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몬스터 사냥 훈련이 끝나고, 사육장에서 다시 가문으로 돌아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몇몇 작은 변화가 있었다.
“잘하셨습니다, 드레커 도련님!”
“완벽하십니다!”
예를 들면, 예전과는 다르게 교관들이 나에게 살갑게 대하는 게 느껴진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중급반에 들어온 뒤, 지금까지 내가 보여준 모습이 어마어마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4급 몬스터까지 처치했다.
당연히 교관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할 수밖에 없다.
변한 건 교관의 시선만이 아니었다.
“드레커 도련님, 대단하십니다.”
“오늘 대련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수련생들의 시선도 변했다.
여전히 에이미와 란체스, 반체스의 파벌에 소속된 수련생들은 나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하지만 오마르의 파벌에 속한 녀석들은 나름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곤 했다.
그리고 파벌에 소속되지 않은 수련생들.
그들 같은 경우에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꽤 오묘해졌다.
시기하는 듯하면서도, 선망하는 묘한 시선들.
‘이거, 잘하면…….’
내 파벌로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그건 나중 일이다.
일단 지금은 마그너스의 부름을 기다리는 게 먼저니까.
그리고 그 순간은 곧 찾아왔다.
“드레커 도련님. 가주님의 호출입니다.”
어느 날 밤. 훈련이 끝나고 유아동으로 돌아온 나에게 한 명의 기사가 찾아왔다.
이번에도 찾아온 자는 징벌기사였다.
그 이유는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나름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했으니까 그렇겠지.’
내가 생각에 빠져 있으려니, 징벌기사가 나를 재촉했다.
“드레커 도련님?”
“아, 갑니다. 다녀올게, 마리 유모.”
“조심히 다녀오세요.”
걱정스런 마리 유모의 시선을 뒤로한 채, 나는 유아동을 나섰다.
한참 동안 어두운 밤길을 걸었을까.
저 멀리 불이 켜져 환한 철혈궁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보상을 받는다, 라.’
기대가 되었다.
‘대체 어떤 걸 내려줄까?’
영약? 포션? 아니면 무구?
뭐가 되었든 좋다.
무엇을 받든, 나는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쓸 자신이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선택지를 주마.”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네?”
철혈궁 내부.
집무실 안에 들어선 뒤, 마그너스가 처음으로 내게 내뱉은 말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무슨 뜻입니까?”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마그너스는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 말 그대로다. 이번에 네가 보인 성과에 대한 보상을 네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준다는 뜻이다.”
“……!!”
절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상을 선택해서 받으라고?
‘세상에 맙소사!’
당장.
당장이고 입을 열고 싶었다.
수십 가지의 무구, 수장고에 보관된 세기의 영약, 이제는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포션까지.
수없이 많은 선택지를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내 성과에 대한 보상은 단 하나.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단 하나의 보상을 골라야 한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결정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보상을 정했다.
애초에 이미 결정해 두었다.
“벌써 정했느냐? 빠르구나. 성급하게 결정할 필요는 없다.”
“아닙니다.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네가 정한 선택지를 들어보아도 되겠느냐?”
만약 무엇이든 받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걸 받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보다는.
“제가 받고 싶은 건…….”
지금 당장 가장 나에게 필요한 것을 불러야 한다.
“사람입니다, 가주님.”
그리고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람.
내 재능을 개화시켜 줄 사람이었다.
“사람?”
마그너스가 눈을 깜빡였다.
곧 마그너스는 내게 반문했다.
“지금 사람이라고 하였느냐?”
“네, 그렇습니다. 가주님.”
나는 마그너스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제가 원하는 건 사람입니다.”
내 대답에, 마그너스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사람, 사람이라.”
마그너스는 집무실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다가, 이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좋다. 누구를 원하는 것이더냐?”
“어떤 사람이라도 상관없습니까?”
내 물음에 마그너스가 씩 웃었다.
“그건 들어보고 나서 대답해 주마.”
“……알겠습니다.”
그 사람을, 내가 생각한 사람을 얻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일단 부딪쳐 봐야 알 수 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제가 원하는 사람은…….”
나는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멜 랭커스터, 이 사람을 원합니다.”
멜 랭커스터.
그는 리텐슈노프 가문에서 거둔 빈민가 고아 출신의 기사였다.
하지만 다른 빈민가 출신들과는 다르게, 멜 랭커스터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압도적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재능 말이다.
그 재능을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멜은 고작 스무 살에 나이에 가문의 기수가 되었다.
스물세 살에는 그가 보인 어마어마한 성과 덕분에 마그너스의 눈에 띄어 징벌기사단에 소속되었다.
그리고 서른한 살의 지금은, 징벌기사단의 선임 기수의 위치에 있었다.
선임 기수.
기사단에서 부단장의 바로 아래 위치를 말했다.
기사단마다 총 세 명만이 위치할 수 있는 자리.
즉, 최소 기사단 내부에서 한 손에 꼽힐 정도의 실력자여야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실제로 멜이 가진 바 실력은 달랐다.
부단장을 넘어, 아자르와 견주어도 될 정도의 실력.
그런 그가 부단장이 되지 못한 건 단지 재능만을 믿고 망나니처럼 날뛰는 성정 때문이었다.
만약 인망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그는 아자르의 자리를 위협했을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세르폰이 미래의 실력자라면, 멜은 현재의 실력자.’
아니, 정확히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강해지는 자다.
전생의 내가 선망했던 위치가 아자르 랭커스터였다면, 멜 랭커스터는 전생의 내가 질투하던 자였다.
나와 똑같은 빈민가 고아 출신이었지만, 본가 혈통에도 버금갈 정도의 재능을 가진 행운아.
그리고 오로지 재능 하나만을 믿고 승승장구한 강자.
나는 그 인생을 선망했었다.
하지만 고작 그 이유 때문에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려는 건 아니다.
“저는 멜 랭커스터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스승이라고?”
마그너스가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안 되겠습니까?”
“안되는 것은 아니다.”
마그너스는 그렇게 말하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 녀석을 드레커, 너에게 붙여주는 건 쉽다. 못할 것도 없지. 그냥 명령하면 되니까. 하지만…….”
마그너스가 난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과연 그 녀석이 네 스승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지는 의문이구나.”
“……!!”
“멜, 그 녀석은 자기중심적인 녀석이라, 자신의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일은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맞다.
멜 랭커스터는 아무리 마그너스가 명령한다고 해도 그걸 곧이곧대로 따르는 인간상은 아니다.
그 성격을 쉽게 표현하자면 악동 같다고 해야 하나?
마그너스가 명하면, 나를 가르치라는 명령은 그대로 따르겠지만, 제대로 교육해 줄 리는 없다.
멜을 스승으로 모시려면, 최소한 그의 관심을 끌어야 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래도 모시고 싶습니다.”
“……그러냐? 정 그게 소원이라면 못 이뤄줄 것도 없지만. 후회할지도 모른단다.”
마그너스는 마지막 기회라는 듯,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멜이 아니면 안되지.’
그는.
천재를 가르치는 데 특화된 인간이니까.
* * * * *
드레커가 떠나간 뒤, 한참을 방 안을 서성이던 마그너스는 곧바로 아자르를 불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아자르가 집무실로 찾아왔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왔나? 일단 앉아.”
마그너스가 손짓으로 아까 전까지 드레커가 앉아 있었던 의자를 가리켰다.
“음.”
아자르는 어색한 표정으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주군의 호의를 받는 건 겸연쩍은 일이었다.
“무슨 일로 호출하셨습니까?”
의자에 앉은 뒤, 아자르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물음에.
마그너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드레커 녀석 때문이네.”
“드레커 도련님 말씀입니까?”
아자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레커 도련님이 왜?
“이번에 사육장에서 녀석이 제국 말벌을 사냥했기에, 내가 보상을 하나 주기로 했잖는가?”
“네, 그랬죠.”
“그래서, 내가 어떤 보상을 받고 싶으냐고 물었지.”
그 말에 아자르가 눈을 크게 떴다.
“선택지를 주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중요한 건 그게 아냐. 내가 뭘 원하냐고 묻자, 녀석이 말하기를, 사람을 한 명 달라더군.”
아자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사람…… 말씀입니까?”
사람을 달라, 라.
그냥 듣기에는 아리송한 이야기다.
“그래. 근데 그 사람이 멜 랭커스터야.”
그제야 아자르가 얼굴을 굳혔다.
“멜 랭커스터를 말입니까?”
“그래.”
아자르는 가볍게 눈을 찡그렸다.
“왜 하필 그 녀석을……? 아니, 그보다 드레커 도련님께서 그 녀석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아자르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하지만 마그너스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드레커가 멜을 알고 있는지도, 설사 어떻게 알았다고 한다면 그 성격을 분명 들었을 터인데, 왜 굳이 멜을 달라고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도 그건 잘 모르겠군. 하지만 어쩌겠는가?”
마그너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콕 짚어서 그 녀석을 달라는데.”
아자르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드레커 도련님께서는 멜을 스승으로 하려는 겁니까? 아니면…….”
뒷말은 흐렸지만, 마그너스는 곧바로 아자르가 말하려는 뜻을 파악했다.
“지금은 스승이겠지.”
“…….”
세상에.
‘다른 도련님들이 비슷한 나이대에 하셨던 것들과 비교하면 훨씬 빠른 행보다.’
고작 수련생 몇 명을 데리고 파벌 놀이를 하는 게 아니라, 벌써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려고 하다니.
아자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러면…….’
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겠는데.
아자르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 아자르를 바라보며, 마그너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여튼. 드레커가 원한다니, 멜 녀석을 보내야겠지.”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자르가 고개를 저었다.
“의미가 있을까요? 멜 녀석의 성격을 주군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분명 제대로 된 가르침을 줄 리가 없습니다.”
“그 녀석의 성격이야 나도 잘 알고 있지.”
마그너스가 떨떠름한 얼굴로 생각했다.
자기기 마음에 안 든다면, 리텐슈노프의 가주에게 겁도 없이 대들 정도의 성격이다.
만약 가진 바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진즉에 목이 잘렸을 것이다.
“……만약, 드레커 도련님이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신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럼 그건 제 운명인 거지.”
마그너스는 짧게 답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궁금하지 않은가?”
“네?”
궁금하다니?
아자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그너스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드레커 녀석, 내가 멜의 성격을 설명해주었음에도 이번에도 자신 넘치는 표정을 지었단 말이지.”
마그너스는 자신의 막내 손자를 떠올렸다.
분명 어려울 거라고 말했음에도, 얼굴 한가득 자신감으로 꽉 찬 표정을 지었던 막내 손자.
그 자신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예상대로 녀석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끝날지, 아니면…….”
마그너스가 씩 웃었다.
“예상외의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보자고.”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