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60화 (60/139)

60화

그 눈을 마주한 순간.

기괴하면서도 묘하게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분명, 지금과 비슷한 느낌을 이전에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뭐였지?’

어째서인지 등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라이너스를 살폈다.

그는 딱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성장 촉진제라는 말에 일순 당황해 표정이 굳은 걸 제외하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인자한 얼굴이었다.

여전히 그의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분명, 방금 순간적으로 눈동자 색이 새카맣게 변했던 것 같은데…….

‘내 착각이었나?’

내가 짧게 신음하는 순간, 묵직한 저음이 흥미롭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어떻게 알았는가?”

“……성장 촉진제 말입니까?”

내 물음에 라이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스로 안정화해 시제품을 만들어 낸 게 고작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았네. 아측에서는 관련 정보를 최고 등급의 기밀로 지정해서 보안을 철저히 하였지.”

라이너스가 천천히 내게 고개를 숙였다.

“한데, 그 정보가 벌써 빠져나갔을 리는 없는데 말이지…….”

그는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내 곁에 가까이 다가와 조용히 귓가에 속삭였다.

“대체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자네가 숨기고 있는 비밀을 말해줄 수 있겠는가?”

“…….”

솔직히 말해서, 라이너스의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심각한 문제였다.

성장 촉진제의 시제품은 최고의 보안을 유지한 채, 심혈을 기울여 비밀스럽게 제조한 것.

아직 임상 시험조차도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단순히 그런 물건을 아이스본에서 제조하고 있다는 정보도 아니고, 시제품이 이미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녀석이 떡하니 등장한다?

더군다나 그걸 교류전 우승 상품으로 요구한다?

당연히 수상쩍고, 기분이 나빠질 만한 일이다.

‘내 대답에 따라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문 채, 조심스레 말을 골랐다.

잠시 후, 내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성장 촉진제에 대한 정보는 예전부터 돌고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정보가 돌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낭설이라고 해야 할지, 허풍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꽤 예전부터 들려온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전생에도 그랬다.

아이스본이 성장 촉진제의 시제품을 완성하기 한참 전부터, 어디선가 육체 성장을 돕는 약 따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계속해서 제국에 돌았었다.

“육체 성장이 빨라지도록 돕는 약 따위를 어디선가 만들고 있다. 예전부터 유행하던 소문 아닙니까? 한데, 제국에서 그런 것을 제조할 만한 능력이 있는 곳은 오직 아이스본 뿐이잖습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게 해서 나온 추측입니다.”

라이너스의 눈이 가늘어진다.

의심 가득한 눈빛.

믿음이라고는 한 줌도 없는 시선이다.

“하나, 그건 대답이 되지 못하네.”

그 말대로다.

내가 방금 지껄인 건 ‘성장 촉진제라는 것이 어디선가 만들어지고 있다는데, 그런 걸 제조할 수 있는 건 아이스본 뿐이니 분명 그쪽에서 만들고 있을 것이다!’같은 소리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시제품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가에 관한 대답은 아니었다.

“말하기 싫은가? 그렇다면 안 해도 되네.”

그렇게 말하는 라이너스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젠장.’

대충 뭉개는 건 포기해야겠다.

은근슬쩍 넘어갔다가는, 시제품을 안 줄 기세다.

나는 황급히 말했다.

“물론 제대로 된 정보는 따로 출처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지만 출처를 말씀드리는 건 조금……. 제 정보원의 신분을 막 드러낼 수는 없잖습니까?”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물론 내 정보원은 전생의 기억이라는 친구다.

라이너스가 내 기억을 읽어내는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절대 회귀의 비밀은 알 수 없다.

‘아멜리아도 읽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라이너스에게 내 대답은 썩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었나보다. 그가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나 또한 자네가 요구한 상품을 줄 이유가 없다고 여겨지네만?”

“대신, 임상 시험을 대신해 드릴 수는 있죠.”

“흐음?”

그제야 라이너스가 관심을 보였다.

역시 마도 명가 출신답게, 실험이니 하는 이야기에는 흥미가 생기는 모양이다.

“시제품이 나왔는데도 아직 외부에 발표하지 않았다는 것은 혹시 모를 부작용을 걱정한다는 말 아닙니까? 성장을 촉진하는 효능을 지닌 만큼 부작용 확인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이유이겠지만요.”

“…….”

더 말해보라는 듯, 라이너스가 턱짓을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가 실험쥐 역할을 하겠습니다. 어차피 아이스본에서 구할 수 있는 임상 대상은 마법사나 평범한 아이들 뿐. 기사라고 할 부류는 심히 부족하잖습니까?”

그 이유야, 뭐. 혈통이 천하다는 이유로 덮어놓고 아이스본을 멸시하는 타 가문의 성향 때문이겠지.

“그러니 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드리죠. 대신 당연히 실험쥐가 되려면 성장 촉진제를 주셔야 하고요.”

그런 내 대답이 의외였던 걸까, 라이너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네는 이 성장 촉진제가 현시점에도 완벽하다고 확신하는 모양이군.”

‘당연히 확신하고말고.’

미래의 지식을 지닌 덕분에, 그쪽에서 만든 게 부작용 따위 일체 없는 완성품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적당히 양념 정도는 쳐 두는 게 좋으려나?

“그럼요. 대 아이스본이 만든 것 아닙니까.”

나는 넉살스럽게 대답했다.

내 자신감 넘치는 대답이 만족스러웠던 걸까.

턱수염을 쓰다듬던 라이너스가 크게 웃었다.

“좋아. 좋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우승 상품은 자네가 원하는 것을 주도록 하지.”

‘성공이다!’

대답이 떨어진 순간, 나는 그 즉시 라이너스 몰래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슬쩍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라이너스는 만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눈빛만 보면, 운 좋게 굴러들어온 고급 실험쥐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 기분 나쁜 시선 때문에 뭔가 내가 이용당하는 느낌이긴 하지만, 어차피 이건 양쪽 다 이득을 보는 거래다.

성장 촉진제로 나는 중급반을 조기 졸업하고, 저쪽은 내 임상 정보로 좀 더 빠르게 제품을 출시하니까.

‘좋아.’

이제 필요한 준비는 끝났다.

‘성장 촉진제를 사용하면 충분히 12살 무렵에 중급반을 조기 졸업할 수 있다.’

실제로 성장 촉진제가 널리 퍼진 미래에 수련동 중급반의 졸업 시기는 12살로 줄어들게 된다.

‘상급반에만 들어가면…….’

기본적으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가문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만큼 나를 향한 감시의 눈길도 줄어들고, 활동 범위도 훨씬 더 넓어질 거다.

그만큼 내 성장 속도도 차원이 달라지리라.

‘최대한 빠르게, 7성의 경지에 도달한다.’

물론 그 이후부터는 미답의 경지다.

전생의 나는 7성 밖에 오르지 못했던 만큼, 그 이상의 경지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번 생에 내가 쌓아온 것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 * * * *

라이너스와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그는 내게 빠른 시일 안에 따로 리텐슈노프로 사람을 한 명 보내겠다고 전했다.

어차피 내가 요구하자마자 곧바로 성장 촉진제를 받을 거라고는 나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상 위에서 내려왔다.

그 이후, 그냥저냥 관심도 가지 않는 행사를 지켜보았다.

교류전 차석부터 10위까지가 차례대로 단상 위에 올라가 라이너스에게 축사를 들었고, 그 뒤 곧바로 폐회식이 시작되었다. 또 다시 화려한 연회가 시작되었지만, 첫 날과 비교하면 그 규모가 조금 작았다.

아, 참고로 교류전 차석은 내 예상대로 아멜리아 아이스본이었다. 정확히 8일차에 유적 공략에 성공했다던가?

‘전생에도 아멜리아가 차석이었던 것 같은데…….’

그녀의 엄청난 유적 공략 속도를 생각하면 전생에도 차석이었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게 들리는 일이다.

하나, 여기에 도플갱어의 브로치라는 존재를 끼워넣으면 이야기가 말이 된다.

‘가장 빠르게 미로를 공략하다가 우연히 브로치가 숨겨진 환영 미로를 발견했고, 그걸 공략하는데 시간을 소모한 나머지 순위가 한 단계 밀려난 거겠지.’

나는 주머니 속의 브로치를 무의식적으로 만지작거렸다.

“뭐해?”

그 순간, 어디선가 다가온 아멜리아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움찔 놀라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작은 초콜릿 쿠키 하나를 손에 든 채 오물거리고 있었다.

“……깜짝이야.”

나는 슬쩍 몸을 뒤로 뺐다.

이전부터 그녀가 계속 거리를 좁혀오는 게 껄끄러웠기에 나온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런 내 행동에 그녀가 미간을 찌푸린다.

“뭐야. 왜 도망치는 거야? 내가 뭔가 잘못했어?”

“무슨 일이지?”

“아, 수석 축하해. 그거 말해주려고 했지. 이건 축하 선물.”

그렇게 말하며 자기가 한 입 깨물었던 쿠키를 내게 휙 던지는 아멜리아.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단 나는 이런 걸 즐기지 않는다. 단 것은 취향에 안 맞는다고 해야 할까?

‘거기다가, 선물이랍시고 먹던 걸 주다니…….’

완전히 제멋대로다.

나는 쿠키를 한 손으로 받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쓸데 없는 일이었…….”

그 순간, 무언가가 떠올랐다.

순식간에 엇돌던 기억이 톱니바퀴처럼 짜맞춰지고, 머릿속 두뇌라는 이름의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부릅 뜬 눈으로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갑자기 달라진 내 분위기에 약간 놀란 건지, 아멜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쿠키 싫어해? 아니면 먹던 거라서 그래?”

“…….”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푸른 눈동자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심해 끝을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

최근에 한 번.

느낀 적 있는 감각이다.

“……아멜리아 아이스본.”

“갑자기 분위기는 왜 잡는 거야? 무슨 일인데?”

“라이너스 아이스본의 ‘눈’도 너와 같은 종류인가?”

내 물음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곧, 그녀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아멜리아.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니 전생의 아이스본 가주 시절 그녀가 풍기던 분위기와 흡사한 느낌이 난다.

“……글쎄.”

냉혹하고, 계산적이며, 언제나 차가운, 그야말로 핌불베트르 셉터의 정당한 주인에 어울리는 모습.

“아직은 네가 알 필요 없는 부분이라고 해 둘까.”

하나, 그런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멜리아는 다시금 이전과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가 준 선물도 안 먹는데. 비밀 따위, 말해줄 성 싶어?”

그녀는 삐죽 혀를 내밀고는 총총거리며 사라졌다.

“아직은 내가 알 필요가 없다, 라…….”

나는 그녀가 한 이야기를 곱씹으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손에 든 쿠키를 한 입 씹었다.

쿠키는, 생각보다 꽤 맛있었다.

* * * * *

교류전이 끝난 후.

나는 다시금 수련동으로 돌아왔다.

수련동은 이전과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새롭게 들어온 아이들이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었고, 란체스와 에이미는 나를 증오했고, 내 파벌은 나름대로 순항중이었다.

이전과 비교하여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멜이 급한 임무를 배정받은 탓에 잠시 내 곁을 떠나갔다는 것?

덕분에 나는 개인 훈련에 공백이 생겼다.

“뭐…… 그 덕분에 이걸 훈련용으로 써볼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인 건가?”

나는 손에 쥔 도플갱어의 브로치를 살피며 웃었다.

당분간은 ‘나’와 함께하는 수련이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