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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49화 (49/139)

49화

리텐슈노프 가문령 최심부.

가주의 저택.

철혈궁.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흑단목 책상을 사이에 두고 두 명이 마주 보고 있었다.

상석에 앉은 자는 형형한 눈빛의 백발 노인.

바로 오대 명가 리텐슈노프의 가주.

마그너스 리텐슈노프였다.

오른손에 쥔 연초가 하염없이 타들어갔지만, 마그너스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반대쪽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들기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요정족이?”

맥락을 알 수 없는 물음.

하지만 마그너스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 사내, 아자르 랭커스터는 곧장 대답했다.

“아직 정확한 연결고리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라힐 도련님이 요정왕에게 직접 암살 지시를 한 것은 사실인 모양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마그너스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그 얼빠진 망나니 녀석이 귀쟁이에게 이용당했을 가능성은 없고?”

마그너스의 물음에 아자르가 고개를 저었다.

“요정왕은 현재 온전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라힐 도련님이 요정왕을 이용하였다면 모를까, 그 반대는…….”

말끝을 흐리는 아자르의 대답에, 마그너스의 얼굴은 차갑게 식었다.

“그래? 그렇다면 결국 제 형제를 자기 손으로 죽이려 했다는 거군.”

“…….”

마그너스의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리는 속도가 더욱 더 빨라졌다.

이미 그가 쥐고 있던 연초는 전부 타들어간 지 오래.

하지만 아자르도 마그너스도 그런 사소한 건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마그너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 별것 아닌듯한 질문에 약간 느슨하던 아자르의 긴장이 빳빳하게 세워졌다.

이 물음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는 걸 모를 아자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자르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침착하게 입 밖에 꺼낼 말을 골랐다.

“제 생각에는…….”

“생각에는?”

마그너스가 눈을 치켜떴다.

아자르는 잠시 심호흡을 하곤, 생각하던 바를 내뱉었다.

“이대로 지켜보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주군?”

“지켜본다?”

그 순간, 마그너스의 눈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마치 포식자가 사냥감을 찍어누르는 듯한 시선에 아자르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곧, 끓는 것 같은 목소리가 추상처럼 떨어졌다.

“가만히 지켜본다, 라……. 내가 리텐슈노프 간의 골육상쟁을 금지했다는 걸 모를 리가 없는 자네거늘…… 어째서 그런 결론을 낸 거지?”

당장이고 산 채로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이 아자르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자르는 그 압박을 견디며 대답했다.

“드레커 도련님이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드레커가?”

드레커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마그너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흥미롭다는 듯한 시선. 그 안에 내포된 드레커를 향한 호의를 눈치채지 못할 아자르가 아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자르는 속에 담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드레커 도련님께서 요정왕의 최측근 수족 중 한 명의 목을 베어 그라힐 도련님께 보냈습니다.”

마그너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을 잘라 보냈다? 그라힐에게?”

마그너스가 의아한 눈으로 아자르를 바라보았다.

대체 그 녀석이 어떻게 알고 그라힐을 목표물로 삼았는지 모르겠다는 눈초리다.

아자르는 조용히 수긍했다.

“정확히 어떻게 그라힐 도련님으로 확정을 지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드레커 도련님은 이번 사건의 진짜 범인이 그라힐 도련님이라는 걸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흐음…….”

마그너스가 신음했다.

“그 귀쟁이 목을 잘라서 보낸 이유는?”

“경고, 라고 생각합니다.”

“경고라…….”

마그너스가 미간을 찡그렸다.

리텐슈노프의 혈통 간의 골육상쟁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경쟁은 허가하되, 서로가 서로의 목을 노리지는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막을 명분이 없다.

이미 사촌 형제에게 뜬금없이 암살당할 뻔한 드레커다.

자신의 목숨을 노린 죄를 묻겠다는데, 어떤 명분으로 그걸 막아선다는 말인가?

“네, 그리고…….”

아자르가 말끝을 흐리자, 마그너스가 신음했다.

“그 녀석이 고작 경고만으로 끝날 리가 없겠지.”

그 말이 사실이다.

이미 드레커는 전적이 있는 몸이다.

고작 경고?

아마 실질적인 보복도 뒤따르리라.

하지만 막아설 방법이 없다.

막아서도 안 되고.

“…….”

그 이야기를 끝으로 집무실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아자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조용히 마그너스의 결정을 기다렸다.

이번 사태에서 마그너스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다.

만약, 가족 간의 골육상쟁을 더는 금지하지 않는다면…….

‘리텐슈노프가 조각날 수도 있다.’

볼칸, 제랄드, 갈라할, 코르테스.

실질적 가주 후보인 네 사람의 세력은 현시점에 거의 동등하다.

그 상황에서 각 세력간의 대살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여전히 건재한 마그너스의 존재와, 그가 천명한 골육상쟁 금지 명령 때문이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마그너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정했네.”

“어떤……?”

조심스러운 아자르의 물음에 마그너스가 떨떠름한 얼굴로 혀를 찼다.

“관여하지 않기로.”

“……!!”

그 대답에 아자르의 눈이 함지박만하게 커졌다.

아자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그 명령’을 취소하시려는 것입니까?”

하지만 마그너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지. 만약 그랬다간 당장 이 가문이 네 토막이 날 텐데?”

“그렇다면……?”

마그너스는 책상에서 새로운 연초를 꺼내 입에 물었다.

연초를 깊게 빨아들인 마그너스는 연기와 함께 가슴에 품은 회한을 섞어 내뱉었다.

“다짜고짜 뒤통수에 칼을 박아넣었는데, 몽둥이만 쓰는 게 규칙이라고 말하는 건 형평성이 안 맞지.”

그 말은 드레커가 이번 암살을 명분으로 그라힐에게 무슨 짓을 벌이더라도 관여치 않겠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골육상쟁 금지를 풀어주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상 명령 취소와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아자르는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만약 드레커 도련님이 그라힐 도련님을 죽여버리기라도 한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겁니다.

뒷말은 입에 담지 않았지만, 마그너스는 아자르가 무슨 충언을 하려는 지 곧바로 깨달았다.

“그 녀석이 그렇게까지 멍청하지는 않아.”

“…….”

“아마 죽일 기회가 생겨도 진짜 죽이지는 않을 거야. 그게 자기 목줄을 조일 뿐이라는 걸 알 테니.”

‘그건 결국…….’

드레커의 선택에 모든 걸 위임하겠다는 뜻 아닌가?

너무 위험하다.

그런 생각이 아자르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마그너스는 결정을 내렸으니까.

주인이 결정하면, 개는 따를 뿐이다.

“굳이 드레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줄 필요는 없네. 단지 관여치 않겠다는 것뿐, 아예 그라힐 녀석을 죽이라고 몰고 갈 생각은 없으니까.”

덧붙이듯 꺼낸 마그너스의 말.

아자르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받들겠습니다.”

* * * * *

대수림에서 가문으로 복귀한 뒤.

내가 예상했던 대로 딱히 사건이 터지지는 않았다.

분노에 찬 그라힐이 수작을 부리지도 않았고, 요정왕의 척살대가 쳐들어오지도 않았다.

이전과 같이 멜에게 개인 훈련을 받는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을 뿐이다.

굳이 특별한 일이 없었는지 찾아보자면 그라힐 쪽에서 ‘보내온 선물을 잘 받았다’고 편지를 보내온 것 정도?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지.’

오히려 ‘그’ 개망나니 그라힐이 당장 미쳐 날뛰지 않는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었다.

뭐,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시점에서 그놈이 무언가 더 할 수 있는 게 없긴 하지만.

‘여기서 더 날뛰었다간 당장 마그너스의 불호령이 떨어질 테니까.’

물론 그게 마그너스가 이번 사건을 모른다는 건 아니다.

내 곁에 멜이 있었으니 마그너스도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겠지.

그런데도 따로 별말이 없다는 건, 이번 사건을 크게 키우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겠다는 뜻이리라.

‘그게 나한테는 더 낫기도 하고.’

굳이 문제를 더 키워봤자 좋을 게 없다.

내 실질적 경쟁자는 사촌 형제들이 아닌 큰아버지들이니까.

괜한 소란을 피웠다가 그 괴물들이 나를 주목하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낭패다.

“차라리 그라힐을 상대하는 게 낫지.”

볼칸, 제랄드, 갈라할, 코르테스.

큰아버지들을 상대하기엔 나는 아직 많이 모자라다.

그들은 이미 가문 내에서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히 한 상태니까.

물론 내가 아무리 심각하게 어그로를 끈다고 해도, 그들이 날 경쟁자로 고려할지는 의문이 들지만…….

“안전이 제일이지.”

하여튼.

그런 상황이기에 나는 나름대로 평온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다.

“느려 터졌다, 느려 터졌어! 얼른 안 뛰어?”

“…….”

“넌 어째 갈수록 요령 부리는 솜씨만 느는 거냐? 가르쳐 달라며? 그게 가르침을 받는 태도야? 엉?”

뭐…… 이게 평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멜을 흘겨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거야 원…….’

그날, 내가 내기에서 승리한 게 문제였다.

분명 그 내기는 절대로 사기(?)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멜이 인식하는 건 조금 다른 모양인지.

그날부터 계속 훈련을 빙자한 갈굼이 이어졌다.

물론 훈련을 대충대충 때우거나, 의도적으로 나를 괴롭히기 위해 지랄을 하는 건 아니다.

단지 뭐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존심에 입은 상처를 화풀이로 풀려는 것 같단 말이지…….”

“다 들린다, 쥐똥 같은 꼬맹아.”

“…….”

쓸데없이 귀만 밝아서는.

‘그래도 당장 내가 상대하는 게 저 인간 하나뿐이니까 다행이지.’

여기에 더불어 그 변태 노친네 데우스까지 있었다면 진짜로 돌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성격 꼬인 악동 스승에 엉큼한 꼰대 드래곤이라.

참 사람 괴롭게 만들기 딱 좋은 조합 아닌가?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데우스와 연결이 흐려진 게 정말 다행이군.’

물론 그렇다고 데우스와의 연결을 아예 끊어낼 생각은 아니다.

데우스가 없다면 용의 심장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도, 그것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지도 못할 테니까.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한 채 내 훈련을 감시하는 멜을 힐끔 쳐다보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슬슬…… 준비해야겠지.’

데우스와의 연결을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육체를 성장 시켜야 한다.

현시점에서 그 방법은 오로지 하나.

아이스본의 성장 촉진제뿐이다.

그러니.

‘곧 있을 오대 명가 교류전.’

교류전 우승을 거머쥐는 수밖에.

그러기 위해서는 수련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다.

‘이번 교류전의 수준은 꽤 높으니까.’

회귀를 한 데다가 9살의 나이에 4성의 성취를 거둔 나지만, 이번 교류전에서는 확실히 우승을 거머쥘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정도다.

‘그나마 지금까지 노력한 것 덕분에 우승 후보 정도는 될 수 있겠지만.’

우승 확정은 아니지.

‘교류전까지 남은 기간은 2개월.’

남은 두 달 간의 시간 동안.

최대한 완벽하게 실력을 가다듬는 수밖에.

“뭘 그렇게 멍하니 생각하고 있어? 빨리 빨리 움직여, 이 자라 같은 느려터진 꼬맹아!”

“아, 알겠다고요!”

-탁탁탁!

그리고.

2개월이 지났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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