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50화 (50/139)

50화

오대 명가 정기 교류전.

실질적으로 제국을 다스리는 다섯 가문. 리텐슈노프, 아이스본, 암즈, 시빌라, 호엔슈타펠간의 화합과 교류를 모색하기 위해 오대 명가가 생겨난 극초기 시절부터 치러진 전통 행사를 말한다.

‘더불어 가문끼리의 충돌도 예방하는 장소지.’

혹시라도 모를 명가 간의 대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교류전이라는 행사는 꼭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해서, 이것이 형식적인 행사라는 것은 아니다.

오대 명가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것도 시간이 쌓이면 역사가 되는 법.

덕분에 정기 교류전은 오대 명가의 역사와 함께 수백 년의 전통을 가진 어마어마한 행사가 되었다.

장장 열흘 간 이어지는 정기 교류전에서 오대 명가는 각 가문끼리의 협력을 재확인하고, 교류전 참가자들은 서로간의 친목을 도모한다.

차후 가문의 중진이 될 가능성이 큰 유망주들이 주로 참가하는 만큼, 교류전에서 쌓은 인맥은 미래에 큰 도움이 된다.

‘교류전 참가자들과 인연을 쌓는 것 만으로도 이득이라고 할 수 있지.’

물론 내 목적은 고작 그딴 것이 아니다.

‘아이스본이 만든 성장 촉진제 시제품.’

그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육체 성장을 통해 중급반을 조기 졸업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데우스와의 연결도 확고하게 만들 수 있겠지.

그야말로 기적의 한 수다.

15살까지 중급반에 붙잡혀 있을 생각이 아니라면, 무조건 성장 촉진제는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류전 본선에서 우승해야만 한다.

사실, 이건 생각보다 어려운 목표였다.

만약 정기 교류전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면 어느 명가든 자신의 가문 내 입지를 올릴 수 있다.

당연하게도 우승을 노리는 자들이 넘쳐난다.

거기에 더불어 매 교류전마다 행사 진행 방식이 다르다. 사실상 미리 대비하는 것이 까다롭다.

딱히 교류전 주최 가문의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다가 각 가문마다 교류전을 진행하는 방식도 다르다.

간단하게 예시를 들어보자면, 검술 명가 호엔슈타펠은 교류전 참가자 전원을 대련 시켜서 순위를 정하는 토너먼트전을 선호했다.

암즈나 리텐슈노프는 전통적으로 거대한 전장에 잔뜩 풀어둔 몬스터를 얼마나 많이 사냥하느냐로 승부를 겨루었고, 시빌라는 소환 마법의 본가인 만큼 고위 소환수를 얼마나 잘 상대하느냐로 점수를 매겼다.

그리고 이번 교류전의 주최 가문은 아이스본.

‘아이스본은 훨씬 더 까다롭지.’

아이스본은 딱히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방식이 없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이스본은 매 교류전마다 다른 방식으로 대회를 주최했다.

다른 가문과는 달리 사전 정보 없이 오로지 본연의 실력만으로 승부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이번에 아이스본의 교류전이 어떤 방식으로 치러지는지 알고 있지.’

회귀 덕분에 미래를 알고 있는 나에게 이번 교류전은 식은 스프 먹기나 다름없다.

‘문제가 어떻게 나올지도 알고, 해답도 알고 있으니.’

나만 잘하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이 있었다.

‘지난 2개월 간의 훈련…….’

멜 아래에서 개처럼 구르며 훈련을 한 덕분이다.

‘진짜 지옥 같던 날이었지만…….’

그 덕분에 사실 준비는 끝났다.

남은 건.

“이기는 것 뿐.”

* * * * *

아이스본.

마도학의 본가이자, 모든 마법사의 고향.

마법사가 되는 것을 꿈꿔본 자라면 누구나 소속되기를 선망하는 이 가문은, 사실 엄밀히 말하면 가문家門이 아니었다.

가문이라는 건 혈연을 기반으로 형성되어 조상과 성씨를 공유하는 집단을 말하는데, 애초에 아이스본은 딱히 혈통을 중시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혈통으로 가주 자리가 계승되지 않는데, 핏줄 따위를 중시할 리가 있나?

아이스본이 보는 것은 오로지 능력.

능력만 있다면 길거리 고아 출신도 가주가 될 수 있다.

반대로 현직 가주의 자식이라도 능력이 없다면 내쳐진다.

어찌 보면 그 악랄한 리텐슈노프보다도 더욱 강도 높은 강자존의 법칙을 적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이스본은 오대 명가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세력이었다.

그나마 리텐슈노프 정도가 그들을 이해할 뿐. 암즈, 호엔슈타펠, 시빌라는 아이스본을 꺼림칙하게 여겼다.

그들의 세력이 강대하기에 오대 명가로 취급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지, 만약 아이스본이 조금이라도 힘을 잃는다면 당장 오대 명가에서 내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 가문의 보편적 인식 때문일까?

마르스 호엔슈타펠은 아이스본의 본령에 첫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불쾌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 불쾌감은 마르스가 앞으로 10일간 거주할 방을 본 순간 최고조에 이르렀다.

아이스본이 교류전 참가자에게 일괄적으로 제공한 숙소의 인테리어를 슥 훑어본 마르스는, 이내 툭 내뱉듯이 중얼거렸다.

“정말 천박하기 그지없군.”

오대 명가 중 가장 역사와 전통이 깊은 호엔슈타펠 출신인 만큼, 아이스본이 제공한 숙소는 마르스의 기준에는 수준 미달의 무언가였다.

“고풍스럽지 못해. 마치 졸부가 꾸민 방 같구나.”

사실, 이 평가도 나름 아이스본의 체면을 생각해 말을 고르고 고른 것이었다.

평소라면 이것보다 더 혹독한 독설을 했으리라.

“정말 이게 그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인가? 물론 본인은 그대들이 고귀한 피를 타고나지 못하였기에 부족함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네만, 최소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은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마르스는 자신이 이와 같은 지적을 하는 것이 당연스런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야,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호엔슈타펠의 직계 순혈을 타고 난 정통 후계자였으니까.

호엔슈타펠 가문의 정통 후계자.

그것은 제국으로 치면 황세손에 해당한다.

사실상 차차기 가주라는 것이다.

헌데, 감히 다른 참가자와 똑같은 저택을 제공했다고?

아이스본이 이번 교류전에 자신이 참가한다는 걸 몰랐을 리도 없을 터인데, 당연히 알아서 특별 대우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건 분명 본인을 능멸하기 위한 아이스본의 수작이 틀림 없다!’

이미 마르스는 그러한 결론을 내린 후였다.

“어허, 왜 아무런 대답이 없는가? 그대에게 입이 있다면 무어라 말이라도 해보거라. 아니면, 혹시 속셈을 들켜 당황하고 있는 것이냐?”

그렇기에 자신을 안내해 준 아이스본의 수행원을 갈구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마르스의 수행원은 그다지 아이스본 내부에서 높은 지위를 지닌 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무려 호엔슈타펠의 차차기 가주가 부리는 횡포에도 아무런 반발을 하지 못한 채 창백하게 굳었다.

“이보게,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인가?”

“그…… 그것이 아니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수행원.

참으로 안타깝게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수행원의 모습은 마르스가 아이스본이 개수작(?)을 부렸다고 확신하도록 만들었다.

“하! 역시 본인의 예상이 맞았군. 천박한 것들이라 그런지 하는 짓도 음습하기 짝이 없구나. 무엇을 하느냐? 당장 저 놈을 붙잡아…….”

딱 그 무렵이었다.

“응?”

드레커가 수행원의 안내를 받아 저택에 도착한 게.

* * * * *

‘뭐야?’

눈앞에 펼쳐진 괴상한 광경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째서인지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시커멓게 죽은 채 부들부들 떠는 아이스본의 수행원.

그리고 기회라도 잡았다는 듯 호통을 치는 익숙한 얼굴의 열 살 남짓한 소년과, 소년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앞으로 나선 수호 기사로 보이는 사내들.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 녀석은 분명…… 호엔슈타펠의 마르스…… 였나?’

고급스런 옷을 입은 채 씩씩거리는 소년이 누구인지,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르스 호엔슈타펠.

검술 명가 호엔슈타펠의 정통 후계자로, 미래에 차차기 가주로 등극하는 고귀한 몸이다.

물론 얼마 못 가 가주 자리를 제 동생에게 잃지만, 나름 유명한 녀석이었기에 마르스의 성격이나 능력은 아직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안 봐도 알겠군. 마르스, 저 녀석이 피해망상 도져서 애먼 사람 잡는 중이네.’

혈통주의가 확고한 호엔슈타펠에서도 특유의 선민 의식과 드높은 프라이드를 자랑하는 마르스다.

‘때문에 쓸데없이 안 일으켜도 될 사고를 잔뜩 터트리는 것으로 유명했지.’

아마 지금도 뇌내망상으로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리라.

‘아이스본이라면 덮어놓고 싫어하던 녀석이니까.’

뭐, 아이스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가문이 리텐슈노프를 제외하면 사실상 없기는 하지만.

저 녀석의 혐오는 좀 유별난 면이 있다.

“누구인가?”

갑작스러운 내 등장이 당황스러웠기 때문일까.

마르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순식간에 내 몸을 훑어보는 마르스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마도 내 복장으로 위치를 파악하려는 모양.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마르스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진다.

“귀하는 누구인가? 어느 가문의 자제인가?”

“거, 말투 진짜…….”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져 나올 뻔 했다.

마르스 호엔슈타펠은 특유의 괴상한 화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본인은 자신의 말투를 굉장히 고풍스럽다고 여기는 모양인데…….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시대착오적인 화법일 뿐이다.

굳이 비슷한 사람을 찾는다면, 데우스 정도이려나?

‘저딴 말투를 어린 시절부터 썼을 줄이야.’

대체 어쩌다가 저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이보게. 혹시 본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마르스는 내가 곧장 대답하지 않고 이상한 소리를 한 것이 불쾌한 모양이다.

마르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본인이 물었잖는가. 귀하는 어디 가문의 누구인지.”

“나?”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리텐슈노프.”

리텐슈노프라는 말에 마르스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의아함에서, 경계심으로.

“리텐슈노프? 리텐슈노프 누구?”

“드레커 리텐슈노프.”

“아.”

하지만 내 말이 끝나자 녀석의 눈빛은 다시 한 번 더 바뀌었다.

리텐슈노프를 향한 경계심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를 비웃음과 멸시가 차지했다.

“드레커, 리텐슈노프라. 흐음.”

뭐, 저 변화의 이유는 알 것 같다.

‘아직 난 대외적으로 끈 떨어진 연 신세니까.’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 나는 리텐슈노프 가문을 이어받기는커녕 방계 혈통으로서 가문에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인간에 불과하다.

굳이 리텐슈노프라고 경계할 이유도 없고, 오히려 녀석의 성격을 생각하면 낮잡아 보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딱히 불쾌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테니까.’

내가 실력을 쌓고, 가문에서 두각을 드러내기만 하면 당장 사라질 시선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뭐…….’

열 살 먹은 꼬맹이가 멋모르고 나댄다고 열 내는 게 우스운 일이기도 하니까.

“그대는 참 운이 좋군.”

“응?”

단지, 내가 예상치 못한 게 있다면…….

“그저 우연히 알맞은 때에 도착했을 뿐이거늘, 과분하게도 무려 본인과 짧게나마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지 않았는가?”

“……?”

“그런 면에서 생각할 때, 그대는 그대의 수행원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야. 그 수행원 덕분에 이런 영광스러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지.”

생각 외로 이 녀석이 내뿜는 어그로가 장난이 아니었다는 것일까.

차마 참지 못하고, 난 중얼거렸다.

“……이 새끼, 생각보다 더 병신이었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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