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유적 전체가 뒤흔들리는 것 같은 진동이 멈추었다.
동시에 점멸하던 시야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살폈다.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유적 통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 대신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어두침침한 동굴이었다.
유적 통로가 후덥지근했던 것에 비하면 동굴의 습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고, 온도도 적당히 서늘했다.
희미한 빛을 발하는 무언가가 동굴 벽에 알알이 박힌 덕분에 최소한의 시야도 확보할 수 있었다.
마치 밤하늘에 뿌려진 별빛을 연상시키는 모습.
참으로 장관이다.
“으음.”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곳이 어디냐는 것.
‘유적 통로의 구멍에 손가락을 넣자마자 이곳으로 이동되었다.’
마법적인 순간이동이라기엔 느껴지는 어지럼증이 없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이곳에 떨어진 것이라면 내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순간 세상이 점멸하던 기억으로 미루어 볼 때, 아무래도 또 다른 환영 미로 속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와치버드가 함께 미로에 들어왔는지를 확인했다.
-뺙!
다행히 와치버드는 나와 함께였다.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볼을 긁적였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더니, 딱 그짝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 행동 때문에 아이스본도 발견하지 못했던 숨겨진 환영 미로에 빠지다니.
‘골치 아프네.’
이곳은 아이스본이 교류전에 쓰기 위해 개조해서 남겨둔 환영 미로가 아니다. 원래부터 유적에 설치되어 있던 침입자 방어용 진짜 미로라는 뜻이다.
당연하지만, 난이도 또한 훨씬 더 높겠지.
‘이 유적 공략에 참여한 마법사들은 최소 5성 급.’
즉, 진짜 미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못해도 5성 정도의 실력을 지녀야 한다는 소리였다.
“후우.”
후회가 막심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지금 와서 하는 후회 따위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중요한 건, 이 상황을 해결하는 거다.’
더군다나.
이건 어떻게 보면 기회다.
‘유적의 함정은 보통 침입자가 유적 공략을 하지 못하게 막아서는 역할을 하지.’
환영 미로 또한 함정이라고 할 수 있다. 침입자를 환영 속에 빠트려 진입을 방해하는 역할이니까.
‘다르게 말한다면, 침입자 방어라는 목표를 완수하지 못하는 함정은 설치한 의미가 없어.’
하나, 내가 방금 들어온 환영 미로는 어떤가?
‘아이스본이 이 미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이 함정이 최심부로 향하는 걸 방해하지 않았다는 뜻.’
거기다가 이 함정의 발동 트리거는 구멍에 손가락을 넣는 것이다. 어지간히 할 짓 없는 마법사가 아니라면, 당장 유적을 공략해야 하는데 애먼 구멍에 손가락을 쑤셔넣고 있을 이유가 없다.
자,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보자.
함정은 유적 공략을 방해하기 위한 장치다.
그렇다면 유적 최심부로 향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도 아니고, 발동시키는 것도 지극히 어려운 탓에 아무나 걸리지도 않는 이 함정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미로의 끝에…….’
무언가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것이겠지.
일단은 전진하자.
그렇게 결론을 내린 뒤, 나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용히 캄캄한 동굴을 나아간다.
애초에 직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일자형 동굴이었기에 길을 잃을 걱정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와치버드를 살폈지만, 녀석이 혓바닥으로 가리키는 곳도 진행 방향과 일치했다.
‘미로가 아닌 건가?’
환영 함정은 대부분 미로일 수밖에 없다.
출구를 통과하면 곧장 환영에서 탈출할 수 있기에, 최대한 출구의 위치를 감출 수 있는 미로 형태를 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통로는 딱히 도움이 안 될 텐데.’
도저히 의도를 알 수 없다.
생각할수록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것 같았다.
‘일단 긴장을 늦추지 말자.’
설사 무슨 일이 터지더라도 즉시 대비할 수 있도록, 나는 최대한 감각을 곤두세우며 나아갔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대략 한 시간은 넘게 나아갔던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긴장을 풀지 못해서인지, 슬슬 피로감이 몰려왔다.
“젠장할. 언제 끝나는 거야?”
한데, 말이 씨가 되기라도 한 걸까.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저 멀리 거대한 문이 보였다.
리텐슈노프 본가에 있는 개선문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철문.
내가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서자, 철문이 굉음을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곧바로 열린 문 틈 사이로 밝은 빛이 쏟아진다.
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활짝 열린 철문 사이로 보이는 광경은 놀랍기 그지 없었다.
“……연무장?”
철문 안의 공간은 거대한 실내 연무장이었다.
엄청나게 넓은 연무장의 바닥에는 질 좋은 모래흙이 평평하게 깔려 있다.
벽면에는 수없이 많은 무구가 거치대에 걸린 채 정리되어 있었고, 천장에 달린 마법 등불은 마치 태양처럼 밝은 빛으로 실내를 환하게 밝혔다.
리텐슈노프 가문에서 내게 준 개인 훈련실보다도 월등히 질이 좋은 연무장.
“이건 대체…….”
이런 공간이 왜 환영 미로 안에 있는 걸가?
내가 품은 의문은 곧 해결되었다.
-스스스스
연무장 바닥 한가운데에서, 불쑥 무언가가 어떠한 전조도 없이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솟아오른 것은 짙은 어둠으로 점철된 덩어리였다.
“……!!”
나는 황급히 검을 앞으로 내밀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덩어리의 형태가 순식간에 변했다.
곧, 그것은 대략 열 살 남짓한 나이쯤 되어보이는 소년의 모습이 되었다.
한 손에 검을 쥔 소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무기질적인 붉은 눈동자가 나를 노려본다.
“……허.”
절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소년의 모습은 ‘나’와 똑같았다.
“도플갱어라.”
도플갱어.
나와 완전히 똑같은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나는 슬쩍 연무장 내부를 둘러보았다.
내가 들어온 입구를 제외하면 딱히 밖으로 나갈 별다른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연무장이 환영의 끝이라는 뜻이다.
‘그럼 저 놈은…….’
환영의 출구를 지키는 가디언이겠군.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미스틸테인을 고쳐 쥐었다.
‘어려울 것 없다.’
현실에 도플갱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것은 그저 환영 미로가 만들어낸 가짜.
나와 비슷한 외모를 지닌 가디언에 불과하다.
‘즉, 저놈이 나와 똑같은 능력을 지니지 않았다는 소리지.’
그렇다면,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다.
곧바로 땅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가디언 또한 곧바로 검을 치켜들고 내게 달려든다.
-캉!
순식간에 서로의 거리가 좁혀지며, 우리는 첫 일격을 교환했다.
“……!!”
검 끝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사뭇 다르다.
상대의 근력은 최소한 나보다는 높다.
‘좋았어.’
근력의 차이가 난다는 건, 저것이 확실히 도플갱어 따위가 아니라는 증거다.
‘그저 내 흉내만 낸 무언가라면…….’
내가 패배할 이유가 없다.
검술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
-캉! 카앙! 캉!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합을 교환했다.
생각보다 만만하지는 않다.
상대가 나와 똑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검술’이라는 기술은 쓸 줄 알았다.
‘내 동작을 흉내내는 건가? 아니면 마법에 입력된 지식?’
그저 입력된 지식을 가지고 싸우는 거라면, 저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겠지만 혹시라도 나를 흉내내거나, 학습하는 거라면 문제가 좀 커진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놈이 성장한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된다면 근력에서 밀리는 내가 불리하다.
나는 곧바로 오러를 피워올렸다.
블러드하운드 54식.
붉게 일렁이는 검격이 놈이 쥔 검을 뱀처럼 노린다.
-파각!
검과 검이 맞닿는 순간, 가디언이 쥔 칼이 깨졌다.
순식간에 파편이 비산한다.
녀석은 검이 파괴되자마자 그 즉시 몸을 뒤로 뺐다.
‘방심 따위는 하지 않는군.’
만약 조금이라도 당황하거나 틈을 보였다면, 놈의 목을 날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
가디언은 자신이 쥔 손잡이만 남은 검을 힐끔 살피더니, 이내 아무렇게나 옆으로 휙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연무장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벽에 걸려 있던 검 하나가 순식간에 놈에게 날아들었다.
적당한 길이를 지닌 장검.
이전까지 놈이 쓰던 대검보다는 확연히 짧지만, 난 놈이 저 검을 고른 이유를 곧바로 깨달았다.
‘저 검, 미스틸테인과 길이가 비슷하다.’
예상이 맞았다.
학습이든, 흉내든.
전투를 거치며 놈은 성장하고 있다.
심지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우우웅!
놈이 쥔 검 끝에 미약하게나마 붉은 빛이 일렁인다.
블러드하운드 54식.
“이런 씨발, 어이가 없네.”
검식까지 복사해내는 모습에,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타다닥!
하지만 당황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놈이 곧바로 내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전투가 시작됐다.
다행히 블러드하운드로 맞상대 한 덕분에 미스틸테인이 깨져나가지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아직까지는 상대의 검식 숙련도가 낮은 덕분에 놈의 검이 깨지는 일이 더 잦았다.
하지만.
‘상당히 골치아픈데, 이거.’
‘아직까지는’ 이다.
‘점점 검신에 피워올리는 오러가 커지고 있다.’
서로 검격을 주고받을수록, 내가 놈 앞에서 오러를 피워올릴수록.
녀석의 검식은 완성되어 갔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이길 방도가 없다.’
놈이 또 다시 능력을 복사하기 전에.
단 한 번의 기회로 끝내야 한다.
-카드드득!
그리고 다행히.
기회는 곧 찾아왔다.
-파가각!
놈이 쥔 열세번째 검이 산산조각이 났다.
녀석은 그 즉시 내게서 물러서며 새로운 검을 불러왔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지금까지 숨겨둔 힘, 렐릭의 반지를 사용했다.
‘염화.’
순식간에 내가 쥔 검신에 불길이 솟아올랐다.
“죽어라!”
곧바로 검격을 날린다.
검 끝에서 흩뿌려진 화염이 놈에게 솟구쳤다.
“……!!”
녀석은 검을 소환하다 말고 황급히 몸을 피했다.
근력의 차이가 나는 만큼 놈의 움직임은 나보다 빨랐다. 나였다면 회피하지 못했을 공격이, 아슬아슬한 차이로 녀석을 스쳐 지나갔다.
아마 이 이후부터는 렐릭의 힘도 복사하기 시작하겠지.
하지만 상관 없다.
-푸욱!
어차피 이미 끝났으니까.
미스틸테인이 놈의 뱃가죽을 관통했다.
흩뿌린 화염으로 시야를 가린 탓에, 녀석은 내 접근을 제대로 눈치채지 못했다.
“죽어, 가짜 자식.”
“…….”
분명 치명상임에도 피 한방울, 신음 한 번 입밖으로 내뱉지 않는 녀석.
나는 말없이 검을 뽑아내 놈의 목을 쳐냈다.
-뎅겅!
나와 똑같이 생긴 머리가 허공을 날아간다.
“…….”
마치 전생의 내 최후가 떠오르는 광경.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후우.”
그래도 결국은 끝났다.
놈의 머리가 연무장 바닥을 구르는 것과 동시에,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가디언을 처치했기에 환영 미로가 부서지는 것이다.
풍경이 마치 잿가루가 휘날리는 것처럼 흩날리며 사라져간다.
가디언의 시체 또한 모래먼지처럼 바스라졌다.
하지만 시체에서 나온 먼지는 다른 것들과는 달랐다.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내 눈앞에서 뭉쳐져 작은 덩어리가 되었다.
“뭐지?”
내가 그 덩어리를 잡자,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했다.
.
.
.
다음 순간, 나는 유적의 통로에 있었다.
주먹을 허공에 뻗은 채 멍하니 서 있는 모습.
“돌아온 건가…….”
나는 조심스레 쥐고 있던 주먹을 폈다.
손바닥 위에는 작은 거울이 달린 브로치가 있었다.
“이건…….”
브로치를 확인한 순간.
절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플갱어 브로치……?’
도플갱어 브로치.
그것은 아멜리아 아이스본이 고작 이십 대에 불과한 나이에도 오대 명가의 가주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만든 보물 중 하나였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