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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63화 (63/139)

63화

아자르가 꺼내든 건 두 개의 목함이었다.

하나는 굉장히 고급스럽게 포장된 목함이었다. 재질부터가 은은한 장미 향이 나는 나무였고, 겉에는 고풍스러운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투박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곧바로 투박한 목함 쪽이 아자르가 내게 주려는 보상이라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왜 나한테 보상을 주는 거지?’

나는 의아한 눈으로 아자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자르가 미소를 지었다. 한데, 분명 웃고 있음에도 어째서인지 그의 표정에서 어색함이 느껴졌다.

“일단, 배경 설명을 좀 해야 할 것 같구나.”

배경 설명?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이스본에서 주최한 지난 교류전에 나도 참가한 건 알고 있지? 거기서 다른 가문의 중진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우연히 간단한 내기를 할 기회가 생겼거든.”

“……내기,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기.”

내 물음에 아자르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설마 그 내기라는 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혹시.”

“그래. 네 생각이 맞아. 교류전 수석 우승을 과연 누가 할 것인가에 관한 내기였지. 나는 너한테 걸었고.”

아하. 그런 것인가?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감이 잡혔다.

우연히 누가 수석 우승을 할 지에 관한 내기를 오대 명가의 중진들과 했다. 아무리 심심풀이였다지만, 내기의 참가자가 무려 오대 명가의 중요 인사들이었으니 당연히 내기에 걸린 금액도 상당했을 거다.

‘그 내기에서 나 덕분에 한 몫 단단히 잡은 모양이군.’

그렇다면 이 보상은 나에게 주는 개평, 같은 건가?

나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목함을 바라보았다.

나를 놓고 내기를 한 것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딱히 나쁜 일도 아니고, 쓸데없이 나에 관해 왈가왈부한 것도 아니다.

내가 교류전에서 수석을 따낸다는 데 돈을 걸었으니, 어찌 보면 이 보상은 아자르가 내 능력을 인정했다는 증표이기도 했다.

‘뭐, 상관 없나?’

덕분에 생각지도 않던 보상을 얻었으니, 굳이 나를 두고 내기를 한 부분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많이 따셨나 봅니다?”

힐끗 아자르를 쳐다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음? 아, 뭐 그렇지. 다들 직계 혈통이라서 그런 건지, 생각보다 통이 크더라고. 꽤 쏠쏠하게 벌었다.”

“제가 열심히 한 덕분에 아자르 경께서 큰 이득을 보셨다니, 그거 참 다행이네요.”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내 은근한 시선에 아자르가 헛웃음을 지었다.

“허, 이 녀석.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냐?”

그 물음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글쎄요. 부족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제 덕분에 많이 따셨다면 조금 더 쓰시는 건 어떨까요?”

“더 쓰라고? 푸하하!”

아자르가 폭소를 터트렸다. 한참을 웃던 아자르는 곧 은근한 눈을 한 채 내 어깨를 토닥였다.

“주군께서 이전부터 너를 아끼시는 이유를 잘 알 것 같구나. 그래, 내가 네 덕분에 돈깨나 벌었으니, 조금 더 인심을 쓸 필요는 있겠지.”

하지만 그는 이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당장 네게 줄 보상은 이게 전부다. 보상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예상하진 않아서, 내가 따로 더 마련한 물건은 없어.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렇게 답하며 그는 지그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과연 내가 어떤 요구를 할지 기대하는 눈빛이다.

그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지금 당장 나는 딱히 그에게 필요로 하는 게 없었다.

애초에 아자르에게 받아낼 수 있는 것들은 굳이 그가 아니라 마그너스에게 요구해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

“딱히, 물건으로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응?”

이 세상에서 오로지 아자르 랭커스터만이 줄 수 있는 것을 받는 게 정답이다.

“나중에…… 제가 무엇이든 경께 부탁할 일이 생긴다면, 그것을 들어주시는 것으로 족합니다. 물론 불가능한 것이라면 거절하셔도 됩니다만.”

내 의미심장한 요구에 아자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피식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빚으로 장부에 남겨두겠다? 역시 영리하구나.”

“과찬입니다.”

“……좋다. 내 장부에 달아두마. 이번에 얻은 기회를 과연 네가 어디에 쓸지, 벌써부터 궁금하구나.”

어디에 쓰기는, 당연히 가장 필요할 때 쓸 거다.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마그너스의 최측근이자, 징벌 기사단의 단장에게 작게나마 빚(?)을 지워놓는 건 나쁜 생각이 아니니까.

그 말을 끝으로 대화는 끝났다.

바쁜 와중에 짬을 내서 찾아왔는지, 아자르는 목함 두 개를 나에게 건네주고는 곧바로 떠나갔다.

나는 그가 사라지자마자 바로 목함을 열어보았다.

‘일단 아자르 것부터…….’

투박한 목함에 들어 있는 것은 마나 포션이었다.

이전에 마그너스에게 받았던 것보다 상등품의 물건.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오, 이 양반. 내 생각보다 더 많이 땄나 본데……?’

아무리 아자르라지만, 이런 물건을 덜컥 건네줄 정도라면 진짜로 한몫 단단히 챙긴 모양이다.

‘하긴.’

내기 상대가 오대 명가의 중진들이었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려나.

투박한 목함을 닫은 뒤, 다른 목함을 손에 쥐었다.

‘마그너스가 내게 내리는 하사품이라…….’

근 몇 회 동안 교류전 수석을 배출하지 못했던 리텐슈노프다. 그 명예를 회복시켜 준 나에게, 리텐슈노프의 가주는 얼마나 대단한 물건을 하사할까?

기대감을 가득 품은 채, 포장을 뜯고 목함을 열었다.

뚜껑을 열자 곧바로 알싸한 향이 코끝을 찔렀다. 오묘한 약제 내음이 풀풀 풍긴다.

목함 안에 든 것은 자그마한 갈색 환약이었다.

“환약?”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만 봐서는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어떤 환약인지 특정할 수 있는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아자르가 따로 설명해주지도 않았으니까.

[으음, 음! 오오! 오랜만에 다시 연결이 이어졌구나!]

공교롭게도 데우스와의 연결이 다시금 이어진 건 그 순간이었다.

“까, 깜짝이야.”

지극히 오랜만에 들려오는 드래곤의 음성에 순간 흠칫 놀라 목함을 떨어트릴 뻔했다.

나는 황급히 주변을 살피고는 속삭였다.

“거, 나타나실 때는 좀 예고라도 하시고…….”

[예끼, 이놈!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지! 오히려 이 몸과 연결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격해야 하는 것 아니더냐! 하여간, 요즘 것들은…….]

“……갑자기 지금까지 안 들리던 목소리가 들려오면 깜짝 놀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변명하지 말라! 쥐방울만 한 꼬맹이가, 입만 살아서는! 오히려 이 몸이 언제든지 돌아올 것을 감안하고 언제나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니더냐?]

“…….”

다짜고짜 펼쳐지는 기적의 논리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역시 이 변태 꼰대는 상종할 드래곤이 아니다.

덕분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관자놀이를 살살 주물렀다. 그런데, 문득 데우스가 입을 열었다.

[흐음, 그래도 이 몸의 충고를 잊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그사이에 꽤 괜찮은 물건을 얻어내다니.]

“네?”

알 수 없는 소리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괜찮은 물건?

[그 환약 말이다. 이 몸의 감이 확실하다면, 그 환약에 깃털 달린 뱀의 심장을 갈아 넣었을 것이거든.]

‘깃털 달린 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황급히 목함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세상에 약제로 쓰는 몬스터 중, 깃털 달린 뱀이라고 불리는 건 단 하나뿐이다.

[그놈의 심장이 아이의 육체를 성장시키는 데 참으로 효험이 깊단다. 그, 그 이름이 무엇이었더라……?]

몇백 년 묵은 탓에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건지, 데우스는 계속 정답을 떠올리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케찰코아틀.”

[아, 맞다! 그런 이름이었다!]

케찰코아틀.

9급 몬스터이자, 영물이라고 불리는 괴수 중 하나.

‘케찰코아틀의 심장으로 만든 환약이라니…….’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절로 입가에 침이 고였다.

이거, 내 예상보다 더 대단한 보상을 얻어버렸다.

* * * * *

갑자기 큰 행운이 찾아오면 사람은 얼떨떨해지는 법이다. 그것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염두한 적 없는 행운이라면 더더욱!

나 또한 그러했다.

내 계획은 성장 촉진제로 육체를 키워 중급반을 빠르게 졸업함과 동시에, 데우스와의 연결고리를 확고하게 하는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내 목표는 성장 촉진제 뿐이었다.

그런데 교류전 수석 우승을 한 보상으로 마그너스에게 케찰코아틀의 심장이 들어간 환약을 받다니!

지금의 나에게 이것보다 더 좋은 보상은 없다.

마그너스가 의도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덕분에 몸의 성장을 위한 발판은 이것으로 완벽해진 셈이다.

‘덕분에 계획을 더 빠르게 앞당길 수 있겠어.’

마그너스에게 받은 환약은 받은 그날 즉시 먹어 치웠다. 굳이 기다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스본에서 관찰자 역할을 겸한 사절이 성장 촉진제를 가지고 내게 찾아왔다.

나는 성장 촉진제 또한 얻자마자 곧바로 복용했다.

‘케찰코아틀의 심장도 같이 먹었으니, 아이스본이 나를 관찰해서 얻어갈 수 있는 약에 관한 정보에는 좀 오류가 생기겠지만…….’

그건 그쪽 사정일 뿐.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다.

‘뭐, 자기들이 알아서 오차 수정하고 하겠지.’

어차피 내가 없어도 4년 뒤에는 알아서 부작용이 없다는 걸 깨달을 거다. 굳이 내가 실험쥐 역할을 충실하게 해줄 필요는 없다.

하여튼.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어.”

그 뒤부터 만족스러운 일상이 이어졌다.

교류전이 어떤 전환점 같은 것이었는지, 그 이후부터는 모든 것이 잘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계획했던 오마르 쪽 파벌과의 교류도 잘 이어졌고, 내 성취도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했다.

‘아자르가 준 포션 덕분에 마나량도 꽤 많이 늘렸다.’

이전부터 계속 내 발목을 잡았던 부족한 마나량도, 이제는 4성 기사에 걸맞을 만큼은 확보했다.

‘거기에 더불어…….’

앞으로는 매일 하루가 다르게 몸이 성장할 거다.

사실, 어린아이의 몸은 불편한 점이 많다.

신장부터 시작해서, 근육량, 지구력, 체력 등등.

모든 면에서 성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하다. 당연히 과격한 훈련 따위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지금 내가 성취도로는 분명 4성에 도달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어린아이라는 육체적 한계 때문에 본연의 능력을 다 발휘하고 있지는 못하다.

아무리 똑같은 검술을 배웠다고 해도 그 성취가 같다면, 당연히 어린아이보다는 성인이 더욱 강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몸이 성장하면 그 제약이 풀린다.

‘……내가 아직 5성에 도달하지 못했던 게 그거 때문일 수도 있고.’

나는 입맛을 다시며 생각했다.

전생에 7성의 경지에 있었던 만큼, 나에게는 딱히 다음 단계로 넘어서기 위한 깨달음이 필요치 않다.

이미 지나간 길을 되짚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전히 내 성취도는 4성에 머물러 있다.

“충분히 이쯤 되면 5성이 될 법도 한데 말이지.”

물론 아직 정확한 원인은 파악하지 못했다.

내 예측이 틀렸을 수도 있고, 아직 내 성취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진짜로 육체가 어린아이기 때문에 성장의 한계가 찾아온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내 몸이 성장하는 것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 후.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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