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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64화 (64/139)

64화

시간의 흐름은 참으로 빠르다.

인식하지 않는다면 세월이라는 놈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 버린다. 삶이 팍팍하기 때문이다.

각박하게 이어지는 일상에서 눈을 돌리고 주변을 살펴야만 완전히 뒤바뀐 계절을 마주할 수 있다.

그제야 사람은 시간이 지나갔다는 걸 깨닫는다.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던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고, 사람이 달라졌다는 걸 인지하게 된다.

올해 막 하급반을 졸업하고 중급반에 들어선 안톤과 가롯, 그리고 루시엘도 마찬가지였다.

하급반 종합 평가가 끝난 뒤, 중급반으로 떠나간 드레커의 뒤를 따라가기 위해 셋은 열심히 내달렸다.

당연하지만 세상의 변화에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드레커와 관련된 소식은 계속 흘러들어왔지만, 그것에 감탄하며 경외할 틈조차도 아까웠다.

시간이 흘러갔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세 사람의 기억 속 드레커 리텐슈노프라는 소년은 여전히 1년 전의 모습으로만 남아 있었다.

일단 적어도,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오랜만이다. 세 사람 모두.”

중급반으로 올라온 첫날, 자신들을 찾아온 드레커를 마주한 안톤, 가롯, 루시엘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어, 그…….”

“오랜만……에 뵙습니다, 도련님…….”

“성장…… 하셨군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 속 드레커와는 너무나도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일단, 컸다.

그저 키를 말하는 게 아니다. 덩치도 엄청나게 커졌다. 적어도 열 살의 소년이 가질 육체는 아니었다.

아무리 못해도 13, 14살 정도일까.

몸집뿐만이 아니었다.

이전까지 약간 붙어있었던 젖살은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고, 얼굴형에서도 소년의 태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소년보다는, 청소년에 가깝지 않을까.

안톤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뭐, 그렇지. 하여튼 잘 왔다. 너희들이라면 올해쯤 중급반으로 올라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런 그들의 속내를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드레커는 세 사람의 어깨를 두드려 주기 바빴다.

“가, 감사합니다.”

“전부 다 도련님께서 살펴주신 덕분입니다.”

그의 말마따나, 그날 아르페리움에서 드레커가 겉옷을 빌려주지 않았다면 모두 다 얼어 죽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 이후에 같은 조원으로 이끌어주고, 지도해 준 덕분에 종합 평가에서 높은 성적을 거둔 것은 덤이었다.

루시엘은 목숨까지도 구원받았었고.

셋은 여전히 그때 입은 은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뭐. 그건 그렇다치고. 미안하게도, 지금 약간의 문제가 있는데…….”

문득, 드레커가 말끝을 흐렸다.

그 의아한 태도에 세 사람 모두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그들의 시선이 힐끔 드레커의 뒤로 향했다.

드레커의 등 뒤에는 여섯 명의 소년들이 서 있었다.

모두 드레커와 함께 그들을 찾아온 자들이었다.

겉모습을 볼 때, 아마도 자신들보다 먼저 중급반으로 승급한 선배들이리라.

안톤은 마른침을 삼켰다.

‘중급반에서부터는 파벌이라는 게 생긴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여섯 명 모두 묘하게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일단 저들은 이미 드레커의 파벌에 속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약간의 문제라는 건 무슨 이야기일까?

‘설마…… 이제는 우리가 필요 없어지신 건가?’

순간적으로 든 생각에 안톤이 눈동자를 굴렸다.

그렇다면 큰일이다.

이미 자신들은 하급반에서부터 드레커와 엮였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지금 드레커에게 버려진다면 앞으로 갈 곳이 딱히 없다.

이미 한 번 남의 손길이 닿았던 몸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처지가 아무리 포장해봐도 도구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안톤이었다.

그리고 한 번 타인의 손길을 탄 도구는, 다시 선택받지 못한다.

‘이런…….’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안톤의 얼굴이 절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안톤에게, 드레커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족보가 좀 꼬였다.”

“……예?”

세 사람이 모두 동시에 눈을 깜빡였다.

그들이 무슨 뜻인지 몰라 의아해하고 있을 무렵, 드레커는 자신의 뒤편에 서 있는 소년들을 가리켰다.

“이 녀석들이 수련동 기수 상으로는 선배…… 이긴 한데, 일단은 너희 후배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아.”

그와 동시에, 뒤에 선 소년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 * * *

위계 질서라는 건 중요한 것이다.

서열, 계급, 순서…….

집단을 다스리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소속원 사이의 위계 질서를 확고히 세워야 한다. 그래야 수직적 체계가 잡히고 구조적으로 안정된 집단이 만들어진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내가 한 짓은 필수불가결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집단이 더 커지기 전에 내 파벌의 서열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를 공고히 해야 하니까.’

일반적이라면 현재 내 파벌에 속해 있는 제이스 등등이 선배 대우를 받아야 한다.

수련동에도 선후배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련동에서는 먼저 상위 반으로 올라선 자가 선배가 된다. 하급반에서는 조기 졸업이 가능하기에 기수를 따지지 않지만, 중급반에서부터는 무조건 졸업에 나이 제한이 있기에 기수를 따질 수밖에 없다.

제이스 무리의 실력이 떨어지고, 사실상 다른 파벌 출신이었다는 걸 감안해도 정석적이라면 그들이 더 우대받는 게 맞다.

하지만 나는 안톤 일행을 더 높게 쳐 주었다.

언뜻 보면 그들이 나에게 먼저 충성했기에, 그 순서대로 우대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냥 실력으로 순번을 매긴 거니까.’

안톤, 가롯, 루시엘은 차후 황금 사자가 될 정도의 재능이 있는 녀석들이다.

당장 이제 막 중급반으로 올라섰음에도 이들의 실력은 현 중급반 수련생의 평균치에 육박한다. 당장 제이스 일행과 대련으로 붙어도 비등비등할 거다.

‘미래의 소드마스터가 될 인재들이니까.’

지금 당장은 제이스 쪽이 불만을 가지겠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곧 안톤 일행을 인정하게 될 거다.

‘그 녀석들도 멍청하지는 않으니까.’

앞으로 내가 내세울 원칙은 간단하다.

재능이 있다면 중용한다.

재능이 없다면 밀려난다.

기본적으로 다른 형제들보다 뒤늦게 후계 경쟁을 시작한 만큼, 나는 이러한 방식으로 인재를 등용하지 않는다면 남들보다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다지 나쁜 방식은 아니지. 능력이 없으면 당연히 도태되는 법! 이 몸도 네 선택이 옳다고 생각하노라.]

데우스 또한 내 말에 수긍했다.

나는 쩝 입맛을 다시며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확실히 제가 많이 성장하긴 한 모양입니다.”

떨어진 지 고작 일 년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안톤 일행이 나를 보고 당황하는 걸 보면, 진짜로 내 육체가 눈에 띄게 자라난 듯했다.

[키도 꽤 많이 커졌고, 덩치도 자랐잖느냐? 당장 얼굴형도 꼬맹이의 태를 벗어던진 덕분에 나름 반반해졌지. 당장 제이스인가 하는 네 수하도 너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통에, 몇 개월이나 보지 못했던 아이들이라면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그건 그렇죠.”

케찰코아틀의 심장에 더불어 성장 촉진제까지 복용한 덕분에, 내 예상보다 성장이 훨씬 빨라졌다.

덕분에 사람들의 주목을 잔뜩 받았다.

매일 마주치는 중급반 교관들이나 다른 수련생들, 오마르, 심지어 세르폰까지도 내 변화에 놀라워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마리 유모는 별로 당황하는 것 같지 않지만.’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동생의 성장이 나와 비슷하다고 했었나.’

대체 뭘 먹고 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리의 동생인 카를 브라운도 나와 성장 속도가 비슷하다고 들었다.

‘아쉽게도 이번에 다른 녀석들과 함께 중급반으로 승급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성과를 내고 있다고 했지.’

그런 괴물 동생이 있으니, 마리가 내 기형적인 성장 속도를 당연시 여기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어쨌든, 이대로만 가면 열두 살이 되기 전에 상급반 수련생과 비슷한 육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가 되면 마그너스에게 중급반 조기 졸업을 건의할 정도의 명분은 서지.’

물론 고작 육체가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한 것 정도로는 조기 졸업을 허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리텐슈노프 가문에 수련동이라는 시스템이 구축된 지 몇 백 년이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나와 같이 육체가 빠르게 성장한 수련생이 단 한 명도 없었을까?

‘없었을 리가 없어.’

결국 빠른 성장은 밑바탕에 불과할 뿐이다.

리텐슈노프 가문 역사상 최초의 중급반 조기 졸업을 허가받기 위해서는 성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압도적인 성과로!

‘그를 위해서는…….’

올해 첫 중급반 훈련에서 또 기록을 세워야겠지.

그리고 이번 훈련은 대형 몬스터 사냥이었다.

대형 몬스터는 말 그대로 압도적으로 거대한 몸집을 지닌 몬스터를 말했다.

이전에 내가 처치한 바실리스크는 고작 중형. 당연히 대형 몬스터는 그것보다 크다.

훈련의 목적은 수련생들이 자신들보다 압도적으로 거대한 적을 상대할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게 옳은지를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당연히 거대한 몬스터를 사냥하는 만큼, 수련생들은 각각 조를 짜서 훈련을 진행하게 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번이 오우거였나?’

오우거.

등급상으로 5급에 속하는 몬스터다.

어지간한 성벽만한 크기의 거대한 육체와 그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압도적인 근력, 그리고 덩치에 걸맞지 않는 빠른 움직임 탓에 녀석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교관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중급반에 성체 오우거를 던져줄 리는 없을 테니, 끽해봐야 아성체 정도가 한계일 테고……. 그 정도라면 수련생 10명 정도 모이면 어찌어찌 잡을 수 있으려나?’

그렇다면.

“간단하네.”

나는 눈을 반짝였다.

‘어느 조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정석적으로 오우거를 사냥해 보인다.’

물론, 10명보다 인원수를 줄여도 충분히 오우거를 잡을 수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 혼자서도 아성체 오우거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거다.

‘지금 내 성취는 거의 4성 끝자락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나 혼자만 튀는 것밖에 안된다.’

결국, 그건 나만의 성과가 될 수밖에 없다.

내가 리텐슈노프의 가주가 되기 위해서는 내 세력을 키워야 한다. 나 혼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낸다고 해서 가주가 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뿐만이 아니라, 내 아랫사람들도 키워줘야만 해.’

그를 위해서는 내 품에 들어온 사람들 모두를 이끌어 주어야만 한다. 제이스 쪽 녀석들도 다를 건 없다.

‘거기다가 어차피 그렇게 해도 나는 튈 수밖에 없어.’

똑같은 인원수에 비슷한 실력을 가진 녀석들이 뭉쳤는데도 정작 결과물이 다르다?

그건 솔직히 지휘자의 역량 차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오우거 정도라면 간단하지.’

오우거는 전생에도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죽여본 놈이다.

오우거 사냥?

그 정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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