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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47화 (47/139)

47화

사박사박.

흐트러지듯 바닥에 깔린 낙엽.

그 낙엽을 조용히 짓밟으며 한 중년 사내가 죽림을 활보하고 있었다.

신기한 행색의 사내였다.

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흐드러진 천이 인상적인 복장. 머리에는 둥그렇고 납작한 삿갓을 썼고, 허리춤에 늘어트린 칼 또한 평범한 모양은 아니었다.

평범한 기사라고 하기에는 묘한 모습.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사내의 귀에 달린 장식이었다.

요정의 귀를 형상화한 것 같은 길쭉한 장식.

사내가 대수림 인근을 지배하는 군주인 요정왕의 수하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

사내의 얼굴은 긴장으로 눈에 띄게 굳어 있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사내는 무려 5성.

죽림의 지배자인 그레이트 판타는 물론, 어지간한 영지의 기사들 따위는 한 손으로도 썰어버릴 수 있는 실력자다.

이런 곳에서 몸이 굳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내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것도 안 느껴지다니…….’

사내의 감각에 그 어떤 것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말 그대로였다.

어느 때나 지저분한 발로 대수림을 더럽히는 불경한 모험가의 기척도.

이곳에 서식하는 그레이트 판타의 기척도.

그리고.

목표로 삼은 리텐슈노프의 혈통도.

그 어느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꿀꺽!

사내가 마른침을 삼켰다.

‘마치…… 숲이 텅 비어버린 것 같군.’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연히 최근 며칠 동안 모험가들이 죽림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죽림은 매우 넓고 큰 숲이기에 리텐슈노프 혈통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레이트 판타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아…….’

이건 말이 안 된다.

아무리 자신이 내뿜는 위압감에 그레이트 판타가 겁을 집어먹고 제 굴로 피신했다고 하더라도.

기척 정도는 잡혀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마치 눈앞에 안개가 낀 것처럼.

아무것도,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자신의 감각을 비틀어 놓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잖은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5성급 실력자의 감각을 뒤틀다니.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지 않은가?

사내는 그렇게 생각하며 상념을 털어냈다.

‘시간이 없다.’

하루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다.

목표로 삼은 리텐슈노프의 혈통을 처치한 뒤, 여유롭게 복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3일이라는 시간을 낭비했다.

계속 시간을 지체하다간 목표가 눈치챌 지도 모른다.

아무리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결국은 미세하게나마 남게 되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려는 순간.

-쉬익!

무언가가 허공에서 떨어졌다.

하늘에서 내리꽂히듯이 내려온 검날이 사내의 오른쪽 어깨를 베어냈다.

“크악!”

갑작스레 떨어진 날벼락에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어깨를 부여잡은 채 비틀거렸다.

-투둑!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지며 잘려나간 오른팔이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크흑! 어떤 놈이 감히……!”

사내가 핏발 선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사내의 오른팔을 가져간 소년이 은빛으로 번뜩이는 검을 겨누며 피식 웃었다.

“뭘 봐?

사내가 그토록 찾던 목표.

드레커 리텐슈노프였다.

* * * * *

기습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상대는 내가 팔을 날려버리기 직전까지도 내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

전생에 7성까지 올라서 본 적 있는 나다.

고작 5성 따위에게 기척을 숨기는 것 정도는 쉽지.

‘물론 마나의 흐름으로 들킬 수도 있었지만…….’

수련복 덕분에 내 마나는 봉인 당한 상태.

그러니 상대는 나를 감지하지 못한다.

‘이 거지 같은 수련복 덕을 볼 줄은 몰랐는데.’

참 모를 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치켜든 채, 눈앞의 적을 노려보았다.

잘린 오른팔 대신 왼팔로 기다란 칼을 뽑아 든 사내.

사내의 귓전에서 반짝이는 요정 귀 장식이 눈에 띈다.

‘요정 놈들이군.’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다.

그라힐이 완전히 미치지 않고서야 리텐슈노프 혈통을 암살하는 데 리텐슈노프의 기사를 끌어다 쓸 리가 없다.

마그너스가 허락한 건 경쟁이지, 골육상쟁이 아니니까.

그러니 대충 좀 손봐줄 목적이 아니라 아예 암살이 목적이라면 리텐슈노프가 아닌 다른 곳에서 손을 빌리는 게 정상이다.

그리고 리텐슈노프의 개망나니로 유명한 그라힐에게 이렇게 많은 5성 기사를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빌려줄 이유가 있는 사람도 단 한 명뿐이고.

‘요정왕, 그 약쟁이 년뿐이지.’

짜증이 치솟는다.

벌써부터 견제가 들어올 줄이야.

그것도 툭툭 시비를 걸듯 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죽이기 위해 척살대를 보내는 수준이라니.

‘내 성장에 더 박차를 가해야겠어.’

오늘이야 운 좋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만, 다음에도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쭙잖게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힘을 키우던가, 아니면 문제의 근원을 뿌리 뽑는 수밖에 없는데…….

결국, 둘 다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도돌이표라는 거지.

‘일단 지금은…….’

이놈부터 치우는 게 먼저다.

나는 천천히 긴장을 끌어올리며 눈앞의 사내를 살폈다.

오른팔을 잘리면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안색이 창백하다.

아니,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모양이다.

“이, 빌어먹을 애새끼가……. 어떻게 네까짓 놈이 지금까지 그 기척을 숨긴 거냐?”

5성 기사답지 않게 노골적으로 당황한 모습.

대체 어떻게 자신의 감각에 걸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이다.

난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쪽이 어지간히 허접해서 못 찾은 게 아니고?”

내 도발에 놈이 눈을 부릅뜬다.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처럼 흥분한 모습.

하지만 곧 놈은 평정을 되찾았다.

오히려 나를 향한 경계 지수를 끌어올리는 것이, 역시 5성 기사쯤 되니 다르긴 다르다.

“왜 안 덤벼? 설마 아홉 살짜리한테 겁먹은 거냐?”

이쯤 되면 더 도발이 먹힐 리는 없지만…….

난 ‘이놈’들이 미쳐 날뛰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

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그 정도밖에 안 되니 네 족속들이 아직도 병신 취급을 당하는 거야. 하긴, 그 주인부터가 아직도 지가 동화 속 요정 나부랭이라고 생각하는 정신병자니까.”

그 말에 사내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뭐라?”

“뭐, 내가 틀린 말 했나?”

“이, 이, 이! 버러지 같은 열등종족이!”

곧바로 놈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난 빠르게 몸을 피하며 녀석을 비꼬았다.

“너랑 나랑 같은 종족이야, 병신아.”

“허튼소리!”

이들은 자신들을 ‘요정족’이라고 부른다.

요정족은 스스로가 인간과 혈통부터 다른, ‘요정’ 종족이라고 믿는 족속들로, 평범한 인간을 열등하다고 멸시하며 자신들이 더욱 우월한 종족이라고 주장한다.

인간과 동급으로 취급되기를 극도로 혐오하며, ‘순혈 요정’인 요정왕을 받들어 열등한 인간들을 자신들이 지배해야 한다고 믿는 놈들이라는 거다.

그렇기에 트리거를 살짝 건드려주면…….

“이 열등한 벌레가!”

이렇듯, 알아서 미쳐 날뛰어 준다.

‘참 알기 쉬운 놈들이라니까.’

나는 녀석의 검격을 피하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이렇게만 들으면 세상에서 둘도 없을 병신 집단 같지만, 놈들의 세력은 쉽게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당연히 오대 명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 거대한 세력을 일구고 있기 때문이다.

‘마냥 우습게 볼 놈들은 아니지.’

하지만 상관없다.

난 이놈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특히.

이들이 섬기다 못해 신처럼 떠받드는 존재.

현 요정왕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아주 잘 알고 있다.

“네 수준을 보니 요정왕이 얼마나 머저리인지 잘 알겠군.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게 사실인가 봐?”

“그 입 닥쳐라아아아!”

눈이 뒤집힌 채, 거의 광기로 검을 휘두르는 녀석.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탓에 놈의 검에 담긴 오러는 보잘것없었다.

‘물론 나도 마나를 쓰진 못하지만…….’

쌓아온 경험이 다르다.

4성의 경지에 오른 지금, 눈이 뒤집힌 5성 기사 따위는 말 그대로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

거기에 더불어.

‘나는 혼자가 아니거든.’

그 순간.

그때까지 낙엽 밑에서 기회를 노리던 도지가 땅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타닥!

“무, 뭣?”

도지가 입을 쩍 벌리며 놈의 옆구리에 이빨을 박아넣었다.

“커헉!”

갑작스러운 기습에 놈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녀석의 몰아치던 검격에 빈틈이 생겼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놈의 왼쪽 허벅지를 베었다.

“으아악!”

녀석이 엉거주춤 비틀거린다.

나는 곧장 놈의 등 뒤로 돌아가,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녀석의 널찍한 등판을 그대로 그어버린다.

그와 동시에 도지가 놈의 옆구리 살점을 뜯어냈다.

“크아아악!”

녀석이 고꾸라지며 바닥을 구른다.

황급히 내가 날린 연격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녀석의 움직임은 아까보다 확연히 느려졌다.

몸은 중심을 잃은 채 흔들렸고, 눈에는 총기가 없다.

‘이 정도로 피를 흘렸으니.’

이제는 출혈을 감당하기 힘들 터.

이런 상황에서 멀쩡하면 그거야말로 진짜 놈이 종족부터 다르다는 증거겠지만…….

“끝났군.”

진짜로 요정족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잖는가?

놈은 나와 같은 인간이다.

피를 흘리면 죽고, 몸이 병신이 되면 죽는 인간.

나는 휘청이는 놈이 쓰러질 때까지 거리를 둔 채 녀석을 경계했다.

녀석은 공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단말마를 내뱉었다.

“말도, 안 돼…….”

털썩.

곧 놈이 쓰러졌다.

나는 놈의 죽음을 확인하자마자 미스틸테인을 갈무리하며 외쳤다.

“멜 경! 끝났으니까 어서 나오십시오!”

그러자.

곧 허공에서 떨어진 멜이 내 곁에 사뿐히 착지했다.

멜은 새끼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적거리며 나를 심드렁히 쳐다보았다.

“왜 부르냐?”

난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굳이 이 암살자를 제게 보낼 이유가 있었습니까?”

이런 건 그쪽이 알아서 처리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니, 그는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레이트 판타로는 자극이 부족한 것 같아서. 내격 빨리 배워야 하잖아?”

“……그래서 자극을 주려고 암살자를 그냥 보내주었다고요?”

“결과적으로 안 다쳤잖아? 그럼 된 거 아냐? 꼬우면 네가 내격 빨리 익히던가, 아니면 스승 하던가.”

듣는 것만으로도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주장을 당연하다는 듯 자랑스레 지껄이는 멜.

“……에휴.”

그 뻔뻔스러운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편, 바닥에 쓰러진 암살자의 시체를 흥미롭게 살피던 멜이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그렇게 말하며 시체를 툭툭 발끝으로 건드리는 멜.

아무래도 이번 습격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묻는 것 같다.

“뭐……. 글쎄요.”

어느새 달려와 내 주변을 빙빙 도는 도지를 품에 안아 들며,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내가 가진 것은 심증뿐.’

실제로 그라힐이 날 습격하도록 사주했다는 증거는 없다.

애초에 증인이 될 요정족 암살자는 이미 죽여버린 데다가, 사실 녀석이 증언 따위를 할 리도 없었다.

‘요정족 놈들의 광신은 장난이 아니니까.’

자신들의 주군인 요정왕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칠만한 짓, 이놈들은 죽어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일반적으로는 의심만 할 뿐, 이 사건 자체는 제대로 된 조사 없이 흐지부지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증거가 없는 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누가 일을 벌였는지 나는 확신하고 있는데.

그러니.

“일단…… 이 녀석 주인 얼굴부터 봐야겠죠.”

어디, 한 걸음씩 움직여 볼까?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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