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고대 유적!
그곳은 과거, 찬란했던 마도 문명을 자랑하는 고대인들의 흔적이 남은, 일종의 던전과 같은 곳을 말했다.
고고학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고대 유적은 대륙 곳곳에서 발견되었는데, 한번 그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엄청난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고대 유적에는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희귀한 아티팩트나, 영약 같은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보물들은 굉장한 능력을 지닌 게 태반이었다.
영약이면 영약, 아티팩트면 아티팩트.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것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들이 유적에서 나오는 터라, 어지간한 현대 물건들의 효율을 뛰어넘기로 유명했다.
내가 지금 노리고 있는 콜마운트의 고대 유적에도 그러한 물건이 숨겨져 있었다.
‘마르스의 완갑. 여기서는 그걸 얻을 수 있지.’
마르스의 완갑.
그것은 고대의 마르스라는 대전사가 사용하던 완갑이다.
그 완갑은 사용자가 공격받으면 마치 방패처럼 작동하는 투명한 마나 실드를 생성하는 능력을 지닌 아티팩트였다.
고대 유적에서 나온 물건답게, 그 성능은 발군.
‘고작 용병을 암즈의 고위 기사로 등극시켜줄 정도였으니까.’
회귀 전, 이곳을 털었던 건 4성 기사급 실력을 지닌 용병이었다.
그는 우연히 마르스의 완갑을 손에 넣은 덕분에, 오대 명가 중 하나인 무가 암즈의 고위 기사로 서임받을 수 있었다.
고작 완갑 하나를 얻은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건 두 가지.
하나는 마르스의 완갑이 지닌 능력이 엄청나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4성 기사급 실력만 되면 이 유적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 용병은 혼자서 콜마운트 영지를 지나다가 우연히 이 고대 유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어떠한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서 유적에 진입해, 유적 가디언들을 전부 쓰러트리고 완갑을 얻어냈다.
그 소리는 4성의 성취에 오른 나 또한 그 용병처럼 혼자서 이 유적을 털 수 있다는 소리다.
4성 기사가 되자마자 내가 곧장 이 영지로 온 이유였다.
‘물론 유적은 그 전에도 털 수 있었지만…….’
세르폰의 도움을 받으면 마그너스에게 영지를 하사받자마자 유적을 공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여러 문제가 생긴다.
‘일단, 어떻게 유적을 찾아냈는지부터 설명해야 하니까.’
고대 유적은 꽤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만큼, 우연히 발견했다는 변명이 통할 리가 없다.
전생에 유적을 발견한 용병도 진짜 우연히 유적을 찾아냈으니까 말이다.
물론 운이 좋으면 어찌어찌 넘어가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르폰의 성격상, 나와 함께 유적을 파헤치러 들어가기보다는 곧바로 마그너스에게 보고할 것이다.
그럼 마르스의 완갑은 내 손을 떠날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혼자 들어갈 수밖에 없지.’
문제는 어떻게 세르폰과 마리 유모의 시선을 피해 몰래 유적으로 들어가느냐인데…….
“도련님, 이것 좀 드셔보세요!”
“아, 응.”
마리 유모가 호들갑을 떨며 내게 콜마운트의 특산품, 칠면조 요리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주방장이 이 요리가 자신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나는 칠면조가 담긴 접시를 받으면서 결론을 내렸다.
‘……적당히 밤에 시간이 날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
아마 이른 새벽 즈음을 노리면 되겠지.
‘4성 기사가 된 만큼, 아무도 몰래 저택을 빠져나가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니까.’
그렇게 결론을 내린 뒤, 며칠간 나는 영지를 시찰했다.
사실 시찰이라는 핑계로 유적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진짜로 시찰 업무도 소홀히 하진 않았다.
덕분에 꽤 재밌는 사건도 생겨났다.
“아이고, 영주님!”
“이 감자 한번 드셔보십시오!”
“영주님이 세금을 올리지 않으신 덕분에 저희가 편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내가 만난 모든 영지민이 나를 칭송한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콜마운트에서 내가 얻을 것이라곤 오직 유적의 보물뿐이다.
애초에 영지 특성상 뭐가 나올 곳이 아니기에, 나는 콜마운트의 세율을 건드린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영지민들에게 선정을 베푼 셈이었다.
“도련님, 이 감자 좀 드셔보세요!”
“어? 응.”
“저번에 칠면조 요리가 맛있다고 하셨죠? 아까 어떤 노인이 칠면조를 바쳤는데, 이건 주방장에게 주면 될 것 같아요.”
“그래? 잘 됬네.”
덕분에 나는 시찰 내내 영지민이 바치는 공물을 한아름 받을 수 있었다.
마리 유모의 바구니가 꽉 찰 정도로 말이다.
물론.
시찰의 목적도 달성했다.
‘찾았다.’
3일 차.
마침내 고대 유적의 입구를 찾은 것이다.
* * * * *
며칠 뒤, 새벽.
-끼이익.
모두가 잠든 시간.
그 시간을 노려 나는 움직였다.
저택 침실의 창문을 조용히 연 뒤, 밖을 살폈다.
예상대로 지금 시간에는 아무도 없다.
며칠 동안 저택을 지키는 경비병들의 움직임을 이미 파악해 둔 덕분이었다.
‘어디보자.’
나는 바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침실에서 바닥까지의 높이는 대략 3층.
지금의 내 실력이라면 충분히 뛰어내릴 수 있을 만한 높이였다.
나는 미스틸테인을 챙겨든 채,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타악!
어떤 소음도 내지 않고 가뿐히 바닥에 착지했다.
다시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핀 뒤, 나는 재빨리 저택의 담을 뛰어넘었다.
유적이 위치한 곳은 영주의 저택과 꽤 가까웠다.
이미 사전에 영지를 시찰하며 그 위치를 확인해 둔 덕분에, 나는 곧바로 유적으로 향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내가 도착한 곳은 한적한 숲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바위 앞이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바위 밑에 유적이 있을 터였다.
‘만약 이곳이 아니라면…….’
그랬다가는 꽤 귀찮아지겠지만.
그때는 다시 며칠이고 이 영지에 머물면서 유적의 위치를 찾아다녀야 하니까.
그리고 그 작업은 꽤 귀찮을 것이다.
어쩌면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할 수도 있고.
“후우.”
제발 내 기억이 맞기를.
그렇게 기도하며 나는 미스틸테인을 뽑아 들었다.
검집 끝에서 월광이 뽑혔다.
월광검이라는 별명을 지닌 검답게, 달빛을 받아 빛나는 미스틸테인이 어두컴컴한 숲속에 빛무리를 흩뿌려댔다.
‘역시 명검은 다르군.’
나는 번쩍이는 검신을 한번 살폈다가, 이내 검을 고쳐 쥐곤 자세를 잡았다.
그리곤 곧장 굴단 검식을 운용했다.
-우우웅!
검명과 함께 굴단의 오러가 줄기줄기 뽑혀 나왔다.
이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성장한 오러.
두께도 길이도 전보다 커졌다.
4성이 된 보람이 느껴진다.
하지만 감상에 빠질 시간은 없다.
“흡!”
나는 그대로 검을 들어, 바위를 향해 내질렀다.
-우드득!
내지른 검의 뿌리까지 바위가 전부 다 집어삼켰다.
오러의 힘으로 깔끔하게 검이 바위를 관통한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검식을 바꿨다.
블러드하운드 54식.
무구를 파괴하는 검식의 힘이 바위를 덮쳤다.
-콰과과각!
엄청난 소리가 숲을 뒤흔들며, 순식간에 바위 전체에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동시에 몸에서 뭉텅뭉텅 마나가 빠져나갔다.
4성 기사가 되었지만, 블러드하운드 54식은 여전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은 마나를 집어삼키는 검식이었다.
절로 얼굴이 찡그려졌지만, 쉴 틈은 없었다.
계속해서 블러드하운드 오러에 마나를 쏟아부었다.
그러자 바위에 간 금이 점점 커졌다.
파편이 튀고, 돌가루가 비산한다.
그리고 마침내.
-콰각! 쿠우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위가 산산조각나며 으스러졌다.
돌무더기가 된 바위.
나는 바닥에 깔린 돌덩이를 치웠다.
그러자 바위 밑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연대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예스러운 문양과 전사를 상징하는 그림이 음각된 문.
바로 고대 유적의 입구였다.
‘이런 걸 찾아낸 그 용병도 대단한 녀석이야.’
분명, 심심해서 바위를 부쉈다가 발견했다지?
‘……생각해보면 그 녀석 미친놈 아냐? 대체 머리가 어떻게 돌아가길래 심심하다고 멀쩡한 바위를 부숴?’
속으로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입구의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끼기기긱!
그러자 문이 비명을 지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 뒤에 있는 것은 어둠으로 가득 찬 계단.
이곳이 바로 고대 유적으로 향하는 통로였다.
나는 사전에 준비해 온 등잔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계단 아래로 발을 들였다.
“…….”
통로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가득 풍겨왔다.
사방에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계단.
대체 얼마나 깊은 곳에 자리한 유적일까?
“…….”
한참 동안 계단을 내려갔을까.
마침내 계단의 끝이 보이고 일직선의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화르륵!
“……!!”
통로 양측에 설치되어 있던 수많은 석제 등잔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깜짝이야…….”
나는 등잔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들어오면 자동으로 불이 들어오도록 마법이 걸려 있던 모양이다.
“……이건 쓸모 없게 됐군.”
나는 준비해 온 등잔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미스틸테인을 뽑아 들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진정한 유적에 진입한 셈이다.
여기서부터는 어떤 함정이나 가디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곧바로 싸울 수 있게 전투 준비를 하는 게 옳았다.
나는 미스틸테인을 오른손에 쥔 채, 터벅터벅 통로를 걸었다.
통로에는 입구의 문처럼 여러 가지 그림과 문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전사의 모습, 사냥한 몬스터를 해체하는 모습, 심장을 제단에 바치는 모습.
그 밑에 주석처럼 달린 상형문자들까지.
고고학자들에게는 환상적으로 학구열을 자극할 광경이지만, 내게는 그냥 신기한 그림들일 뿐이다.
그런 그림들을 보며 한참을 걸었을까.
“음?”
미약한 기름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석제 등잔에서 나는 냄새가 아닌, 다른 곳에서 느껴지는 기름 냄새.
함정이 틀림없었다.
절로 눈이 가늘어졌다.
‘어디지?’
곧바로 주변을 살폈다.
샅샅이 살핀 결과, 나는 바닥의 깊이가 다른 곳을 찾아냈다.
검집으로 살짝 누르자, 미세하게 석제 벽돌이 밑으로 들어갔다.
‘밟으면 작동하는 함정이군.’
기름 냄새로 미루어 볼 때, 아마 이곳을 밟으면 어디선가 불이 뿜어지거나 했겠지.
만약 찾지 못했으면 모를까, 발견했다면 별 것 아닌 함정이다.
나는 곧장 그 부분을 뛰어넘었다.
그리고는 미스틸테인으로 칼자국을 내, 함정을 표시했다.
함정은 그것 하나뿐이 아니었다.
자동으로 화살을 쏘아내는 함정, 밟으면 땅이 꺼지는 함정, 날카로운 창날이 쏟아지는 함정 등등.
수많은 함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함정뿐만이 아니었다.
“……드디어 나오기 시작하는군.”
통로가 끝나고, 좀 더 넓은 광장 비스무리한 곳에 도착했을 때,
저 멀리서.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쿠웅!
꽤 무게가 있는지, 묵직한 발걸음.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마나의 잔향.
나는 미스틸테인을 꽉 틀어쥐고, 전투 준비를 했다.
그리고 곧,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돌덩이가 합쳐져 사람 형태를 띤 존재.
골렘.
바로 이 고대 유적을 지키는 가디언이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