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55화 (55/139)

55화

교류전 연회장에는 한산함이 감돌았다.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연회장에 남은 사람은 몇 없었다.

교류전 참가자 대부분은 연회장에 숨겨진 편지를 찾아내어 유적으로 향했고, 참가자가 아닌 자들은 이미 행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각자 자신들에게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러 떠났다.

그렇기에 아직도 연회장에 남은 사람은 교류전 참가자도, 업무를 처리하러 온 실무자도 아닌 자들.

바로 실질적인 가문의 주인들이었다.

딱히 직접 움직여야 할 일도 없고, 대부분의 업무는 실무자가 끝마친 걸 검토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이 교류전이라는 행사는 바쁜 일상에서 주어진 약간의 휴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휴양지에서는 재미를 찾는 게 당연하다.

“이번 교류전은 꽤 시작이 흥미롭군요.”

한 중년 사내가 와인을 홀짝이며 중얼거렸다.

사내의 가슴팍에서 반짝이는 황금 뱃지에는 검과 방패가 겹쳐진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암즈의 직계 혈통이라는 증거였다.

“보물찾기라, 참 재밌는 놀이죠. 저도 어릴 때 가끔 형제들과 즐겼는데. 이거 참, 추억을 자극하는군요.”

사내, 칼튼 암즈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추억을 회상했다.

그러자 근처 테이블에 앉아 품위 있는 손짓으로 스테이크를 썰던 다른 중년이 중얼거렸다.

“그건 고작 저잣거리 아이들이나 즐길 법한 천박한 놀이 아니오? 귀하의 가문은 그런 놀이를 즐겨 했을지도 모르지만, 본인은 그렇지 않소. 그렇기에 본인은 이번 교류전이 퍽 실망스럽기 그지 없소만.”

무심히 상대를 깔보는 듯한 언행.

와인을 마시던 칼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레스 호엔슈타펠 님, 제발 언행을 주의하시죠. 나는 그쪽 가문이 혈통우월주의를 내세우든 말든 쥐좆만큼도 신경쓰지 않지만, 당신이 암즈를 모욕하는 것은 참을 생각이 없습니다.”

“허,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거늘. 어찌 발끈하시오? 물론 끔찍한 진실을 마주하는 게 심히 불쾌할 수는 있겠지. 그 부분은 사과하리다.”

“이 빌어먹을 대머리 새끼가 뒈질라고…….”

차마 듣고 넘길 수 없는 모욕에, 평온하게 식사를 하던 아레스 호엔슈타펠의 눈이파르르 흔들렸다.

동시에 연회장의 샹들리에 불빛에 아레스의 머리가 반짝였다.

“……천박하긴.”

하지만 고귀한 혈통은 품위를 잃을 수는 없는 법.

아레스 호엔슈타펠은 이를 악물고 스테이크를 썰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칼튼이 비꼬았다.

“그리고 그쪽은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것 아닙니까? 그런 놀이조차도 같이 해줄 사람이 없잖습니까. 가여워해줄 형제도 없고.”

“…….”

“하긴, 대머리랑 누가 놀아주겠어.”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아레스가 부들부들 떨었다.

-끼긱!

접시를 긁는 품위 없는 실수가 튀어나올 정도로.

칼튼 암즈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볍게 와인을 비워 낸 칼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하여튼 해본 적 없다면 결과는 빤하군요.”

“결과?”

아레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응에 칼튼이 피식 웃었다.

“아버지도 해본 적 없는 보물찾기를 자식이 해봤을 리가 없잖습니까? 그에 반해 내 자식은 어릴 때 이런 놀이를 많이 해보았지요. 그러니 이번 교류전 정도야 낙승일 겁니다. 최소한 마르스보다는 성적이 좋겠죠.”

“그럴 리는 없소.”

아레스는 고개를 저었다.

“보다 우월하고 뛰어난 자에게 그 정도 난관은 별 것 아니오. 처음에는 경험 부족으로 좀 헷갈릴지 몰라도, 금방 길을 찾게 되겠지.”

“흠.”

“이번 교류전의 우승은 호엔슈타펠이 차지할 것이오.”

“그렇다면 내기를 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갑자기 들려온 새로운 목소리.

칼튼과 아레스가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두 사람 모두 익히 아는 얼굴이 서 있었다.

“아자르 경? 일에 바쁜 사람이 여긴 어떻게?”

칼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질적으로 가주의 수행비서이자, 리텐슈노프의 실세인 아자르는 언제나 과도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런 곳에 놀러 올 시간이 남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자르 랭커스터는 피곤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바쁜 일은 이미 다 해결했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휴가차 온 겁니다. 따로 주군께서 명하신 것도 있고 말입니다.”

아자르의 대답에 칼튼이 눈을 찌푸렸다.

‘마그너스 님의 명령이 있었다고?’

마그너스가 아자르에게 직접 해결하라고 명령할 만한 일이라면 절대 평범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으로 볼 때, 그 명령은 이번 교류전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번 교류전에 그럴 만한 일이 있나?’

칼튼이 고민하는 사이, 식사를 끝마친 아레스가 손수건으로 입을 닦으며 물었다.

“그보다, 내기라니?”

“별 것 아닙니다. 두 분이 다투시기에, 그렇다면 누가 이번 교류전에서 1위를 할지 예상하는 것으로 승부를 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입니다.”

“하, 그야 당연히 정해진 일 아니겠소.”

아레스는 콧방귀를 뀌었다.

“당연히 마르스가 1위를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칼튼 님은 어떻습니까?”

갑작스럽게 시작된 내기에 얼떨떨해진 칼튼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나는…… 뭐, 내 아들이죠. 부모가 자식을 안 믿어주면 대체 세상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흠. 알겠습니다.”

아자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아레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다면 경은 누구에게 걸겠소?”

“네?”

“내기잖소? 그럼 그대도 걸어야지. 설마 판을 벌이기만 하고 도망칠 생각은 아니라고 믿겠소.”

“하하. 하긴, 그건 그렇군요.”

아자르가 작게 웃었다.

“그래서? 누구에게 걸겠소? 본인은 마르스에게 거는 것을 추천하오. 가장 우승 가능성이 있지 않소?”

마치 팔불출처럼 자식 자랑을 하는 데 여념이 없는 아레스의 모습에 칼튼이 인상을 찌푸렸다.

“글쎄요……. 마르스 도련님도 분명 좋은 선택이겠지만, 저는 이미 이런 내기에서 걸 사람을 정한지라.”

“……이미 정했다고? 누구지? 설마 혹시라도 암즈 쪽에 걸 생각은 아니겠지?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고 믿네.”

“거 참. 아레스 님, 적당히 하시죠? 꼴불견입니다.”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아자르는 피식 웃었다.

“아쉽게도 두 분 다 아닙니다. 사실, 제가 생각하는 우승 후보는…….”

* * * * *

드높은 고목이 울창하게 우거진 정글 한복판.

짜증 섞인 고함이 숲속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빌어먹을! 젠장! 제기랄!”

아직도 첫 번째 미로, 정글 속에서 탈출하지 못한 마르스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거지 같은 아이스본 놈들! 빌어먹을 버러지 녀석들!”

이건 말이 안 된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대 호엔슈타펠의 정통 후계자가, 고작 조잡한 환영 따위에 속아 넘어가 숲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다니?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마르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마르스는 길을 잃었고, 미로에 갇혔다.

아까부터 같은 곳을 빙빙 도는 걸 볼 때, 이미 방향감각도 상실한 지 오래.

사실상 탈출은 요원한 일이 되었다.

“감히 그 천박한 것들이 개수작을 부린 것으로도 모자라서, 본인에게 이런 수모를 주려고 하다니!”

그리고 마르스는 자신이 미로에 갇힌 이유가 아이스본에서 수작을 부린 탓이라고 단정 지었다.

더욱 우월한 혈통을 지닌 자신에게 모욕감을 주고, 핏줄이 비천한 아이스본의 후계자를 띄워주기 위해 더러운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이 틀림없다고 말이다.

‘본인보다 더욱 일찍이 유적에 진입한 두 놈. 필히 그 녀석들을 밀어주기 위해 아이스본이 나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렷다!’

현실 부정이고, 자기 세뇌였다.

하지만 평생토록 자신의 혈통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하고 우수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마르스다.

만약 이 상황에서 지금 맞닥트린 현실을 인정한다면, 그건 지금까지의 인생을 부정하는 행위다.

자기 보호를 위해서는 최면이라도 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쾅!

마르스 호엔슈타펠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눈앞의 고목을 후려쳤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눈앞을 가득 채운 정글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그저 화풀이일 뿐.

마르스 호엔슈타펠은 이글거리는 눈을 부릅뜬 채 끝없이 펼쳐진 정글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네놈들이 아무리 개수작을 부리더라도, 승리의 영광은 필히 본인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본인이 우승하는 순간, 네놈들의 지저분한 부정행위를 낱낱이 까발려주도록 하마! 아이스보오온……!!”

* * * * *

-찰박!

물기를 흠뻑 머금은 신발이 질척이는 소리를 낸다.

흠뻑 젖어,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나는 오아시스를 빠져나오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잠수까지 하게 될 줄이야…….”

가디언이 오아시스로 잠수한 탓에 일이 꼬였다.

놈을 잡기 위해 나 또한 물웅덩이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수중 생물 형태를 한 녀석답게, 물속은 놈의 홈그라운드였다.

덕분에 전투가 생각보다 귀찮아졌다.

‘예상한 것보다 시간도 잡아먹었고.’

에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조금 까다로웠을 뿐이다.

나는 힐끔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오아시스의 수면 위로 둥둥 떠 오른 물빛의 게가 보였다.

열 개의 다리는 전부 잘려나갔고, 완전히 파괴된 등딱지 사이로는 내장이 줄줄 흘러내린다.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으나, 그것도 시간 문제.

곧 가디언의 숨이 끊어졌고, 이전 미로와 같이 사막의 풍경이 천천히 산산조각이 났다.

환영이 무너진다.

눈 한번 깜빡일 사이에, 나는 다시 현실의 통로로 돌아와 있었다.

“…….”

그제서야 피로가 몰려왔다.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저 환영에 빠졌을 뿐, 실제로 전투를 겪은 게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피곤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육체적인 피로는 없을지라도, 정신적 피로가 컸다.

오히려 환영이었기에 정신력의 소모는 평소보다 더욱 컸다.

“조금만 쉬어야겠어.”

나는 와치버드가 든 새장을 통로 바닥에 내려놓고 벽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조금이라도 기력을 보충했다.

그렇게 잠깐이나마 눈을 감고 있었을까.

-뺙! 뺙뺙!

와치버드의 우스꽝스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쉬는 시간을 방해하는 녀석의 행패에 짜증이 났다.

“빌어먹을, 너도 좀 쉴 때 쉬어라. 아직 미로에 들어선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

그 즉시, 감고 있던 눈이 부릅 떠졌다.

“…….”

나는 황급히 미스틸테인을 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곧장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설마…….’

벌써 환영 미로에 갇힌 건가?

하지만 아직 경계선을 넘지도 않았는데?

그건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이번 교류전의 개괄적인 정보만 알 뿐, 정확히 모든 정보를 빠짐없이 다 아는 게 아니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미로에서 오아시스로 사람들을 속이려 했던 것처럼, 세 번째 미로도 그럴지 모른다.

경계선을 넘어야 미로가 시작된다는 지금까지의 상식을 역으로 이용해서, 곧바로 환영 속에 쳐넣은 뒤 모른체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와치버드를 살폈다.

하나, 와치버드는 혓바닥을 내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어딘가를 유심히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후우.”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빌어먹을 새가 사람 놀라게 만들고 있어.”

확 한 대 쥐어박아 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다시금 와치버드가 울었다.

-뺙! 뺙뺙뺙!

마치 타박하는 것 같은 울음소리.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녀석을 살폈다.

녀석은 내 바로 옆의 벽을 향해 부리를 휘저었다.

“……틈?”

그곳에는 대충 사람의 손가락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하나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틈이다.

아마 아이스본에서도 별 거 아니라고 판단하고 그냥 넘어갔겠지.

하지만.

“…….”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틈 사이로 조심스레 손가락을 집어넣어 보았다.

그러자.

-쿠구구구궁!

굉음과 함께, 세상이 점멸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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