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콰광!
엄청난 굉음과 함께 돌조각과 흙먼지가 비산했다.
나는 재빨리 검을 뽑아 들었다.
‘……과연, 어떤 놈이냐.’
어떤 놈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잡기로 마음먹은 이상, 그저 사냥감일 뿐이다.
그리고.
곧 먼지구름을 헤치며 몬스터가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위이이잉!
순식간에 흙먼지를 휘저으며 날려버리는 날갯짓.
보석처럼 반짝이는 검붉은 눈과 그 아래로 쭉 늘어진 두툼한 턱.
가장 피했으면 하는 몬스터의 모습이 보였다.
-키에에에!
나를 발견한 제국 말벌이 울부짖었다.
“하, 운도 없군.”
나는 검을 치켜들며 중얼거렸다.
하필 세 종류의 몬스터 중 가장 까다로운 놈을 풀어놓을 줄이야.
‘이번에는 내가 제대로 엿을 먹었는걸.’
-키에에에!
제국 말벌이 다시금 울부짖었다.
당장이고 덤벼들 것 같은 기세.
심지어 놈은 이미 전투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저건 또 어디서 주워온 거야?’
나는 눈을 찌푸렸다.
제국 말벌의 앞다리에는 이미 어디서 주워온 것인지 모를 검 두 자루가 들려 있었다.
다행히 날을 세운 진검은 아니었다.
날이 뭉툭한 훈련용 철검.
하지만 날이 세워지지 않았다고 해도 흉기는 흉기다.
저 검에 제대로 얻어맞으면 뼈도 못 추리리라.
‘일단…….’
나는 놈이 쥔 훈련용 철검을 힐끗 눈에 담았다.
‘무기부터 빼앗는다.’
블러드하운드 54식.
검식을 발현하자, 곧바로 붉은 오러가 검날을 타고 흘렀다.
검 끝에만 오러를 피워낼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나름 검날 일부를 전부 오러로 덮을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장시간 운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효율적으로.’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마나가 넘쳐났던 적은 없다.
부족한 마나로 싸우는 방법은 통달한 지 오래다.
타악!
나는 곧장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제국 말벌에게 접근하며 검을 휘둘렀다.
녀석은 내 접근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놓치지 않는다!’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며 놈을 몰아세웠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제국 말벌이 턱을 벌리며 울부짖었다.
-키에에에!
동시에 놈이 쥔 검 끝이 나를 향했다.
쉬익!
빠르게 쏘아지는 찌르기!
나는 고개를 젖혀 검 끝을 피했다.
아슬아슬하게 콧잔등을 스치고 지나간 공격.
조금만 검격이 낮았다면 코뼈가 부러질 뻔했다.
하지만.
파각!
방금 그 공격 덕분에 첫 번째 무기를 파괴할 기회가 생겼다.
방금 공격의 동작이 큰 터라, 블러드하운드 54식의 오러로 놈의 검을 부러트릴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다.
-키엑?
쥐고 있던 검이 부러지자 제국 말벌이 당황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재빨리 두 번째 검격을 욱여넣었다.
중심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터라 큰 힘이 담긴 검격은 아니었지만, 놈의 한쪽 다리를 잘라내기엔 충분했다.
다리를 잃은 놈이 울부짖었다.
-키에에에에!!
분노한 녀석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이크.
가볍게 땅을 박차며 뒤로 몸을 뺐다.
‘좋아.’
상대할 만하다.
내 예상보다 제국 말벌의 반응속도가 느렸다.
‘아니, 이건…… 내가 빠른 건가?’
그렇다.
전생의 쓰레기 같은 재능을 가진 몸이 아닌, 리텐슈노프의 혈통의 신체는 내 상상 이상의 반응을 보여줬다.
‘진짜 엄청난 몸이군.’
내가 생각한 바로 그대로, 몸이 움직여준다.
그야말로 꿈의 육체.
심지어 이게 다 자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슬슬 성장기에 돌입하는 중.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어마어마한 재능이 실시간으로 개화한다.
‘얼마 안 남았어.’
전생에 지녔던 힘을 전부 되찾을 때까지 말이다.
‘……일단은.’
전투에 집중해야지.
그 사이, 제국 말벌은 정신을 차린 채 나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내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심히 경계하는 모습.
아마 틈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대치하려는 생각이겠지.
좋다.
그럼 이번에도 이쪽에서 먼저 치고 들어가 주마.
나는 다시금 놈을 향해 땅을 박차고 뛰었다.
이번에 검 끝에 덧씌운 것은 블러드하운드가 아닌, 로타 블리츠의 오러.
일전에 세르폰에게 배워둔 것이었다.
심지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압축!’
나는 렐릭의 반지를 이용해 번개를 검 끝으로 모았다.
붉은 벼락이 가득 압축된 내 검 끝이, 제국 말벌이 쥐고 있는 검에 닿았다.
반응은 곧바로 튀어나왔다.
-키싯!
벼락에 감전당한 제국 말벌이 몸을 비틀며 파르르 떨었다.
놈이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나는 블러드하운드 54식의 오러를 다시금 피워냈다.
파각!
그리고는 놈이 쥐고 있는 다른 한 자루의 검을 파괴했다.
흩날리는 검조각들 사이로 당황한 듯 흔들리는 둥그런 눈동자가 보였다.
이제 남은 건 녀석의 몸뚱이뿐.
놈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천천히 나와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도망치려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재빨리 놈에게 접근하며 검격을 뿌렸다.
블러드하운드 검식의 빠른 검격이 휘몰아치듯 놈에게 쏟아졌다.
-키에에에!
순식간에 여러 곳을 베인 제국 말벌이 비명을 질렀다.
물론 내가 뿌린 검격 대부분은 얕은 상처를 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상처의 대부분이 날개에 집중되어 있다면?’
-키에에?
놈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날개가 구멍투성이가 되어 더 이상 비행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놈은 바닥에 착지할 수밖에 없었다.
-키엑
육중한 몸뚱이를 유지하기에는 얄팍한 다리.
사실상, 저것이 놈이 5급 몬스터로 분류되지 않는 이유였다.
날개를 잃는 순간부터 전투력이 급감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딱딱!
제국 말벌이 위협하려는 듯 턱을 부딪쳤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저게 공포에 질린 탓에 하는 발악이라는 것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다.
무기가 없다곤 해도, 4급 몬스터.
만만한 놈은 아니다.
나는 검을 고쳐잡으며 다시금 달려들었다.
녀석의 긴 다리가 내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어딜!”
가볍게 베어내며 놈을 어깨로 밀쳤다.
-키에에!
하지만 놈은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틈을 노려 남은 두 다리로 나를 꽉 붙들었다.
동시에 거대한 턱이 바로 코앞에서 쩍 벌어졌다.
내 목을 물어뜯으려는 속셈.
-키시이이잇!
하지만.
카각!
재빠르게 목 부분에 덧씌운 마나스킨이 놈의 공격을 완벽하게 방어해냈다.
회심의 공격이었던 듯, 놈의 눈이 흔들렸다.
“끝이다.”
나는 즉시 검을 역수로 쥐고 놈의 등판 한 가운데에 쑤셔 박았다.
-키에에에엑!
엄청난 비명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대로 검을 내리그었다.
그대로 갈라진 놈의 등판에서 내장이 흘러내렸다.
“흡!”
나는 검을 뽑아내며 다시금 놈을 밀쳤다.
그제야 제국 말벌이 뒤로 넘어갔다.
-키에에에……
놈은 여섯 개의 다리를 파르르 떨며 몸을 비틀었다.
그 모습이 심히 징그러웠던 터라, 나는 눈을 찡그렸다.
그 순간.
콰각!
“도련님!”
하늘에서 떨어지듯 내려온 세르폰이 황급히 내 앞에 섰다.
“괜찮으십니까?”
검 끝을 제국 말벌에게 겨눈 채, 세르폰이 내게 물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비키시죠. 마무리도 제가 할 테니.”
“도련님.”
“…….”
나는 지그시 세르폰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세르폰은 제국 말벌의 상태를 확인했고.
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어차피 다 죽어가는 놈입니다. 하지만 목은 제가 자를 생각입니다.”
“…….”
세르폰이 입을 꾹 다물었다.
곧, 세르폰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몸을 비켰다.
“후.”
나는 한숨을 내쉬며 검을 들었다.
터벅터벅.
천천히 쓰러진 제국 말벌에게 다가섰다.
턱을 딱딱 부딪치며 발버둥 치는 녀석.
검을 크게 휘둘렀다.
서걱!
잘린 놈의 머리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그제야 세르폰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곧 세르폰은 내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도련님, 죄송합니다. 제가 불민하여…….”
“아닙니다. 애초에 제가 오늘은 따라오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오늘뿐만이 아니다.
최근 계속 세르폰을 떼어놓고 지내긴 했다.
그래야 에이미가 나를 습격할 기회를 노릴 테니까.
“그러니 저를 보호하지 못한 건 세르폰 경의 실수가 아닙니다.”
“하지만…….”
“가주님께도 그렇게 보고하겠습니다. 세르폰 경은 잘못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일어나시죠.”
“…….”
그제야 주저하던 세르폰이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제국 말벌의 머리를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세르폰을 돌아보았다.
“세르폰 경.”
“네, 드레커 도련님.”
“바실리스크를 잡았을 때, 저는 검과 반지를 받았습니다.”
“…….”
“그렇다면.”
씨익.
나는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
“이 정도면, 어떤 걸 받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 * * * *
사육장의 4급 몬스터가 탈출해 나를 습격한 사건.
이 사건은 엄청난 파란을 불러왔다.
일단, 몬스터 사육장의 관리자 중 한 명의 목이 잘리고, 세 명이 가문에서 쫓겨났다.
또한 몬스터 사육장의 내부 감사가 시작되었다.
가문의 감찰관이 찾아와 시설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 대신 사건의 조사는 흐지부지 끝이 났다.
그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리텐슈노프 혈통끼리의 내부 경쟁이라는 게 너무나도 뻔하니까.’
누구도 제대로 수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걸 처벌할 수 있는 건 마그너스 뿐이다.
그리고 마그너스는 에이미에게 한 달간의 근신을 명했다.
‘어차피 검술 훈련하기 싫어했던 녀석이니, 이건 벌이 아니라 포상이라고 봐도 되겠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처벌이 아닌 건 아니다.
리텐슈노프 혈통끼리의 경쟁은 허가해도, 골육상쟁은 절대로 금지하는 게 마그너스다.
에이미는 사실상 내 목숨을 노렸다고도 볼 수 있었기에, 아마 꽤 많은 것을 빼앗기게 될 터였다.
그렇다면.
‘나는 뭘 받을 수 있을까.’
여덟 살 때 바실리스크를 잡고 미스틸테인과 렐릭의 반지를 받았다.
그렇다면.
과연 4급 몬스터를 사냥하고 받는 보상은 얼마나 클 것인가?
‘기대되는군.’
거기에 더불어.
“도련님, 마차가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란체스에게서 빼앗아 온 세 명에게 내가 믿고 따를 만한 실력 있는 주인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 셈이다.
그 덕분인지, 세 사람은 몬스터 사냥 훈련을 오기 전보다 더 빠릿빠릿하고 충성심 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 수통입니다.”
“음.”
나는 제이스가 건넨 수통을 받아 마시며 마차 밖을 바라보았다.
이번 훈련으로 얻은 수확은 컸다.
4급 몬스터를 사냥했다는 위업으로 얻은 명성에 더불어 내 파벌의 결속을 공고히 하기도 했고, 다른 수련생에 비해 압도적인 훈련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그너스에게 받을 보상까지.’
사실상 손해 없이 이득만 본 셈이다.
‘이제 슬슬……. 상급반 놈들도 내게 신경을 쓰기 시작하겠군.’
상급반에 소속된 내 형제들.
이제 그들의 시선도 마주할 때가 왔다.
* * * * *
“하, 제국 말벌을 잡았다고?”
“그렇다고 합니다.”
어두컴컴한 천막 안.
한 사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새끼, 지금 아홉 살 아냐? 근데 벌써 4급 몬스터를 혼자서 사냥했다고? 그것도 제국 말벌을?”
“제국 말벌이 오랜 시간 우리에 갇혀 있어서 체력이 좀 떨어진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래도 4급 몬스터는 4급 몬스터야.”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햐, 우리 막내. 대단하기도 하군. 벌써부터 그렇게 쑥쑥 크다니. 우리 노친네가 그놈한테 관심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었구만?”
“도련님께서 신경 쓰실 정도는 아닙니다.”
“신경 쓰고 말고는 내가 판단해.”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죄, 죄송합니다.”
그 모습에 사내 앞에 서 있던 다른 청년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하여튼 그렇단 말이지?”
톡톡.
테이블을 두드리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의 입가가 비틀렸다.
“노친네가 녀석을 그리 아낀다지?”
“마그너스 님께서 깊이 관심을 가진다는 이야기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청년이 고개를 숙이자, 사내, 그라힐 리텐슈노프는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중얼거렸다.
“그럼 한 번쯤 조져줄 필요가 있겠는데?”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