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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54화 (54/139)

54화

뜯어져 나간 가디언의 앞발이 볼품없이 허공을 날았다.

-크라아아악!

동시에 녀석이 입을 쩍 벌렸다. 송곳니가 가득 박힌 주둥이가 엄청난 속도로 내게 접근한다.

“흡!”

나는 검을 회수하며 힘껏 땅을 박차 몸을 뺐다. 거의 동시에, 방금 내가 서 있던 공간을 녀석이 물어뜯었다.

사실상 간발의 차로 공격을 완벽하게 회피한 셈.

숨 한번 고르지 않고 곧장 검을 휘둘렀다.

-서걱!

무방비하게 드러난 가디언의 콧잔등에 붉은 실선이 그어진다.

-크라악!

놈이 분노를 가득 담아 앞발을 내려찍었다.

순식간에 날아든 공격.

-콰앙!

하나, 나는 그것조차도 가뿐히 피해냈다.

‘뭐지?’

내가 공격을 피하고도 일순 당황했다.

‘이 녀석, 움직임이 왜 이래?’

놈의 행동이 예상보다 느린 탓이었다.

한 박자. 아니, 최소 두 박자는 어긋난 공격.

어딘가 고장이라도 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이놈이 고장 난 게 아니라…….’

그저 내가 놈보다 상대적으로 빠를 뿐이었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용의 심장 덕분에, 나는 평범한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육신을 지니고 있다.

더불어 이미 4성 중반에 도달한 상태.

이 정도 능력을 지니고도 고작 환영 가디언 따위에게 고전한다면, 사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가디언이 만만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교류전 참가자 절반 이상은 이 녀석을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 비상식적인 속도로 성장한 나한테나 약한 거지, 평범한 놈들에겐 꽤 만만찮은 적이라는 거다.

하여튼.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고 있다.

‘계획한 것보다 빠르게 미로를 뚫을 수 있겠군.’

이 고대 유적에 설치된 환영 미로는 총 3개.

그리고 내가 모든 미로를 통과하는 데 소요될 거라고 예상한 시간은 총 3일이다.

하지만 지금, 가디언과의 전투로 확신할 수 있었다.

‘늦어도 이틀. 빠르면 하루.’

그 정도면 충분히.

남은 미로를 전부 돌파할 수 있다.

“좋아.”

나는 검을 고쳐잡으며 눈을 빛냈다.

“빠르게 끝낸다.”

동시에 땅을 박차며 다시금 놈에게 달려들었다.

-크라라라락!

육중한 거체가 순식간에 확대된다.

갑작스레 내가 달려들자 가디언이 당황한 듯 앞발을 마구 휘둘렀다.

위협적인 파공음과 함께 흙먼지가 휘날린다.

한 번이라도 스치는 순간 몸이 너덜너덜해질 일격.

하나, 내게는 닿지 않는다.

-타닷!

휘둘러지는 앞발을 가볍게 피해내며 놈의 품 속으로 파고든다. 마치 사자처럼 나풀거리는 녀석의 갈기를 한 손으로 붙잡은 뒤, 그대로 목을 타고 올라섰다.

-크르르?

일순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당황한 가디언이 움찔하며 눈을 뒤룩거렸다.

순간적으로 내 움직임을 놓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놈의 패착이었다.

나는 짧게 숨을 들이키며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끝이다.”

바로 자신의 머리 위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자, 가디언이 화들짝 놀라며 울부짖었다.

-크라라락!

그리고.

서걱!

휘둘러진 반월이 괴물의 목을 베었다.

-푸와아악!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핏물이 솟구친다.

무언가 끊어냈다, 라는 감각이 몸을 사로잡는 순간.

-쨍!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주변의 공간이 산산조각이 났다.

마치 세상이 부스러지는 것 같은 광경.

시야 한가득 펼쳐진 정글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번쩍번쩍 점멸한다.

마법의 근원을 베어낸 탓에, 환영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

“…….”

유적의 직선 통로가 보였다.

슬쩍 고개를 등 뒤로 돌리자, 환영 미로에 빠지기 전에 내가 넘어섰던 경계선이 보인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

환영 속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돌아다녔음에도 고작 열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이런 느낌인가.”

대충 알 것 같다.

나는 검을 늘어트리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는 다시금 통로를 나아갔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두 번째 환영 경계선을 발견했다.

-키이잉!

나는 즉시 망설임 없이 경계선을 넘어섰다.

허공을 떠다니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 끝나자마자 나는 곧바로 주변을 살폈다.

시야를 가득 채운 샛노란 색.

두 번째 환영 미로의 배경은 황량하기 그지 없는 모래 무덤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사막이었다.

휘날리는 모래폭풍은 시야를 가리고, 하늘에서 흩뿌려지는 태양은 엄청난 열기로 땅을 데운다.

비슷비슷한 모래 언덕이 사방 천지에 가득한 공간.

길을 잃기 딱 좋은 모습이다.

“허.”

절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미리 대비하지 않았으면 정말 엿같았겠는데.”

이전 환영 미로인 정글도 상당히 난이도가 높았지만, 사막은 진짜로 답이 없는 수준이었다.

정글 미로는 그래도 최소한 나무에 칼자국을 내거나 식물들을 일정하게 베어 나아간 방향이라도 표시할 수 있지, 사막은 그것도 불가능하다.

흔적을 남긴다고 해 봤자 끽해야 모래에 표시를 하는 수준인데, 주기적으로 휘몰아치는 모래 폭풍이 남겨둔 모든 걸 지워버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뺙! 뺘아악!

그 순간, 와치버드가 신경질적으로 울었다.

-뺙! 뺘뺙!

와치버드는 주로 서늘한 지역에 서식하는 녀석이다보니 이런 뜨거운 공기가 가득한 공간이 불쾌한 모양이다.

나는 새장을 검집으로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네가 열심히 일하면 빨리 탈출할 수 있어.”

내가 한 충고를 알아들은 것일까?

딱히 재촉하지 않았음에도 와치버드는 알아서 혓바닥을 내밀어 출구 방향을 가리켰다.

“잘 했어.”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와치버드가 가리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이번에도 한참을 걸었다.

‘푹푹 찌는구만.’

사막에 떨어진 지 그다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폭풍에 흩날린 모래먼지가 땀과 뒤섞여 이미 얼굴은 엉망진창이 된 지 오래.

거기에 더불어 모래 속에 계속 발이 푹푹 빠졌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체력을 앗아갔다.

더위 때문에 목이 타는 것은 화룡점정이다.

‘물을 준비해 두길 잘했네.’

나는 허리춤에 매달아 둔 수통을 꺼내들어 마셨다.

“……?”

아니, 마시려고 했다.

“……허, 참.”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분명 물을 담아두었거늘, 어째서인지 수통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조금의 물기도 없는 게, 마치 원래부터 비어 있었던 것 같은 모습이다.

바로 그 순간, 시야 끝자락에 언뜻 무언가가 보였다.

사막이라는 환경에 어울리지 않는 새파란 풀과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나 있는 물웅덩이.

흔히 오아시스라 부르는 곳이었다.

“…….”

상황 파악은 빨랐다.

‘거지 같은 속임수군.’

사막의 더위로 갈증을 유도한 뒤, 푸른 오아시스를 보여준다. 환영 속에 빠진 자는 자연스럽게 물을 확보하기 위해 오아시스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저 오아시스는 함정.

‘아마도 가까이 접근하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지겠지.’

혹시라도 환영에 빠진 자가 사전에 물을 지니고 있어도 상관 없다.

물이 없어졌다는 환영을 보여주면 끝나는 일이니까.

‘참 악질적이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와치버드를 살폈다.

와치버드의 혓바닥이 가리키는 방향은 한결 같았다.

당연하지만 혓바닥이 오아시스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지는 않았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다시금 나아갔다.

그 이후에도 환영 미로는 시도 때도 없이 날 유혹했다.

매번 심한 갈증을 느낄 때마다 오아시스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속임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도 마음이 동할 정도니, 대부분의 교류전 참가자들은 환영에 속아 넘어가리라.

그렇게 대체 몇 개의 가짜 오아시스를 지나쳤는지도 햇갈릴 무렵.

“……또 오아시스인가.”

다시금 눈앞에 물웅덩이가 보였다.

“흠.”

하지만 이번 오아시스는 속임수가 아니었다.

와치버드의 혓바닥은 눈앞에 보이는 오아시스가 미로의 끝이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가짜를 보여줌으로서 역으로 진짜 오아시스도 헛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라…….’

이 정도 난이도라면 2번째 미로에서 대부분의 교류전 참가자가 탈출하지 못하고 갇히리라.

나는 그렇게 확신하며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마침내.

진짜 오아시스, 환영의 출구에 도착하는 순간.

-푸화악!

오아시스 한 가운데에 있는 물웅덩이에서 물보라가 터졌다. 곧 잠들어 있던 가디언이 모습을 드러냈다.

-끼기기기긱!

이번 미로의 출구를 지키는 녀석은 거대한 게.

-끼기기긱!

푸른 물빛을 띈 게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훑는다.

곧 나를 발견한 놈이 곧장 왼쪽 집게발을 휘둘렀다.

이전 미로의 가디언보다는 좀 더 빠른 움직임.

하지만.

‘내 속도에 비할 바는 아냐.’

아직 내 움직임을 따라오지는 못한다.

순식간에 왼쪽으로 몸을 날려 놈의 집게발 공격을 피했다. 거대한 집게발이 아무것도 없는 땅을 강타하며 큼직한 모래 구덩이를 만들었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땅을 박차며 옆으로 돌아 놈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내가 접근할 줄 몰랐던 것인지, 깜짝 놀란 가디언이 빠르게 몸을 선회했다.

하나, 내가 검격을 휘두르는 게 놈보다 한 발 더 빨랐다.

-카가가각!

순식간에 놈의 세 번째 다리에 깊은 칼자국이 새겨졌다.

생각보다 갑각이 꽤 단단한 탓에 아쉽게도 녀석의 다리를 단번에 잘라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

‘갑각 따위.’

블러드하운드 54식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가디언의 갑각은 그저 파괴해버리면 그만인 껍데기니까.

곧장 새롭게 오러를 뽑아냈다.

블러드하운드 특유의 붉은 오러가 미스틸테인에 피어오른다.

4성 중반에 도달한 덕분에 이제는 블러드하운드 54식의 오러를 검신 전체에 덮어 씌울 수 있었다.

곧장 다시 한 번 더 세 번째 다리를 베었다.

-파각!

오러에 닿는 순간, 곧바로 가디언의 갑각이 깨졌다.

미스틸테인의 칼날은 멈추지 않고 갑각 속 연한 살점까지 찢어발겼다.

-끼기기기기기긱!

세 번째 다리가 잘려나감과 동시에, 놈이 고통에 차 울부짖었다.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검격을 날린다.

-파각!

아쉽게도 두 번째 공격으로 다리를 하나 더 잘라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놈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기엔 충분한 상처를 입혔다.

-끼기기긱!

생각보다 내 공격이 매섭다는 것을 깨달은 녀석이 황급히 다리를 놀려 물웅덩이 한가운데로 후퇴했다.

“쯧.”

나는 가볍게 혀를 찼다.

‘녀석이 당황한 틈에 계속 공격을 이어갔다면…….’

이 놈을 해치우는 건 순식간이었으리라.

하지만 놈은 웅덩이 한가운데로 후퇴했고, 나는 가디언 녀석과는 달리 물 위에서 움직이는 능력 따위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혹시라도 웅덩이의 수심이 적당히 낮았다면 그냥 진입했겠지만…….

‘이곳, 생각보다 깊다.’

저 거대한 덩치가 완전히 잠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뭐,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지.’

나는 숨을 고르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녀석 또한 나름대로 당황을 가라앉힌 건지, 회색빛 눈알을 뒤룩거리며 나를 경계했다.

그렇게, 잠깐의 대치가 시작됐다.

블러드하운드 오러 때문에 놈은 섣불리 내게 덤비지 못했고, 나 또한 오아시스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놈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자, 어쩔 거냐. 계속 대치할 거냐?’

이대로 녀석이 계속 저 웅덩이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골치아파지는 쪽은 나다. 놈을 죽이지 못한다면 이 환영 미로에서 탈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놈이 계속 가만히 있으면 내 패배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지.’

유적의 가디언은 그 특성 상 침입자를 무조건적으로 배제하려고 한다. 본능에 각인된 사명인 것이다.

확실하다. 놈은 환경적 우위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날 공격하려고 들 것이다.

나는 그저 놈의 인내심이 바닥나기를 기다리면 될 뿐이다.

그리고.

-끼기기긱!

마침내 가디언이 먼저 몸을 움직였다.

나를 배제해야 한다는 본능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단지,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

날 공격하기 위해 접근하는 대신, 깊은 오아시스 속으로 잠수를 해버렸다는 것일까.

“이런, 젠장…….”

두 번째 미로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예상 외로 길어지는 순간이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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