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대수림!
그곳은 대륙 서부에 있는 거대한 수해樹海를 일컬었다.
어지간한 공작령에 비견될 정도의 거대한 숲.
겉모습은 그저 푸르고 아름다운 숲이다.
수많은 동식물이 존재하고, 생명이 살아 숨쉰다.
또한, 예로부터 요정이 숨어 산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왔기에 ‘요정의 숲’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렀다.
하지만 대수림은 그 신성한 이름에 걸맞지 않은 마경이었다.
진정한 출입금지구역인 ‘대마경’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 바로 대수림이었다.
고대부터 뿌리를 내려온 거목들이 출입을 막는 방패가 되어 인간의 손길이 오랜 시간 닿지 않았고, 그 덕분에 수많은 몬스터가 우글거렸다.
서식하는 몬스터의 등급은 최소 1급부터 최대 8급!
어쭙잖은 실력으로는 발도 못 붙일 곳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수림을 찾는 자는 많았다.
듣도 보도 못한 희귀하고 신비한 몬스터가 서식하는 곳.
그들을 사냥해 부산물을 팔아 먹고사는 모험가들이 몰려드는 건 당연한 이치였고, 사람이 몰리는 만큼 지역이 발전하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유흥과 향략의 도시 오르피스가 대수림의 코앞에 생긴 게 괜한 일이겠는가?
-다그닥 다그닥!
덕분에 대수림으로 향하는 마차는 언제나 만석이었다.
마차의 탑승 인원은 다양했다.
풍류를 즐기러 온 한량, 몬스터를 사냥하려는 모험가, 칼을 파는 낭인까지!
그런 가지각색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도 사내 한 명과 어린아이 한 명은 은근히 눈에 띄는 조합이었다.
심지어 그 두 사람 모두 칼을 차고 있었다면, 더더욱!
“아직 멀었습니까?”
몸을 뒤덮은 훈련복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나는 옷깃을 당기며 멜을 돌아보았다.
그 옆에 앉은 채, 눈을 감고 있던 멜이 중얼거렸다.
“한 번만 더 찡얼거리면, 그 훈련복을 얼굴에도 뒤집어씌우는 수가 있다.”
“…….”
멜의 협박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저 말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럴 기세였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마차 밖을 돌아보았다.
물론 마차를 뒤덮은 천막 덕분에 밖이 잘 보이지 않아, 내가 원하던 도착 시간은 알 수 없었다.
나는 수통을 꺼내 가볍게 물을 한 모금 들이키며 생각했다.
‘젠장. 장난 아니군.’
훈련복의 효능은 장난이 아니었다.
몸에 입은 그 순간부터, 나는 마나를 한 톨도 쓸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몸을 짓누르는 어마어마한 무력감!
‘전신에 중력석을 매달고 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심지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 옷, 디자인이 구려.’
일단 전신을 꽉 조이는 디자인인 탓에, 통풍이 조금도 되지 않았다.
훈련복을 입고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나는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심지어 이 위에 평상복까지 입은 상태니, 그 더위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거기에 몸이 압박당하는 건 덤이었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굉장히, 불편해.’
움직임이 미약하게 제약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할만해.’
버텨야 한다.
비전 내격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술을 배울 기회다.
전생에는 붙잡지도 못했던 기회!
그런 걸 고작 약간 힘들다고 포기한다고?
‘절대 그럴 수는 없지.’
전생에 겪은 고생에 비하면.
이 정도는 충분히 참을 만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마차가 대수림에 도착한 건 그날 저녁이었다.
정확히는 오르피스의 입구 앞에 도착한 마차는 우리 두 사람을 내려놓고 떠나갔다.
저 멀리 사라지는 마차를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고개를 돌려 멜을 쳐다보았다.
“그럼 이제 오늘 밤은 어떻게 합니까?”
“뭐?”
멜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등 뒤로 펼쳐진 오르피스의 성벽을 가리켰다.
“오늘 밤은 오르피스에서 묵는 겁니까?”
“뭔 개소리야?”
멜이 얼굴을 찡그렸다.
“설마 숙소를 말하는 거냐?”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멜에게는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또 개소리하고 있네. 숙소 같은 게 어딨어?”
“……?”
내가 당황하자 멜은 귀를 후비적거리더니, 이내 손가락을 후 불었다.
“지금 당장 대수림으로 들어간다.”
“네?”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지금 당장 대수림으로 들어간다고?
‘이 야밤에?’
난 어처구니가 없어 되물었다.
“지금 들어간다고요? 그냥 이대로 말입니까?”
“그럼 뭐, 챙길 게 더 있어? 검도 있어, 몸뚱이도 멀쩡해, 심지어 네 멍멍이도 함께 데려왔잖아?”
멜이 손가락으로 내 옆에서 빨빨거리는 도지를 가리켰다.
“애완동물도 데려오고, 나는 아주 그냥 여행 온 줄 알았다. 여행.”
“낑!”
그 순간, 도지가 추임새를 넣듯 짖었다.
나는 새삼 억울해졌다.
“이 녀석은 그냥 따라온 겁니다. 제가 데려온 게 아니라고요.”
“시끄러워. 변명할 기운이 있으면 그냥 입 다물고 움직이기나 해.”
“…….”
하.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어째 묘하게 불안하더라니.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쉰 뒤, 내 주변을 빙빙 도는 도지를 안아 들었다.
“……가시죠.”
“뭔가 말투가 묘하게 원망스러워 하는 것 같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럼 여기가 안이냐? 밖이지?”
“…….”
멜은 자신이 친 농담이 웃겼는지, 낄낄거리며 성큼 앞장섰다.
“얼른 따라와. 이러다 날 새겠다.”
나는 앞서 나가는 멜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우리는 대수림 안으로 발을 들였다.
* * * * *
오르피스의 어느 한 허름한 유곽 안.
이곳의 분위기는 다른 유곽과는 달랐다.
흥겹게 술잔이 오가야 할 실내는 조용하기 그지 없었고, 오히려 싸늘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베일 것 같은 긴장감이 가득한 방.
그 안을 비추고 있는 것은 오로지 촛불 몇 개 뿐.
그런 실내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쪽 눈을 검은 안대로 덮은 채 상석에 앉아 있는 자와, 그의 정 반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자.
“방금 표적들이 지저분한 발로 우리의 대수림을 더럽혔다더군.”
상석에 앉은 사내, 바리스가 불쾌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짓씹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니 네가 베어야 할 건 총 두 명이 되겠지. 하나는 표적, 다른 하나는 그를 지키는 수호자다.”
그러자 무릎꿇고 있던 자가 고개를 슬며시 들며 물었다.
“수호자…… 수호 기사입니까?”
상대의 물음에 바리스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수호 기사는 아니다. 하지만 방심하지 마라. 놈은 최소 5성 기사. 그것도 마그너스의 사냥개일 터. 절대로 만만하게 볼 놈이 아니다.”
그 말에 사내가 눈을 빛내며 슬그머니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봤자 고작 5성 기사 아닙니까?”
“…….”
“설사 그 이상이더라도…….”
잠시 뜸을 들인 사내가 곧 눈을 부릅떴다.
“그 둘은 감히 우리의 대수림을 더럽힌 놈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찾아서 참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한 사내는 마치 당장이라도 칼질을 하고 싶다는 듯, 허리춤에 매달린 칼자루를 매만졌다.
그 모습에 바리스가 눈을 찌푸렸다.
“분명 내가, 방금 방심하지 말라고 했을 터인데…….”
“…….”
“너,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이해는 하고 있는 건가? 그리고…… 우리? 우리의 대수림이라고?”
그 말에 사내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모습에 바리스가 혀를 찼다.
“뭐가 우리라는 거냐. 네놈의 처지를 제대로 알아라, 비국민. 지금 너는 ‘우리’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일갈에 사내가 두려운 눈으로 바리스를 올려다 보았다.
“주, 주의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공포에 질려 몸을 바들바들 떠는 게, 마치 주인에게 버려진 강아지 같은 모양이다.
사내의 그런 모습에 바리스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물론…… 이번 일을 잘 해결한다면 네 처지도 조금 나아질 수 있겠지.”
“그, 그렇습니까?”
“그럼, 당연하지! 이 임무는 경애하는 우리들의 주군께서 직접 지시하신 일이니까!”
바리스가 그렇게 으스대자, 사내의 눈이 희망으로 반짝였다.
바리스는 느긋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가 죽일 표적은 고작 아홉 살짜리 아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리텐슈노프답게 고작 그 정도의 나이에도 가진 바 실력이 뛰어나다곤 하지만…….”
바리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결국은 아홉 살 짜리 어린아이 아닌가? 어려울 건 없겠지.”
“그, 그렇습니다! 어려울 건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만약 네놈이 성공한다면…….”
바리스가 하나뿐인 눈을 희번뜩 떴다.
“요정왕 전하께서 네놈을 다시 돌아보실 것이다.”
“……!!”
요정왕, 이라는 말에 사내의 눈빛이 변했다.
사내의 입에서 귀기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맞습니다! 제가 맡겨만 주십시오! 감히 요정족의 허가도 받지 않고 대수림을 더럽힌 놈의 사지를 찢겠습니다! 제가 꼭 두 놈의 목을 베어 전하의 어전에 바치겠습니다!”
동시에, 소름끼치는 광기가 유곽 안을 가득 채웠다.
바리스가 눈을 번들거리며 외쳤다.
“비국민인 네놈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절대 놓치지 마라! 전하의 충복으로서, 네놈이 비국민이 아닌 전하의 충직한 종복이라는 걸 증명하라!”
“요정왕 전하 만세!”
순간 사내가 함성을 터트렸다.
그의 두 눈이 당장이고 터질 것 같은 흥분감으로 번들거렸다.
바리스는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술잔을 들었다.
“대수림이 낳고, 요정께서 기르셨다.”
바리스의 선창에 사내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소리쳤다.
“대수림이 낳고, 요정께서 기르셨다!”
“님께 받은 목숨, 되돌려 바치리.”
“님께 받은 목숨, 되돌려 바치리!”
바리스는 술잔을 들어 한 번에 들이켰다.
사내 또한 자신의 눈 앞에 놓인 술잔을 들이켰다.
그 모습에, 바리스가 나직이 말했다.
“요정왕 전하, 만세.”
-쨍그랑!
바리스가 잔을 바닥에 내던지자, 곧바로 사내 또한 잔을 던졌다.
“요정왕 전하, 만세!”
그의 귓에 달린 요정귀 장식이 섬뜩하게 반짝였다.
* * * * *
-쏴아아아!
마치 밤바다를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파도가 치는 것 같은 바람 소리.
푸른 빛의 대나무로 가득 찬 숲.
‘이곳이 바로 대수림의 서쪽.’
죽림 ‘에타’
나는 은은한 달빛이 쏟아지는 대나무숲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저쪽에서 궐련 한 개비를 입에 문 멜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뭘 하면 됩니까?”
내 질문에 멜이 궐련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한 달.”
“한 달?”
“앞으로 한 달간 이 숲에서 생활한다.”
그 밑도 끝도 없는 소리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무슨 뜻입니까?”
멜은 가볍게 하품을 하며 궐련재를 털었다.
“자, 이 숲에 뭐가 있는지 알지?”
“압니다. 그레이트 판타죠.”
그레이트 판타.
흰색과 검은색을 대충 섞어둔 것 같은 털로 뒤덮인 거대한 곰처럼 생긴 몬스터였다.
잡식성이지만 육식을 즐겨 하며, 지능은 꽤 높았고, 사람 잡아먹는 것으로 유명한 놈이었다.
등급은 4급.
그것도 4급 최상위권의 몬스터였다.
놈은 특징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제국 말벌과는 다르게 마나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었다.
오러까지는 아니지만, 신체를 마나로 강화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꽤 강한 몬스터임에도, 녀석은 모험가들에게 사냥 대상으로 인기가 높은 놈이었다.
털가죽부터 발톱, 고기, 놈의 배 속에 있는 마나 스톤까지.
사냥에 성공하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타는 그레이트 판타의 최대 서식지였다.
“여기는 그레이트 판타의 영역이지. 다른 몬스터라고는 등급 외 수준의 소동물들 뿐일 거다.”
멜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궐련을 휙 튕겼다.
-키이이익!
그가 튕겨낸 궐련이 바닥을 기어 다니던 작은 도마뱀의 몸을 관통했다.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는 도마뱀을 바라보며, 멜이 웃었다.
“이제부터 이곳에서 한 달간. 숙식부터 생존까지 전부 해결하는 거다. 배가 고프면 저런 거 사냥해서 먹고, 잠이 자고 싶으면 땅 파서 대나무 잎 깔고 자고. 알았냐?”
“……그레이트 판타가 나타나면요?”
그 말에 멜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도망쳐야지. 뭐, 잡고 싶어? 잡을 수는 있고?”
“……이딴 걸 입고 도망치란 말입니까?”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고 있는 훈련복을 잡아당겼다.
“이것 때문에 마나를 봉인 당했는데요? 도망치는 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글쎄?”
멜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불가능할 건 없지. 나도 해봤는걸.”
아, 해보셨구나!
그 무신경한 대답에 나는 이마를 탁 쳤다.
내 어처구니가 없어지든 말든, 멜은 자기 할 말만을 계속했다.
“그레이트 판타는 움직임이 빠르지. 또한, 한 번 노린 사냥감은 절대 잊지 않아. 네가 이 숲에서 살아남으려면…….”
“내격을 익히거나, 계속 숨어다녀야겠군요.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몸으로는 도망치기 힘들 테니까.”
“잘 아네. 자 그럼 이제 꺼져.”
멜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귀찮으니까 어서 빨리 사라지라는 듯한 태도.
‘어련하시겠어.’
나는 입술을 가볍게 씹었다.
하지만 별수가 있나?
나는 품에 도지를 안은 채, 천천히 죽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한 달간의 내격 수련이 시작되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