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실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
모두의 시선이 포대 자루를 향했다. 나는 레너드에게서 시선을 때지 않은 채 조용히 가롯을 불렀다.
“가롯.”
“예.”
“확인해봐. 네가 감시하던 놈들이 맞는지.”
그 말에 가롯은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가 슬쩍 포대 자루를 열고 잘린 머리들을 확인했다. 곧 가롯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감시하던 놈들이 맞습니다.”
“……그래?”
허허, 참나.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대체 이놈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깊었는데…….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는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다.
조금 허탈한 기분이다.
‘뭐, 내 손 안 대고 코 풀었으니 나쁠 건 없긴 한데…….’
문제는 그게 내가 의도한 게 아니라는 거지.
“무어, 일단은 잘하셨습니다. 잘했는데…….”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레너드를 노려보았다.
“굳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그걸 저에게 보고하는 저의가 뭡니까? 뭔가 원하시는 게 있는 거 같은데……. 말씀해보시죠.”
내 물음에 레너드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충성 맹세를 하고 싶습니다.”
“충성 맹세?”
이건 또 뭔 소리야?
“무슨 뜻입니까?”
“말한 바 그대로, 도련님의 수하에 들어가고 싶다는 뜻입니다.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훈련에서 편의를 봐 드리거나, 점수를 후하게 드린다거나…….”
그 말에 순간적으로 불쾌감이 치솟았다.
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며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야말로 미친 소리였다.
케케묵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건전한 관계를 논하기 이전에, 이걸 받아줌으로써 내가 볼 이득이 없다.
오히려 내가 손해 볼 구석만 넘쳐나는 일이었다.
당장 교관을 매수(?)했다는 사실이 들통나면, 그 사정이 어떻든 간에 마그너스가 날 뭘로 보겠는가?
“지금 장난합니까? 수련동을 대체 뭘로 아는 겁니까? 아니, 그 이전에 날 대체 어떻게 봤길래 그딴 걸 제안이랍시고 가져오는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자신이 말실수를 한 탓에 내 기분이 심히 언짢아졌다는 걸 깨달은 레너드가 황급히 바닥에 엎드렸다.
난 바닥에 고개를 쳐박은 그를 노려보며 일갈했다.
“개수작 부리지 마십시오. 귀쟁이들 목을 따 온건 고맙지만, 그런 병신 같은 제안은 안 받습니다. 부정행위로 점수 타 먹고 싶은 마음은 손톱 때 만큼도 없으니까.”
그딴 추잡한 짓을 안해도 어차피 나는 성공할 수 있다.
오히려 그런 짓을 했다가 들키면 내 앞길에 걸림돌만 될 뿐이다.
“그, 그렇다면 도련님 파벌의…….”
하지만, 레너드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었다.
그가 엎드린 채 웅얼거린 말에 내 팀원들 태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몇몇은 불쾌한 듯 인상을 찡그리기까지 했다
나는 그 모습을 살피며 속으로 웃었다.
‘그래도 내가 머저리들을 뽑지는 않았군.’
이런 소리를 듣고 좋아하면, 그런 녀석은 거르는 게 맞다. 다행히 내 팀원 중에는 그런 머저리는 없었다.
여하튼, 그건 그거고.
나는 레너드의 정수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병신으로 보입니까?”
“…….”
“그렇게 파벌을 키워봤자, 경력만 그럴싸하고 실력은 막장인 새끼들만 모일 뿐이라는 걸 모릅니까?”
철저하고 공정하게 평가해서, 가장 유능한 놈들만 뽑아도 모자랄 판이다. 만약 그런 짓을 하면?
‘병신만 모이지. 바로 이 새끼처럼.’
애초에 교관이라는 인간이 아직도 파벌이 없어 줄을 찾아 다니는 시점에서부터 수준 미달이라는 증거다.
이런 놈은 수하로 들여도 딱히 도움 될 게 없다.
“그, 그…….”
내가 두 번째 제안도 일언지하에 거절하자, 레너드는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설마 거절당하리라곤 생각지도 않았던 건가.
‘이거, 진짜 병신이네.’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숨만 나왔다.
그나마 눈치는 좀 있는지, 내 한숨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깨달은 모양이다. 레너드의 양 귓가가 붉어졌다.
얼굴이 가려진 터라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후.”
약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이마를 가볍게 문지르며 고민했다.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하나.’
대놓고 말해, 쓸 곳이 없다.
실력은 나름 괜찮을지도 모르나, 리텐슈노프 가문에서 이 교관 정도의 능력자는 차고도 넘친다.
오히려 하는 짓을 보면 머리가 덜떨어진 것 같아, 솔직히 거두었다가는 무슨 사고를 칠지 몰라 두렵다.
역시, 쫒아내는 게 맞다.
그렇게 판단하고 축객령을 내리려는 순간.
‘……잠시만?’
문득 무엇인가가 머릿속에 팟하고 떠올랐다.
“아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네?”
내 대답에 엎드려 있던 레너드가 움찔 놀랐다. 내 차가운 반응에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곧 레너드가 조심스래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담긴 미약한 희망을 읽으며, 나는 씩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원하시는 대로 거두어드리죠.”
생각났다.
써먹을 곳.
* * * * *
“……어째서 저 교관을 품으신 겁니까?”
레너드가 떠난 뒤, 안톤이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레너드가 두고 간 자루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런 내 눈치를 살피던 안톤은 작게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직언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거두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저런 식견을 가진 자는 해가 될 뿐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움직입니다.”
“스스로가 판단하고 움직인다?”
나는 눈을 치켜뜨며 힐끗 안톤을 바라보았다.
약간 놀랐다.
‘솔직히 이런 이유를 댈 줄은 몰랐는데…….’
제 나이에 걸맞은 발상이나 사고방식이 아니다. 어지간한 명문가의 가신단이나 떠올릴 법한 이야기였다.
‘역시 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간단 말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더 말해보라는 내 눈짓에 안톤은 슬그머니 내 안색을 살피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물론 자의적으로 움직인다는 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생각을 포기한 채 시키는 일만 하는 건 골렘에 불과하니까요. 그런 자들은 크게 쓸 수 없습니다.”
맞는 말이다.
그저 명령을 따르기만 하는 건 인형에 불과하다.
물론 그런 자들도 다 쓸 곳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거둘 필요는 없다.
내가 동의한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안톤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하지만 저 교관은 생각이 없습니다. 아니, 생각은 하되, 그게 올바르지 않습니다.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지 못하고 부적절한 행동방식으로 움직입니다. 문제는 그게 타당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가 깨닫지 못한다는 겁니다. 가까이 두면 분명 도련님께 해가 될 겁니다.”
“그렇겠지.”
내가 순순히 그 의견에 동의하자, 안톤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어째서……?”
“파벌 때문이야.”
“……파벌 말씀이십니까?”
안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내 움직임에 놀란 안톤이 나를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천천히 거실 창문 쪽으로 향했다.
객실 거실에는 거대한 채광창이 달려 있었다. 창문 너머로 어두컴컴한 폴카르의 도심지가 보였다. 나는 바깥을 지그시 바라보며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래. 지금에야 내가 중급반에 있으니 내 파벌을 포섭하는 게 쉽지. 나를 직접 보고 따를지 말지 결정하게 되니까. 하나, 결국 나도 미래에는 수련동을 졸업하게 되겠지.”
“그렇…… 겠죠.”
“그럼 그 이후에는?”
나는 창문에 비친 안톤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제야 안톤이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저 자를 이용해서 계속 중급반에 도련님의 파벌이 존재하게끔 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수준을 볼 때,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저 이상 올라서지 못할 인간이야. 앞으로도 저 선임 교관의 지위에서 올라서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적당히 희망을 던져 주고 인원 수급 용역으로 써먹는 수밖에.”
내 계획은 이렇다.
레너드를 통해서 내가 중급반을 떠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내 파벌이 성장하고 유지되게끔 관리하는 거다.
물론 내가 떠난 이후에도 한동안 내 파벌은 남아있을 거다. 현재 내 파벌에 소속된 녀석들이 계속 새로운 인원을 알아서 수급할 테니까.
하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중급반을 떠날 거다.
그럼 그 이후는? 과연 내 파벌이 계속 남을까?
‘그럴 리가 없지.’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이 다 그러했다.
직계 리텐슈노프가 졸업하면 더 이상 그 파벌은 성장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현 중급반에 이미 이곳을 졸업한 다른 리텐슈노프의 파벌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당연히 그렇지 않다.
직계가 떠나면 파벌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향력을 끼칠 사람들이 계속해서 졸업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내 영향력이 닿는 교관이 계속 남아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대놓고 규모를 키울 수는 없겠지만…….’
소소하게 파벌의 명맥은 유지시킬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다.
‘어느 정도 세력 확보가 가능하니까.’
물론 그렇게 얻은 파벌은 소소하고 미약하다.
이제 갓 중급반에 들어선 수련생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들을 모아봤자, 지금까지 수십 년의 세월간 내 큰아버지들이 구축한 세력을 넘어서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어차피 그들과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쥐뿔도 가진 게 없는 상황이다. 하잘것없는 세력이라도 모아놓을 수 있다면 모으는 게 정답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건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안톤은 레너드가 두고 간 요정족의 머리가 담긴 포대 자루를 슬쩍 잡아당기며 나를 바라보았다.
“일단은 적당히 보존처리 해 둬. 쓸 곳이 있으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 명령에 안톤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포대 자루를 짊어진 채 일어섰다. 보존 처리를 위해 마법사를 찾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안톤이 떠나간 뒤,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이번 훈련에서 꽤 많은 것을 얻었군.’
오우거 사냥을 위한 정보 수집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 덕분에 내 파벌 소속 수련생들의 평가 성적은 분명 다른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다.
더불어 수련생들에게 상급반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지식도 어느 정도 전수했으니 차후 승급한 직후,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크게 해매는 일도 없으리라.
‘파벌 유지를 위한 부품도 하나 얻었다.’
레너드는 인력 수급을 제외하면 쓸 곳이 마땅치 않은 인간이지만, 그 정도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쓸모가 있었다.
그것 뿐인가?
그라힐의 사주를 받은 게 분명한 요정족의 두 번째 암살 시도를 사전에 막아냄으로서, 나는 목숨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기회까지 획득할 수 있었다.
대체 무슨 기회냐고?
‘그라힐이 규칙을 깨고 개수작을 부렸지만, 마그너스는 어떠한 처벌도 내리지 않았지.’
물론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마그너스가 그라힐 같은 망나니 녀석을 편애해서 보호했을 리는 없으니, 아마 다른 이유가 있겠지.
물론 그 이유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이번 암살 시도가 마그너스의 책임이라는 사실이다.
‘에이미 때처럼 제대로 처벌을 내렸다면, 그라힐이 경거망동 하지 않았겠지.’
실제로 그럴지는 나도 모른다. 그라힐은 미친 놈이기에, 처벌을 하면 오히려 더 날뛰었을 수도 있다.
하나, 상관 없다. 마그너스에게 내 목숨이 노려진 대가를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내 목숨 값으로는…….’
과연 무엇을 받을 수 있을까.
기대가 되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