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4급 몬스터?”
제이스의 보고에, 자연스럽게 눈이 커졌다.
에이미가 다른 수작을 더 부릴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였다.
고작 훈련을 까다롭게 만드는 것 가지고는 나를 엿먹였다고 볼 수 없다.
성에 안 찰 게 분명하다.
‘심지어 그조차도 실패했고.’
내가 완벽하게 몬스터를 처치해보임으로써, 에이미의 계획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당연하지만 에이미는 여기서 포기할 위인이 아니다.
분명 새로운 음모를 짤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4급 몬스터를 이용한다, 라…….’
이건 내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더 열 받았나 보군.’
그렇지 않고서야 4급 몬스터를 이용하겠다는 위험천만한 계획을 세울 리가 없다.
‘뒷수습을 신경쓰지 않을 속셈인가?’
4급 몬스터라면 최소 3성 기사는 되어야 상대가 가능한 놈들.
그런 놈을 수련생이 가득한 공간에 풀어놓겠다니.
도저히 뒷일을 생각하고 벌인다고 볼 수 없는 짓이다.
‘물론…… 그 정도라면 내가 상대하기 힘들 법하긴 해.’
4급 몬스터.
당장 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을 확률이 높다.
에이미가 제대로 계획을 세웠다고 해야겠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이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일단, 정보의 출처가 궁금한데. 어디서 이 소리를 들은 거지?”
“우연히 에이미 아가씨의 파벌이 떠드는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4급 몬스터를 이용해 드레커 도련님을 노릴 거라고 하더군요.”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역정보일 가능성은?”
나를 골탕먹이려는 속셈으로 그런 정보를 흘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우연히 몰래 듣게 된 겁니다. 저를 노리고 정보를 흘렸을 리는 없습니다.”
“그래?”
그럼 에이미가 4급 몬스터로 나를 노린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라고 봐야겠군.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할까.’
최선의 수는 세르폰을 이용하는 것이다.
4급 몬스터를 다음 훈련 상대로 끌고 나올 수는 없을 테니, 내가 습격당하는 상황이 나오려면 놈을 우리에서 풀어놓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세르폰과 계속 함께 다니면 된다.
세르폰의 실력이라면 4급 몬스터 정도는 쉽게 처치할 수 있다.
또한 계획 자체를 어그러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계속 수호 기사와 붙어 있다면 습격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할 테니까.
아예 계획을 시도조차 못 하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날려 먹기에는 좀 아까운 기회란 말이지…….’
무려 4급 몬스터다.
앞으로 중급반에서 4급 몬스터를 상대할 기회는 극히 드물다.
일전에 내가 바실리스크를 상대한 것이 행운이었다고 표현한 이유가 다 있다.
그렇기에.
4급 몬스터를 처치하기만 한다면, 마그너스의 관심을 제대로 끌 수 있을 것이다.
‘업적에는 보상이 따르는 법이지.’
아성체가 아닌, 멀쩡한 4급 몬스터를 홀로 사냥한다면, 과연 얼마나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겸사겸사 에이미 녀석의 콧대를 눌러줄 수도 있고.’
흠.
나는 팔짱을 낀 채 느긋이 생각에 잠겼다.
그런 내 모습이 우유부단하게 느껴졌는지, 제이스가 다급히 말했다.
“도련님, 일단은 피하셔야 합니다. 무려 4급 몬스터입니다. 교관님들이나 상대하실 수 있는 놈입니다.”
“그게 합리적인 방법인지는 모르겠군.”
“네?”
“지금은 정보를 사전에 들었으니 피할 수 있다고 쳐도, 다음에는? 이다음에 에이미가 나를 안 노린다는 보장은 있고?”
“그건…….”
그렇다.
이번이야 운 좋게 정보를 먼저 얻었지만, 다음번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내가 그런 얕은 수작 따위가 통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형제들이 개수작을 못 부리게 하는 게 낫다.
‘근데 그러려면 내가 4급 몬스터를 혼자 잡아야 한단 말이지…….’
으음.
나는 눈을 찌푸렸다.
‘잡을 수 있나?’
합리적으로 판단을 내려보자.
현재 내 객관적인 실력은 2성 중반 정도.
저번에 마그너스가 하사한 마나 포션을 마신 덕분에 그 정도의 성취를 얻었다.
‘실제로 3성 기사랑 싸운다면 둘에 한 번은 승리할 수 있겠지.’
전생의 경험이 있기에 그 정도다.
‘지금 상황에서 4급 몬스터를 잡으려면…….’
나는 눈을 반짝였다.
‘몬스터의 상성이 잘 맞는다면, 나름의 성과를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런 결론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이미 내가 사전에 습격 정보를 들었다는 것.
그 덕분에 날 습격할 4급 몬스터가 어떤 놈일지를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는 주머니에서 렐릭의 반지를 꺼냈다.
‘이놈이지.’
렐릭의 반지.
이것이 바로 내가 가진 비밀 무기였다.
렐릭의 반지는 마나의 성질을 바꿔주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 반지의 힘을 사용한다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제이스.”
“네? 네, 드레커 도련님.”
“지금 이 몬스터 사육장에 있는 4급 몬스터의 종류를 알아올 수 있나?”
내 물음에 제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4급 몬스터의 종류…… 말씀입니까?”
“그래. 지금 어떤 놈이 있는지 말이야. 모든 종류의 4급 몬스터를 사육하고 있을 리는 없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체 그건 왜……?”
“그건 나중에 알려주지. 일단은 알아와.”
제이스는 대체 왜 이런 명령을 내리는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군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드레커 도련님.”
그 모습이 나름 만족스러웠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아.”
일단 몬스터들의 목록을 확인한다.
계획은 그다음에 세워도 늦지 않을 터다.
‘운이 좋으면…….’
4급 몬스터를 잡는 위업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 * * *
다음날.
4급 몬스터에 대한 조사를 끝낸 제이스가 보고를 위해 찾아왔다.
“현재 이곳에 사육되는 4급 몬스터는 총 3종류입니다.”
“3종류라.”
생각보다 적었다.
하긴, 4급 몬스터 쯤 되면 사육이 까다로운 편이다.
거기에 더불어 이 사육장의 의의는 중급반 수련생들의 훈련을 위해서다.
그러니 중급반 수련생이 감당할 수 없는 고위 몬스터는 많이 사육할 필요가 없었다.
“어떤 몬스터들이지?”
“일단 첫 번째 몬스터는 헬하운드입니다.”
헬하운드.
지옥견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4급 몬스터다.
대형견 크기 정도의 몸집을 지니고 있는데, 생각보다 움직임이 빠르기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이다.
더불어 개처럼 생긴 주제에 입에서 불도 뿜는다.
하지만 지능이 그다지 높지 않아 자신의 신체 능력만을 믿고 덤비는 녀석이기도 했다.
“그 다음 몬스터는 스틸 호드입니다.”
스틸 호드는 강철과 같은 금속이 피부를 덮은 돼지처럼 생긴 몬스터다.
바실리스크에 버금가는 녀석의 강철 피부는 어지간한 검식으로는 흠집도 낼 수 없는 강도를 자랑했다.
더불어 스틸 호드는 꽤 지능이 높은 놈이었다.
육체 능력도 상위권인데, 지능은 4급 몬스터 중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이기에 4급 중에서는 최상위급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놈에 속했다.
당연하지만 중급반 수련생 수준에서는 상대할 수 없는 놈이다.
‘이놈은 가죽 때문에 키우는 중이겠군.’
스틸 호드의 가죽은 무구를 만드는 데 쓸모가 많다.
아마 이 녀석은 애초에 훈련용이 아닌, 가죽을 채취하기 위해서 키우는 놈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마지막 몬스터는 제국 말벌입니다.”
“제국 말벌?”
절로 눈이 동그래졌다.
“그걸 사육하고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저도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확실합니다. 제국 말벌도 이곳에서 사육되고 있었습니다.”
제국 말벌은 사람 몸집 크기의 벌처럼 생긴 몬스터다.
지능은 4급 몬스터 중 최정점.
전투 능력 또한 높은 편이다.
제국 말벌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
하나는 진짜 벌처럼 군집 생활을 한다는 것.
개체 단위로 움직이는 다른 몬스터와는 다르게, 이 녀석들은 군단을 이루고 살아간다.
군단을 이룬 제국 말벌은 6급 하위권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난이도를 자랑할 정도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
말 그대로, 이 녀석들은 인간의 무기를 사용할 줄 안다.
검, 창, 방패, 도끼.
사람의 손과 흡사하게 생긴 놈들의 다리는 도구를 사용하기에 최적화되어있다.
‘무기를 사용하는 몬스터의 상대법을 훈련하기에는 딱 적당한 놈이지.’
상위급 몬스터로 갈수록 무기를 사용하는 놈들의 비중이 늘어나니까 말이다.
하여튼.
그렇게 세 종류의 몬스터가 있다, 라.
“흠.”
일단 헬하운드는 내가 상대할 수 있었다.
딱히 갑각이라고 부를 만한 부위가 없기에 블러드하운드 54식을 사용할 수 없는 건 안타깝지만, 애초에 그걸 쓸 필요도 없는 놈이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생각하는 멍청한 싸움방식도 그렇고, 헬하운드는 전생에 자주 잡아보았기 때문이다.
스틸 호그는 더 쉽다.
놈이 까다로운 이유는 특유의 강철 피부.
하지만 블러드하운드 54식을 가지고 있는 나에겐 그저 파괴해버리면 그만인 껍데기일 뿐이다.
놈의 지능도 사실 4급 몬스터 중에서 똑똑한 편이니,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고.
사실 스틸 호그는 갑각만 벗기면 그냥 머리 좋은 돼지에 불과하니까.
문제는…….
‘제국 말벌이 상대로 나올 경우인데…….’
제국 말벌은 당장은 꽤 까다로운 상대다.
일단 지능이 높다.
똑똑하기로는 모든 몬스터 중에서 수위권을 다툰다.
거기에 무기를 사용할 줄 안다.
무기를 쓸 줄 안다는 건, 검술, 창술, 도끼술 같은 기술적인 부분도 통달하고 있다는 소리.
‘검식을 쓸 줄 모른다는 걸 빼면 사실상 기사지.’
사실상 3~4성 기사를 상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가 확실히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지.’
렐릭의 반지를 사용한다고 해도, 승률은 대략 반반.
‘최선은…….’
에이미가 제국 말벌을 풀어놓지 않기를 바라야겠지.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곤 제이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일단, 나는 피할 생각이 없다.”
“네?”
내 말에 제이스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야. 에이미의 수작에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이지.”
그래.
어차피 이미 정면으로 부딪치기로 마음먹은 상황.
이제 와서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회피할 생각은 없다.
“두고 보라고.”
나는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제이스에게,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 *
그 후로 4일의 시간이 지나갔다.
별일 없는 나날이었다.
나는 계속 몬스터 사냥 훈련에서 뛰어난 성과를 냈다.
누구도 내 실력에 의문을 품지 못할 정도의 성과였다.
그동안 나를 노려보는 에이미의 이글거리는 시선은 꺼질 줄을 몰랐지만, 4급 몬스터가 나를 습격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짜증 나는군.”
나는 미간을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언제 습격이 찾아올지 모르는 터라, 계속 긴장한 채로 지냈더니 피로가 꽤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도 없는 노릇.
짜증만 쌓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오늘은 몬스터 사냥 훈련의 마지막 날.
만약 에이미가 나를 습격할 계획을 거두지 않았다면, 오늘이 아니라면 더는 기회가 없다.
‘내일은 다시 본가로 돌아가니까.’
나는 검지에 끼워둔 렐릭의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4급 몬스터를 이용할 생각이라면 오늘뿐이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마지막 몬스터를 처치한 후, 훈련이 종료되고 숙소로 돌아가는 도중.
-콰앙!
숙소 근처의 건물을 박살내며, 4급 몬스터가 등장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