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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53화 (53/139)

53화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넓게 펼쳐진 드높은 고원에는, 언제나 쾌적한 바람이 불었다.

고원의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탁 트인 전경을 눈에 담던 마르스 호엔슈타펠은 곧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 있는 것은 모종의 제단이었다.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탓에 잔뜩 풍화되고 이끼가 덕지덕지 끼어 있는 석제 제단은 원래 어떤 형태였는지는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인공적인 건축물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다.

“이곳이 지도가 가리키는 유적이 틀림 없군.”

마르스는 품 속에 넣어 둔 지도를 한 번 살펴보고는, 이내 성큼성큼 제단으로 향했다.

곧, 제단 앞에 도착한 마르스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런…….”

집채만한 제단에는 대략 사람 한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틈이 나 있었다.

아마 유적 내부로 진입하는 통로이리라.

문제는…….

“본인이 최초가 아니군.”

마르스가 입술을 짓씹었다.

이미 누군가가 유적 안으로 먼저 들어간 듯한 흔적이 입구 주변에 가득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차석도 아니라니…….”

더불어 남겨진 흔적은 한 명의 것도 아니었다.

‘최소 두 명.’

아무리 희망적으로 생각해도 마르스보다 먼저 유적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두 사람은 있다는 소리다.

“이것 참, 어처구니가 없구나.”

그리고 마르스가 생각했을 때, 그건 불가능했다.

아이스본이 연회장 곳곳에 배치해 둔 편지들은 지독할 정도로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게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찾는 게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운 좋게 숨겨진 편지를 발견한 호엔슈타펠의 방계 혈족이 그걸 마르스에게 가져다 바치지 않았다면, 그 또한 영원히 그 존재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치밀하게 숨긴 편지다.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본인 또한 미처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핏줄부터 미천한 것들이 먼저 찾을 수 있을 리가!’

그렇기에 마르스는 결론을 내렸다.

‘이건 분명 확실하도다.’

아이스본이 그들의 가문 사람들에게 교류전의 정보를 퍼트린 게 틀림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하등한 족속들이 자신보다 더 빠르게 유적에 도착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 천박한 놈들이 지저분한 수작을 부리다니.”

마르스는 이를 악물며 치를 떨었다.

“역시 혈통이 불분명한 놈들이라서 그런지, 행동 방식이 지저분하고 더럽구나. 네놈들이 부린 수작은 본인이 어떻게든 공론화시킬 것이다.”

그렇게 복수(?)를 맹세한 마르스는 주먹을 꽉 움켜쥔 채, 분노로 부들부들 떨며 유적 안으로 진입했다.

* * * * *

“바깥은 시원했는데, 역시 안쪽은 후덥지근하네.”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아이스본이 교류전 장소로 지정한 고대 유적 내부는 매우 더웠다.

그냥 온도만 높은 게 아니었다.

유적 내부에 습기가 가득한 탓에 상대적으로 쾌적했던 고원과 대비되어 훨씬 더 불편하고 찝찝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 사실을 사전에 미리 알고 있었기에 충분히 대비를 해 두긴 했지만…….

그래봤자 시원한 물을 구비한다던가 하는 수준.

지금의 더위를 완전히 막으려면 최소한 아티팩트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젠장, 이 정도로 더울 줄은 몰랐는데.’

줄줄 흐르는 땀 때문에 불쾌감이 치솟았다.

백 번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딱 한 번 경험하는 게 더 좋다더니, 역시 직접 겪어보지 못한 문제에 대한 대비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얼른 클리어하고 나가야겠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힐끔 주변을 살폈다.

반듯한 벽과 높은 천장으로 이루어진 긴 통로가 눈앞에 끝없이 이어진다. 딱히 중간에 꺾이는 부분이 있거나, 두갈래길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직선 통로일 뿐이다.

이런 걸 미로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통로는 그저 통로일 뿐. 진짜 미로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만약 여기서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딛으면…….’

나는 슬쩍 시선을 내려 바닥을 바라보았다.

석제 벽돌로 이루어진 바닥에 그어진 깊은 경계선.

이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 무언가 사건이 터질 거라고 노골적으로 경고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이 경계선이 바로 미로의 시작점이다.

‘이 경계선을 넘는 순간…….’

곧바로 유적에 깃든 환영 마법이 작동한다.

‘그것도 아주 고약한 마법이.’

이 유적에 설치된 마법은 경계선을 넘어선 침입자의 오감을 왜곡시킴과 동시에 환영을 보여준다.

마법에 걸리는 순간 침입자는 그대로 환영으로 만들어진 미로에 내던져지는 것이다.

그 때부터 개고생이 시작된다.

오감이 맛이 간 상태로 환영으로 이루어진 끝없는 미로를 돌파해야 하는 것이다.

마법을 파훼하면 되지 않냐고?

‘이 유적에 걸려 있는 마법은 교류전 참가자들 실력으로는 뚫는 게 불가능하지.’

당장 4성 중반에 도달한 나조차도 이 유적에 걸린 마법은 도저히 내 힘으로 뚫어낼 수 없다.

그래서 우회법을 준비했다.

‘굳이 마법을 내 힘을 뚫을 필요는 없잖아?’

나는 등에 매고 있던 배낭을 풀어 땅에 내려놓았다.

묘하게 둥그스름한 배낭.

나는 조심스럽게 배낭을 열고 내용물을 꺼냈다.

내가 준비한 비밀 무기는 바로…….

-뺙!

마법을 보는 새.

와치버드였다.

와치버드는 마법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 새다.

‘흔히 마법사 새라고 불리지.’

물론 당연하지만 와치버드는 마법을 쓰지는 못한다.

마법을 이해할 뿐이지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마법까지 쓸 줄 알면 그건 새가 아니라 몬스터라고 불러야지.’

그럼에도 와치버드는 쓸모가 많았다.

새 주제에 생각보다 머리가 똑똑한 덕분에 마법과 관련된 연구에 써먹을 수 있었고, 전문적인 훈련을 시키면 마법 함정을 감지하거나 환영 마법을 간파하는데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데려온 와치버드 또한 전문적으로 훈련시킨 놈이었다.

이 녀석을 이용하면 유적의 마법 미로 정도는 충분히 돌파할 수 있다.

-뺙! 뺘악!

갑자기 어둠 속에서 밝은 곳으로 나온 탓일까, 와치버드가 기겁을 하며 푸드덕푸드덕 홰를 쳤다.

그리고는 나를 노려보며 위협하듯 뺙뺙 울부짖었다.

-뺙! 뺘아악!

물론 우스꽝스러운 울음소리 탓에 위협의 효과는 사실상 없는 수준이었다.

“조용히 해.”

내가 새장을 툭툭 치며 경고하자, 뺙뺙대던 와치버드가 내 눈치를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이제 좀 낫네.”

나는 왼손에는 새장을 들고, 오른손에는 미스틸테인을 쥔 채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경계선 너머로 발을 내디뎠다.

-키이잉!

순간적으로 눈앞의 통로가 일그러졌다.

오색찬란한 빛과 함께 시야가 점멸하며 기묘한 감각이 전신을 사로잡았다.

마치 물에 뜬 것 같기도 하고 허공을 유영하는 것 같기도 한 오묘한 느낌.

그리고 다음 순간.

-쿵!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뒤바뀌었다.

“…….”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으로 시야에 들어온 것은, 하늘을 향해 끝없이 솟아오른 거목들로 가득 찬 숲의 전경.

분명 태양이 떠있는 낮이었지만 우거진 나뭇잎 때문에 빛이 들지 않아 숲은 어두컴컴했다.

거목을 빙빙 휘감은 넝쿨과 땅을 뒤덮은 이끼는 음울한 녹빛을 발했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식물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이름 모를 새가 울부짖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그야말로 ‘정글’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

“……이거 생각보다 더 골치아픈 곳이었네.”

만약 내가 미래를 몰랐다면, 그래서 와치버드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정말로 답이 없었겠군.’

그 생각이 들자 절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일단 움직이자.”

나는 곧장 이동할 준비를 했다.

정글에서 방향도 길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섣불리 움직이는 건 멍청한 짓이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이곳은 진짜 정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 다 유적의 마법이 내게 보여주는 환영일 뿐.’

내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내던져진 게 아닌 만큼, 출구를 찾는다면 곧장 탈출할 수 있다.

“좋아.”

나는 왼손에 든 와치버드의 새장을 가볍게 흔들었다.

“일 할 시간이다.”

-뺙! 뺘약!

내 손짓이 마음에 안든다는 듯 와치버드가 땍땍거렸지만, 녀석의 투정을 받아줄 시간은 없었다.

“얼른.”

와치버드는 푸드덕거리며 내게 항의했지만, 내가 계속 새장을 흔들자 반항을 포기했다.

곧, 녀석이 기운 없는 모습으로 혓바닥을 쭉 내밀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쪽인가.’

나는 녀석이 가리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터벅

와치버드의 인도를 따라 정글을 해쳐나갔다.

모든 것이 환영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감각이 왜곡된 탓인지 정글을 헤쳐나가는 건 꽤 피곤했다.

잡스러운 식물들은 계속해서 길을 막았고, 가끔씩 튀어나온 넝쿨이 발목을 붙잡았다.

마치 진흙처럼 질척거리는 이끼는 지속적으로 걸음을 무겁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나아갔을까.

슬슬 피로감이 느껴질 무렵, 마침내 내 시야 끄트머리에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널찍한 공터였다.

방금 전까지 지나온 정글이 거목들로 빽빽하던 것과는 반대로, 공터에는 어떠한 식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모든 식물을 전부 뽑아낸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자연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환경.

이곳이 이 정글 환영의 끝이라는 증거였다.

그런 기묘한 공터의 한 가운데에 집채만한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늑대와 사자를 뒤죽박죽 섞어 놓은 뒤, 붉은 털가죽을 뒤집어 씌운 것 같은 외견의 짐승.

바로 이 환영의 끝을 지키는 가디언이었다.

“…….”

나는 조용히 놈을 살폈다.

녀석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

그에 반해 가슴 부분이 규칙적으로 부풀어 오른다.

아무래도 지금은 자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리가 없지.’

저 정도 되는 몬스터라면,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가까이 접근했는데도 눈치를 채지 못할 리가 없다.

‘공터 안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반응하지 않는 건가.’

마법으로 만들어진 가디언인 만큼, 정해진 규칙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뭐, 상관 없지.’

나는 와치버드가 든 새장을 공터의 경계선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검을 빼들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조금만 달려도 접근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

놈의 반응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충분히 내가 선공권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그 기회를 안 쓸 이유가 없지.

나는 천천히 마나 하트를 움직였다.

“후우.”

그리고.

완전히 몸이 풀린 순간.

“흡!”

곧바로 공터의 경계선을 뛰어넘었다.

-크륵!

그 즉시.

놈이 잠에서 깨어났다.

-크르르륵!

눈을 희번뜩 뜬 가디언이 순식간에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빠른 반응속도.

하지만 전부 예상 범위 안이다.

이미 나와 가디언 간의 거리는 지척.

첫 검격은 충분히 닿는다.

-크라라라락!

나를 물어뜯기 위해 송곳니를 드러내는 가디언에게.

나 또한, 물어뜯는 검을 휘둘렀다.

바인더샤칼 13식

그 즉시, 가디언의 앞발이 뜯어졌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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