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정보 수집은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이런 작업을 하는 게 처음이라서 그런지, 수련생들은 다들 어색해하며 버벅거렸다. 하지만 다들 곧 자신감을 되찾고는 열심히 용병들에게 질문을 던져댔다.
‘역시 판만 깔아주면 알아서 잘한다니까.’
처음이 어려운 거지, 한 번 해 본 뒤부터는 쉽다.
안톤과 가롯, 루시엘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핵심 질문을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딱딱 던졌다.
역시 미래의 황금 사자가 될 인재다웠다.
제이스를 비롯해 연차가 조금 있는 다른 수련생들도 마찬가지로, 따로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했다.
내 팀원들이 용병들에게 정보를 캐내는 동안, 나는 우두머리와 적당히 말을 섞었다. 대충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을 의도였는데, 당장 쓸만한 정보는 없었다.
뭐, 어차피 내 목적은 우리 팀원들을 교육(?)시키는 것이었으니 손해는 아니었다.
한참 후.
어느 정도 팀원들의 정보 수집이 끝났다.
나는 약속한 금화를 우두머리에게 던져주었다.
“좋아, 잘했어.”
“아이고!”
녀석은 내가 던진 금화를 가까스로 낚아챘다. 금화를 품속에 조심스럽게 집어넣던 녀석은 곧 내 눈치를 보며 비굴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헤헤. 이것 참……. 마침 요즘 들어 용병 짓 벌이도 시원찮아서 배곯고 있었는데, 우연히 귀하신 분을 뵌 덕분에 돈푼깨나 벌게 되는군요.”
“도박질 할 돈이 있는 걸 보면 배곯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테이블 위에 흐트러진 카드를 한 장 집어서 녀석의 눈앞에 흔들었다. 내 시선을 피한 녀석이 어색한 표정으로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아닙니다. 이건 그냥 취미생활이에요. 진짜로 요즘 장사가 안돼서 고생 중이라니까요.”
“그래?”
“네에. 그 뭐냐, 요즘 용병 업계도 경쟁이 심해서 일감 따내는 게 하늘의 별 따기랍니다. 더군다나…….”
용병은 내 눈치를 힐끔 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쥐좆만한 도시에 무슨 먹을 게 많다고 자꾸 외지인들까지 기어들어 오는지……. 참 걱정입니다.”
“외지인?”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는 대수림도 아니고, 고작 별 볼 일 없는 지방 도시에 불과하다. 그런데 외지인이 이곳까지 찾아와서 용병 짓을 한다고?
“예에. 근방에서 일거리 찾아 넘어오는 놈들도 있고, 촌 동네에서 성공하려고 상경한 놈들도 있고…….”
용병은 이내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젠장, 그거 아십니까? 며칠 전에는 이곳에서 그 좆같은 귀쟁이 놈들까지 봤다니까요?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건지, 참…….”
“……귀쟁이?”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절로 눈이 가늘어졌다.
“예. 우연히 마주쳤는데, 저를 깔보는 눈빛이 아주 그냥! 확 그 자리에서 눈깔을 파버렸어야…….”
“잠시만.”
“네?”
열심히 열변을 토해내던 녀석은 갑자기 달라진 내 분위기에 움츠러들었다. 나는 금화 몇 개를 더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용병 우두머리와 눈을 마주했다.
“그 이야기,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
* * * * *
귀쟁이.
제국인들이 요정족을 부르는 멸칭 중 하나다.
다들 귀에 요상한 장식을 달고 다니는 탓에 ‘귀쟁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솔직히 그딴 정신 나간 인종차별주의자들을 그렇게 온건한 별칭으로 불러주는 게 옳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최근 이곳에서 요정족들이 보였다는 말이지…….’
용병 우두머리는 내게 그렇게 증언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요정족은 자신들이 신성시하는 땅인 대수림에서 어지간하면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특유의 사상 탓에 활동 영역 자체가 지극히 좁은 것이다.
당연하지만 놈들이 폴카르에 올 이유가 없다.
‘적당히 가까운 곳이라면 또 모를까.’
이곳은 대수림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도시.
놈들이 돌아다닐 곳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용병이 봤다는 요정족은 뭘까?
‘착각은 아니겠지. 그렇게 눈에 띄는 장식을 귀에 달고 다니고, 그걸 숨기지도 않는 놈들이다. 절대 잘못 볼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야.’
당연히 사칭일 리도 없다. 어떤 미친놈이 귀쟁이들이나 할 법한 귀장식을 자기 귀에 달고 다니겠는가?
제국 내부에서 요정족의 평판은 최악이다.
그런 요정족을 사칭한다? 돌아버렸다면 가능할지도?
그렇다면 남는 결론은 단 하나.
‘뭔가 이곳에 올 이유가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 이유는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다.
“……또냐.”
확실했다.
이곳에 출몰한 요정족은 분명 나를 노리고 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마그너스는 대체 뭘 하는 거야?’
사람이 아니라 도구에게는 죄를 묻는 게 아니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빌어먹을 귀쟁이들에게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은 건가?
‘아니, 뭐…… 그놈들이 짓밟아 준다고 해서 겁먹고 사리는 유형의 족속들이 아니긴 하지만.’
당장 저번에도 그렇다.
아무리 그라힐이 충동질하기는 했다지만, 그렇다고 옳다구나 리텐슈노프 직계 혈통을 암살하겠다고 달려드는 집단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느냔 말인가.
오직 요정족, 그 미친놈들 뿐이다.
에휴.
‘일단 상황을 정리하자.’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번에도 그라힐이 관련되어 있겠지.’
가능성도 동기도 충분하다.
당장 그라힐은 요정족과 연결되어 있고, 이전 암살이 실패한 뒤, 내가 보낸 도발 때문에 잔뜩 독이 올라 있을 게 뻔했다.
‘아직도 놈이 내게 보낸 편지가 똑똑히 기억난단 말이지.’
그런 그라힐의 성격상, 두 번째 암살을 시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꼬맹아.]
“네.”
[설마, 멍청하게 그냥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데우스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비릿하게 웃었다.
“당연히 갚아줘야죠.”
한 번이라면 모를까, 두 번이나 내 목숨을 노렸다.
당연히 갚아 주는 게 맞다.
‘일단, 그라힐 쪽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잠시 생각하던 나는 결론을 내렸다.
“제 생각에는, 요정족 암살자들의 실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을 겁니다.”
[이 몸의 생각도 네 녀석과 같도다. 분명 별 볼 일 없는 놈들을 보냈을 게 뻔하지!]
“여기는 요정족의 본거지가 아니니까요.”
이곳, 폴카르는 엄연히 리텐슈노프의 영역이다.
리텐슈노프 본령에서 고작 며칠 거리에 있는 도시.
가문에서 직접 지배하지만 않을 뿐, 실질적으로 리텐슈노프 직할령이라고 불러도 상관이 없는 곳이다.
자연스럽게 요정족이 쓸 수 있는 패는 그만큼 줄어든다.
그놈들은 자기네들이 꽉 주름잡고 있는 대수림에서나 큰소리치는 골목대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곳에는…… 네 편이 아주 많이 넘쳐나지.]
그말대로였다.
당장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분명 중급반 교관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중급반 교관들은 아무리 못해도 대부분 5성.
교관들을 뚫고 나를 암살할 수 있는 실력자가 움직였다면, 분명 마그너스의 감시망에 걸려들었을 거다.
거기에 더불어.
‘내 팀원들도 있다.’
물론 다들 2성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제 몫은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 줄 이유는 없겠죠.”
나는 가볍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미 암살이 일어나리라는 것도 알고, 누가 나를 노리는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 굳이 잠자코 당해줄 이유가 있나?
[굳이 벌레들이 눈에 띄는 걸 기다릴 필요는 없다. 어차피 벌레가 있다는 건 알고 있으니, 이쪽에서 먼저 찾아서 박멸하는 게 훨씬 더 빠르고 간단하다.]
데우스의 말마따나, 내가 먼저 치는 게 낫다.
‘문제는 녀석들이 어디 숨어 있는지를 모른다는 거지만…….’
숨어 있는 요정족을 찾는 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 아닌가?
그놈들은 요정왕을 모욕하는 벽보만 붙여 놓아도 꿀 냄새 맡은 개미처럼 알아서 기어 나오게 되어 있다.
“안톤.”
내 부름에 안톤이 황급히 다가왔다.
“네, 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
“여관 주인한테 종이와 펜을 좀 빌려와.”
“종이와 펜…… 이요?”
내 명령이 뜬금없었는지, 안톤이 순간 머뭇거렸다.
“응. 종이는 좀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왜긴 왜야.
“도시 안에 쥐새끼들이 좀 숨어 있는데…….”
내가 그놈들을 좀 불러내야 하거든.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과연 우리 요정족 친구들의 인내심이 얼마나 깊을지. 한 번 시험해 볼까?
* * * * *
[대수림의 정당한 주인, 요정왕 전하께서는 약을 너무 많이 하시는 탓에 젊은 나이임에도 유아퇴행이 와 버리셨도다. 벽에 분변으로 예술 작품을 그리시는 취미가 있다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
“이, 이, 이익! 어떤 벼락 맞을 개잡놈이 이딴 망언을 벽에다가 붙여 놓은 것이냐!”
폴카르 중심가 한복판.
얼굴이 홍시처럼 붉게 물든 한 사내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거친 손길로 벽에 붙은 ‘불경한’ 벽보를 뜯어낸 사내가 핏줄이 바짝 선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당장이고 사람 한 둘은 죽일 듯한 섬뜩한 눈.
심지어 사내는 허리춤에 칼까지 차고 있었기에, 그 눈빛은 더욱 더 위협적이게 느껴졌다.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일반인들은 자리를 피하거나, 겁에 질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내에게 내비치는 반응은 사뭇 달랐다.
“뭐야, 저 병신은.”
“미친놈 아냐?”
“야, 저거 귀 좀 봐라. 저놈, 귀쟁이 아냐?”
노골적인 혐오, 멸시.
그것은 제국인들이 요정족에게 보내는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요정족이란 언제나 제 잘난 맛에 살며, 이 세상 모든 인간을 열등하다고 업신여기는 놈들이다.
당연히 곱지 않은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나.
“뭐, 뭐야? 이 열등한 족속들이 뭐라는 거야!”
사내는 그러한 시선이 익숙지 않았다.
평생토록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하고 위대한 종족이라고 세뇌된 채 살아온 사내는 ‘열등한’ 족속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사내가 살아왔던 지역은 ‘나름대로’ 요정족들에게 친화적인 대수림 인근.
우물 안 개구리가 바깥을 모르는 것처럼, 일생을 폐쇄적인 사회에서 보냈으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크윽!”
결국 사내는 사람들의 노골적인 시선에 밀려 도망치듯 광장을 빠져나왔다. 여전히 그의 손에는 아까 뜯어낸 벽보가 쥐어져 있었다.
‘저 열등 종족들이 감히……!’
사내가 이를 악물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 돌아가서 저 빌어먹을 놈들의 눈알을 파내고 목을 쳐 버리고 싶었다. 사지를 잘라 바닥을 기어다니며 목숨을 구걸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빌어먹을!”
그럴 수 없다.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사내의 실력은 4성. 그 정도면 광장에 있던 인간들을 전부 짓밟을 수 있다.
단지 그런 짓을 했다간 당장 자신이 죽여야 할 표적이 소란을 눈치채고 도망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일반 상식이라는 걸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아까 광장에서 길길이 날뛰어버린 시점에서부터 이미 계획은 파토났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지만…….
그런 상식을 그가 지니고 있었다면, 요정족 특유의 귀장식을 뻔히 드러내고 다닐 일도 없을 터.
그렇기에 그는 끝까지 알지 못했다.
-스윽
누군가가 몰래 자신의 뒤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