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쿠웅…… 쿠웅…… 쿠웅……
마침내 모든 골렘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것은 세 마리의 골렘이었다.
대략 성인 남성보다 1.5배는 더 큰 몸집.
내 허리 굵기의 팔뚝과 머리통만 한 크기의 주먹.
언뜻 봐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함정 따위로 쉽게 쉽게 끝날 리가 없지.”
미스틸테인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천천히 자세를 낮추며 골렘의 동태를 살폈다.
그 순간.
-그그그그!
골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곧, 골렘들이 달려들었다.
-쿠웅!
육중한 몸집에 반해 상당히 빠른 속도.
순식간에 내게 접근한 골렘이 팔을 휘둘렀다.
-쉬익!
두툼한 주먹이 위협적인 파공음을 내며 쏘아진다.
나는 가볍게 몸을 숙이며 골렘의 주먹을 피해냈다.
다행히도 아직 어린 나이라는 게 이럴 때는 좋았다.
몸집이 작으니, 공격을 피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주제에 맞게 움직일 것이지!”
가가가각!
첫 번째 골렘을 스쳐 지나가며 나는 눈을 빛냈다.
‘저게 코어인가?’
모든 골렘의 가슴팍에는 붉은빛을 발하는 보석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
코어를 파괴하면 골렘은 기동을 멈춘다.
리빙 아머와 똑같은 특징이다.
‘블러드하운드 검식은 쓸모가 없겠고.’
당연하지만, 다른 특징도 공유한다.
아무리 파괴해도 코어를 부수지 못한다면 골렘은 재생한다.
파각!
굴단의 오러를 담은 검격이 첫 골램의 옆구리를 부수었다.
돌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자석에 철가루가 달라붙듯 순식간에 골렘의 몸체로 다시 붙었다.
‘재생 속도는 리빙 아머 이상이다.’
역시 유적 가디언의 악명은 허명이 아니었다.
첫 골렘을 피하자 곧장 두 번째 골렘의 주먹이 내게 날아들었다.
빠르게 땅을 박차며 주먹을 피하자, 세 번째 골렘이 태클을 날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
하지만 이 육체는 그조차도 반응해냈다.
가뿐히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골렘의 등을 박찼다.
그리곤 검을 역수로 쥐어 골렘의 등에 쑤셔 박았다.
정확히 코어를 노린 일격!
-파가각!
등 한가운데를 관통당한 골렘이 움직임을 일순 멈추었다.
‘해치웠나?’
-그그그!
“……!!”
-쉬익!
아쉽게도 아니었다.
골렘은 멈칫하더니, 이내 팔 관절을 거꾸로 돌려 내 발목을 쥐려고 시도했다.
생물이 아닌 인형이기에 가능한 기동이었다.
빠르게 미스틸테인을 뽑아내며 다시금 놈의 등을 박찼다.
동시에 다른 골렘이 내게 뛰어들었다.
‘미친!’
저 몸뚱이로 대체 저런 기동이 어떻게 가능한 거지?
하지만 골렘은 그런 위업을 해냈다.
순식간에 몇 미터는 뛰어오른 골렘!
나는 빠르게 블러드하운드의 오러를 발현하며, 검격을 흩뿌렸다.
-콰쾅!
내게 날아오던 골렘이 산산조각이 나며 돌무더기가 되어 바닥으로 쏟아졌다.
하지만 곧 그것도 고작 몇 초.
골렘은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재생해냈다.
“칫!”
귀찮은 놈들이다.
다행히도 슬라임마냥 코어를 옮기는 타입은 아니기에 정확히 조준해 파괴하면 처치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서걱!
“짜증 나는군.”
골렘 또한 자신들의 약점이 코어라는 걸 아는지, 어떻게든 코어가 파괴되는 것만은 막기 위해 방어했다.
-콰직!
그렇게 골렘을 파괴하기를 수어 번.
이런 식으로 갔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렐릭의 반지를 사용했다.
이전에 사용한 방식이 마나의 ‘압축’이었다면.
이번에는 ‘염화’
-화르륵!
순식간에 미스틸테인이 불타올랐다.
마나의 속성을 화염으로 바꾼 것이다.
불길이 일자 내가 있는 광장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출구는 저쪽이고.’
다행히 이 광장에 있는 골렘은 이 세 마리 뿐.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다가오는 골렘에게 화염을 뿌렸다.
-화아아악!
불꽃의 마나가 다가오는 골렘을 휘감았다.
골렘이 황급히 자신의 코어를 양팔로 숨겼다.
하지만.
‘렐릭의 힘은 오러에도 적용되지.’
렐릭의 반지는 마나의 속성을 바꾸는 효과를 지녔을 뿐, 그 마나로 이루어진 오러가 가진 검식의 힘은 유지된다!
그리고 내가 뿌린 화염의 오러는, 바로 블러드하운드 54식의 오러!
-콰지지직!
블러드하운드의 오러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골렘이 순식간에 산산이 부숴졌다.
당연하지만, 골렘이 감추고 있던 코어도 마찬가지였다.
코어가 파괴당한 골렘이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
나는 다음 골렘에게도 화염의 오러를 날렸다.
첫 번째 골렘이 맥없이 파괴된 것을 본 탓일까.
이번 골렘은 화염을 막지 않고 피했다.
‘쯧.’
나는 혀를 찼다.
염화 방식으로 렐릭의 반지를 사용하면,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마나가 소모된다.
똑같이 많은 마나를 필요로 하는 블러드하운드 검식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건 아주 잠시뿐.
불꽃놀이는 오랫동안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틈을 만들 정도만 되면 상관 없다.
화염을 피하느냐고 골렘의 자세가 흐트러진 지금이다.
-타악!
나는 재빨리 화염을 거두며 땅을 박찼다.
그리고는 코어가 그대로 드러난 골렘에게 검격을 날렸다.
검격은 얕았다.
골렘이 몸을 뒤로 빼는 탓이었다.
하지만.
-파삭!
코어를 파괴하기에는 충분했다.
코어가 파괴당한 즉시, 두 번째 골렘도 돌무더기가 되어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단 한 마리.
‘이제는 쉽지.’
나는 마지막 남은 골렘도 빠르게 처치했다.
-후드득
“후우.”
나는 미스틸테인에 묻은 돌가루를 털어냈다.
그리고는 다시금 광장을 나아갔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 * * * *
-서걱!
광장을 지나가자 나온 건 다시금 함정이 가득한 통로였다.
수많은 함정을 넘나들고 도착한 곳은 또 다른 광장.
그곳에는 다섯 마리의 골렘이 있었다.
그것을 전부 처치한 뒤, 다시금 함정 통로를 지나고, 새로운 광장에서 또다시 골렘을 처치하고…….
똑같이 생긴 광장과 통로, 그리고 골렘 처치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이젠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총 열 마리의 골렘을 처치한 뒤, 돌무더기 위에 앉아 가져온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생각했다.
‘대체, 끝이 어디지?’
벌써 광장만 4개를 지나쳤다.
함정 통로는 무려 5개를 지나왔다.
‘그나마 미로가 아닌 게 다행인가?’
만약 미로 형태의 유적이었다면 꽤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다시 저택으로 돌아가서 실을 챙겨와야 할지도 몰랐다.
‘그나마 직선형 유적이라 다행이긴 한데.’
물론 그렇다고 피곤함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에휴.”
나는 육포를 꿀꺽 삼키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번 통로는 뭔가 달랐다.
‘함정이 없네.’
지나온 다섯 개의 통로에서는 빠진 적 없는 수많은 함정이 이번 통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예상이 좋은데?”
아무래도 이번 통로가 끝일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들자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이번 통로의 끝에 있는 것은 광장이 아니었다.
통로의 끝에 존재한 건 거대한 사원이었다.
고대 유적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의 사원.
-화르륵!
사원에 발을 들이자마자 사방에서 불이 켜졌다.
그리고.
‘찾았다!’
나는 눈을 반짝였다.
사원 한가운데에 존재하는 제단.
그 제단 위에 있는 낡은 완갑을 보았기 때문이다.
저것이 바로 ‘마르스의 완갑’
겉보기에는 낡아빠진 투박한 골동품 완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힘을 지닌 유물 아티팩트다.
나는 천천히 사원으로 진입했다.
그 순간.
-쿠구구궁!
엄청난 굉음이 사원에 울려퍼졌다.
순간 멈칫한 나는 피식 웃었다.
‘하긴.’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있을 리가 있나.
어째 마지막 통로에 함정도 없더라니, 최종 보스가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인 것은 묵빛의 거대한 골렘이었다.
유적의 끝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
엘리트 가디언이었다.
“후.”
나는 숨을 고르며 놈을 살폈다.
다른 유적 골렘보다 두 배는 더 거대한 몸집.
거기에 더불어.
‘금속?’
이번 골렘은 몸체가 석재로 되어 있지 않았다.
금속.
그것도 마치 물처럼 흐르는 액체 금속이었다.
“칫.”
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저런 형태의 골렘이라면 분명 슬라임처럼 코어를 옮겨 다닐 게 뻔했기 때문이다.
“뭐, 어쩔 수 없나.”
보물을 얻으려면 수호자를 잡아야 하는 법.
나는 다시금 미스틸테인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는 곧장 금속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염화!”
업화의 불꽃이 검신에서 치솟았다.
‘액체인 이상 파괴는 안 통하겠지.’
그렇다면, 블러드하운드는 쓸 수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검식이 그것 하나뿐인 것도 아니니까.
나는 곧바로 새로운 검식의 기본 자세를 취했다.
‘이번 생에는 처음 써보는 거지만…….’
전생에는 질릴 정도로 오랜 시간 사용한 검식이다.
나라는 사냥개를 상징하는 검식.
내 비전 검술.
바인더샤칼 13식.
속칭, 물어뜯는 검.
“물어뜯어라!”
날카로운 이빨로 형태화된 불길이 강철 거인에게 휘둘러졌다.
-와드득!
골렘이 액체화되어 있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물어뜯는 이빨은 상대가 액체건 고체건 가리지 않으니까.
검격이 순식간에 골렘의 오른팔을 뜯어냈다.
뜯겨져 나간 액체 금속이 구심점을 잃고 바닥에 흩뿌려진다.
물론 순식간에 다시금 본체로 흘러 들어가겠지만, 중요한 건 놈의 코어가 움직일 반경을 줄인다는 점이다.
“크윽!”
절로 눈을 찡그렸다.
순간적으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바인더샤칼은 오러를 크게 잡아먹지 않는 검식이다.
하지만 그 대신.
“크아아악!”
엄청난 수준의 고난이도 오러 컨트롤 능력을 필요로 한다.
마나 하트가 미친 듯이 고동치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몸으로 ‘물어뜯기’를 시전한 탓이다.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나는 이 격째 이빨을 휘둘렀다.
-와드득!
이번에는 골렘의 오른 다리가 날아갔다.
중심을 잃은 금속 골렘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위기감을 느낀 걸까.
녀석은 자신의 몸 형태를 무너트리며 액체 금속으로 날카로운 가시를 쏘아냈다.
-파바박!
순식간에 수많은 가시가 내 몸을 노렸다.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내가 방금 전까지 서있던 위치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이런 식의 공격은 방어가 힘들다.
하지만, 그 대신!
“찾았다!”
나는 눈을 빛냈다.
놈이 몸의 형태를 무너트리면서, 그 코어가 잠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놓치지 않는다!”
다시금 삼 격째 이빨을 휘둘렀다.
거대한 입으로 형태화된 오러가 놈의 몸 한가운데를 물어뜯었다.
그러자.
-퍼엉!
순식간에 내가 물어 뜯어낸 곳을 제외한 다른 부분의 금속이 터졌다.
‘잡았다!’
정확히 코어를 도려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어뜯기며 본체에서 분리된 골렘은 심히 당황한 듯했다.
가디언이라는 녀석이 침입자를 향한 공격도 멈춘 채, 뒤로 도망친 것이다.
하지만.
“놓칠 수 없지!”
나는 땅을 박차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면서 오러를 로타 블리츠로 바꾸었다.
-파지지직!
붉은 번개가 검신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갔다.
나는 채찍처럼 그 오러를 휘둘렀다.
-파바바바박!
전격이 사원 천장을 훑으며 골렘에게 쏘아졌다.
도망쳐도 소용 없다.
본체가 금속인 이상.
전격계 공격을 피할 방법은 없으니까.
-꽈르릉!
천둥이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번쩍였다.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잡았다!’
내가 유적의 엘리트 가디언을 처치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