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일체의 장식이 달리지 않은 투박한 브로치.
화려한 세공이 들어가지도 않았고, 금은과 보석을 재료로 사용한 것도 아니다. 낡고 녹이 슨 모습은 길바닥 노점상이 푼돈에 팔아치울 쓰레처럼 보인다.
굳이 특이한 점을 찾는다면 브로치 한가운데에 보석 대신 작은 거울이 달려 있다는 건데, 정작 먼지와 때가 낀 탓에 거울은 제 역할을 똑바로 하지 못했다.
겉모습만 보면 하등의 가치도 없어 보이는 골동품.
하나, 그건 진짜 보물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세상에, 맙소사.’
나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브로치를 살폈다.
‘틀림없다.’
이건 내가 기억하는 ‘그 물건’이 맞다.
전생에 고작 단 한 번 밖에 보지 못했으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착각하거나 헷갈릴 수 없었다.
‘아멜리아의 도플갱어 브로치라니……!’
무려 아이스본의 차기 가주를 결정했던 보물 중 하나다.
그런 물건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게 왜 여기서?’
혼란스러웠다.
아멜리아의 도플갱어 브로치는 가주 직위의 향방을 결정할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진 물건이다.
그런 귀물이 유적 벽 틈에 숨겨진 미로에서 나온다고? 그 와중에 아이스본은 이미 유적을 먼저 공략했음에도 발견조차 하지 못했고?
정확한 정보를 모르니 혼란스럽기만 하다.
일단…… 확인하자.
아무리 내 본능은 이 브로치가 진짜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확인조차도 안할 수는 없다.
나는 황급히 옷으로 브로치의 거울 부분을 닦아냈다.
잔뜩 낀 땟자국과 먼지를 닦아내자, 거울 본연의 광체가 살아났다.
마치 투명한 수면처럼 세상을 비추는 거울.
나는 조심스레 거울로 내 얼굴을 비추었다.
곱상하게 생긴 소년의 얼굴이 비쳐 보인다.
이 상태를 유지하면 인식은 끝난다.
‘이제 여기서…….’
내 마나를 브로치에 불어넣기만 하면 된다.
나는 조심스레 마나 하트를 운용했다.
심장에서 빠져나와 혈관을 타고 손 끝에 모인 마나가 브로치로 향한다.
-우우우웅!
그러자 브로치가 반응했다.
브로치는 마치 게걸스러운 아귀처럼 내가 흘려보내는 마나를 순식간에 잡아먹기 시작했다.
마나를 먹어치우는 속도가 어지간히 빠른 게 아니다. 오히려 보내주는 마나로는 부족한 모양인지, 브로치는 더욱 더 많은 양을 갈구했다.
“크윽!”
곧, 브로치는 걸신이라도 들린 듯 역으로 내 몸 속에서 마나를 뽑아내어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배가…… 어지간……히 고픈 모양이네!”
타인이 내 마나를 흡수한다는 것은 굉장한 불쾌감과 고통을 유발한다.
하물며 이 정도 급의 아티팩트라면…….
어지간한 사람은 저항 한 번 못하고 아티팩트에게 모든 것을 빼앗겨 말라 죽게 되겠지.
브로치가 가진 힘의 특성을 생각하면, 오히려 역으로 내가 이 아티팩트에게 몸을 먹혀버릴 수도 있고.
하지만.
‘이래봬도 마나 컨트롤 능력으로는 어디서도 밀린 적 없단 말이지!’
그건 보통 사람에게나 해당하는 일.
나는 브로치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최대한 마나를 컨트롤하며 흘려보내는 마나를 조절했다.
-우우우우웅!
내 저항에 분노한 듯 브로치가 잘게 진동한다.
그와 동시에 순간적으로 마나의 주도권이 확 기울었다. 한 번에 뭉텅이로 마나를 흡수당한다.
-우우웅!
나는 웃은 적 없음에도, 거울 속의 내가 피식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마치 네 주제를 알고 이만 포기하라는 것 같았다.
“웃기지…… 마!”
고작 아티팩트 따위한테 질 수는 없다.
그딴 결과를 보려고 과거로 온 게 아니다.
식은땀을 질질 흘리면서도 브로치를 꾹 눌렀다.
그러자 거울 속의 내가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거울 속 내 눈동자에서 핏빛 귀화가 일었다. 그와 동시에 브로치의 진동이 더욱 더 커졌다.
-위이이이잉!
엄청난 흡입력.
브로치 속으로 어마어마한 마나가 빨려들어간다.
마나를 너무 많이 잃은 탓에 눈앞이 핑 돌며, 어지럼증이 몰려온다. 집중력이 점점 흐려진다.
이미 환영 미로 속에서 한 번 전투를 겪었고, 그 전부터 계속 미로를 돌파한 탓이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어!’
브로치를 지배할 수만 있다면, 아멜리아 아이스본처럼 나 또한 ‘그 힘’을 쓸 수 있다.
그 힘만 쓸 수 있다면 훨씬 더 빠르게 리텐슈노프의 가주 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
새롭게 얻은 인생, 두 번째 기회를 진정한 리텐슈노프로 살아가리라 결심하지 않았던가?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는, 더욱 더 높은 경지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눈앞에 있다.
그걸 두고 도망친다?
포기한다?
그게, ‘리텐슈노프’가 할 행동인가?
가주를 목표로 삼은 자가 취할 행동인가?
-빠드득!
‘먹어치운다.’
이를 악물며 볼 안쪽을 깨물었다.
앙다문 입술 사이로 핏물이 흘러내린다.
비릿한 피맛에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브로치를 쥔 손을 더욱 더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는 브로치를 눈 앞에 가까이 가져와, 거울 너머의 나 자신과 시선을 마주했다.
거울 속 내가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인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난 본능적으로 거울 속 가짜가 무슨 말을 하는 지 깨달았다.
“그만 포기하라? 저항하지 말고 몸을 맡기라?”
……웃기지 마라.
“네놈이나 포기해라. 고작 도구 따위한테 질 거 운명이라면, 차라리 뒈지는 게 나아!”
나는 그렇게 일갈하며 브로치를 부술 듯 짓눌렀다.
동시에 온 정신을 집중해 마나의 통제권을 끌어당겼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주도권 탓에 몸속의 마나가 들끓며 마구 폭주한다.
“쿨럭……!”
내상이라도 입었는지 토혈이 튀어나온다.
선 채로 핏물을 토해냈다. 내장이 진탕나며 격통이 전신을 잠식했지만 나는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오로지 거울 너머의 ‘나’를 노려보며 끝없이 마나를 운용할 뿐.
그러자, 어느새 평온한 얼굴이 된 거울 속의 내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시선으로 나를 응시한다.
-우우웅……
거울 속의 내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곧, 녀석이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좋다.]
딱히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나는 녀석이 한 말을 머릿속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자격은 있는 거 같으니, 원하는 대로 해 보라지.]
그와 동시에 거울이 새하얀 광체를 쏟아냈다.
빨려들어가던 마나의 흐름이 멈추는 것을 느끼며, 나는 순식간에 정신을 잃었다.
* *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으음…….”
나는 짧게 신음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무언가 새하얀 물체가 눈앞을 둥둥 떠다닌다.
“……?”
흐릿한 시선으로 흔들거리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곧 초점이 돌아오며 사물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내 눈앞에 있던 것은…….
“드디어 일어났어?”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는 목소리.
나는 곧장 눈을 부릅떴다.
창백한 푸른 눈이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은빛 머리칼은 살짝 푸석푸석해보였고, 깊은 다크서클은 이전에 봤을 때보다 더욱 더 짙어져 있었다.
아멜리아 아이스본이 내 머리맡에 쪼그려 앉은 채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뭐지?
영문을 모르겠다.
왜 그녀가 벌써 이곳에?
“……네가 여길 어떻게?”
내 질문에 아멜리아는 눈웃음을 지었다.
곧 그녀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도 교류전 참가자잖아? 사막 미로를 통과하고 나와 보니, 네가 이곳 통로에 쓰러져 있던데?”
미로를 통과했다고?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살폈다.
내가 토해낸 핏물과 찌꺼기가 주변에 한가득이었다.
‘이 정도로 각혈을 했다면 몸이 멀쩡할 리가 없는데…….’
생각보다는 몸상태가 괜찮았다.
어째서인지 몸에 묻은 핏물은 죄다 닦여 있었고.
내 의문을 느꼈는지, 아멜리아가 첨언했다.
“피를 많이 흘린 거 같아서, 일단 응급처치를 했어.”
“…….”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던 걸까. 전신이 욱씬거리고, 여전히 통증이 일었다.
미약한 현기증에 몸이 비틀거렸다.
곧바로 아멜리아가 손을 뻗어 쓰러질 뻔 했던 나를 붙잡아 주었다. 순간적으로 그녀가 가까이 붙으면서 좋은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위험하잖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은 안식을 취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멜리아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내게 조언했다.
“일단 알겠어. 손부터 놔. 혼자 일어설 수 있어.”
피로 탓인지, 아니면 경계심 때문인지.
절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아멜리아가 살짝 눈을 찡그렸다.
“엎드려서 절 받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일단 나한테 고맙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와야 하는 거 아냐? 어찌되었든, 응급처치도 내가 해 주었고.”
올바른 지적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떨떠름했지만, 일단 사과를 하기로 했다.
“……고마워.”
“천만에.”
아멜리아 아이스본은 희미한 미소로 화답했다.
나는 일단 통로 벽에 몸을 기댄 채, 체력을 회복했다. 조금 더 휴식을 취하자,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일 만큼의 체력을 확보했다.
그때까지 나를 바라보던 아멜리아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그래서 왜 쓰러져 있었던 거야?”
“그보다, 대체 내가 얼마나 쓰러져 있었던 거야?”
오히려 내가 반문했다.
분명 내가 그녀보다는 먼저 던전에 들어왔을 거다.
그녀가 먼저 들어왔다면, 나를 마주칠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아멜리아라고 해도 내 미로 돌파 속도를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다.’
내가 첫 미로와 두 번째 미로를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하루도 되지 않는다.
중간에 도플갱어 미로에서 낭비한 시간까지 합쳐도, 고작 하루가 지났을 터.
‘하루 만에 여기까지 올 수 있을 리가 없어.’
아멜리아에게는 와치버드가 없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내 물음에 아멜리아는 짧게 침음성을 흘리더니, 이내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글쎄, 일단 확인해야 할 게 있는데. 혹시 네가 맨 처음으로 유적에 들어왔어?”
“아마도. 아니, 내가 처음이 맞을 거다.”
“그렇다면, 두 번째 미로를 통과했을 때 시간이 얼마나 지났었는데? 경계선의 거리를 보면, 통과하자마자 얼마 안 되서 쓰러진 거 같은데.”
“……하루.”
“……뭐라고?”
내 대답에 충격을 받은 듯, 아멜리아의 푸른 눈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내 대답을 믿기 힘들었는지, 곧 그녀의 눈동자 속 괴이가 꿈틀거렸다.
아무래도 내 속내를 읽어내 진실을 파악하려는 모양인데…….
나는 피식 웃었다.
“쓸데없는 헛수고 하지 마.”
제대로 읽을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일뿐더러, 설사 읽어내더라도 의미는 없다.
진짜로 하루 밖에 안 지났으니까.
그런 내 태도에 아멜리아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 또한 깨달은 거다.
내가 굳이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대단하네. 정말로.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는데.”
“잡설은 뒤로 미뤄두자고. 그래서, 내가 쓰러진 지 얼마나 지난 거지?”
“……6일.”
“……!!”
세상에 맙소사.
절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가 6일이나 기절해 있었다니…….’
생각보다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
나는 황급히 아멜리아에게 물었다.
“네가 가장 처음으로 날 발견한 건가? 아니, 네가 도착한 뒤로 새롭게 이곳을 지나간 사람이 있었어?”
“걱정하지 마. 내가 가장 먼저 왔어. 다른 녀석들은 여전히 사막에서 말라비틀어지고 있을 거야.”
그나마 다행이다.
아멜리아나 나보다 먼저 두 번째 미로를 통과한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다행히 아직 기회는 남아있는 건가…….’
하지만.
‘너무 시간을 낭비했어.’
그 증거로, 이미 나는 아멜리아에게 따라잡혔다.
그녀가 흥미를 가지지 않고, 나를 무시했다면 먼저 세 번째 미로에 진입할 수 있었겠지.
나는 아멜리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동시에 조용히 미스틸테인을 꽉 움켜쥐었다.
‘아직 체력은 좀 부족하지만.’
충분히 그녀를 쓰러트리는 것은 가능했다.
‘치료해 준 건 고맙지만…….’
그렇다고 성장 촉진제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 순간.
“좋아! 결정했어. 포기할게.”
그렇게 중얼거린 아멜리아가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양손을 가볍게 들며, 살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 의아한 태도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을 결정했다는 거지?”
“너, 지금 날 쓰러트릴 생각을 했지?”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군.”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아멜리아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럴 필요 없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
“……무슨 소리지?”
“그야…….”
아멜리아가 활짝 웃었다.
그리고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교류전 우승하는 거, 그거 포기한다고. 네가 먼저 세 번째 미로로 들어가. 나는 차석으로 만족하지, 뭐.”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