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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51화 (51/139)

51화

“아무리 그래도 그 상황에서는 참으셨어야 해요.”

마리 유모는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 곁에 서 있던 세르폰 또한 같은 심정인지,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마르스와의 충돌은 다행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 비웃음에 마르스가 노발대발하긴 했지만, 운 좋게도 적절한 순간에 아이스본에서 개입한 덕분이다.

그 덕에 첫날부터 오대 명가의 자제들끼리 결투를 벌인다든가 하는 초유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건 아니다.

“아마도 이번 교류전 기간 내내 충돌하게 될 겁니다.”

세르폰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당연한 일이죠.”

마르스의 성격상, 아무리 자기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해도 나한테 욕을 얻어먹은 걸 잊을 리가 없다.

‘아니, 그놈 성격이라면 자기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자각 자체가 없겠지.’

오히려 내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생각할걸?

“대체 어째서 참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호엔슈타펠 측에서 차마 넘어가기 힘든 모욕을 하긴 했지만……. 굳이 이런 방식이 아니라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많았습니다.”

세르폰의 충언에 난 눈을 가늘게 떴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사실, 교류전 첫날부터 다른 가문과 충돌을 일으키는 건 결코 합리적인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심지어 시비가 걸린 상대가 자존심 높기로 유명한 호엔슈타펠 출신이라면 더더욱.

심지어 그냥 호엔슈타펠 출신도 아닌, 정통 후계자.

이유 없는 싸움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

피할 수 있었다면 피하는 게 맞지.

‘반대로, 싸울 이유가 있다면 싸우는 게 맞고.’

마르스의 도발(?) 아닌 도발에 우발적으로 받아친 건 맞지만, 내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일을 벌인 건 아니다.

‘적당히 기회만 생기면 다른 가문과 대립각을 세울 생각이었으니까.’

거기에 더불어 마르스의 발언은 선을 넘었다.

“아무리 제가 리텐슈노프 중에서는 급이 좀 딸리긴 하지만, 적당한 선이 있는 법입니다.”

그런 소리를 면전에서 듣고도 아무런 말도 못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내 체면을 구기는 일이다.

만약 내가 그 상황에서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고 그냥 웃으며 넘어갔다면…….

‘아무리 날 좋게 봐주는 마그너스라고 해도 분명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을 터.’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거지.

“하지만…….”

여전히 꺼림칙함을 떨치지 못한 채 말끝을 흐리는 세르폰에게 나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그렇다.

어찌 되었든 이미 일은 터졌고, 지금은 미래를 생각할 시기다.

나는 의미 없는 대화를 끝내기 위해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 세르폰 경, 제가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 것들은 확실히 챙겼습니까?”

“네? 아, 물론 준비는 끝났습니다만…….”

세르폰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그런 것들은 어디에 쓰시려고……?”

여전히 내 명령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그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르폰은 나와는 달리 회귀를 하지 않았으니까.

‘미래를 알 방법이 없는 이상 모르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아이스본이 준비한 교류전의 내용을 알고 있는 나에겐, 그 물건들의 준비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르폰에게 모든 걸 알려줄 수는 없다.

대체 어떻게 교류전 내용을 알아냈는지 추궁이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고, 솔직히 말해서 소문이 퍼지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의심을 사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게 지금 당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건 교류전이 시작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내가 세르폰에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고작 이 정도뿐이다.

“……알겠습니다.”

무언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지만, 다행히 세르폰은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연회를 시작으로 정기 교류전이 시작되었다.

* * * * *

교류전 시작을 알리는 연회는 성대하게 치러졌다.

고급스러운 술과 산해진미가 넘치듯 제공되었고, 흥겨운 음악과 놀라운 볼거리가 넘쳐났다.

놀라운 것은 그 규모와 호화로움이었다.

‘역시 아이스본답군. 돈을 얼마나 쓴 거야?’

황금으로 만든 식기가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모습을 힐끗 살피며,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다른 명가의 교류전과는 달리, 아이스본이 주최하는 교류전은 사치스러운 것으로 유명했다.

아이스본은 제국의 마도 패권을 꽉 틀어쥔 가문이다.

마법의 종주라고 자신할 정도인 만큼 아이스본은 마법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발을 걸치고 있었고, 그 덕분에 다른 오대 명가와는 차원이 다른 금력을 지니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다른 가문에서는 엄두도 못 낼 사치를 눈 깜짝 하지 않고 부릴 수도 있었다……

‘뭐, 마법사가 필요한 모든 곳에서 돈을 긁어모으니, 황금이 넘쳐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름대로 나 또한 오대 명가인 리텐슈노프 출신인 만큼 일반적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사치를 익숙히 여겼지만.

그런 나조차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의 돈지랄.

이 정도면 아이스본의 규모를 알 수 있으리라.

‘호엔슈타펠이 이놈들을 괜히 졸부 취급 하는 게 아니라니까.’

이런 식으로 돈을 휴지처럼 뿌리고 다니니, 배가 아파서라도 그런 취급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

‘뭐, 이놈들이 돈지랄 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돈 많은 놈들이 돈을 어떻게 쓰던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다.

“그런 데 신경 쓸 시간이 아니지.”

지금은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다.

사실, 이미 교류전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아이스본의 교류전은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보물찾기.’

정확히는 최근 아이스본이 이미 공략을 끝마친 미로형 고대 유적에 진입해 다시 한번 공략하는 게 이번 교류전의 내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스본 측에서 연회장 곳곳에 숨겨 놓았을 편지를 빠르게 찾는 게 중요했다.

‘이 연회부터가 교류전의 일부인 셈이지.’

그 편지를 근처 사용인에게 보여주면, 고대 유적의 위치가 적힌 지도를 받을 수 있다.

그럼 그 지도를 통해 고대 유적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물론 유적 안에도 나름대로 함정을 설치해 두었고, 방해꾼도 배치해 두었겠지만…….

‘일단 시작은 유적에 진입하는 것부터.’

물론, 나는 그 고대 유적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유적의 위치는 물론이고, 내부에 풀어둔 가디언과 함정, 공략법까지 전부 알고 있지.’

하지만.

사용인에게 지도를 받지도 않고 고대 유적으로 향했다간 곧바로 아이스본의 의심을 받을 거다.

‘대체 어떻게 알고 움직였냐는 추궁을 받으면…… 솔직히 할 말이 없으니까.’

쓸데없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룰은 지켜주는 척해야 한다는 거다.

나는 대충 연회를 즐기는 척하며 연회장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대체 어디에 숨겨 놓았으려나?’

다행히 내가 무엇을 하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전날 마르스와 충돌한 일 때문에 나름 흘겨보는 시선은 있었지만, 딱히 주의 깊게 살피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와 엮이지 않으려는 것 같기도 했다.

‘뭐 어때?’

그 덕분에 나는 편안하게 연회장 구석구석을 조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젠장.”

한참을 찾아보았음에도 나는 편지를 찾지 못했다.

음식이 쌓여 있는 테이블도 살펴보고, 돌아다니는 사용인들도 유심히 지켜보았다.

무언가 숨겨둘 만한 장소는 전부 뒤져보았다는 거다.

하지만 여전히 수상쩍은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한참 동안 시간 낭비만 한 셈.

‘빌어먹을, 대체 어디 숨겨둔 거야?’

절로 골치가 아파졌다.

나도 이 연회장에 편지가 숨겨져 있다는 것만 알지, 정확히 그 편지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시작부터 이런 어이없는 일로 난관에 부딪힐 줄은 몰랐는데…….

‘……그냥 의심받을 거 감안하고 당장 고대 유적으로 가버려?’

의혹은 생기겠지만, 충분히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저기…….”

누군가가 내 등을 툭툭 건드렸다.

“응?”

고개를 돌리자 보인 것은 한 소녀였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머리칼을 한쪽으로 땋은 채, 창백한 푸른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소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눈가에 다크 서클이 가득한 덕분에 매우 피곤해 보였다.

나이는 대략 10살 좀 더 되었으려나?

‘누구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나이대에 이런 애가 있었던가?’

연회장에 떡하니 있는 모습이나 옷차림을 볼 때, 분명 오대 명가 출신임은 틀림없을 거다.

문제는 난 이런 얼굴의 소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다.

‘이렇게 특이한 인상이라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

그보다, 무슨 일로 날 부른 거지?

“무슨 일이야?”

내 물음에 소녀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거.”

그것은 작게 접힌 종이쪽지였다.

순간적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딱히 펼쳐서 확인해보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것이 아이스본이 숨겨 둔 편지라는 것을 곧바로 눈치챘다.

“뭐야?”

절로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황급히 주변을 살핀 뒤, 재빨리 소녀의 팔목을 붙잡고 연회장 구석으로 끌고 갔다.

약간 거친 손길이었음에도 소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따라왔다.

잠시 후, 주변에 딱히 지켜보는 눈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나는 곧바로 경계 태세를 끌어올렸다.

‘무슨 의도지?’

이걸 왜 나한테?

이번 교류전은 속도가 생명이다.

빠르게 편지를 찾아내 지도를 얻어, 고대 유적으로 먼저 향할수록 우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기에 나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기 전에 몰래 빠르게 움직이려고 했던 것이고.

당연하지만, 찾은 편지를 남한테 보여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증거를 날려버렸으면 날려버렸지.

그렇기에 소녀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거, 네가 찾고 있던 거지?”

이런 접근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고.

심히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최대한 속내를 감춘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이지?”

내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자, 소녀가 샐쭉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를 내뱉었다.

“협력할 사람이 필요하거든.”

“협력?”

“그래. 협력.”

협력이라…….

무슨 의미일까?

그보다 내가 편지를 찾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딱히 의심당할 만한 행동을 하진 않았다.’

내 행동을 주의 깊게 살핀다면 나름 수상쩍어 보일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내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번 교류전과 관련된 정보를 미리 사전에 알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번 교류전 참가자 중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회귀라는 기적을 겪은 오직 나뿐이다.

나는 소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두운 푸른 빛으로 가득한 눈동자.

마치 깊은 심해를 바라보는 것 같다.

가만히 눈동자를 바라보고만 있었을 뿐인데도, 어째서인지 내가 그녀의 눈빛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 아니겠지.

‘이게 이 녀석이 가진 능력이니까.’

그저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인지하고 숨겨둔 속내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

아직은 이 세상 누구도, 심지어 아이스본의 현 가주도 파악하지 못한 능력이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녀석은 그 능력으로 고작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가주 자리에 오르니까.

“아멜리아 아이스본, 멋대로 남의 생각을 읽고 다니는 건 예의라고는 할 수 없지 않나?”

짜증난다는 듯한 내 물음에 소녀, 아멜리아 아이스본의 눈이 작게 호선을 그렸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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