”
“뭐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제이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미 아가씨께서 4급 몬스터로 도련님을 노리고 있습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