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며칠 뒤.
수련동 중급반 구역의 한 연무장.
이곳은 시설이 낡은 탓에 수련생이 자주 찾지 않아 버려진 곳이었다. 평소였다면 아무도 없어 조용했을 연무장이었지만 오늘은 활기가 넘치고 시끌벅적했다.
이곳에서 딱히 별도의 행사가 진행된 건 아니었다.
애초에 교관들도 자주 찾지 않던 곳이니까.
행사장으로 사용될 일 자체가 없는 곳이다.
‘아니, 행사라고 하면 이것도 행사려나?’
그럼에도 오늘 이곳에 수련생들이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나와 오마르가 대련을 하기로 정한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었다.
-파박!
땅을 박차는 발끝의 움직임을 따라 흙먼지가 튀고, 번쩍이는 검격이 서로를 노린다.
마치 오랫동안 짜고 연습해 온 검무를 펼치듯, 서로의 칼 끝이 흡사 기계적으로 맞부딪쳤다.
그야말로 절경.
무인들이라면 환호할 만한 풍경이다.
-챙!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명한 소리와 함께 승패가 결정되었다.
완전히 의표를 찌른 내 강격에 오마르가 손에 쥔 칼을 놓치고 만 것이다.
오마르의 검이 허공을 날아 연무장 바닥을 굴렀다.
-탱그랑!
“오오!”
“와, 저건 진짜…….”
“세상에, 맙소사!”
“말도 안 돼!”
그리고 그것이 신호였다는 듯, 지금까지 숨죽이고 있던 수련생들이 탄식하고 환호했다.
오마르의 파벌에 속한 녀석들은 안타까움이 섞인 한숨을, 내 파벌에 속한 녀석들은 감탄과 흥분이 섞인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똑같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내 실력에 경외를 표하고 있다는 것.
“후우.”
참았던 숨을 내쉬며, 나는 천천히 오마르에게 다가섰다. 여전히 자신이 놓친 검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고 있던 그가 내가 접근하자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오마르는 살짝 커진 눈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대단하구나, 너.”
“감사합니다.”
별다른 첨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건방지다고 느껴지는 행동이지만, 오히려 여기서 겸손을 표하는 건 오마르를 모욕하는 짓이다.
‘차라리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걸 더 좋아하겠지.’
애초에 그런 놈이다. 이 녀석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타인이 이루어 낸 성취를 폄하하지 않는다. 인성적인 면에서는 리텐슈노프 중에서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인격자다.
‘이런 녀석을 등쳐먹어야 한다니.’
괜히 양심에 찔리는 터라, 난 시선을 피했다.
“역시, 교류전 수석은 다르네. 많이 배웠어. 생각한 대로 도움이 많이 되네. 고맙다.”
하나, 오마르가 내게 오른손을 내밀은 탓에 그 시선을 피할 수도 없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혀를 차며 그 손을 맞잡았다.
“별 말씀입니다, 형님. 그리고 저라고 얻는 게 없는 것도 아니고요. 감사할 필요까지는 없어 보입니다.”
이번 대련을 수락하는 대가로 나도 얻은 게 있다.
내 파벌과 오마르 파벌의 대타협이다. 교류라고 봐도 좋고. 나름 서로 으쌰으쌰 하자는 평화 협정에 가까웠기에, 오마르는 곧바로 내 제안에 동의했다.
이건 내 딴에는 필수적인 일이었다.
지금부터 서서히 내 파벌과 오마르의 파벌을 서로 조금씩 뒤섞어 두어야, 차후 내가 저쪽 파벌을 병합했을 때 생길 내부 잡음을 줄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마르가 생각하기에, 이건 너무 관대한 제안이었던 모양이다. 내 대답에 오마르가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고작 그 정도 준 것만으로는 내가 얻은 깨달음에 비할 수 없어. 지금은 저울의 평형이 맞지 않아.”
“하하.”
어색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더 준다면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따로 생각을 해봐야겠네.”
그냥 빈말이었음에도, 오마르는 당연히 더 보상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딱히 내가 손해 볼 건 없었기에,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흠.”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주변을 살폈다.
수련생들은 여전히 방금 전에 펼쳐진 대련에 흥분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건 오마르 파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주인을 내가 쓰러트렸음에도, 그들은 딱히 나를 경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덕분에 그들에게 꽤 호감을 산 것 같았다.
‘끼리끼리 모인다더니…….’
당장 그 주인부터가 어딘가 이상한 녀석이니, 그 밑에 모여든 놈들이 비슷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려나.
‘그렇다면, 조금 더 실력을 보여도 나쁠 건 없겠군.’
더욱 뛰어난 자를 따른다. 그게 이들의 행동 방식이라면 굳이 능력을 과도하게 숨길 이유는 없다.
“형님.”
나는 바닥에 떨어진 오마르의 검을 주워, 골똘히 무언가를 고민하는 오마르에게 건넸다.
“한 번 더 붙으시죠? 기다렸던 대련 아닙니까.”
“그러면 나야 좋지.”
오마르가 씩 웃으며 내가 건네준 검을 붙잡았다.
“오오!”
“다시 시작하신다!”
“집중해, 집중!”
수련생들의 환호 속에서, 곧장 다음 대련이 시작되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4성 중반의 실력을 지닌 나를 2성 끝자락이 이길 가능성은 0이다.
전력을 다한 적이 없음에도, 그날 오마르는 대련에서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뭐, 본인은 기뻐했으니.
만사형통이려나.
* * * * *
“……입니다. 아무래도 오마르 도련님께서는 드레커 도련님을 자신의 파벌로 품으시려는 모양…….”
-까득!
소름끼치는 소리에 무릎을 꿇은 채 보고하던 수련생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두려운 눈으로 눈앞에 앉아 있는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아가씨…….”
소녀의 곁에 서 있던 측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최근 들어 계속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이던 주인이다. 이대로 가만히 놔뒀다간 그 분노가 자신들에게 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래도, 드레커 도련님을 향해 저희 측에서 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없다고 보셔야…….”
“입 닥쳐!”
하나, 측근의 첨언은 소녀의 분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그 화를 돋우는 짓이었다.
“전부 입 다물어. 조용히 하라고!”
에이미의 일갈에 실내에 있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에이미는 아까 전부터 씹고 있던 손톱을 다시금 물어뜯었다.
‘어떻게 하지?’
미칠 것 같았다.
몬스터 사육장에서 펼친 음모가 실패한 이후부터, 그녀는 꽉 막힌 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습격이 실패한 후 가주에게 근신 명령을 받았을 때는, 그저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다.
드레커가 제국 말벌을 쓰러트린 건 좀 놀라웠지만, 단지 운이었다고 여겼다.
그저 단지 재수가 없었을 뿐, 또 다시 기회가 생긴다면 꼴보기 싫은 막내를 완전히 보내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멜인지 멜로인지, 그 빌어먹을 놈은 뭐야!’
드레커가 어디선가 스승을 구해오면서 모든 계획이 꼬였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드레커는 중급반 수업을 스승과의 개인 훈련으로 갈음해버렸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덕분에 그 이후부터는 무슨 짓을 해도 드레커를 혼쭐 내줄 수 없었다. 아예 저 멀리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가버렸는데, 대체 어떻게 엿을 먹인단 말인가?
그래서 녀석의 파벌을 대신 괴롭히려고 했더니, 이놈들은 우습게도 자신의 사촌 오빠인 오마르의 파벌과 어울리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친근하게!
아예 오마르와 대놓고 충돌할 걸 각오하지 않는 이상, 녀석들을 건드릴 방법이 없어진 거다.
‘오마르 오빠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리텐슈노프의 혈통을 이었다면, 경쟁하고 서로를 뜯어먹는 게 당연하다.
어디론가 사라진 다른 놈 파벌을 돌봐주는 게 아니라!
‘란체스, 그 빌어먹을 머저리는 겁이나 잔뜩 집어먹고!’
제 파벌을 그대로 뜯겼는데도 입닥치고 있는 란체스도 밉상이었다. 제 쌍둥이 형제를 빼닮은 모양인지, 반체스도 딱히 하는 게 없었다. 아니, 그 놈은 아예 중급반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그야말로 병신 형제였다.
‘거기다가…… 교류전 수석은 또 뭐야?’
에이미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심지어 이제는 건드릴 방법도 사라졌단다.
교류전 수석 우승을 할 정도의 실력을 지닌 녀석이다. 그런 놈을 대체 무슨 수로 건드린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이제는 오마르조차도 대련에서 이긴다는데?
‘내 힘으로는 불가능해…….’
에이미 리텐슈노프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침내, 현실 인식의 때가 다가오고야 말았다.
밉상인 막내 동생은 눈 깜짝할 사이 자신의 손끝도 닿지 않는 저 먼 곳으로 올라서 버리고 만 것이다.
이전부터 그녀가 선망하던 라이너스 아이스본과 친분을 쌓고, 우승 상품을 요구할 정도로 말이다.
“젠장…….”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몹시 배알이 뒤틀렸다.
에이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나도…….’
지고의 아크메이지와 친해지고 싶다.
마법의 종주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끝없이 토론을 하고 싶다. 지긋지긋하고 땀냄새 나는 거지 같은 검술이 아니라, 언제나 선망했던 화려한 마법으로!
“아,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아아!”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덕분에 그녀 곁을 둘러싼 측근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물론 아무도 그 분노를 막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오늘도 그녀의 파벌은 에이미의 끝없는 히스테리에 고통받을 예정이었다.
* * * * *
며칠 간.
나는 계속 오마르와 검격을 주고받았다.
나름 대련은 성과가 있었던 것 같았다. 오마르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곧 있으면 2성의 벽을 넘어서 3성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불어, 내 개인적인 성취도 많이 올랐다.
‘도플갱어가 꽤 도움이 됐어.’
체형부터, 근력, 마나량, 사용하는 무기와 검식 등등. 완전히 나와 흡사한 분신과 싸운다는 건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소한 실수나 잘못된 버릇을 바로잡는 것부터, 상정 외의 사태에 미리 대비하는 것까지.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수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는 충분히 써먹은 셈이다.
심지어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 녀석은 내가 강해질수록 따라서 강해지지.’
이 놈은 앞으로도 꾸준히 써먹을 수 있다.
내가 5성이 되면, 도플갱어도 5성이 된다. 내가 7성에 도달하면, 이 녀석도 거기까지는 따라온다.
끝없이 나를 따라 성장하는 대련 파트너를 얻은 것.
그것이 도플갱어 브로치로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완벽해.”
아자르 랭커스터가 나를 찾아온 건 그 무렵이었다.
연락도 없이 수련동으로 찾아온 아자르는 곧바로 주변의 사람을 물렸다. 뜬금 없는 방문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랜만이구나.”
“안녕하십니까. 1년 전에 뵌 이후로는 처음이네요.”
그와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한 건 과거, 마그너스에게 콜마운트 영지를 하사받았을 때였다. 그렇기에 그 말대로 나와 그는 오랜만에 보는 게 맞았다.
내 대답에 아자르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째서인지 묘하게 기분이 좋아보이는 얼굴. 내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혹시 가주님께서 무언가 제게 전달하신 게 있는 건가요?”
“그래. 맞다.”
아자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교류전, 수석 우승.”
“아.”
“주군께서 그 이야기를 듣고 크게 기뻐하셨단다. 리텐슈노프에서 수석 자리를 되찾은 건 꽤 오랜만에 생긴 일이니까 말이야.”
역시, 솔직히 그가 나를 찾을 일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보상 이야기인가?
하지만 그 정도라면 다른 사람을 시켜도 될 텐데?
“그렇다면 가주님께서 무언가를 또 저에게 하사하신 겁니까? 그걸 전달해주시기 위해서 찾으신 거고요?”
살짝 돌려서 의문을 표했다.
역시 검제劍帝의 최측근이었던 사람답게, 그는 눈치가 빨랐다. 내 의아함을 파악한 아자르가 웃었다.
“그래, 맞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면 굳이 내가 이곳에 올 이유는 없지.”
“그렇다면…….”
“내가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고…….”
아자르는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나도 네게 줄 보상이 있거든.”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